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떠나온 고향이 있다.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내가 살던 동네’는 어디일까? 제각기 다른 도시를 고향으로 둔 사람에게 그 도시에 가면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오랫동안 문턱이 닳도록 다닌 그들만의 단골집과 함께.

1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속리산. 2 보은의 명물 대추. 그 어느 곳보다 크고 단 대추를 맛볼 수 있다. 3 강원도의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북평오일장. 4 동해시는 피서철을 제외하면 조용한 곳이다.

1 사계절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속리산. 2 보은의 명물 대추. 그 어느 곳보다 크고 단 대추를 맛볼 수 있다. 3 강원도의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북평오일장. 4 동해시는 피서철을 제외하면 조용한 곳이다. 

 

 

보은 | 황민영(겟잇뷰티 MC)

내가 살던 동네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삼산리 성심목욕탕. 이곳에서 태어나 아홉 살까지 살았다. 이후에는 대전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럼에도 고향은 보은이다. 부모님께서 아직도 보은에서 목욕탕을 하고 계셔서 두 달에 한 번 정도 고향에 내려간다. 가장 아름다울 때 대부분의 시골이 그렇겠지만, 녹음이 짙어지는 5월에는 어딜 둘러봐도 기분이 상쾌해진다. 매년 10월에는 대추축제가 열리는데 ‘우리나라에 대추가 이렇게 많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 세상이 대추판이 된다. 아직도 익어서 갈색이 되기 전 녹색 대추를 먹어보지 못했다면 올 10월 보은에 꼭 들러보길.
나의 단골집

중앙시장떡볶이 시골 인심을 경험해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한다. 떡볶이가 아직도 1인분에 1천원인 곳이다. 그럼에 어른 둘이서 먹기 힘들 정도로 양이 많다. 물론 맛도 좋다.
운영정육점 운이 좋으면 그날 도축한 소고기를 먹을 수도 있다. 주메뉴는 삼겹살인데 초고추장에 버무린 파절이와 함께 먹으면 술이 술술 들어간다.
송어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바다를 끼고 있지 않은 충청북도답게 바다가 아니어도 양식이 가능한 생선을 회로 먹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게 바로 송어다. 선명한 주홍빛 송어를 각종 야채와 초고추장과 비벼 회덮밥으로 먹으면 아주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고향이 그리울 때

보은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는 속리산이지만 겨울의 서원 계곡도 경치가 일품이다. 산속에 흐르는 반쯤 언 맑은 계곡물을 보고 있으면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이 든다.

 

동해 | 김수정(<그라치아> 피처 에디터)

내가 살던 동네

강원도 동해. 그런데 고향이 ‘동해’라고 하면 종종 ‘동해 바다가 전부 다 네 고향이냐?’는 질문을 받는다. 강릉과 삼척 사이에 있는, 인구가 10만이 채 안 되는 동해시가 내 고향이다.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일출 장면의 배경이 바로 강원도 동해시 추암해수욕장, 촛대바위다.

가장 아름다울 때

내 고향 동해는 언제나 예쁘고 아름답다. 그래도 굳이 고르라면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한여름을 꼽고 싶다. 피서철을 제외하면 대체로 조용한 동네에 바짝 활기가 돌기 때문. 수산 시장부터 회 센터, 해수욕장, 계곡, 마트, 극장 등 어느 곳이든 시끌벅적하다. 최근 몇 년 새에 ‘내일로’ 사업이 활성화되면서 어린 친구들이 삼삼오오 동해를 찾는 걸 보면 그리 뿌듯할 수가 없다. 옛날엔 강릉 아래에 붙어 있는, ‘듣보잡’ 시골 동네 취급을 받았으니까.

나의 단골집

북평오일장 동해시 북평동에서는 3일과 8일마다 오일장이 선다. 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나는 어릴 때부터 오일장이 서는 날이면 집밥 대신 시장밥을 먹자고 자주 엄마를 졸랐다. 메밀묵밥, 메밀전, 감자전, 핫바, 사라다빵 등 시장에는 내 입맛에 딱 맞는 음식들이 넘쳐난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친구들과 인당 3천원짜리 먹방을 찍었다면, 돈을 버는 지금은 인당 만원짜리 푸짐한 상차림에 막걸리를 마신다. 오일장 자체가 내겐 맛집이고 단골집이다. 그중 가장 별미는 말캉한 묵이 잔뜩 들어 있는 메밀묵밥으로 한 그릇에 3~4천원.

