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서울에 살지만 떠나온 고향이 있다.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내가 살던 동네’는 어디일까? 제각기 다른 도시를 고향으로 둔 사람에게 그 도시에 가면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오랫동안 문턱이 닳도록 다닌 그들만의 단골집과 함께.

 

1 광주 곳곳에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다. 2 광주의 골목 풍경. 3 포항의 해돋이 명소인 호미곶. 4 냄비 국수로 유명한 철규 분식. 벌써 50년이 넘은 곳이다. 

1 광주 곳곳에 근대 건축물이 남아 있다. 2 광주의 골목 풍경. 3 포항의 해돋이 명소인 호미곶. 4 냄비 국수로 유명한 철규 분식. 벌써 50년이 넘은 곳이다.  

 

 

광주 | 서효인(시인, 소설가)

 

내가 살던 동네

목포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광주에 살았다. 그리고 서른 즈음에 서울에 왔으니 조금 착란이 일어나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단 한 군데를 고르라면 나의 고향은 역시 광주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아름다울 때

날씨 좋은 가을밤, 무등산 중턱에 올라 도시의 전경을 바라볼 때다. 산 중턱에 카페가 있는데 아주 촌스러운 맛의 코코아를 판다. 무등 산장 어디쯤에서 백숙에 막걸리까지 먹었다면, 무엇이든 아름답지 않을 이유가 없겠지. 무등산에서 보는 광주는 지금 생각하니 아주 작고 낮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작고 낮은 것의 아름다움을 그때 알았던 듯하다.

나의 단골집

1960청원모밀 메밀국수와 마른메밀, 유부초밥 등을 판다. 특이한 메뉴는 메밀짜장. 고소한 풍미가 면을 끊어내길 거부하게 만든다. 육수는 개운하고 유부초밥은 새콤달콤하다. 광주 충장로 구도심을 지키고 있는 자존감 높은 식당이자 수준 높은 광주의 입맛을 오직 면으로 수십 년 사로잡고 있는 역사 깊은 가게.

나정상회 광주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나정상회에 가달라고 하면 군말 없이 상무지구 어딘가에 당신을 데려다 놓을 것이다. 나정상회가 무슨 쌀집 이름이냐고? 갈비 뜯다 송곳니 깨지는 소리는 하지도 마라. 본래 나정상회는 광주 시내에서 공항 가는 국도변에 허름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나 허름해서, 앉아 있기가 께름칙한 정도였지만, 얼마 후 우리는 그저 양치질을 갈비로 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남도미 보리굴비와 생선조림 등의 한식을 다룬다. 꼬득꼬득 말린 보리굴비를 이모님이 직접 손으로 찢어 준다. 냉녹차에 밥을 말아 한 숟가락 퍼서 그 위에 찢은 굴비를 얹어 먹으면 깔끔한 맛이 일품이다. 밑반찬이라고 나오는 것이 모두 다 서울에서는 따로 사 먹어야 할 것들이다. 예컨대 간장새우, 간장게장, 맑은조개국, 굴전, 병어회무침, 바지락무침….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만약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면

이게 좋은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쩐지 아직도 5월에 광주를 가면 느낌이 다르다. 여러 사람이 죽거나 다쳤던 곳들, 그러니까
전남도청 앞(현재 아시아문화전당), 전남대학교 정문, 그리고 그곳에서 죽은 사람을 모셔놓은 망월동 묘역을 추천한다. 그리고 남은 시간엔, 어디론가 가서 무언가를 드시길. 오리탕도 좋고, 떡갈비도 좋고, 한정식도 좋고, 민어전도 좋고.

고향이 그리울 때

난 고향이 언제 그리울까. 아직도 모르겠나? 그렇다. 나는 무엇인가 먹고 있을 때 항상 고향이 그립다. 특히 점심을 먹을 때, 강남 신사동에서 직장인이 먹을 만한 점심 밥집 어디 없을까. 베트남 쌀국수, 탕수육, 일본라멘, 파스타, 수제 버거, 새마을식당… 이런 거 말고 그냥 밥. 전라도 반찬에 흰 쌀밥. 그게 먹고 싶을 때 나는 고향이 그립다.

 

포항 | 김나래(<엘르> 피처 에디터)

내가 살던 동네

내 고향은 포항이다. 대학 입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 직전까지 부모님과 살았던 곳이다. 포항제철로 유명한 도시이지만, 정작 나는 단 한 번도 제철소에 가본 적이 없고, 바다와 가까운 항구 도시임에도 포항 바다를 찾은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정작 서울 생활을 시작하고 한 달에 한 번 부모님을 뵈러 다니면서, 무뚝뚝하지만 속정 깊은 도시의 인심을 차츰 느끼게 됐다.

