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한 통의 가격이 무려 140만원. 보통 크림 하나가 50ml라 생각하면 1ml당 2만8천원꼴이다. 깜짝 놀랄 만큼 비싸다. 하지만 싼 게 무조건 비지떡이 아닌 것처럼 비싸다고 다 가격에 거품이 낀 것은 아니다. 비싼 화장품 가격에 대한 옹호론.

화장품의 춘추전국 시대다. <얼루어> 뷰티팀에서 집계한 브랜드만 200여 개가 훌쩍 넘고, 크고 작은 인터넷 브랜드나 각종 신생 브랜드, 수입 브랜드들까지 고려하면 도대체 몇 개의 화장품 브랜드가 한국에 있는 건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다. 백화점으로 한정되던 화장품 쇼핑 경로는 이제 드럭 스토어, 소셜 커머스, 온라인 몰, 모바일 스토어, 마켓 플레이스, 직구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다. 한 달에도 수백 개의 신제품이 쏟아져나오니, 제품 선택은 더욱 힘들어졌다. 다양해진 브랜드, 더욱 넓어진 화장품 카테고리만큼이나 가격도 극과 극이다. 1백만원이 넘는 크림이 날개 돋친 듯 팔리는가 하면, 꽤 괜찮은 제품력을 갖춘 2만원도 채 하지 않는 크림도 있다. 50배에 가까운 가격차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한번쯤 의문을 가졌을 것이다. 과연 저 크림은 진짜 1백만원의 값어치가 있을까? 2만원도 채 안 되는 크림은 믿고 사용해도 될 만큼 피부에 안전할까? 도대체 어떤 것이 내 피부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투자인지, 화장품 가격의 진실이 궁금해졌다.

화장품의 가격, 이렇게 구성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먼저 화장품의 가격이 어떻게 구성되는지를 설명해야 할 듯하다. 브랜드마다 차이는 있지만 보통 원가, 유통 비용, 세금, 마케팅 비용과 홍보 비용, 마진 등이 더해져 우리가 화장품을 구입하는 가격을 이룬다. 이건 화장품뿐 아니라 우리가 구입하는 모든 상품이 마찬가지다. 원가는 상품 하나를 만드는 데 드는 순수 제조 비용이라 생각하면 쉽다. 원재료비, 제조 비용, 패키지 비용 등이 포함된다. 물론 그 제품을 만들어내기까지의 연구 개발비, 내용물을 만들기 위한 기반 시설 마련, 해당 패키지를 찍어내기 위한 몰딩 비용 등 초기 투자 비용도 함께 계산된다. 일반적으로 스킨케어 제품의 경우는 판매가의 10~20%, 메이크업 제품은 30~50%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메이크업 제품의 원가 비율이 더 높은 것은 원재료비가 더 비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펄, 글리터 등 고가 재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킨케어 제품보다 가격대가 낮은 이유는 마진은 낮지만 그만큼 많이 팔리기 때문이다. 일종의 박리다매 효과. 메이크업 제품에 비해 절대적인 판매량이 적은 스킨케어 제품은 제품당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수입 브랜드의 경우 가격 정책이 좀 더 복잡해진다. 완제품을 구입해 들여오는 형식이기 때문에 물류비가 많이 들고 환율의 영향도 받는다. 선적 비용, 선적 전후의 보관 비용, 이동비 그리고 각 과정에서의 인건비, 환차 등 화장품 하나를 들여오기 위해 들어가는 부대 비용의 내역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기업마다 정책이 다르지만 보통 이런 부대 비용까지 수입 원가에 포함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보통 수입 원가가 제품 가격의 30% 정도에 이른다(다른 나라와의 제품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아이템별로 수입 원가의 비율을 조금씩 조절한다고 한다). 브랜드 형태별로 다양한 경우를 고려하더라도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제품가의 고작 30~40% 수준. 더욱 의문이 생겼다. 그렇다면 원가 외의 나머지 비용은 어디에 쓰이는 걸까. 다 브랜드의 수익이 되는 것일까?

