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프라하의 풍경을 지웠다. 그리고 남쪽으로 떠났다. 체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체스키 크룸로프가 있는 남부 보헤미아에서 만난 또 다른 체코.

(왼쪽 페이지) 살짝 내린 비로 선명해진 시야 덕분에 마치 물감으로 물들인 것 같은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 1 손재주 좋은 체코 사람들의 수공예품이 대부분인 기념품 상점들. 2 강변에 자리한 레스토랑 드와우 마리(Dwau Maryi)의 테이블. 체코 전통 식사를 맛볼 수 있다.

(왼쪽 페이지) 살짝 내린 비로 선명해진 시야 덕분에 마치 물감으로 물들인 것 같은 체스키 크룸로프의 풍경. 1 손재주 좋은 체코 사람들의 수공예품이 대부분인 기념품 상점들. 2 강변에 자리한 레스토랑 드와우 마리(Dwau Maryi)의 테이블. 체코 전통 식사를 맛볼 수 있다. 

 

 

“바빌라토, 지금 계절을 바빌라토라고 불러요. ‘할머니의 여름’이라는 뜻이죠.” 9월 말, 체코의 아름다운 날씨에 한껏 감탄하는 내게 체코인 가이드는 ‘바빌라토’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알려줬다. 바빌라토, 할머니의 여름. 다음 절기로 넘어가기 위해 익어가는 시간에 ‘할머니’라는 따뜻한 단어를 붙였다는 것만으로 체코가 벌써 좋아졌다. 물론 꼭 그 단어가 아니더라도 여름이 물러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아침, 저녁 바람이 쌀쌀해지고, 푸르던 이파리가 조금씩 늙은 호박색을 띠고, 날씨만 맑다면 낮에는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계절.

사실 프라하 여행 붐을 일으킨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 같은 파편 같은 상식들을 제하면 여행을 떠나기 전까지, 내가 체코에 대해 확실히 아는 것은 단 하나였다. 바로 맥주를 많이 마신다는 것! 서울에서 프라하까지 비행은 10시간 남짓. 비행기 좌석에 앉아 체코 여행책을 펼치니 낯선 체코의 글자와 지명이 펼쳐졌다. 그리고 보다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이 나라 사람들은 생각보다 맥주를 더 많이 마신다는 것이었다. 국민 한 사람당 연 평균 147.1리터의 맥주를 마시는 체코는 세상에서 가장 맥주를 많이 마시는 나라다! 체코의 옆 나라이자 또 다른 맥주 강국인 독일은 101.7리터로 4위를 기록했다.

체코슬로바키아라고 불리던 체코는 1993년 슬로바키아와 각기 다른 길을 가기로 하면서 체코 공화국이 됐다, 2004년 EU에 가입했지만 아직은 유로가 아닌 크루나 화폐를 사용한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한 지 이제야 20년이 조금 넘은 체코는 관광산업으로 이름 높은 나라지만 중심 관광지에서도 가격 거품이 그다지 심하지 않다. 또 다른 가이드는 12살 때까지 공산주의국가에 살았던 경험을 털어놓는다. “가게 심부름을 갈 때면 배급표를 갖고 갔죠. 빵집이나 슈퍼 어디를 가든 물건이 그다지 많이 진열되지 않았어요.” 극단적인 정치, 사회적 변화를 겪은 만큼 오히려 정치에 냉소적인 사람들이 많다. “무관심하지는 않지만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아요. 종교적으로도 무신론자가 절반에 가깝고요. 체코 사람들의 특징은 바로 시니컬한 유머 감각이죠.”

오래된 도시, 체스키 크룸로프
인구 천만 명의 작은 나라 체코. 체코는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독일, 오스트리아와 맞닿은 체코의 서쪽이 보헤미아 (Bohemia), 그리고 폴란드 와 슬로바키아와 인접한 동쪽을 모리비아(Morivia)다. 다시 보헤미아와 모리비아는 작은 주들로 세분화되는데, 수도인 프라하는 중앙 보헤미아 (Center Bohemia)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남부 보헤미아(Southern Bohemia)를 탐방하는 이번 여행에서, 프라하를 과감하게 지우기로 한 거다.

