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킨케어 브랜드는 자연주의나 바이오, 그것도 아니라면 한방을 표방한다. 샴푸 브랜드 셋 중 하나는 한방 성분이 주요 콘셉트다. 한마디로 우리나라에서 한방화장품은 흔하디흔하다. 도대체 어디까지 ‘한방’이라 이름 붙일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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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이미지 속에 ‘한방’이란 ‘한약’과 비슷한 그 무언가다. 비록 효과는 다소 더디게 나타날지라도 몸속부터 근본적으로 건강해지고, 허한 기운도 보충해줄 것 같은 깊고 진한 느낌. 한국인의 체질에도 어쩐지 더 잘 맞을 것만 같다. 게다가 한방 성분은 대부분 식물성이니 자극 없이 순하기까지 하지 않을까? 피부에도 마찬가지다. ‘한방화장품’ 하면 막연히 탄탄한 제품력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해졌다. 유기농 화장품은 원산지나 수확 및 제조 규정이 유난히 까다롭고, 기능성 화장품은 유효 성분에 대해 깐깐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한방화장품의 경우 특별한 규정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 도대체 어디까지 한방화장품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막연히 믿고 있는 한방화장품의 진짜 효과는 뭘까?

‘한방화장품’에 대한 모호한 정의
일단, 화장품 허가심사 관리 및 표시에 대한 전반적인 법령과 가이드라인을 정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에서 2012년 1월 1일부터 시행키로 한 한방화장품 표시, 광고 가이드라인을 찾아 봤다. 식약처에서 정의하는 한방화장품이란 다음과 같다.  <‘대한약전>, <대한약전외한약(생약)규격집> 및 ‘기존 한약서에 대한 잠정 규정’에 따른 기존 한약서에 수재된 생약 또는 한약재를 일정 기준 이상 제조 시 사용한 화장품’. 여기서 말하는 기존 한약서란<동의보감>, <본초강목>, <향약집성방> 등 11개의 한약서를 말한다. ‘일정 기준’이란 화장품 내용량 100g 중 함유된 모든 한방 성분을 원재료로 환산하여 합산한 중량이 1mg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위의 한약서 13개에 나온 성분을 0.001% 이상만 사용할 경우 한방화장품이라 이름 붙이고 광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아마 여기까지 이 글을 읽은 독자라면 이런 의문을 품을 것이다.. 0001%라고? 겨우 이 정도 함유량으로 한방 성분의 효과를 기대해도 되는 걸까? 물론 함량이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실제로 화장품 브랜드들이 탁월한 효과를 지녔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희귀 성분이 0.001% 이하로 함유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화장품의 효능은 유효 성분의 함량과 비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문제는 아직 한방화장품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마련되어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정확한 성분 배합을 밝히지 않는 브랜드도 많다는 것. 우선, 규정이 모호하다. 식약처의 가이드라인에는 생약 또한 한약재에 대해서는 어떠한 구체적인 규정도 없다. 한국이 아닌, 중국이나 동남아 등 외국의 검증되지 않은 원료를 사용해도 무관하다. 원산지 표시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성분을 배합하든 해당 한방 성분들끼리 더해서 100g당 1mg만 넣으면 된다는 규정도 문제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배합이 어떻든 상관없다는 의미니까. 정작 피부에 유효한 성분은 극소량만 넣어도, 다른 한방 성분들과 섞어 함유량 기준만 만족시킨다면 한방화장품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한방화장품 성분 중에서 기능성 화장품 성분으로 인정받은 게 거의 없다는 것도 아쉬운 점이다. 아직 한방 성분에 대한 과학적인 검증 데이터가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이다. 국내의 수많은 중소 브랜드에서 앞다퉈 ‘한방화장품’을 내놓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보다 헐거운 자격 요건에, ‘한방’이라는 이름 자체로 소비자들에게 어느 정도 효과가 검증되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줄 수 있으니까. 한마디로 유기농 화장품이나 기능성 화장품 등에 적용되는 엄격한 규정이 한방화장품에는 없다. 아마도 이런 모호한 규정의 배경에는 국내 화장품 사업 육성과 정통 의학 보존 및 장려 등의 취지가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우리가 알아야 할 한방화장품의 진실
여러 한방화장품 브랜드에 이런 질문을 보내봤다. 좋은 한방화장품의 요건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한방화장품을 선택할 때는 어떤 점을 체크해야 하나? 답변은 대부분 다음과 같았다. “한방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동양 철학에 기반한 한방에는 부분이 아닌, 전체를 바라보는 관점이 담겨 있거든요. 모든 것이 서로 영향을 주며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중요 전제죠.” 따라서 한방화장품의 경우 겉으로 드러나는 피부 고민의 원인을 어느 하나에 한정하지 않고 전반적인 피부 기능 회복을 주요 목표로 삼는다는 것. 한방화장품 브랜드들이 원료 하나의 효능에 집중하기보다는 원료들 간의 배합과 가공법에 더욱 집중하고 이를 강조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여타 다른 화장품과는 접근 방식이 달라야 한다는 의미다. 수많은 한방화장품 브랜드가 피부 전반의 건강을 회복시킨다고 알려진 한방을 근간으로 하되, 여기에 기능성 성분을 더하고 과학적 검증 데이터를 더해 기능성 화장품으로서의 변화를 더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의 인식 변화다. 한방화장품이란 한방 성분이 사용되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 그 자체로 특정 ‘기능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한방 콘셉트라는 그 자체보다는 각 브랜드 제품의 효능에 더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소 힘이 빠지는 결론이라는 건 안다.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당신이 한방화장품의 현실을 좀 더 가까이 마주하게 되고 제품을 선택할 때 한번쯤 떠올려 더 똑똑한 소비를 할 수 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