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크 캐러멜, 베이비 블루, 라벤더, 레몬 옐로. 여성성과 남성성의 균형을 맞추는 중심에는 파스텔톤이 있다. 견고한 파스텔이라 불리는 새로운 채도의 위력은 겨울 옷차림에 특히 그 진가를 드러낸다.

1 울 소재 재킷은 가격미정, 페이(Fay). 2 양가죽 소재 장갑은 가격미정, 프라다(Prada). 3 소가죽 소재 숄더백은 43만8천원, 로플러 랜달 바이 라움(Loeffler Randall by Raum). 4 면 소재 모자는 가격미정, 샤넬(Chanel). 5 벨벳 소재 하이힐 슈즈는 1백28만원, 지미 추(Jimmy Choo). 6 에나멜 가죽 소재 벨트는 가격미정, 지미 추. 

1 울 소재 재킷은 가격미정, 페이(Fay). 2 양가죽 소재 장갑은 가격미정, 프라다(Prada). 3 소가죽 소재 숄더백은 43만8천원, 로플러 랜달 바이 라움(Loeffler Randall by Raum). 4 면 소재 모자는 가격미정, 샤넬(Chanel). 5 벨벳 소재 하이힐 슈즈는 1백28만원, 지미 추(Jimmy Choo). 6 에나멜 가죽 소재 벨트는 가격미정, 지미 추.

겨울 시즌을 대표하는 컬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블랙이다. 여기에는 한 치의 의심을 품을 필요조차 없다. 올 가을/겨울 시즌 역시 블랙은 단조롭지만 치명적인 우아함으로 컬렉션을 잠식시키며 불멸의 컬러임을 입증했다. 특히 올 시즌 디자이너들이 풀어낸 블랙은 고딕 룩에 스며들어 스산함을 풍기고, 섬세한 레이스와 어우러져 여성스러움에 모던함을 더한다. 하지만 겨울이 깊어질수록 검은 그림자보다는 부드러운 햇살이 그리워지기 마련이다. 잿빛 하늘 사이로 부서지는 겨울 햇살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바로 봄을 향한 그리움으로 칠한 파스텔 컬러! 디자이너들은 긍정적인 기운을 듬뿍 담되 결코 가볍지 않은, 회색을 곁들인 톤 다운된 더스티 핑크, 라일락, 베이비 블루, 밀크 옐로로 런웨이를 또 다른 성격의 서정으로 물들였다.

봄에 더 어울릴 법한 파스텔 컬러가 겨울에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한 건 몇 해 전부터였다. 2013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생 로랑이 큼직한 파스텔 핑크 퍼 코트를 선보이고 카르벵의 핑크 오버사이즈 코트가 런웨이를 선점했을 때만 해도 파스텔 컬러를 오버사이즈 아우터의 견고한 실루엣을 부드럽게 완화해줄 그 시즌만의 장치로 여겼다. 하지만 이듬해 겨울, 구찌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이지 그린, 머스터드 옐로, 베이비 블루톤으로 물들인 60년대 스윙 룩을, 미우미우가 페일 핑크와 레몬 옐로의 윈드브레이커 재킷과 퀼팅 스커트의 매치를 제안하고 로샤스가 밀크 캐러멜 컬러에 마카롱의 스펙트럼을 조화한 레이디라이크 룩으로 블랙을 밀어내자, 파스텔 컬러는 명실공히 겨울을 새로이 정의하는 시즌 컬러로 부상했다. 이젠 강렬한 원색 톤이 가을 컬러라면 하얀 눈에 반사된 크리미한 컬러들이 겨울을 상징한다.