프라하에서 자동차로 2시간 50분 정도 걸리는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사실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아담한 크기다. 바쁘게 움직이면 단 하루에도 돌아볼 수 있는 이 도시는 운 좋게도 한 번도 외세에 점령된 적이 없다. 모든 게 무너진 제 1차 세계대전 때는 물론이고, 많은 건물이 무너지고 새로 지어지던 공산주의 시대에도 버스가 들어올 길을 만든 것을 제외하면 별다른 변화를 겪지 않았다. 평화는 이 아름다운 도시가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도록 했고,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는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체스키 크룸로프에 반드시 들러야 하는 이유는 마을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깨닫게 된다. 슈바마 산맥에서 프라하까지 흐르는 볼타바 강의 물줄기가 도시 가운데를 흐르고, 두 개의 다리가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도시는 강변과 산등성이를 따라 촘촘하게 자리해 있는데, 강변을 따라 걸으면 걷는 대로, 좁은 골목을 따라 산등성이를 오르면 오르는 대로 각기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는 방법은 두 가지. 버스, 혹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다. 유럽 중앙에 자리한 만큼 체코의 철도 시스템은 훌륭한 편이지만 체스키 크룸로프로 가려면 프라하에서 체스키 부데요비체(Cesky Budejovice)에서 1회 경유해야 하므로 버스를 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스튜던트에이전시(jizdenky.studentagency.cz)의 노란색 버스는 쾌적한 시설로 여행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으니 편안하게 여행하고 싶다면 홈페이지 예약은 필수다.

지금은 평화로운 작은 마을로 보이지만 도시 꼭대기에 위치한 체스키 크룸로프 성은 규모 면에서 체코에서는 프라하 성 다음으로 큰 성으로 꼽힌다. 16세기만 해도 국제적인 도시로 꼽힌 체스키 크룸로프의 궁전과 건물들 중 상당수는 이탈리아에서 온 장인들이 지었다고 한다. 실제로 도시를 거닐다 보면 고아원은 물론 양조장, 수도원 기숙사, 사우나가 있는 이발소 등 모든 게 이 도시 안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시가와 성을 잇는 이발사의 다리(Lazbnicky Most)를 기점으로 귀족과 평민이 사는 지역이 나뉘는데, 다리의 시작점에 지금도 남아 있는 이발사의 집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영주였던 루돌프 2세의 서자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발사의 딸을 살해했다는 것이다. 가이드가 들려준 이야기는 좀 더 현실감 있다. 이발사가 당대의 권력가와 사이가 친밀한 탓에 시민들이 강제로 일주일에 한 번은 이발소에서 사우나를 하고 이발을 받아야 했다는 이야기다. 어쨌든 말 많은 이 집은 2002년 홍수가 났을 때 무너지는 바람에 새롭게 복원됐다.

“지금은 레스토랑만 150개가 넘지만 1991년만 해도 이곳에 레스토랑이라고는 네 개뿐이었어요. 그 레스토랑 네 군데에는 세상에서 가장 불친절한 웨이터들이 있었죠. 아무도 팁 따위 주고 싶지 않았을걸요? ” 이런 게 체코식 농담일까? 어쨌든 체코공화국이 된 이후 여행객이 엄청나게 늘어난 체스키 크룸로프의 변화 과정은 꽤 드라마틱하다. 점심을 먹은 사틀라바(Satlava)는 아치형의 지하가 그대로 살아 있는 레스토랑으로, 체코 사람들의 고기 사랑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소, 돼지, 닭 등 갖가지 고기 메뉴가 가득한데 그중에서도 돼지 무릎 부위를 요리한 콜레노(Koleno)는 별미다. 우리나라 족발과 비슷한 식감이지만 입안에서 고기가 훨씬 부드럽게 찢어진다. 특별히 맥주 브랜드를 언급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생맥주를 주문하면 지역의 브류어리에서 만든 맥주를 내준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반드시 흑맥주가 있다는 것! 필스너 맥주의 나라로 알려진 체코지만 사실 부드러우면서도 진한 흑맥주의 맛은 묵직한 체코의 고기 요리와 훌륭한 균형을 이룬다.

