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모습은 반복해서 행동한 일의 결과물이다. 그러므로 모든 위업은 행위가 아닌 습관에 의해 완수할 수 있다.” 단순하게 사는 삶은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한 달간 미니멀리스트에 도전했다. 흉내에 가까웠지만 얻은 것은 많았다.

 

단순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세상 굴러가는 소리에 갈대처럼 휘둘리던 내게는 마음을 굳건하게 다질 계기가 필요했다. 때마침 책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저자인 사사키 후미오는 너저분한 방을 한껏 게워낸 뒤, 찾아온 놀라운 삶의 변화를 들려준다. 그가 주창하는 미니멀리스트란, 물건의 개수와는 상관없이 자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허영과 과시, 일시적인 만족을 위한 소비를 절제해 나에게 집중하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의 글 가운데, ‘물건의 집세를 대신 내주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부분이 마음에 박혔다. 돌이켜보니 내 몸 하나 누울 자리 빼곤 모두 내가 사들인 물건이 빼곡하게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나에게 진심으로 행복을 가져다줄까? 의문이 들었다.

설레지 않는 건 비웠다
먼저 집 안을 찬찬히 둘러보고, 주변 정리부터 시작했다. 책 <버리면서 채우는 정리의 기적>을 집필한 곤도 마리에가 알려준 방법인 ‘설레지 않는 물건에는 미련을 두지 말라’는 조언에 충실했다. ‘후회하면 어쩌지?’라는 생각과 물건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는 걸 핑계 삼아 뒹굴길 몇 시간째. 정리의 달인이 되기에 나는 미련이 너무 많았다. 심기일전으로 공간을 나눠 해치우기로 했다. 눈 앞의 책장에는 책이 쌓여 있었다. 좋아하는 책을 언젠간 다시 읽겠다는 의지였고, 책장에는 응당 책이 꽂혀 있어야 행복하다는 이유였다. 책은 박스에 넣어 다음 날 동네 중고서점 알라딘으로 가져갔다. 유레카! 뜻하지 않은 용돈을 얻었다. 알라딘 홈페이지에서 신청하면 택배 연결이 가능하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책을 빌려보면 어떨까 싶어 찾아보니 관악구에 있는 도서관 수가 무려 34개. 게다가 은천동작은도서관은 집 근처였다. 관악구 내 5개의 지하철역 무인 대출기에서 책 대여와 반납이 가능한 ‘ 관악구통합도서관의 U-도서관’ 시스템이 의외로 잘 갖춰져 있어 놀라웠다. 세금의 혜택은 흐뭇했다. 두 번째 목표는 옷장. 재작년 분가하면서 새 집으로 가져갈 옷을 처분해 다행히 정리는 한결 수월했다. 당시 낡은 옷은 동네 의류 수거함에 넣고, 몇 해 동안 입지 않은 멀쩡한 옷은 ‘아름다운 가게’에 기증했다. 기증품이 연말정산에 기부금으로 체크된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남은 옷을 다시 정리하느라 주말 이틀을 꼬박 잡아먹었다. 하지만 기증할 옷은 또 한 무더기 나왔다. 미스터리가 아닐 수 없다. 또 사용하지 않는 똑같은 물건이 너무나 많았다. 렌즈통 다섯 개, 안경집 여섯 개, USB 일곱 개를 비롯해 무릎담요와 향초, 충전 케이블, 보조 배터리, 비슷한 디자인의 화병이 줄을 섰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오공의 머리카락처럼 분신술을 펼친 걸까? 대부분 필요한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을 선별할 때가 되어서야 내 잘못을 절절하게 깨달았다. 내게 오지 않았더라면 다른 누군가에게 더 뜨겁게 사랑받을 수 있었을 테다. 환경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자 아찔해졌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상품권 봉투는 서랍장 뒤에서 구겨진 채로 발견했다. 물건이 넘치는 동안 정작 난 아무것도 몰랐다. 내가 놓친 것은 또 이 방에 얼마나 많을까?