올겨울의 파스텔 컬러는 보다 영민하고 정교하게 발전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프라다. 미우치아 프라다는 “달콤하지만 격렬한, 그리고 어떻게 하면 파스텔 컬러로 강해 보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어요”라는 말로 올 시즌 컬렉션을 정의 내렸다. 각기 다른 색상의 창백한 톤의 변주는 정직한 슈트에 적용되었고 미우치아 프라다의 말처럼 지나치게 사랑스럽고 여린 파스텔 컬러는 실루엣 덕분에 세련된 힘을 지니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은 미묘한 톤의 차이로 깊이 있는 파스텔 팔레트를 완성했다는 것. 보색대비를 이용하면서 채도를 달리한 매칭 플레이는 컬러 조합의 정석이라 불러도 될 만큼 완벽했다. 프라다를 비롯해 나르시소 로드리게즈, 로에베, 롤랑 무레는 ‘미니멀 디자인에는 파스텔 컬러’라는 공식으로 남성성과 여성성의 균형을 맞추었다. 겨울시즌 파스텔 컬러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따뜻한 소재와 궁합이 잘 맞기 때문. 파스텔 컬러를 입은 울과 캐시미어, 타월을 연상시키는 부클레, 폭스와 밍크는 따뜻하고 긍정적인 기운을 발산하며 스타일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막스마라는 자칫 고루할 수 있는 50년대 풍의 레이디라이크 룩에 더스티 민트와 블루 컬러를 적용해 현대적인 분위기를 더했는데, 광택이 감도는 실크 소재의 퀼팅 스커트에 파스텔 컬러를 더한 것은 신의 한 수라 할 만큼 탁월했다. 알투자라는 베이비 핑크와 베이비 블루도 얼마든지 세련돼 보임을 알려준 선구자였다. 케이블 니트 스웨터, 주머니에 프릴 장식을 단 슬릿스커트, 여우털 칼라를 덧댄 견고한 실루엣의 재킷, 뭉게구름처럼 피어난 퍼 코트엔 파스텔 컬러와 겨울 소재의 궁합 지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7 뱀가죽 소재 숄더백은 3백만원대, 끌로에(Chloe). 8 여우털 소재 코트는 4백57만원, 마르케스 알메이다 바이 분더샵(Marques Almeida by Boon The Shop). 9 모 헤어 소재 스웨터는 37만8천원, 빔바이 롤라(Bimba Y Lola). 10 코듀로이 소재 팬츠는 10만원대,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11 면 소재 스커트는 2백38만원, 블루마린(Blumarine).

7 뱀가죽 소재 숄더백은 3백만원대, 끌로에(Chloe). 8 여우털 소재 코트는 4백57만원, 마르케스 알메이다 바이 분더샵(Marques Almeida by Boon The Shop). 9 모 헤어 소재 스웨터는 37만8천원, 빔바이 롤라(Bimba Y Lola). 10 코듀로이 소재 팬츠는 10만원대,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11 면 소재 스커트는 2백38만원, 블루마린(Blumarine).

달콤한 캔디와 마카롱을 닮은 파스텔 컬러는 식욕을 자극하고 기분을 들뜨게 하며 궁극적으로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한다. 침체된 경기를 부활시키기 위해 맥시멀리즘이 다시 돌아온 것과 같은 맥락으로 파스텔 컬러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유행하는 이유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지극히 부드러우며 유약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컬러가 우리의 지갑을 열게 만들 것이라는 점이다. 파스텔 컬러 유행의 중심에는 코트가 있다. 기본 중의 기본인 블랙 코트, 클래식의 정수 캐멀 코트, 그리고 일탈의 레드 코트까지 갖추었다면 그 다음 수순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그 답을 안다. 지난해 디올이 시크한 핑크색 코트를 선보인 후 SPA 브랜드들이 너도나도 핑크 코트를 선보였다는 것을 말이다.

올겨울도 다르지 않다. 디올은 마치 ‘이것이 우리의 시그니처 코트죠’라고 말하고 싶었던 듯 올 시즌에도 코트 행렬에 파스텔 컬러를 집어넣었다. 돌체앤가바나도 루이비통도, 로에베도 파스텔 컬러의 아우터를 잊지 않았다. 올겨울 너무 밝지도, 그렇다고 너무 진하지도 않은 우유를 탄 듯한 컬러의 간결한 울 코트와 거대한 볼륨의 퍼 코트가 쉴 틈 없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리고 미니멀한 디자인에, 소재는 다양하게, 톤은 미묘한 차이를 두어 머리부터 발끝까지 파스텔 컬러를 본격적으로 입을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