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완벽한 눈길을 가로지를 수 있는 가장 빠르고 완벽한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홋카이도의 스키 성지, 니세코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풍경.
1 어느 쪽을 향해도 홋카이도의 후지 산이라 불리는 요테이 산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2 굿찬 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 바라본 풍경. 3 아직은 조용한 초겨울의 스키장. 호텔에서 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1 어느 쪽을 향해도 홋카이도의 후지 산이라 불리는 요테이 산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2 굿찬 역으로 향하는 열차에 올라 바라본 풍경. 3 아직은 조용한 초겨울의 스키장. 호텔에서 바로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니세코는 오늘 첫눈이 내렸어요.” 이 메일을 받은 것은 9월 중순의 일이었다. 서울이 아직 여름의 열기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을 때, 일본의 최북단, 우리에게는 영화 <러브레터>나 <철도원>의 풍경으로 친근한 눈의 왕국 홋카이도 니세코(Niseko)에서 날아온 메일이었다. 홋카이도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는 도청 소재지인 삿포로와 일본 본섬과 이어지는 홋카이도의 관문 하코다테겠지만 두 도시를 지워도 홋카이도에는 가야 할 곳이 잔뜩이다.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한 면적에 평야가 50%가 넘고, 인구는 550만 명밖에 되지 않으니 겨울의 홋카이도를 달리다 보면 눈이 끝없이 펼쳐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니세코는 홋카이도의 왼쪽, 요테이 산 근방에 자리해 있다. 후지 산과 생김새가 비슷해 ‘홋카이도의 후지’라고도 불리는 높이 1 898미터의 요테이산이 우뚝 솟은 풍경은 니세코를 가장 대표하는 이미지로 꼽힌다. 눈이 많은 홋카이도에서도 니세코는 가장 크고 유명한 스키 빌리지다. 호텔과 스키 리조트, 콘도미니엄, 레스토랑과 카페가 밀집된 덕에 비교적 늦은 시각까지 붐비는 히라후(Hirafu) 지역을 포함해, 니세코의 겨울은 일본 국내뿐 아니라 중국, 싱가포르, 캐나다와 유럽 지역 등에서 스키를 즐기러 온 손님들로 활기가 넘친다. 이토록 많은 사람이 니세코를 찾는 이유는? ‘파우더 스노(Powder Snow)’라고 불리는 니세코의 눈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지는 한국의 눈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물기를 머금은 구름처럼 폭신폭신한 니세코의 눈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을 거다. 스키를 타다 엉덩방아를 찧어도 아무렇지 않을 정도다.

니세코의 중심, 힐튼 니세코 빌리지

메일을 보낸 곳은 힐튼 니세코 빌리지(Hilton Niseko Village). 2013년 2015년까지 3년 연속 일본 최고의 스키 호텔에 선정된 바 있는 이곳에서는 쾌적하고 군더더기 없는 힐튼의 서비스를 맘껏 누릴 수 있다. 니세코 지역에서 가장 번화한 히라푸 지역과 살짝 떨어진 안누푸리(Annupuri)부터 남쪽 기슭에 자리해 있는 힐튼 니세코 빌리지는 니세코 지역에서 가장 우아한 호텔 중 하나다. 몇 년 전 리노베이션을 거친 호텔 로비는 도쿄 페닌슐라, 그랜드 포모사 리전트 타이베이 등을 디자인한 디자이너 하시모토 유키오의 작품이다. 장작용 나무를 소재로 아늑하게 장식된 로비 한가운데에는 일본 최대 규모의 벽난로가 자리해 있다.