냉장고와 컴퓨터를 정리했다
이제 냉장고 비우기에 들어갔다. 냉장고를 비울 때까지 슈퍼마켓에 가지 않는 ‘냉장고 파먹기’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전기세를 아끼고, 식비를 아끼는 1석 3조 방법은 요즘 블로거 사이에서 유행하는 캠페인의 일종이다. 2인 식구가 바쁘다는 걸 핑계 삼아 자주 장을 보진 않았지만, 양가에서 보내준 황송한 구호물품으로 냉동실은 터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작년에 받은 곰국을 끓이고 갈비를 구웠다. 지난 추석에 챙겨온 나물로 백선생식 돌솥 비빔밥을 만드니 한동안 식탁은 잔칫집처럼 풍성했다. 냉동 오징어로 국을 끓이고, 냉동 블루베리를 갈아 스무디를 만들어 먹었다. 요리는 점점 창의적으로 발전했다. 냉장고를 부탁받은 셰프가 되는 재미가 의외로 괜찮았다. ‘허셰프’는 못 되어도 ‘박풍’은 가능했던 덕에 외식과 야식이 줄었다. 정체를 알 수 없이 꽝꽝 언 ‘화석’ 식재료는 어쩔 수 없이 버렸다. 유통기한 지난 화장품보다 더 큰 죄책감이 앞섰다. 그 뒤로 냉장고 문에 식재료의 이름과 구입 시기를 적어놨다. 그리고 한동안 슈퍼마켓에선 양파와 파, 달걀 등 신선식품 위주로 샀다. 언젠가부터 확연히 느려진 컴퓨터에서 필요 없는 파일을 싹 지웠다. 사진은 분류하고 압축했다. 바탕화면도 깨끗하게 비웠다. 묵직했던 냉장고와 컴퓨터를 정리했을 뿐인데 마음까지 가벼워졌다.

지갑을 열지 않았다
최소한의 쇼핑으로 살 수 있을까? 최소한의 범주는 어디까지일까? 일단 기준은 ‘지금 당장 필요한가?’로 잡았다. 찰나의 만족과 허영, 자기과시적인 소비에 선을 그었다. 패스트패션으로 대변되는 브랜드는 기웃거리지도, 할인가로 포장된 묶음상품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싸다는 이유로 샀다가 후회도 없이 쉽게 내팽개치고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까. 이왕 산다면, 진짜 마음에 드는 것만 갖고 싶었다. 그러자 웬만한 것은 눈에 차지 않았다. 도전을 시작한 1월은 다양한 패션 브랜드의 가을/겨울 시즌을 마감하는 세일 기간었다. 에디터에게 날아온 수많은 프레스 세일 소식을 모른 척하는 건 마음 수행에 가까웠다. ‘갖고 싶었던 페이크 퍼 코트가 50% 세일한다던데! ’ 마음의 소리가 뇌에 맴맴 돌았다. 그래서 매장에 갔다. 막상 갔더니, 물욕에 도도해진 내 마음을 진심으로 흔들진 못했다. 시간만 버렸다. 다른 세일 소식 역시 시간낭비처럼 느껴졌다. 그린피스에서 활동하는 키아라 밀포드가 한‘ 해 동안 옷을 사지 않은 경험’을 공유한 글은 참고가 될 만큼 흥미로웠다. 그녀는 오래된 옷을 날씬해 보이게 수선하는 달인이었다.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인 S, M, L 사이즈에 맞추는 것보다 몸에 꼭 맞는 옷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고 고백한다. 패션은 돌고 도는 법. 빈티지 마켓 쇼핑은 힙스터로 가는 지름길이고, 가족과 친구와 옷을 바꿔 입는 것은 추억을 공유하는 놀이나 다름없었다. 이‘ 재킷은 빈티지예요.’ ‘엄마에게 물려받은 가방이죠’라는 말은 꽤 근사하게 들렸다. 새 옷을 사지 않아도 충분히 기분이 좋아질 수 있었다. 조언에 따라 난 동생의 코트와 원피스, 셔츠를 내 옷과 바꿨다. 심심할 때마다 습관처럼 직구 사이트를 클릭하던 것을 멈췄다. 한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낮은 가격이 직구의 매력이기도 했지만, 따져보면 물건의 필요와는 상관없이 ‘ 싸게 샀다’는 사냥꾼의 나른한 만족감에 취했을 터였다. 쇼핑을 제한하니 가격과 품질을 비교할 필요가 없었다. 고객과 호구를 합친 ‘호갱님’ 놀이를 끊은 덕분에 생각하지 않았던 여유가 생겼다. 내 통장에도, 그리고 내 시간과 마음에도 말이다.