가장 아름다울 때

1년에 1회, 가장 뜨거운 여름에 전 세계 규모로 펼치는 ‛국제 불빛 축제’ 기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빛과 활력이 도시에 깃든다. 형형색색의 불꽃이 수놓는 밤하늘과 밤바다는 속이 뻥뻥 뚫리는 듯 기분 좋은 쾌감을 선사한다.

나의 단골집

푸른집 그 좁은 동네에서도 새로운 레스토랑이 생길 때면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신나게 맛보러 다녔던 엄마에게 최초로 ‘칼질’하는 법을 배운 레스토랑. 우리 남매에게 자랑스러운 일이 생길 때마다 추억의 ‘돈가스’로 소소한 축하 파티를 벌이곤 했던 가족만의 아지트다.

철규 분식 대표적인 포항의 ‘노포’로 맑게 우린 멸치 육수에 끓인 냄비 국수, 단팥죽 그리고 찐빵으로 잘 알려진 50년 전통의 분식집. 일본식 단층 건물에 자리한 구룡포의 명소로 국수 또는 단팥죽을 시켜야 찐빵을 먹을 수 있고 포장은 절대 안 되는, 고집스러운 운영 방침도 잘 알려져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은 기가 막히다.
피렌체 포항에서 울진, 그리고 고성 화진포로 향하는 절경의 7번 국도 곳곳엔 촌스럽지만 정직한 이름의 이탤리언 레스토랑이 하나 둘 세를 확장해가고 있다. 베네치아, 타히티…. 조용한 분위기와 큰 창 너머 바로 바라보이는 바다, 언젠가 엄마가 살고 싶은 도시라는 이유 덕분에 최근 우리 모녀가 향하는 곳은 피렌체. 무드가 근사해 노을 지는 저녁 무렵에 찾길 권한다.

만약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면

해돋이 명소로 잘 알려진 호미곶, 포항제철소와 나란히 포항의 심장이라 불리는 죽도 시장 외에 꼭 추천하고 싶은 장소는 포항 공대 호숫가다. 공대 호숫가라 학생들만 이용할 것 같지만, 일반인들도 즐겨 찾는 산책 장소다.

고향이 그리울 때

엄마 품에서 떨어져 산 지난 10년여의 세월 중 실패라 부를 만한 순간에 어김없이 내 발길은 남녘으로 향했다. 4시간여를 고속도로 위에서 보내며 기꺼이 내달린 끝에 발 디딘 고향의 공기를 크게 한 줄기 들이쉬고 내뱉을 땐, 치유라 불러도 좋을 만큼 깊은 평안함을 얻곤 했다. 가식을 벗어던진 내가 오롯이 쉬고 싶을 때 요람처럼 나를 반기는 고향을 찾는다.

 

1 시골순두부의 인기 메뉴인 순두부전골. 2 매일 새롭게 구워내는 뚜쥬루 발효빵. 3 전통수제비의 수육과 수제비. 넉넉한 인심이 느껴진다. 4 기장 연화리의 포구 풍경. 이곳에서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5 이제는 서울에서도 유명해진 마라도 횟집. 6 오랑대의 일출은 장관이다.

 

 

천안 | 이마루(<얼루어> 피처 에디터)

내가 살던 동네

충청남도 천안. 당진, 서산, 태안 등 충남일대를 헤매다 13살 때부터 천안에 정착해 19살 때까지 살았다. 지금도 부모님은 천안에 계셔서 한 달에 두 번 이상 방문한다.
가장 아름다울 때

‘하늘 아래 편안한 곳’이라는 뜻을 가진 천안은 계절의 횡포를 크게 타지 않는 도시이다. 부모님 댁과 가까운 광덕산은 우리나라에서 호두나무를 처음으로 심은 곳인데 꽃 피는 봄부터 계곡놀이 하기 좋은 여름철, 가을까지 사시사철 아름답다. 물론 도시가 가장 활기에 찰 때는 광복절 전이다. 독립기념관을 중심으로 시내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유관순 열사의 ‘횃불낭자’ 캐릭터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나의 단골집

시골순두부 엄청나게 맛있는 콩비지와 순두부찌개를 맛볼 수 있다. 할머니 댁이 이곳과 가까워서 초등학생 때부터 크고 작은 가족 행사를 치를 때를 포함해 수시로 들른다. 지난해 원래 가게 옆에 ‘북구정’이라는 이름의 대형 지점을 하나 더 냈다. 독립기념관, 그리고 순대로 유명한 병천과도 가까워 함께 둘러보기 좋다.