물론 그렇지 않다. 제품 가격에서 의외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유통 비용이다. 한마디로 제품을 판매하는 곳, 즉 백화점이나 드럭 스토어 같은 곳에 지불하는 돈을 말하는데 제품가의 30%가량이 일반적이다. 러닝 개런티처럼 제품이 하나 판매될 때마다 유통 업체에 지불되는 비용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일수록 그 비율이 높아진다. 매장 개편 때마다 잘 팔리는 브랜드들은 매장 규모를 늘리고, 잘 안 팔리는 브랜드는 퇴출당하는 이유다. 많이 팔릴수록 유통 업체가 얻는 수입이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따로 유통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자사 매장이나 자사 온라인 몰 등을 이용해 판매하는 것이 브랜드 입장에서는 이득이지만 여기에도 딜레마가 존재한다. 자사 유통망을 만들기에는 초기 비용이 어마어마하게 들고, 또 단독 브랜드 매장일 경우 유명 마켓과 비교할 때 접근 소비자 규모 자체가 현저히 달라지기 때문. 결국 브랜드들은 이 엄청난 유통 비용을 감수하고라도 유명 백화점, 유명 드럭 스토어에 입점할 수밖에 없다(바로 이 유통비 때문에 유통망마다 화장품 가격이 조금씩 달라진다). 세 번째는 마케팅 비용과 홍보 비용이다. 역시 브랜드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보통 제품 가격의 5~30%가량에 이른다고 보면 된다. 여기에는 광고비 외에도 각종 판촉물, 샘플링 비용 등이 포함된다. 그 외에도 물류비, 세금 및 매장 유지 보수 비용, 재고 처리 비용 등을 제하고 나면 나머지가 브랜드의 마진이 된다. 백화점 브랜드의 경우는 제품 가격의 30% 정도, 로드숍 브랜드의 경우는 2~3% 수준으로 조절된다고 한다. 백화점 브랜드는 절대적인 판매 개수는 적은 대신 제품당 높은 마진율로 수익을 얻는 반면, 로드숍은 마진율은 낮되 제품을 많이 팔아서 수익을 개선하는 구조다. 

따라서 브랜드가 이윤을 높이고 싶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다소 한정적이다. 각자의 전략에 따라 어떤 단계의 비용을 절감할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통 단계를 과감하게 없애는 경우다. 온라인, 모바일 유통만 활용하는 미미박스, 라라베시 등 온라인 전용 브랜드가 그 예다. 온라인상에서 매출이 발생하기 때문에 매장 유지비, 인건비 등 유통 비용이 대거 절감되고 가격 경쟁력이 생긴다. 제품 단상자를 없애거나 장식을 되도록 배제한 플라스틱 용기 사용 등으로 패키지 비용을 대폭 줄이는 방법도 있다. 화장품 원가에 있어 패키지 비용이 은근히 높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로드숍 브랜드들이 대부분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맥이나 키엘처럼 따로 광고 모델을 기용하지 않고 광고비를 대폭 줄이는 브랜드도 있다. 물론 이런 브랜드들의 제품에도 마케팅 비용과 홍보 비용은 들어간다. 샘플링이나 매장 내 메이크업 서비스 등으로 마케팅 비용을 달리 사용하는 형식이다. 브랜드 자체적으로 유통망을 구축하거나 혹은 홈쇼핑과 같은 유통 채널을 이용해 가격은 낮추되 박리다매로 수익을 높이는 방법을 취하는 브랜드도 있다. 이상은 모두 제품력을 유지하기 위해, 화장품 원가는 유지하되 그 외 제반 비용을 줄여 제품 가격을 합리적으로 유지하려는 브랜드들의 노력의 일환이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제품력까지 갖춘 화장품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제는 다른 제품을 모방해서 연구 개발비를 줄이고, 재료비, 제조비 등 제품의 원가 자체를 절감해서 가격을 낮추면서도 마진율을 유지하는 ‘양심 없는’ 브랜드도 많다는 사실이다.