마음이 비워졌을까
미니멀리스트에 도전한 지 어느덧 한 달째. 자질구레하던 집이 한결 깔끔해졌다. 수시로 도착한 택배박스가 없는 것만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걸까? 솔직히 사사키 후미오처럼 극도의 미니멀리스트로 살 수는 없었다. 여전히 침대와 소파가 주는 안락함은 너무나 소중했고, 아무리 덜어낸다 한들 여섯 벌의 단벌신사가 되긴 어려웠다. 팔아버린 책 몇 권은 밤에 생각날 정도로 아까웠으니, 내게 미니멀리스트 흉내는 험난한 비포장도로에 가까웠다. 고백하자면, 처음부터 고행일지 모른다는 불안함에 시도 자체가 두려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우는 삶은 버리기 경쟁이나 나를 단절하는 수련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것이 내게 필요한가?’라는 질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건 곧 ‘내가 어떤 사람인가’라는 확인으로 이어졌다. 버리는 행위가 환경과 연결된 지점에서 소비는 점점 더 조심스러워졌다. 모두 나를 읽는 시간이 됐다. 그 결과 내 마음도 시원하게 비워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긍정적이다. 나는 드디어 휴대폰에 쌓여 있는 문자 56개에 차단을 눌렀다. 한 번 다녀온 피부과와 안경점, 소셜커머스, 면세점의 세일 정보. 보험과 대출, 게임 가입을 권하는 갖가지 문자에 안녕을 고했다. 80%의 귀찮음과 또 언젠가는 필요할 거라 여지를 두었던 미련 20%와 이별한 것이다. ‘언젠가’를 멈추고 ‘현재’에 충실하자는 건 사실 내겐 커다란 의미다. 변화는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타인의 눈에서 갇히지 않은 채 내가 중심이 되리라! 진행하던 업무에 갑자기 태풍이 내리쳐도, 관계에 폭풍이 불어도 긍정파워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중얼거렸다. 비움은 무엇이든 채워도 되는 자유이기도 했다. 생각의 변화는 꼬리를 물고 찾아왔다. 물론 종지만 한 마음의 그릇이 하루아침에 무소유의 법정스님처럼 커질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우린 맨 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김한국이 부른 노래 ‘타타타’를 떠올릴 순 있었다. 가사를 흥얼거리는 사이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미니멀리스트로 살면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이 들려준 미니멀리스트의 장점은 아래와 같다!
1 시간이 생긴다. 쇼핑하는 시간, 그로 인해 고민하는 시간, 물건을 찾는 시간, 정보를 얻는 시간을 줄이면 남는 시간이 의외로 많다.
2 생활이 즐거워진다. 매일 나 자신을 청소하는 기분으로 살게 된다. 집 안은 한결 깔끔해진다.
3 자유와 해방감, 행복감을 느낀다. 집착과 욕심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부족함을 느끼지 않으므로 남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4 행동하는 사람이 된다. 물건을 줄이면 내게 진짜 필요한 것을 알게 되고, 두려움 없이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5 환경을 위하게 된다. 윤리적인 소비는 환경을 위한 움직임이다.
6 절약할 수 있다. 쓸데없는 소비를 줄이는 만큼 통장은 두둑해진다.
7 인간관계가 달라진다. 물건에 집착하지 않는 대신 사람의 소중함을 깨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