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용 도서가 말하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돈'의 또 다른 의미를 동화책에서 찾았다.

<좋은 돈, 나쁜 돈, 이상한 돈>은 꽤 흥미로운 책이다. 창비 좋은 어린이책 수상작인 이 책은 말 그대로 어린이를 위한 책으로 심지어 어‘ 린이들이 꼭 알아야 할 돈의 철학’이라는 부제도 달았다. 1천 페이지에 달하는 게오르그 짐멜의 <돈의 철학>을 읽을 자신이 없는 이들에게는 꽤 솔깃한 문장이다. 하지만 재테크 서적이나 부자들의 성공담을 읽을 시간도 모자랄 판에, 아이들을 위한 책을 꼭 읽어야 할까? 의문이 들었지만, 종종 어른 들보다 명징한 아이들의 시선에 맞춰 쓴 이 책이 돈을 향한 사회인의 복잡미묘한 감정 을 정리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책을 펼쳤다.

 

책은 약간은 삐딱한 여자아이 재원이가, 오래된 도자기 두‘ 통’을 저금통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돈을 좋아하는 재원에게 두통은 돈의 다른 의미를 가르쳐주는 존재다. “믿음은 사람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지. 사람들은 무엇인가가 가치가 있다고 믿고 , 다른 이들이 약속을 지킬 것이라 믿고, 자신들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지. 그 덕분에 어려운 일을 이겨내고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 종이를 황금처럼 여기는 일도 해내지. 현재 인간의 모든 금융 활동, 그러니까 주식, 보험, 투자 등은 모두 믿음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거야.” 돈의 가장 중요한 재료로 ‘ 믿음’을 꼽으면서 두통이 한 말이다. 돈을 둘러싼 사기와 범죄가 끊이지 않는 탓에 '배신’, ‘거짓’이라는 단어와 조금 더 친밀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대부분 상황에서 우리는 오로지 '믿음’으로 돈을 거래한다. 이 물건이나 서비스의 가격이 이 금액 정도면 적당하다는 믿음, 신용 카드 대금을 내가 다음 달에 갚을 거라는 믿음, 백화점에 가면 선물 받은 백화점 상품권을 이용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 게다가 이게 사람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라니, 꽤 애정 넘치는 표현 아닐까?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우는 물물교환에서 화폐 사용으로 발전해나가는 돈의 역사는 꽤 자연스러운 순서처럼 여겨졌다. 하지만 두통의 설명에 따르면 처음에는 사람들한테 화폐를 ‘믿도록’ 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고 한다. 하긴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멀쩡히 쓰던 물건을 알 수 없는 종잇조각과 바꾸자니, 누가 선뜻 물건을 내놓을 수 있을까? 그 예로 책에서 언급되는 것이 원나라 쿠빌라이가 만든 지폐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쿠빌라이는 국가가 발행한 지폐를 관청에 가져오면 반드시 금이나 은으로 바꿔주기로 한 백성들과의 약속을 지켰고, 지폐가 북쪽의 몽골 고원에서 서쪽의 중앙아시아까지 사용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쿠빌라이가 세상을 떠난 뒤, 그 뒤를 이은 권력자들은 지폐를 함부로 발행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지폐와 바꿀 수 있는 금과 은이 부족해졌고, 지폐가 결국 그 기능을 상실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한 번 만들어진 돈조차 사라져버린 것이다. 돌을 화폐로 사용했다는 폴리네시아의 작은 섬, 얌의 이야기는 조금 더 귀엽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집이나 배를 살 때면 큰 돌을 화폐 대신 이용했지만 무거운 큰 돌은 굳이 옮기지 않았다. 대신 돌 화폐의 주인이 마을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제부터 이 돌은 저 사람 것이오’라고 선언하면 모두가 돌 화폐의 주인이 바뀐 것을 인정했다. 돈의 재료가 ‘믿음’이라는 걸 증명하는 이 훈훈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돈’이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원래 뉴스에서는 좋은 소식을 찾기 힘들다고 하지만 재산, 보험, 금품 등 ‘돈’을 노린 범죄와 배신이 매일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세상에 살다보면 사실 돈을 마냥 숭배하기란 어렵다. 물론 있으면 좋고, 많으면 더 좋지만 마구 '좋아’라고 외치기엔 좀…

돈은 나쁘지 않다
벤처기업의 몰락을 지켜봤고, 휘청대는 스타트업 기업들을 바라보며 '담보’나 ‘투자’를 긍정적인 단어로만 여길 수 없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출도 마찬가지다. 실물이 아닌 숫자로만 존재하는 돈이 물가를, 기업을, 누군가의 인생을 좌지우지한다는 것이 거대한 사기극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좋은 돈, 나쁜 돈, 이상한 돈>은 신용을 바탕으로 한 돈이 생긴 덕분에 천문학적인 자본을 모을 수 있게 된 것에 대한 이점도 지적한다. 이른바 ‘가치’다. 바닷속을 탐험하는 장비를 만들고, 우주로 로켓을 쏘아 올리고, 암세포를 찾아내는 로봇을 개발하는 등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꿈같은 일들이 가능해진 것 또한, 신용을 바탕으로 한 ‘투자’가 가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양한 직업과 전문가의 탄생 또한 ‘화폐경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돈이 없을 때는 사람들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생활에 필요한 기본 요소를 직접 만드는 데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써야 했으므로, 돈은 실제로 사람들을 해방시켰는지도 모른다. “예술, 운동, 문학, 정치 등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에 관심을 쏟을 수 있게 됐지. 운동선수, 예술가, 과학자, 정치가 등 한 분야의 전문가가 있는 것도 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야.”

삶의 기본인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좀 더 큰 이상을 꿈꿀 수 있게 하는 것, 그 또 한 돈의 가치다. 내가 기부한 얼마의 후원금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지불한 돈과 합쳐져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 확실히 세상에는 ‘좋은돈 과 나쁜 돈, 이상한 돈’이 고르게 존재한다.

물론 돈의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고 해서 돈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거나, 출근이 지옥 같은 이들에게는 인류가 이상을 담아 쏘아 올리는 로켓은 아무 의미 없는 돈 낭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월급과 카드값, 월세, 식비, 교통비 등 항목마다 나뉘어 일상에 밀착한 형태로 바라봤던 ‘돈’의 원래 기능을 돌이켜보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한 번쯤은 필요하다. 돈이 우리가 만든 ‘약속’이라고 생각하면, 그 약속을 지키는 한 명으로서, 돈을 소비하고 저축하고 버는 과정에서 얻은 복잡한 돈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돈을 대단하다고 여길수록 돈이 나타내는 가치가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부작용이 있어. 돈으로 표시되지 않은 가치를 생각해야 가난한 자들과 자연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 수 있어. 돈이 나타내는 가치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면 좋은 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발견한 것들이 자신의 미래를 바꿀 수 있지."

마지막으로 재원에게 당부하는 두통 씨의 말은 따스하다. 통장을 스쳐가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월급’에 대한 생각부터 우선 좀 바꿔야 할 것 같다. 어린이용 도서가 말하는 ‘돈의 철학’이란 무엇일까? 잘 알고 있다고 여겼던‘ 돈’의 또 다른 의미를 동화책에서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