당신이 간과해서는 안 될 화장품 뒤에 숨은 비용
원가 문제로 다시 돌아가보자. 앞서 설명한 대로 원가에는 단순히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 당장에 들어간 비용, 즉 원재료비와 제조비만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 개발비뿐 아니라 피부에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한 투자 등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도 숨어 있다. 예를 들어 화장품에 들어가는 장미 꽃잎 자체는 단돈 1백원일지 모르지만, 피부에 유효한 장미종을 찾기 위해 수년을 연구 개발하고, 또 그 장미를 엄선해서 수확하기 위해 직접 자체 농장을 운영하는 등의 비용은 몇억에 이르기도 한다. 반면 더 쉽고 싸게 화장품을 만드는 방법도 많다. “똑같은 화장품 성분을 사용하기는 쉬워요. 원료 분석기에 넣고 제품을 돌려보면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쉽게 알 수 있거든요. 이미 검증된 베스트셀러 제품의 성분을 이렇게 분석해서 비슷한 효과의 저렴한 성분을 넣어 화장품을 만드는 브랜드도 있어요. 문제는 무조건 싼 재료만 고집하기 때문에 안정성이 떨어지기 쉽고 이를 제어하기 위해 안정제를 넣어 무리하게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는 거예요. 당장 눈에 드러나지 않지만 피부에 유해할 가능성이 높죠.” 한 브랜드 홍보담당자의 말이다. 즉, 똑같이 장미가 들어간 화장품인데 어떤 크림은 1ml당 가격이 천원에 불과하니 합리적이고, 또 어떤 크림은 만원이 넘기 때문에 지나친 가격 거품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소위 말하는 제품의 원가에는 단순 제작 비용 외에도 이토록 많은 과정이 함축되어 있으니까. 또 모 화장품 연구원은 말했다. "자체 품질 검사 규정을 가지고 있는 회사들이 있어요. 식약처 기준 외에 혹시 모를 소비자 컴플레인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적인 제품 검수를 다시 한 번 거치는 거죠. 이런 노력들이 제품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고 제품력을 높이는데, 사실 이런 과정도 결국은 화장품의 가격을 높이는 거예요. 제대로 만들려고 노력할수록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건 사실이니까요. 단순히 제품 제조 비용만을 산술적으로 계산해서 화장품 가격이 비싸다고 비난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예요.” 

취재를 위해 국내외 브랜드들의 마케팅팀, 연구원들에게 익명의 인터뷰를 요구했을 때 그들의 답변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화장품 가격은 그 화장품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갈 때까지 든 모든 비용을 1/n로 나눈 것과 같아요.” 브랜드가 그동안 마케팅과 홍보로 쌓아온 이미지든, 제품의 패키지가 주는 만족감이든, 매장 직원에게 받은 메이크업 서비스든, 혹은 심지어 브랜드 고객 센터 담당자와의 상담이든, 제품을 구입하면서 얻는 모든 것이 제품의 가격으로 환산된다. 소위 말하는 명품 화장품의 가격에는 그 브랜드의 이미지 가격까지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래도 같은 기능의 크림 하나에 가격차가 무려 50배에 이르는 것을 이해하기는 힘들다고? 당신이 두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화장품은 단순한 생활 소비재가 아니라 ‘감성’ 소비재라는 사실이다. 스파 브랜드의 5천원짜리 티셔츠와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의 50만원짜리 티셔츠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본인의 가치 문제다. 여자에게 화장품은 보습 기능만 만족시켜주면 되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나 스스로를 관리하고, 내가 더욱 아름다워지고 있다는 만족감을 주는 ‘이미지’이기도 하니까. 그렇기에 화장품에서는 감성 품질이 주요한 요건이다. 1백만원짜리 크림 하나에 실제 원료에 드는 비용은 겨우 10여만원밖에 안 될지 모르지만 화려한 유리 보틀, 기능적인 스패출러 그리고 바를 때마다 우아한 향을 맡으며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다면 1백만원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도 있다. 물론 가격이 비쌀수록 무조건 좋은 화장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단지 화장품은 판매가 대비 원가 비율, 가격 대비 효과 등 그저 산술적인 잣대로만 판단할 수 있는 재화는 아니라는 말이다. 단언컨대 기술이 발전할수록 지금보다 몇 배는 더 비싼 화장품이 출시될 것이고, 반대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낮은 가격대의 화장품도 나올 것이다. 가격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는 그저 당신의 선택의 문제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