시가지의 중심인 스보르노스티 광장(Namesti Svornosti)을 기점으로 도시의 골목골목은 기념품 가게와 레스토랑, 카페가 가득하다. 각각 조금씩 다른 제품을 판매하는 가게를 둘러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지만, 에곤실레 아트센터(Egon Schiele Art Centrum)는 바쁜 걸음을 옮기는 중에도 많은 여행자가 들르는 곳이다. 어머니가 체스키 크룸로프 출신이었던 에곤 실레는 어머니 고향의 아름다운 풍경과 사랑에 빠져 이곳에 정착하게 된다. 하지만 정작 그가 이곳에 머무른 시간은 불과 1년 남짓. 뮤즈이자 여자친구인 윌리 노이질과 머물며 파격적인 작품을 그려내던 그를 이 조용한 도시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못한 탓이다. 지금의 에곤 실레 아트센터에서도 그의 작품은 몇 점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가 그린 이 도시의 풍경, 즉 붉은 지붕들과 우뚝 솟은 성, 볼타바 강을 둘러싼 마을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다. 무엇보다 체코 출신 화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 공간과 작품 진열 방법이 매우 흥미로우니 한 번쯤 둘러 보길. 아트센터와 마주하고 있는 넓은 테라스가 있는 카페의 라테 맛도 꽤 근사하다.

 

 

1 체스키 크룸로프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홀라쇼비체. 2 왼쪽 아래의 두더지의 이름은 크르텍. 체코의 국민 캐릭터다. 3 에곤 실레 아트센터. 4 뇨키를 닮은 흰 떡은 귀리와 메밀을 뭉친 전통 요리로 꿀과 건포도, 아몬드, 시나몬을 뿌려 달콤하다.

1 체스키 크룸로프와 마찬가지로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홀라쇼비체. 2 왼쪽 아래의 두더지의 이름은 크르텍. 체코의 국민 캐릭터다. 3 에곤 실레 아트센터. 4 뇨키를 닮은 흰 떡은 귀리와 메밀을 뭉친 전통 요리로 꿀과 건포도, 아몬드, 시나몬을 뿌려 달콤하다. 

 

 

도시의 밤과 아침
체스키 크룸로프를 사랑하는 여행자들이 이 도시에서 하룻밤을 머물기를 권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 세계에서 달려온 관광객들이 자리를 비운 밤, 그리고 이른 아침은 이 오래된 도시의 중후한 얼굴을 엿보기에 훌륭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마침 우리가 체스키 크룸로프를 찾은 때는 성에서 바로크 아트 축제(Baroque Art Festival)가 한창이었다. 체코 사람들은 음악을 사랑한다. 활동 초기 고국인 오스트리아에서는 외면받은 모차르트의 경쾌한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체코는 드보르자크의 고향이기도 하다. 성당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연주회를 비롯, 거리를 걷다가 콘서트를 알리는 포스터를 발견하는 것도 그다지 드문 일이 아니다. 2008년부터 열리기 시작한 이 음악 축제가 한층 특별한 이유는 체스키 성의 바로크 극장이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전체를 통틀어 원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바로크 극장은 스톡홀름과 체스키 크룸로프에만 남아 있다. 바로크 시대의 가발과 복장을 갖춘 관현악단의 연주에 이탈리아 오페라가 울려 퍼지는 낭만적인 순간을 체험하고 싶다면 홈페이지(www.ckrumlov.info)에서 축제 날짜를 참고할 것. 축제는 매년 9월에 열린다.

체스키 성을 떠나 16세기의 낭만 속에 계속 머물러 있고 싶다면 루체 호텔(Luze Hotel)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 된다. 예전에는 예수선교단의 기숙사로 사용됐던 루체 호텔은 도시에서 두 번째로 큰 건물로, 우아한 상아빛 벽에 태피스트리와 소품이 걸린 실내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볼타바 강이 보이는 호텔의 테라스는 낮에도 아름답지만 밤이 되면 한층 근사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조금 더 분위기를 즐기고 싶은 사람을 위해 레스토랑에서 중세 의상을 대여해주기도 하니 원한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입어보자. 입는 순간에는 쑥스러워도 어느샌가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테니.