뚜쥬루 건강빵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없던 1998년부터 화학첨가물 없는 빵을 만들어온 천안 굴지의 제과점이다. 현재 3호점까지 문을  열었는데 제각기 콘셉트가 조금씩 다르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의 유명 빵집을 다 다녔지만 뚜쥬루처럼 지점마다 제빵실 규모가 크고, 다양한 종류의 현대적인 빵이 있는 곳은 성북동 나폴레옹 제과점 외에 본 일이 없다. 전날 남은 제품을 50% 할인하는 아침에는 주민들이 가게 앞에 줄을 서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전통수제비 지금은 신세계 백화점에 흡수된 천안의 대형쇼핑몰 야우리, 그리고 아라리오 갤러리가 있는 터미널 근처에 자리한 작은 식당이다. 수육과 수제비가 주메뉴인데, 별다른 밑반찬 없이 덜어 먹을 수 있는 김치와 깍두기만 단출하게 내놓는다. 수육 소자 1만원, 수제비 1인 5천원으로 가격 대비 양과 맛이 훌륭하다. ‘다대기’를 반드시 챙겨 넣어 먹을 것!

만약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면

태조산은 산세가 유순한 데다가, 천안 시내와도 가까워 주말 드라이브 코스로 휙 한 바퀴 돌기 좋다. 산자락에는 카페와 레스토랑도 많은데 가벼운 산책을 곁들이고 싶다면 산 입구의 봉평장터에서 메밀국수를 먹고 술렁술렁 걷다 오기를 권한다.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호수 주변의 카페도 호수를 바라보며 호젓하게 시간을 보내기 좋다. 천안 바로 옆 동네, 아산의 온천도 들러보길. 우리 가족의 단골은 도고 파라다이스였다.

고향이 그리울 때

워낙 자주 가기 때문에 그리울 틈도 없지만, 서울의 호두과자 체인점에서 판매하는 팥 색깔 앙금이 든 호두과자를 볼 때마다 이건 진짜 호두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억누를 수 없다. 천안 사람들은 흰색 앙금에 호두 가루가 든 ‘학화호두과자’가 원조라고 생각한다. 서울에는 한남동에 지점이 있다.

부산 | 공영규(사진가)

내가 살던 동네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에 대학을 오기 전까지 주례동, 해운대에서 20년을 살았다. 지금도 형과 부모님은 부산 해운대에 거주하고 계셔서 반년에 한 번 정도는 부산을 다녀온다.
가장 아름다울 때

부산은 계절별, 동네별로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투박한 듯하지만 정이 넘치는 사람들과 어릴 적 추억이 많아서 어느 동네를 가든 추억이 조금씩은 있다. 특히 나는 기장을 좋아해서 부산에 가면 꼭 들른다. 부산을 찾는 사람들은 보통 여름을 떠올리는데 가을, 겨울 조금 한적하고 정적인 부산을 경험해보는 것도 꼭 추천하고 싶다.

나의 단골집

주례동 가마솥돼지국밥 돼지국밥의 특이한 냄새 때문에 싫어하는 사람에게 강력 추천한다 특히 수육백반은 담백한 수육과 국물이 따로 나오는 메뉴인데, 서울 친구들을 데리고 가보면 백이면 백 모두 만족한다. 특히 평소 돼지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은 꼭 가보길 바란다.
기장 연화리 해녀촌 부산 대부분 관광지에는 자연산 해물을 찾기가 힘든데 여기는 아직 해녀들이 물질해서 잡아 올린 해물을 맛볼 수 있다. 해삼, 소라, 산낙지 등 해물과 바로 끓여 주는 전복죽이 대표메뉴다.
마라도 횟집 가격이 비싸지만 그만큼 만족도가 높은 가게로 광안리에 있다. 어느새 서울에서도 유명해진 횟집이다. 만만치 않은 가격이지만 실패가 없는 집이다.
만약 내가 살던 동네에 간다면

전 국민이 아는 해운대와 광안리도 좋지만 만약 차가 있다면 송정, 기장으로 이어지는 드라이브 코스를 추천한다. 길을 따라 가다 보면 화려한 해운대나 광안리와는 다른, 좀 더 토속적인 바다와 작은 어촌마을을 만날 수 있다. 특히 기장 오랑대에서 보는 일출은 정말 추천하고 싶은 장관이다.
고향이 그리울 때

하는 일의 특수성 때문에 서울에 머물고 있지만 마음은 항상 고향이 그립다. 치열한 서울 생활이지만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아름다운 곳이 있어 한편으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