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이프가 달라졌다. 풍부한 컬러 조합과 불규칙한 간격 등 한층 눈에 띄는 모습으로 봄/여름 시즌 의상을 물들이고 있는 것. 우아하고 세련돼야 한다는 강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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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를 이끄는 주요 하우스들은 올 시즌 두 가지 노선을 택했다. 몸을 타고 흐르는 실크의 광택과 감미로운 서정미를 드러내는 장식을 더해 여성미를 자 극하는 노선이 하나. 그리고 원초적인 색과 다채로운 프린트의 행렬로 맥시멀리즘의 정점을 보여주는 노선이 또 다른 하나이다. 이는 어떤 방식으로든 대담 해지기를 주문하는 디자이너들의 외침으로 들린다.

디자이너들의 이런 바람은 마린 룩의 기본 재료인 스트라이프까지 미쳤다. 트렌드가 맥시멀리즘을 가리킬 때면 스트라이프의 변주는 어김없이 이어졌다. 에포트리스 룩이 정점에 올랐던 2011년 봄/여름 시즌 디자이너들은 그동안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폭이 넓은 스트라이프에 눈을 돌렸고, 드라마틱한 컬러들만 뽑아내어 스트라이프에 입혔다. 그 대표주자는 미우치아 프라다였다. 프라다는 오렌지, 그린, 핑크 줄무늬 재킷과 스커트를 매치하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등장하는 체셔 고양이의 꼬리 같은 폭스 머플러와, 뱅글뱅글 돌아가는 스트라이프 패턴 솜브레로(맥시코 전통 모자)를 선보이며 트렌드의 판도를 맥시멀리즘으로 바꾼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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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실크 소재 스카프는 가격미정, 디올(Dior). 2 스웨이드 소재 부츠는 가격미정, 랑방(Lanvin). 3 면 소재 모자는 가격미정, 타미 힐피거(Tommy Hilfiger). 4 폴리에스테르 소재 드레스는 1백21만8천원, CH 캐롤리나 헤레라(CH Carolina Herrera). 5 플라스틱 소재 귀고리는 가격미정, 프라다(Prada). 6 아크릴 소재 스커트는 39만8천원, 럭키 슈에뜨(Lucky Chouette). 7 송아지가죽 소재 토트백은 가격미정,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 8 폴리에스테르 소재 톱은 4만5천원, 자라(Zara). 9 레이온 소재 드레스는 53만8천원, 띠어리(Theory). 10 면 소재 재킷은 19만9천원, H&M. 11 폴리에스테르 소재 팬츠는 43만8천원, 에센셜(Essentiel). 12 라피아 소재 샌들은 가격 미정, 스튜어트 와이츠먼(Stuart Weizman).

이 같은 현상이 2016년 봄/여름 컬렉션에서도 나타났다. 또다시 미우치아 프라다의 손에서부터. 2011년은 줄무늬가 서로 다른 컬러가 중심이 되었다면, 이번에는 서로 다른 소재와 간격의 재발견이다. 스웨이드와 파이톤 소재를 패치한 스커트 슈트와 코트, 각기 다른 짜임과 색이 교차하는 트위드 스트라이프, 페이턴트와 실크 위에서 윤기를 내는 노랑, 검정, 갈색의 조합, 오간자 위에 그려진 경쾌한 세로 줄무늬와 오간자 속에서 은근하게 존재감을 드러내는 스트라이프까지 줄무늬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었다. 스트라이프가 지닌 경쾌함으로 자신의 장기를 부각시킨 디자이너가 또 있으니 바로 스텔라 맥카트니. 현대 여자들이 원하는 세련되고 동시에 편안한 스타일을 제안하는 스텔라 맥카트니는 최근 ‘스웨트 드레싱’에 심취해 있는데, 여기에 몸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는 노랑, 빨강, 초록의 원색 줄무늬를 더해 특유의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스포티즘을 완성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선이 만들어내는 리듬감 덕분에 스트라이프는 스포티브 룩에 자주 이용되지 않던가. 형광빛이 감도는 초록과 노랑, 오렌지, 핫 핑크와 검정을 교차하여 현란한 아코디언 플리츠로 변화시킨 것은 에너제틱하면서 동시에 섹시한 룩을 만든 신의 한 수라 할 만하다. 부드러우면서 단순한 것을 만들고 싶었다는 디올의 라프 시몬스는 서정이 드리워진 빅토리아풍의 의상에 거대한 크기의 줄무늬로 컬렉션에 현대적인 무게를 더했다. 의상을 캔버스 삼아, 몸을 가로지르는 가로 선의 오버사이즈 점퍼와 테일러드 베스트, 온몸을 덮은 세로 줄무늬 오간자 드레스는 작품의 크기로 관중을 압도하는 색면회화(Color-field Abstract)처럼 보는 이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크기를 키운 줄무늬는 단순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게, 조용하지만 적당히 예술적인 컬렉션을 이끌어간 라프 시몬스의 동시대적인 조합인 셈이다. 스트라이프는 직선의 날카로운 느낌 덕분에 현대적이며 젊은 이미지를 완성한다. 이를 이용한 디자이너는 라프 시몬스뿐 아니라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네르티, 아이스버그의 아서 아베서가 있다. 고루한 브랜드의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 노력 중인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러플과 플레어 드레스에 역동적인 줄무늬를 더하는 방식으로 현대적이면서 예술적인 분위기를 드리웠고, 아이스버그는 젊음의 에너지를 수혈하기 위해 복고적인 컬러의 줄무늬 의상으로 컬렉션을 시작했다. 굵기를 달리하고, 방향을 교차하며 형태를 왜곡시킨 형형색색의 줄무늬로 생동감을 부여한 록산다 일린칙과 미쏘니, 거대한 크기의 샛노랗고 새빨간 줄무늬로 마린 룩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막스마라와 돌체앤가바나도 맥시&멀티 스트라이프의 트렌드를 지지한다.

미셸 파스투로의 저서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는 스트라이프가 지닌 다양한 특성을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줄무늬는 자연의 무질서를 질서 있게 정돈해서 재정비하려는 인간의 오랜 욕망을 반영한다. (중략) 순수한 줄무늬는 계속해서 눈길을 끈다. 그만큼 자극적이라는 뜻이다. 줄무늬는 강렬한 빛으로 우리의 시선을 어지럽힌다.” 결국 색을 입고 크기를 키운 줄무늬를 입는다는 건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닐까? 그러니 지 금 줄무늬를 입을 때 필요한 건 대담해질 수 있는 용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