매년 4월부터 9월까지는 카누를 타고 체스키 크룸로프를 한 바퀴 도는 보트 투어도 운영하고 있다. 잔잔한 강을 따라 보다 낮은 시선에서 강변을 따라 바라보면 건물들의 창에 세심하게 놓인 화분, 색색의 건물 벽 색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아침의 상쾌한 공기 속에서 조용히 도시를 구경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방법이다.

 

화려함의 극치, 흘루보카 성
체스키 크룸로프가 시간이 멈춘 한 도시의 영광을 보여준다면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멀지 않은 흘루보카 나드 블타보우(Hluboka nad Vltavou)에 우뚝 솟아 있는 는흘루보카 성(The State Chateau of Hluboka) 융성했던 한 가문의 영광을 기록한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성의 주인은 슈바르첸베르크(Schwarzenberg) 가문이다. 독일과 체코 보헤미아의 핏줄이 섞인 이 가문은 독일은 물론, 스위스에도 진출했으며, 그 후손인 카렐 슈바르첸베르크는 현재도 체코 외무부 장관을 역임하고 있을 정도로 명망 높다. 체스키 크룸로프 성 역시 한때는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의 관할 아래 있었다.

13세기에 고딕 양식을 따라 지어진 성은 건축 양식이 바뀔 때마다 그 모습을 달리했다.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이 이 성을 구입한 것은 1661년의 일. 유행에 따라 성을 바꾸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스케일이다. 르네상스 양식과 바로크 양식을 거쳐 탄생한 지금의 새하얀 외관은 요한 아돌프 2세 때 탄생한 것이다. 영국을 몇 번 방문하는 동안 낭만주의 영향을 깊게 받은 그가 취향에 맞게 개조한 것. 비엔나에서 ‘모셔온’ 건축가가 공사를 진두지휘하며 외관은 물론 계단, 창문, 그리고 문까지 전부 바꿨다.

18세기 중반의 성을 그린 그림에도 남아 있던 고딕 형식의 탑이 새로운 장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것도 이때의 일. 유리 공예로 이름난 이탈리아 무라노 지역의 장인이 만든 샹들리에, 중국에서 가져온 도자기와 비엔나에서 만든 피아노, 거대한 태피스트리와 손님이 많을 때를 대비해 펼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원목 다이닝 테이블, 서재를 가득 채운 라틴어와 독일어, 프랑스어 서적 등.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요소들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끝없이 쏟아진다. 이런 완벽함 속에서도 시대적 한계 때문에 발견되는 실수가 있어 귀엽다. 분명히 전설 속에 나온 돌고래를 조각했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조각가가 돌고래를 본 적이 없는 탓에 어설프게 용을 닮은 기묘한 생물이 조각돼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에 궁극의 호화로움을 더하는 존재는 바로 공간을 사방으로 둘러 싼 붉은 고동빛을 띠는 나무벽이다. 나무를 조각해 만든 벽은 모두 완성하는 데에 걸린 시간은 무려 40년이 넘는다.

그동안 체코를 소박하고 목가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라고 여겼다면, 체코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으로 꼽히는 흘루보카 성의 화려한 취향이 그 생각을 완전히 바꿔줄 거다. 흘라보카 성 투어 신청과 스케줄 확인은 홈페이지(www.zamek-hluboka.eu)에서 가능하다.

 

 

 

1 트레봉의 컬러풀한 거리. 2 붉은 로타, 체르베나 로타 성의 전원적인 풍경. 3 트레봉의 명물, 잉어 스테이크와 레스토랑 수피나(Supina)에서 직접 기른 닭요리. 4 훌루보카 성의 화려한 유리세공. 5 체코의 건물에는 벽에 그림을 장식하듯 그려 착시효과를 주는 스그라피토 기법이 자주 쓰였다.

1 트레봉의 컬러풀한 거리. 2 붉은 로타, 체르베나 로타 성의 전원적인 풍경. 3 트레봉의 명물, 잉어 스테이크와 레스토랑 수피나(Supina)에서 직접 기른 닭요리. 4 훌루보카 성의 화려한 유리세공. 5 체코의 건물에는 벽에 그림을 장식하듯 그려 착시효과를 주는 스그라피토 기법이 자주 쓰였다. 

