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단 하나의 스웨터를 사야 한다면 엄마가 직접 뜨개질해서 만들어준 것 같은 케이블 스웨터를 고를 것. 영하의 추위를 반기게 만드는 투박하고 묵직한 아란 스웨터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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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올 정도로 포근한 데다 아주 부드러운 크림 컬러의 케이블 스웨터는 마치 ‘좋은 취향’을 외치는 것 같다. “시크하면서 실용적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거겠죠. 기온이 떨어지면 사람들은 입었을 때 기분이 좋으면서 보기에도 아름다운 스웨터를 입고 싶어 하기 마련이에요. 아란(Aran) 스웨터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유는 정교한 만듦새와 아름다운 텍스처에 있어요.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고 입기도 쉽습니다. 어디에나 잘 어우러지니까요.” 2015년 가을/겨울 시즌 피터팬 칼라와 팔꿈치까지 내려 오는 짧은 소매의 아란 스웨터를 선보인 디자이너 마이클 코어스는 아란 스웨터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아일랜드 서부에 위치한 아란 제도에서 이름을 따온 아란 스웨터의 역사는 18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부의 아내들은 바다에 나가 추위와 습기에 맞서는 남편들을 위해 직접 손으로 스웨터를 짰고(천연 리놀린 성분이 습기를 방지하기 때문에 100% 울 소재로 만든다), 각 마을마다 특유의 패턴을 만들어 어부의 출신 지역을 나타냈다. 아란 스웨터의 특징인 다양한 문양은 전부 어부들의 삶과 관련이 있다. 케이블은 어부들이 사용하는 끈을, 벌집은 열심히 노동하는 꿀벌을, 크로스 형태의 직조는 갓 잡힌 생선으로 가득한 바구니를, 지그재그는 해안을 따라 난 복잡한 선로를, 다이아몬드 패턴은 부와 번영을 의미한다. 수십 년이 지나 아란 스웨터는 대서양을 가로질러 할리우드로 건너왔고, 1950년과 60년대 스티브 매퀸과 그레이스 켈리의 사랑을 받으며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아란 스웨터의 인기 덕분에 올겨울 뜨개 바늘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일 것 같다. 아란 스웨터는 2015년 가을/겨울 컬렉션 런웨이 곳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렌티노는 먹물이 번진 듯한 효과를 준 아란 스웨터를 선보였고, 알투자라는 비둘기색이 감도는 회색 스웨터를 섹시한 펜슬 스커트와 매치했으며, 막스 마라는 하우스의 클래식 캐멀 코트와 찰떡궁합을 이루는 캐러멜 컬러의 오버사이즈 스웨터를 제안했다. 조금 더 장식적인 요소를 선호한다면 스터드와 체인 장식을 더해 ‘쿨 걸’을 위한 아란 스웨터를 선보인 알렉산더 왕으로 눈을 돌려보자. 한편, 델포조의 조셉 폰트는 텁수룩한 프린지와 곱슬곱슬한 털 장식이 달린 예술적인 스웨터를 만들어 냈고, 사카이의 아베 치토세는 바스락거리는 면 소재와 소박한 아란 스웨터를 결합한 독특한 스웨터 원피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전통적인 아란 스웨터에 마음이 간다면 앤 도터(& Daughter)가 정답이다. 과거패션 홍보일을 한 버피 레이드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설립한 럭셔리 니트 웨어 브랜드로, 몸에 꼭 맞는 스타일부터 멋스러운 패치워크 디자인까지 다양한 아란 스웨터를 선보이고 있다. 전 제품은 아일랜드에서 생산한 100% 영국산 울 실로 제작한다.
“블루 데님이나 화이트 티셔츠, 또는 밀리터리 재킷 같은 상징적인 패션아이템이 있죠. 그 자체만으로 훌륭하기 때문에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절대 질리지 않아요. 아란 스웨터 역시 그런 아이템 중 하나예요 .”디자이너 이자벨 마랑은 아란 스웨터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는다. “나는 아란의 효율성이 좋아요. 따뜻하고 편안한 데다 수십 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 튼튼한 울로 만들어졌죠.” 그녀는 이번 시즌 반짝이는 검정 단추가 어깨에 달린 몸에 꼭 맞는 마린풍의 아란 스웨터를 선보이기도 했다. “어릴 적 어머니는 직접 아란 스웨터를 짜주곤 했어요. 아직도 일부를 간직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영감을 선사해주곤 합니다.”
아란 스웨터의 노스탤지어에 감염된 디자이너가 또 있다. 조셉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루이스 트로터는 이렇게 회상한다. “10대 후반에 아버지의 오래된 아란 스웨터를 몰래 훔쳐 입곤 했어요. 손으로 직접 짰기 때문에 아주 무겁고 조금 가려웠어요. 하지만 어떤 옷과도 멋지게 어울렸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금 아란 스웨터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유품 중 하나예요 . 언젠가는 딸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조셉 매장에서는 특유의 케이블 문양과 해체주의풍의 패치워크가 장식된 아란 카디건을 만날 수 있다. 특별히 긴 슬리브 덕분에 남자친구의 옷장에서 빌려온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이 스웨터가 입고 싶어 견딜 수 없어요. 겨우내 편안하고 멋스럽게 나를 감싸줄 것 같은 느낌이에요.”그녀가 덧붙인다. 그러니까 두툼한 털실로 짠 아란 스웨터는 포근한 겨울을 보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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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소재 스웨터는 48만8천원, 제인 송(Jain S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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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소재 스웨터는 1백47만원, 코치(Co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