물론 겨울 스포츠 마니아들이 이곳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호텔 출구에서 몇 발걸음만 걸으면 있는 매표소에서 곤돌라나 리프트를 타고 곧바로 스키장으로 날아갈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힘들게 장비를 들고 멀리까지 갈 필요도 없고, 한창 스키를 탄 후에 지친 몸으로 셔틀버스를 탈 필요가 없는 스키 인 앤 아웃 호텔인 것! 게다가 스키 발렛 서비스도 무료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즐기지 않더라도 할 일은 많다. 봄여름 내 골프 코스로 활용되던 호텔 부지는 눈이 내리면 스노모빌을 타고 눈을 가로지르는 드라이브 코스로 바뀐다. 스노모빌이라고 하면 장난감처럼 들리지만 튼튼한 바퀴에 시동 소리조차 우렁찬 눈길 전용 미니카다. 조작법이 간단해 운전 면허가 없는 사람도 운전할 수 있으니 넓은 설원을 달리는 경험을 놓치지 말 것. 요금은 1인 기준 1시간 1만3천 엔으로 전문 강사가 다른 모빌을 타고 동행하니 안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호텔 셔틀버스를 타고 바와 식당이 모여 있는 근처의 히라후와 굿찬(Kutchan) 지역까지 나갈 계획이 없다면, 호텔 내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 물론 어려운 일은 아니다. 힐튼 니세코 빌리지에는 모든 게 다 있으니까! 이곳에서 하룻밤을 보낸다면 가장 많이 찾게 될 곳은 뷔페로 운영되는 바&그릴 멜트(Bar&Grill Melt)다. 다양한 홋카이도산 해산물이 등장하는 저녁 뷔페도 훌륭하지만 특히 아침 뷔페는 거르지 말길. 통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소나무 숲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아침을 즐길 수 있다. 요테이 산이 보이는 조망을 자랑하는 레스토랑 요테이는 계절에 맞춘 테마 뷔페를 맛볼 수 있는 곳. 겨울에는 계절에 딱 맞는 샤브샤브를 테마로 운영한다. 초밥을 전문적으로 내놓는 레라(Rera)와 다양한 일본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시사무(Sisam), 철판구이 중심인 피르카(Pirka)도 있다. 캐주얼한 분위기의 다이닝펍을 원한다면 에조 펍(Ezo Pub)으로 향하면 된다. 제대로 된 데미그라스 소스와 니세코산 채소를 곁들인 햄버그스테이크, 우동같이 캐주얼하지만 든든한 메뉴를 맥주와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슬로프와도 매우 가깝다. 일본 최대 규모인 근사한 벽난로가 놓인 1층 로비는? 저녁이면 바 겸 라운지로 둔갑한다. 여행지를 평가하는 사이트인 트립어드바이저에서 힐튼 니세코 빌리지를 칭찬할 때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1층의 노천탕이다. 온천 천국인 일본에서도 보기 드문 천연 중탄산천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순식간에 피부가 반질반질해진다. 해가 뜨며 멀리 있는 요테이 산이 꼭대기부터 차츰 밝아오는 풍경, 차가운 초겨울의 공기를 온몸으로 느끼며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좋아서 호텔에서 머무는 3일 내내 아침마다 노천탕을 찾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목욕을 하고 객실로 올라오면 아침 햇살을 받아 새하얗게 부서지는 니세코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코너에 위치해 양쪽 창문으로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디럭스 파노라마 객실에 머문 덕이다. 가족이 머물러도 충분한 디럭스 파노라마 객실은 최근 12개 객실을 증설했으니 예약에 도전해보길. 요테이 산을 비롯 최고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는 다양한 등급의 객실이 기다리고 있다.

 

1 잘 자른 생크림 케이크의 단면처럼 쌓인 눈. 눈 내린 풍경을 지나다가 운이 좋으면 여우를 마주칠 수도 있다. 2 힐튼 니세코 빌리지의 자랑인 노천탕. 풍광뿐 아니라 수질까지 뛰어나다. 3 아름다운 벽난로가 놓인 로비 라운지 플레임(Flame). 4 객실에서 바라본 풍경. 쌀쌀한 아침 공기에 눈을 뜨자마자 요테이 산을 볼 수 있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요테이 산을 볼 수 있는 객실은 트윈 힐튼과, 트윈 디럭스로 준비되어 있다. 5 오타루 운하 근처의 창고를 개조한 레스토랑. 6 힐튼 니세코 빌리지의 일식 셰프가 특별히 요리해준 디너 코스. 7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와이너리 오치가비의 와인. 8 요이치에 위치한 닛카 증류소는 위스키 마니아라면 반드시 가야 할 곳.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흔적이 남아 있다. 9 히라푸 지역을 제외하면 니세코의 밤은 고요하다. 홋카이도의 전골요리인 칭기즈칸 전문점.

