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와 대중성, 두 마리 토끼를 잡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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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길게 모차렐라를 늘어뜨리고 버거를 손에 쥐고 있는 김상중을 광고에서 보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양복을 입은 김상중이 버거 광고와 썩 잘 어울린다는 깨달음 다음에 찾아온 감상은 다음과 같았다. 이렇게 믿음직한 버거 광고는 처음이야!

지금 김상중은 가장 신뢰감을 주면서도 친근한 대중문화 아이콘이다. 날카로운 사회 지도층이나 냉혈한을 도맡아 연기했던 배우는 50대에 접어든 이후 우스꽝스러운 버거 광고를 찍고, <SNL 코리아>에 호스트로 초청된다. <개그콘서트>의 무수한 유행어가 떴다가 사라진 후에도 그의 트레이드마크 ‘그런데 말입니다’의 지위는 공고하다. 그렇다고 본업인 연기자로서의 행보에 소홀한 것도 아니었다. 드라마 <추적자>에서는 견고한 권력을 구축한 재벌 그룹의 사위로, <나쁜 녀석들>에서는 범죄자와 다를 바 없는 악랄한 형사로, <장비록>에서는 임진왜란을 기록한 당대의 정치인으로 분했으며 홍상수 감독의 영화 두 편, <북촌방향>과 <우리 선희>에서 연달아 주연을 맡았다. 그리고 두 편의 영화에서 김상중의 모습은 홍상수의 영화 속 여느 남주인공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점잖은 척 어린 여자에게 은근히 마음을 떠보고, 후배와 함께 낯선 여자들의 술자리에서 흥청댄다. 그러나 배우로서 김상중이 어떤 선택을 하든, 어떤 연기를 선보이고 어떤 쇼에 출연하든 <그것이 알고 싶다> 속 반듯하고 냉철한 김상중의 이미지는 놀랍도록 공고하다. 김상중은 2008년 첫 진행을 맡은 이래 어느덧 8년째 <그것이 알고 싶다>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리가 김상중에게 던지는 신뢰와 친밀감은 단순히 그의 오랜 활동기간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을 맡은 이후 6년째 하루에 한 끼만 먹는다.” 김상중이 얼마 전 한 인터뷰에서 밝힌 사실이다. 슈트가 잘 어울리는, 샤프하고 신뢰감 가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지만 그가 얼마나  스스로에게 철저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한국의 대중은 중년 남자 배우의 외모나 태도에 관대하다. 그러나 김상중은 그런 노력 덕택에 훌륭한 ‘슈트발’을 유지한다. 자신이 아직 어른이 됐음을 인정하기 힘든 ‘어른’들이 펼치는 토크쇼 <어쩌다 어른>에서도 김상중은 프로그램 기획 의도에 가장 잘 맞는 패널이다. ‘꼰대’ 테스트에서는 몇 가지 항목에 답하다가 금방 자신이 ‘꼰대’임을 인정하고(무릇 진짜 꼰대는 자신이 꼰대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토바이에 푹 빠진 모습이나 이상형을 샤를리즈 테론이라고 밝히는 솔직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TV 속 연예인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 화면을 보며 눈물 흘리고 말을 잇지 못하던 모습이나, ‘가장 낮은 곳의 인권이 가장 보편적인 인권이다’라고 또박또박 확신을 갖고 말하는 김상중의 진심을 의심하기란 쉽지 않다. 믿고 의지할 게 자꾸 없어지는 지금, 우리는 신뢰하고 싶은 누군가를 갖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김상중은, 지금 그 기대를 배신하지 않은 거의 유일한 아이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