 

 

작은 도시에서의 산책
화려한 성, 흘루보카 나드 블타보우를 떠났다면 이제 다시 남부 보헤미아의 평화로운 풍경 속으로 녹아들 차례다. 체스키 부데요비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트레봉(Trebon)은 체코에서 가장 큰 호수인 스베트 호수(Svet Lake)로 유명하다. 트레봉을 한 바퀴 둘러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열차 모양의 작은 버스를 타는 것이다. 홈페이지(www.trebonskyvlacek.cz)에서 예약하면 아름다운 호수로 둘러싸인 마을을 한 시간가량 둘러볼 수 있다. 또 한 가지 트레봉에서 반드시 맛봐야 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잉어! 주로 수프로 먹거나 구워서 먹는데, 잉어 수프는 추어탕처럼 걸쭉하면서도 개운한 맛이다.

좀 더 체코다운 성을 보고 싶다면 트레봉과 멀지 않은 인드리지후프 흐라데츠(Jindrichuv Hradec)에 들를 것. ‘붉은 로타’라는 뜻을 가진 체르베나 로타 성(Castle Cervena Lhota)은 요새를 성으로 개조한 곳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풍경과 상반되게 이 성이 ‘붉은’ 로타라는 이름을 갖게 된 까닭은 조금 섬뜩하다. 성에서 죽은 여자가 귀신이 되어 매일 밤 흰 성벽을 붉게 물들이는 바람에 아예 외벽을 붉게 칠했다는 것! 한 많은 여자 귀신 이야기를 좋아하는 취향은 체코나 우리나 꼭 닮았다.

체스키 크룸로프와 체스키 부데요비체에서 각기 20분 정도의 거리에 자리한 홀라쇼비체(Holasovice)는 남부 보헤미아 여행을 마무리하기에 적합한 마을이다. 1998년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며 여행자들을 조용히 끌어 모으고 있는 이 마을의 독특한 인상은 주택 모양에서 비롯한다. 주택들이 늘어선 풍경을 길에서 바라보면 마치 연극 무대 장치에 쓰일 법한 커다란 벽들이 계속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길을 등지고 디귿자 모양으로 집을 지었기 때문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인 만큼 맹수들로부터 가축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된 구조로, 벽의 색과 높이, 창문과 문의 크기, 동물과 식물을 모티브로 한 파사드 장식은 집집마다 조금씩 다르다.

마을 중심의 작은 연못과 초원 위에 펼쳐진 집들의 기묘한 생김새는 탄성을 지르기에 충분하지만 사실 홀라쇼비체의 역사는 그다지 녹록지 않다. 유럽이 흑사병의 공포에 휩싸인 시기, 변종 흑사병이 이 아름다운 마을을 내버려두지 않은 것이다. 오직 두 명의 주민만이 살아남은 마을은 다행히도 독일 바이에른 주와 오스트리아에서 사람들이 이주하며 차츰 인구 수가 회복하기 시작한다. 19세기 말에는 인구 수가 178명까지 증가하지만 당시 체코 출신은 고작 19명뿐. 그리고 홀라쇼비체는 다시 한 번 위기를 맞이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위기에 처한 고국으로 독일 주민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버려진 집들이 늘어난 것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까지 겪으며 마을은 폐허가 되고 만다. 지금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홀라쇼비체의 풍경은 고증을 바탕으로 마을 주민들이 힘 모아 재건한 것이다. 홀라쇼비체는 여전히 인구 140명의 초소형 마을이다. 딱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으면 좋을 것 같은 양의 사과 열매가 매달린 과수원, 아담한 말 농장과 사슴 농장이 주택 뒤편에 자리한 이 평화롭고 작은 마을은 체코의 남쪽이 선사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하고, 가장 독특한 풍경일 거다. 아니, 사실 그건 남부 보헤미아 어디에 멈춰 서든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풍요로운 자연, 풍족한 식사,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은 남부 보헤미아 그 자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