1 잘 자른 생크림 케이크의 단면처럼 쌓인 눈. 눈 내린 풍경을 지나다가 운이 좋으면 여우를 마주칠 수도 있다. 2 힐튼 니세코 빌리지의 자랑인 노천탕. 풍광뿐 아니라 수질까지 뛰어나다. 3 아름다운 벽난로가 놓인 로비 라운지 플레임(Flame). 4 객실에서 바라본 풍경. 쌀쌀한 아침 공기에 눈을 뜨자마자 요테이 산을 볼 수 있다는 건 꽤 멋진 일이다. 요테이 산을 볼 수 있는 객실은 트윈 힐튼과, 트윈 디럭스로 준비되어 있다. 5 오타루 운하 근처의 창고를 개조한 레스토랑. 6 힐튼 니세코 빌리지의 일식 셰프가 특별히 요리해준 디너 코스. 7 홋카이도는 일본에서 주목받는 와인 생산지이기도 하다. 와이너리 오치가비의 와인. 8 요이치에 위치한 닛카 증류소는 위스키 마니아라면 반드시 가야 할 곳. 일본 위스키의 아버지, 다케쓰루 마사타카의 흔적이 남아 있다. 9 히라푸 지역을 제외하면 니세코의 밤은 고요하다. 홋카이도의 전골요리인 칭기즈칸 전문점.

 

더 멀리, 홋카이도 탐방
호텔에만 머물기 아쉽다면 니세코 근처에 자리한 도시를 탐방할 것을 권한다. 니세코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오타루는< 러브레터>의 주인공, 소녀 후지이이츠키가 살았던 동네의 배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도시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운하와 현재는 오르골 가게나 펍으로 활용되는 운하를 따라 늘어선 옛날 공장 건물들이 독특한 정취를 자아낸다. 운하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오타루의 자랑인 오르골과 스테인드글라스 유리 공방이 모여 있다. 얼마 전 한국에도 상륙한 홋카이도의 디저트 브랜드, 르타오(LeTAO)의 매장을 비롯해 차와 디저트를 판매하는 가게도 곳곳에 눈에 띈다. 도시 자체가 고즈넉하고 앤티크한 분위기인 만큼,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카페에 앉아 홋카이도산 치즈 케이크와 차를 곁들여보길 바란다.

눈이 많이 쌓이지 않은 낮에는 여행자, 산책을 나온 동네 사람, 풍경을 그리는 아마추어 화가들로 붐비는 오타루 운하는 한겨울 밤이면 고요로 뒤덮인다. 창고 외관에서 흘러나오는 노란색 불빛, 그리고 그 빛을 반사하는 흰 눈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조용하다. 계단을 따라 운하 아래쪽 길로 내려오면 치워둔 눈이 키보다 높게 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조용한 오타루의 밤길을 살금살금 산책하다 보면, 역시 눈 속에 파묻힌 근사한 술집도 발견할 수 있다. 힐튼 니세코 빌리지와 멀지 않은 굿찬 역에서 일본 철도인 JR을 타고 오타루 역까지 올 수도 있다. 이제는 없어진 비둘기호가 이랬을까? 작은 역과 좁은 철로를 따라 달리는 열차를 타는 기분이 어쩐지 애틋하다.

