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가공의 록스타 지기 스타더스트(Ziggy Stardust)와 알라딘 세인(Aladdin Sane) 그리고 우아하지만 약에 취해 삐쩍 마른 유령 같은 신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까지, 데이비드 보위가 창조해낸 페르소나는 언제나 충격적이었고 도전적이었으며 또 섹시했다. 지난 1월 10일, 별이 되어 우리 곁을 떠난 데이비드 보위를 추억한다. 6명의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각각의 방식으로 그를 오마주했다. 그가 우리에게 보여준 삶과 음악처럼 관능적이고 아름답게.

 

팬츠는 필립 플레인(Philipp Plein).

팬츠는 필립 플레인(Philipp Plein).

“내가 느끼는 보위의 이미지를 색으로 표현하자면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보라색에 가깝다. 빨강도, 파랑도 아니지만 뭔가 낭만적이고 퇴폐적인 색깔. 보위 하면 떠오르는 번개 모양에 보라색을 입히고 속눈썹을 강조해 관능을 더했다. 남성스러우면서도 또 여성스럽게.” –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영

1973년에 출시된 <알라딘 세인(Aladdin Sane)> 앨범 커버. 이때 선보인 번개 모양의 메이크업이 데이비드 보위를 상징하는 이미지 중 하나가 되었다. 사진가 브라이언 더피의 작품으로 피에르 라로슈가 메이크업했다. 어릴 적 싸움으로 왼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어 양쪽 눈의 색깔이 다른 오드 아이가 된 데이비드 보위의 기묘한 아름다움이 부각되는 룩이기도 하다.

 

bowie-sane

“나는 늘 인간과는 다른 무엇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인간이라는 것은 얼마나 시시한 존재인가. 그래서 난 생각했다. ‘다 집어치워. 난 초인(Super Human)이 될 거야.’”
–  데이비드 보위

 

브라와 뷔스티에는 라 펠라(La Perla).

“1973년 앨범 <핀업스(PinUps)> 커버에서 가면을 쓴 듯 독특하게 메이크업한 보위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수온이 흐르는 듯한 붉고 하얀 피부는 우주에서 날아온 아름다운 몽상가와도 같았다. 콘서트 때 선보인, 이마에 태양을 새겨 넣은 분장도 충격에 가까웠다. 위험하고도 섹시한 야수 같았으니까. 언제나 파격적이었던 보위의 룩을 여성스럽게 재해석했다. 태양의 동그란 형태를 해체해서 얼굴에 얹고 눈가와 뺨에 태양처럼 붉은빛이 흐르게 했다. 콧등을 타고 흐르는 금빛은 해가 남긴 눈부신 잔상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의 마음에 태양을 남기고 떠난 보위처럼.” –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준성

 

톱은 푸시 버튼(Push Button).

톱은 푸시 버튼(Push Button).

“우리에게 보위는 글램록의 상징처럼 여겨지지만 사실 그가 글램록에 몰두한 시기는 <지기 스타더스트(The Rise and Fall of 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를 내놓은 1972년부터 불과 몇 년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 줄곧 그의 스타일은 섹슈얼한 댄디 룩에 집중되었다. 나에게 보위도 그렇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과 음울한 눈빛, 남자지만 여성스러운 감수성이 녹아 있는 입술. 보위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피사체였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박태윤

 

드레스는 월포드(Walford).

드레스는 월포드(Walford).

“삐죽삐죽한 당근색 머리카락, 비즈가 잔뜩 달린 보디 슈트 그리고 깃털 목도리. 보위하면 떠오르는 것은 정말 많지만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보위는 색을 가지고 노는 영리한 아티스트였다는 사실이다. 빨강과 파랑의 엄청난 대비를 안정적으로 소화해내는 능력. 그가 가진 놀라운 색의 감도를 푸른 눈매와 붉은 뺨, 입술로 표현해봤다. 눈가에는 어지럽게 잔뜩 파란색 비즈를 얹은 채로. 보위가 우리에게 보여준 화려한 색채와 기괴하고 파격적인 조형미가 무척이나 그리울 것 같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정샘물

사람들이 내가 말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난 항상 놀라곤 하지. 사실 난, 나의 존재조차 진지하게 여기지 않는데 말이지.” – 데이비드 보위

재킷은 제이미앤벨(Jamie&Bell). 팬츠는 김서룡(Kimseoryoung).

재킷은 제이미앤벨(Jamie&Bell). 팬츠는 김서룡(Kimseoryoung).

“앙상하게 마른 뺨, 카트린 드뇌브를 연상시키는 높은 광대뼈, 좋아하는 여자를 두고 싸우다가 생겼다는 무척이나 낭만적인 사연이 담긴 오드 아이까지. 나에게 보위의 이미지는 음울한 에너지가 곤두서 있는 적갈색을 띠고 있다. 그의 마지막 뮤직비디오 ‘나자로(Lazarus)’를 보며 어쩌면 진짜 보위는 그가 만들어낸 페르소나처럼 화성에서 잠시 지구를 방문한 록스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성으로 돌아간 보위는 그곳에서도 움푹 들어간 뺨에 갈색빛이 도는 입술로 노래를 하고 있을 것이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원영미

“존 레논에게 내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은 적이 있어. 그는 말했지. ‘훌륭해. 하지만 그것도 어쨌든 로큰롤일 뿐이야. 단지 립스틱을 조금 바른.’” – 데이비드 보위

 

톱은 미쏘니(Missoni). 팬츠는 김서룡.

톱은 미쏘니(Missoni). 팬츠는 김서룡.

“보위 하면 중성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움푹 들어간 눈과 골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얼굴에 얹힌 메이크업. 야윈 얼굴 때문일까. 생각해보면 그의 얼굴에는 유난히 직선의 요소가 많이 있다. 이를 구레나룻과 연결해봤다. 남성적인 인상을 더하면서도 보위만의 야윈 얼굴을 상징적으로 표현해줄 수 있는 선. 잿빛이 더해져 더욱 유약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신 화이트 듀크에게 바치는 나만의 오마주다.” – 메이크업 아티스트 공혜련

 

Bowie On Stage
1976년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Station to Station)>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 이 앨범을 계기로 보위는 화려한 글램락에서 벗어나 그가 창조해낸 새로운 페르소나인 신 화이트 듀크(Thin White Duke)로 변신했다.

“위를 바라봐, 나는 천국에 있어. 내게는 보이지 않는 상처가 있지.”
2016년 1월 9일에 발표한 보위의 마지막 앨범 <블랙스타(Black Star)>. 그중 ‘나자로(Lazarus)’라는 곡에서 발췌했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보위는 단추 눈을 단 예언자로 등장하며, 마치 자신의 죽 을 예상이라도 한 듯 어두운 캐비닛 속에 서서 캐비닛의 문을 닫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사라진다.

“나는 예언가도, 원시인도 아니야. 단지 초인이 될 잠재력을 가진, 유한한 인간일 뿐.” – 데이비드 보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