무릉회관 동해에서 태백 방면으로 넘어가는 좁은 산길을 달리다 보면 무릉계곡으로 갈 수 있다. 무릉회관에 부모님, 동생과 함께 아주 어릴 때부터 백숙을 먹으러 자주 갔다.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야외석에서 강바람을 쐬며 닭다리를 뜯다 보면 괜히 마음이 차분해진다. 백숙뿐만 아니라 강원도를 대표하는 음식인 감자전과 도토리묵, 산채비빔밥 등 자극적이지 않은, 담백한 맛이 일품인 향토 음식을 고루 맛볼 수 있다.

장군 시오야끼 지금은 두꺼운 최신식 불판에 대패삼겹살이 올라가는 가게로 업그레이드됐지만, 예전엔 포일을 씌워놓아서 왠지 모르게 엉성해 보이는 철판을 사용하던 식당이다. 강불에 대패삼겹살을 바짝 익힌 후 매콤새콤하게 양념한 파채를 얹어 먹는 음식을 시오야끼라고 한다. 깔끔한 반찬을 곁들여 고기 몇 판을 잘 구워 먹은 후 남은 고기와 파채를 잘게 썬 후 밥과 치즈를 함께 볶아낸 볶음밥을 먹어야 진정한 시오야끼 마스터라고 할 수 있다. 강릉, 속초 등에 유사한 가게가 있지만 내가 가는 원조집은 동해시 천곡동 먹자골목에 있다.
만약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면

바닷가를 끼고 몸집이 작은 집들이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한 폭의 그림 같은 ‘논골담길’과 그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 걸
추천한다. 묵호의 진짜 매력은 느린 걸음으로 골목을 헤집고 걸어야 비로소 보인다. 벽화 사업으로 골목이 눈에 띄게 화려해졌고, 이따금씩 젊은 아티스트들이 동네 곳곳에 숨어 있는 카페나 갤러리에서 아트워크를 선보이기도 한다. 좁은 골목을 따라 언덕을 오르고 또 오르면 소박한 마을과 묵호등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것도 특징. 드라마 <상속자들>에서 여주인공인 차은상(박신혜)이 살던 집도 바로 이 골목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다. 극중에서 영도(이민호)가 ‘얘는 도망을 가도 뭐 이런 데로 왔느냐’고 투덜거리던 바로 그 골목.
고향이 그리울 때

여전히 동해를 지키고 있는 17년 지기 친구 상미가 보고 싶을 때 충동적으로 가곤 한다. 치열한 서울살이에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때에도 동해에 가서 그 친구를 만났다. 친구가 얼마 전에 차를 산 덕분에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실컷 할 수 있어서 요즘엔 더 신이 난다. 여기에 ‘얼큰이’라는 이름의 큰외삼촌네 가게에서 외숙모가 개발한 매운 소스를 입힌 닭날개 구이에 소주 한 잔 걸치는 코스를 추가하면 완벽한 하루가 완성된다. 물론 엄마아빠가 보고 싶을 때도 고향이 그립다.

 

1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 중인 스윗즈 주택. 1900년대 초에 지은 건물이다. 2 대구에는 이름난 커피 전문점이 많다. 3 제주의 다양한 풍경을 걸으며 볼 수 있는 올레길. 4 제주 무근성은 제주에서도 오래된 동네다.

 

 

대구 | 이준혁(칼럼니스트)

내가 살던 동네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 후 서울에서 자라다가 다시 10대 시절을 대구에서 보냈다. 이제 가족은 다시 서울에 살고 대구에는 어린 시절 친구나 친척 어른들만 살고 있지만 고향이 어디냐고 하면 대구가 떠오른다.
가장 아름다울 때

역시 여름이다. 인터넷에서 대구를 지칭하는 독특한 별명이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대프리카’다. 우리나라에서도 덥기로 유명한 곳이라, 대구를 아프리카에 지칭한 별명이다. 실제로도 대구의 여름은 엄청나게 덥다. 그래서인지 대구를 생각하면 아스팔트 위에 달걀 프라이를 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뜨거운 여름날이 떠오른다.
나의 단골집

옛집식당 대구에는 ‘탕집’이 많다. 내가 대구에 갈 때마다 꼭 들르는 집은 육개장만 하는 옛집식당이다. 달성공원과 서문교회 사이 골목에 위치한 이곳은 벌써 60년이 넘은 가게다. 자개장에 비단 방석이 깔린 방에 들어서면 마치 친척집에 온 것 같다. 이 집 육개장에는 고사리 같은 부재료는 아예 안 들어간다. 오직 파와 무의 단맛과 고깃국물의 단맛이 어우러진 국물이 정말 일품이다. 다른 곳의 맛과는 다르다.