니세코는 홋카이도의 주류 탐방을 떠나기에 훌륭한 거점이기도 하다. 니세코에서 차로 50분, 오타루에서 20분 거리인 요이치(Yoichi)에는 닛카 위스키의 증류소가 있다. 홋카이도의 ‘술’ 하면 삿포로맥주가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최근 일본에서 다시 위스키 붐이 일면서 홋카이도산 위스키인 닛카 위스키 요이치 증류소 역시 덩달아 활기를 띠고 있는 중이다. 지난해 초 일본에서는 닛카 위스키의 설립자인 다케쓰루 마사타카와 그의 스코틀랜드 출신 부인 리타의 이야기를 그린 아침 드라마 <마싼(Massan)>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부인이 스코틀랜드인이라는 점에서 짐작했겠지만 닛카 위스키의 설립 과정은 꽤 드라마틱하다. 일본인 최초로 스코틀랜드에서 본격적인 스카치 위스키의 증류 기술을 배운 마사타카는 스코틀랜드의 아가씨와 사랑에 빠진다. 조국인 일본에서 품질 좋은 스카치 위스키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그가 스코틀랜드와 비슷한 기후를 찾던 중 발견한 땅이 요이치였던 것. 증류소를 세운 것이 무려 1934년의 일이니 일본 위스키의 오랜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80년 전 지은 오래된 건물이 여전히 남아있으며, 여전히 석탄을 사용해 증류하는 요이치 증류소 투어 프로그램은 참석해볼 만하다. 제조공정과 실제로 리타 부인이 머무른 자택은 물론, 그 동안 출시된 수백 종의 위스키와 변화해온 엠블럼, 포스터가 모여 있는 전시실을 관람할 수 있다. 물론 견학의 꽃은 시음이다! 준비되어 있는 위스키를 맛보고 나면 아래층 기념품 가게에서 위스키 한 병을 들고 나올 수밖에 없을 거다.

기온 차가 크고 습도가 낮은 홋카이도는 일본의 대표적인 와인 산지이기도 하다. 일본주, 맥주, 사케 등 지역 주류 시장이 잘 자리 잡은 일본이지만 여전히 일본 와인은 낯선 것이 사실. 홋카이도의 포도 품종인 시리베시 지역, 소라지 지역을 중심으로 늘어나고 있는 와이너리의 수는 현재 20여 개에 달한다. 2015년에는 오타루에 ‘홋카이도 와인센터’ 까지 개설하며 홋카이도 와인의 매력을 알리는 데 열심이다. 홋카이도의 도야코 호수를 배경으로 한 사랑스러운 영화< 해피 해피 브레드>에 이은 홋카이도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으로 ‘와인’을 소재로 삼은 <해피 해피 와이너리>가 개봉했을 정도다.

2013년 5월 문을 연 오치가비(Occi Gabi)는 요이치 지역에 등장한 독특한 와이너리다. 독일의 국립 와인 학교에서 와인을 공부하고, 오스트리아 국립 양조장에서 연수를 받은 후 1977년 유럽의 와인용 포도 품종 40여 종을 가지고 귀국한 오치가비의 오너는 본디 일본 본섬의 나가노에 와이너리를 세웠다. 그가 나가노를 떠나 다시 새로운 와이너리를 만들 장소로 바로 홋카이도 요이치를 택한 것. 규모는 크지 않지만 최신 설비를 갖춘 오치가비의 자체 와인 이름은 심플하게 포도 품종 이름을 따른다. 피노 누아, 저먼 카베르네, 바커스 등 품종 이름이 바로 라벨에 쓰여 있다. 와인과 함께 맛볼 수 있는 프랑스 요리도 매우 수준 높다. 맛있는 와인은 정말 예쁜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겠다. 니세코로 돌아가는 길, 길 끝에서 어느덧 친근해진 요테이 산이 조금씩 머리를 내밀었다. 포근한 눈 속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힐튼 니세코 빌리지 옆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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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빌리지 2014년 연말 힐튼 니세코 빌리지 뒤에 등장한 아담한 규모의 쇼핑 테마 거리. 각종 아웃도어 브랜드의 제품, 장인이 만든 유리 공예 제품을 구매하고 제작 체험도 할 수 있는 글라스 숍 등이 들어서 있다.
2 타카하시 목장 밀크공방 힐튼 니세코 빌리지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등장하는 밀크 공방. 홋카이도는 낙농업으로도 이름 높은데, 밀크 롤케이크와 커스터드 푸딩, 그리고 에그타르트, 슈크림과 아이스크림 등 니세코에서 나고 자란 소의 우유를 이용한 디저트를 만든다. 맞은편에는 수공예품과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기념품 가게도 자리해 있다.
3 니세코 뷰 플라자 소박한 휴게소 형태의 로컬 식품 판매점. 밀크 아이스크림과 핫도그 같은 우리나라 휴게소에서도 흔하게 맛볼 수 있는 길거리 음식, 생산자의 이름을 내건 니세코 지역의 식료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
호텔 문의 www.hilton.co.kr/hotel/hokkaido/hiltonniseko-village, +81-136-44-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