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드폴은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고, 농사를  짓는다. 지난 2년여의 시간을 7집 앨범 <누군가를 위한>에 꾹꾹 채워 담은 그가, 제주도의 바다에서 한 편의 편지를 보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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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곡의 편곡, 그리고 녹음이 다 끝나고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개인 홈페이지에 쓴 이 글과 함께 올린 하늘 사진이 인상 깊었다.
1집 이후부터 2년마다 정규 음반을 내고 있는 내게 앨범이란, 한 사람으로서 혹은 한 뮤지션으로서의 기록과 같다. 7집은 6집 발매를 마친 2013년 가을부터 2015년 초여름 곡 작업에 들어가기 전까지, 나의 모든 일상과 경험과 느낌과 성장인 셈이다. 또 한편으로 2년간의 농사를 끝내고 수확을 준비하는 기분과 비슷하다.

 

7집 <누군가를 위한>은 말 그대로 누구를  위함인가?
영어 제목인 <Someone, Somewhere>는 직역을 하면 ‘누군가, 어딘가’ 정도가 될 거다. 나와 그리고 나의 이 앨범과 인연의 고리에 닿은 어딘가에 있을 그 누군가. 내 노래와 내 글에 감응하고 감성의 연대를 이룰 수 있을, 그 누군가를 위한 노래이자 글이자 나의 모든 기록을 채집한 결과다.

 

앨범과 함께 동화책 <푸른 연꽃>을 발간했다. 동화책과 이어지는 구성이 독특하다. 재작년 늦겨울에 서울을 떠나 제주로 내려왔다. 생각한 것 이상으로 좋은 일이 많았지만, 처음 시작한 농사일이나 낯선 관계처럼 힘든 일도 참 많았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에 나를 달래줄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주 초반에는 노래를 쓰기가 어려웠다. 노래란 원래 좀 예열을 해야 지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다 첫 피아노 연주곡  ‘집까지 무사히’를 완성했고, 이 곡에서 동화가 출발했다. 내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특별히 동화책 장르를 택한 이유가 있었나?
마을 친구의 소개로 동네 초등학교에서 동화책 읽어주기 봉사를 시작했다. 처음엔 아이들과 어찌 어울려야 할지를 몰라 당황했는데, 점차 동화책 읽는 그 짧은 시간이 너무나 기다려졌다. 그리고 더 신기한 건 아이들이 나를 좋아하더라는 거다! 그러던 중 동화책 <어쩌다 여왕님>과 <책 읽는 유령 크니기>를 번역하게 되었다. 멋 부리지 않은 글, 허세가 없는 글, 아이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갑자기 귤 농사를 짓게 된 이유도 궁금하다.
이주한 처음엔 밭농사를 배웠다. 그러다 친구들 몇 명과 빌린 밭을 일구는 작은 공동체를 만들게 되었고,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어쨌든 내 본업은 음악이니, 이 이상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밭일을 쉬고, 아는 형님이 빌려준 귤농장 350평을 돌봤다. 첫해엔 돌보기는커녕 하루하루 내 앞가림에 정신없는 날들이라 소홀했다는 말이 정확할 거다. 수확철이 오자 말할 수 없는 감동과 미안함이 함께 몰려왔다.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내게 나무들은 많은 선물을 주었으니까. 올해엔 과수원 750평을 빌렸다. 더 많이 묻고, 열심히 배우며 가꿨다.

 

초보 농부가 수확을 겪기까지, 많은 일이 일어났겠다.
빌린 밭이 집에서 멀다. 오가는 왕복 세 시간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아내와 단둘이 농사를 짓는데, 아내에게 미안할 뿐이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예를 들면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제비가 집을 짓다 알을 까고, 꽃이 지고 열매가 생겨서 익어가는 섭리 그 모든 것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매 순간이 언제나 신기하다.

 

농사를 통해 얻은 삶의 지혜가 있다면?
지혜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하나 적자면 식물은 말이 없지만 자신을 돌봐주는 손길을 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든 감응을 한다.

 

홈쇼핑을 통해 수확한 귤과 동화책 <푸른 연꽃>, 7집 앨범을 판매하는 <귤이 빛나는 밤에> 프로젝트를 들었다. 홈쇼핑에서 유희열과 정재형이 출동해 7집 미니 쇼케이스까지 열다니! 이 기발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출발했나?
처음 데모 녹음을 한 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희열 형이 툭 던지듯이 한 말이 씨가 되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자기도 그 아이디어를 얘기해놓고 소름이 돋았다고 하더라.

 

2008년부터 꾸준히 출간한 소설과 번역서는 여섯 편에 이르고, 개인 앨범 일곱 장을 완성했다. 쉬지 않는 창작의 근간은 무엇일까?
체질적으로 새로운 걸 좋아하는 사람이다. 모르는 걸 알아내고 싶고, 안 해본 걸 경험해보고 싶고. 그래서가 아닐까 한다.

 

2016년, 당신의 시간이 흥미롭게 파도치길 바라는가? 아니면 잔잔히 흐르길 바라는가?
지금처럼, 작년처럼, 지나갔으면 좋겠다. 순간순간을 새겨가며 살아왔으니까.

 

음유시인이란 수식어가 이젠 지겹진 않나?
담백하지만 좋은 단어라고 생각한다. 감성괴물같은 단어보다 순하지 않나? 두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