교동시장 대구 시장 골목의 분식집에는 다른 지역 분식집에서는 안 파는 걸 판다. 난 어릴 적엔 전국에서 다 파는 줄 알았다. 그게 무엇이냐 하면, 소라다. 대야보다 더 큰 솥에 하루 종일 소라를 삶아 파는 것이다. 이 소라는 분식집의 메뉴 중 가장 비싼 5천원이다. 이 소라를 큰 접시로 시켜서 초장을 턱턱 찍어 먹을 때면 내가 어른이 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장원식당 대구 사람들이 즐기는 음식 중 ‘뭉티기’가 있다. 대구에서만 이렇게 부르는 것 같기도 한데, 뭉티기는 고기를 생고기로 먹는 것을 말한다. ‘육사시미’쯤 되는데 써는 방식도 좀 다르다. 그런데 ‘뭉티기’를 파는 이 식당들을 또 ‘구이집’이라고 부른다. 정작 가보면 구워 먹는 사람은 없고 다 생고기에 소주를 마시고 있다. 참기름과 마을, 다진 양념을 섞어 찍어 먹는다.

만약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면

교동시장을 한 바퀴 돌고 납작만두와 소라로 간식을 먹은 다음 김광석 거리에서 산책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쓰려니 시시하게 느껴진다.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경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계산성당, 대구제일교회, 선교사 주택 등 근대 건축물을 돌아보는 ‘골목길 투어’가 잘되어 있다고 하니, 대구가 처음이라면 이 투어를 해봐도 좋을 것 같다.
고향이 그리울 때

전국 폭염 특보라든지, ‘서울, 대구보다 덥다’라는 헤드라인이 신문과 뉴스를 오르내리는 걸 볼 때 내 고향 대구는 무척이나 덥겠지 하고 생각한다.

제주 | 김동휘(아디다스 오리지널스 MD)

내가 살던 동네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하기 전까지 제주시 무근성 본가에 살았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지금도 명절에는 꼬박꼬박 고향에 내려간다. ‘묵은 성’에서 유래했다는 지명인 무근성은 제주시에서도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았던 동네로 근처에 탑동 바닷가가 있었다. 지금은 매립되어 흉하디흉한 대형 마트, 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관덕정, 용연, 용두암 등이 가까워 어릴 적부터 자주 가곤 했다.
가장 아름다울 때

어려서부터 여름을 가장 좋아했다. 어린 시절, 뙤약볕이 쏟아지는 여름이면 매일 탑동 바닷가로 나가 놀곤 했는데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반질반질한 현무암 바위와 자갈로 뒤덮인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게, 보말 등을 잡아서 삶아 먹기도 했다. 또 제주시는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느 동네든 멀리 남쪽으로 한라산이 보였는데 늘 한라산 정상과 능선이 그리는 완만한 경사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시선의 좌우를 차지하고 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의 단골집

복집 식당 동네에 있는 제주 음식점. 배추와 늙은 호박을 넣어 끓인 갈칫국이 특히 맛있다. 수십 년 된 동네 단골이 많은 식당이다. 아마 50년쯤 되었을 것이다. 주인이 직접 잡아온 생선으로 마련한 회부터 물회, 각재기국 등 제주 토속 음식을 판다.
중앙 식당 안덕에 있는 제주 음식점. 올레 코스에 있어 올레꾼과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이곳에 갈 때마다 자리물회 한 그릇을 뚝딱하고 온다. 아는 사람만 찾아오는 편안한 곳이다.
덕승식당 모슬포항에 있는 생선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집으로 쥐치 조림을 권한다. 제주 사투리로 ‘객주리’라고 하는데, 이 객주리 조림은 쥐치가 잡힐 때만 맛볼 수 있다. 방어 요리도 유명하다.
만약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면

많고 많은 제주 해수욕장 중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곳은 김녕 해수욕장이다. 그리고 신비한 색과 바위의 쇠소깍,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자연 풀장 황우지 해안 등에 가보길.
고향이 그리울 때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이 그립다. 이제는 새로운 길이 많아 예전의 동네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가끔씩 어린 시절 사진을 들추어볼 때 특히나 그 동네가 그립다. 그 작은 골목에서 야구, 축구, 술래잡기를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