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모습으로 되살아난 네 권의 복각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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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꾸러미를 풀었더니 익숙한 한편 낯선 책이 맨 위에 있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분명 윤동주 시인의 시집이었다. 그런데 그 외양은? 어릴 적 외갓집 다락에서 발견한 책처럼 낡은 모습이다. 출판사가 복각한 윤동주의 유고 시집은 1955년 발행된 증보판을 그대로 살려냈다. 표지와 내부의 글씨 모두 이제는 헌책방에서나, 아니 헌책방에서도 사라진 과거의 모습이다. 백범 김구의 자서전 <백범일지>도 교육자료 수집과 전갑주의 소장자료를 토대로 복각되었다. 누군가의 추억도 이 책으로 되살아나지 않았을까?

이렇듯 복각본은 지나간 기억을 되살리고, 기억해야 할 한때를 길어 올린다. 가장 의미 있는 복각판은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 <문학과지성> 41호다. 1980년 7월 31일, 문예 계간지 <문학과지성> 편집부는 창간 10주년 기념호 준비가 한창이었다. 하지만 갑자기 신군부 정권에 의해 정기간행물 등록이 취소되어 강제 폐간된다. <뿌리 깊은 나무>, <창작과 비평>도 이때 함께 폐간당한다. 편집자들은 이미 받아둔 원고 등을 교정쇄로 출력해 50권을 가제본해서 소수의 관계자에게만 나눠주었다. 표지도 목차도 없는 그 가제본이 <문학과 지성 : 1980년 가을 제11월 제3호 통권 제41호>다. 시대의 아픔과 출판계의 전설을 담은 바로 그 41호가 <문학과지성> 창간 45년을 맞아 복각되었다. 창간 동인과 문학과지성사는 이 책을 다시 간행하기로 하면서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기로 했다. 그래서 이 책에는 당시 혼용되던 한자가 그대로 사용되었고, 표지와 복각을 기념한 좌담 등 몇몇 기사를 제외하면 41호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러나 폐간 당시 풍경을 각자가 회고하는 부분에 이르면 먹먹해진다. ‘많은 사람이 위로차 사무실을 찾아와주었는데 그들은 마치 빈소를 찾는 조문객처럼 엄숙한 표정들을 갖고 있었다’, ‘우리는 희망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희망한다. 희망하기 위해 희망한다.’ 우리가 지금 다시 <문학과지성>을 읽을 수 있는 것이야말로 그 희망의 증거가 아닐까?

<행복한 책읽기 : 김현 일기 1986-1989> 역시 문학과지성사 40주년을 맞아 다시 펴낸 책이다. 올해는 <문학과지성> 창간 동인으로 평생 문학 위를 걸은 평론가 김현의 25주기이기도 하다. <행복한 책 읽기>는 1985년 12월부터 1989년까지 12월까지만 4년 동안 그가 남긴 일기다. 죽음을 예감하면서 동시에 생을 발견했던 그의 마지막 문학 인생이 담겨 있다. 작가들이 사랑한 작가였던 그의 일기는 지금까지 31쇄가 발행되었는데 이번 개정판은 특별판으로 제작되어 이청준, 김인환, 황현산 등 문학인사들이 참여했다. 목포문학관에 소장 중인 김현의 자필 서안과 김치수, 김병익, 이청준과 주고받은 편지의 원본도 옮겼다. 1970년대를 뜨겁게 살았던 젊은 작가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좋은 글의 삶은 생생하고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