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망한 소개팅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재미있지만 그게 내 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상 이상의 ‘진상’을 소개팅에서
만났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나는 너무 완벽해, 나르시스트
자기 소개를 빙자해 자기 이야기를 끝없이 늘어놓는 남자들이 있다. 이들의 특징은 절대 상대방에 대해서는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 레퍼토리도 다양하다. 초등학생 때 공부 잘한 것부터 군대에서 축구팀 에이스였던 것, 연봉은 얼마인지 등등. 혹시라 도 그의 스펙이 진짜 좋아서,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자기 자랑이 심한 사람일수록 열등감에 차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상기하자. 가만히 앉아서 ‘네’, ‘그러셨군요’ 하고 듣고 있으면 자랑은 끝없이 계속된다. 가장 좋은 건 중간중간 대화를 자르는 거다. 먹고 있는 음식에 대해 언급하거나 ‘물 좀 가져다주세요’, ‘메뉴판 좀 보여주세요’라며 제3자인 서버에게 말을 거는 식으로 말이다. 적당한 시간이 지났다면 ‘일어나자’고 먼저 말해도 된다. 회식 자리에서 무용담을 털어놓는 상사처럼 이야기를 배설하는 것 자체에 심취한 이들은 의외로 말이 끊기는 것에 불쾌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저아 ‘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하고 말을 멈출 뿐이다.

 

호시탐탐 스킨십을 시도하는 능글남
소개팅이라서 나왔을 뿐인데 데이트라고 생각하고 스킨십을 시도하는 경우다. 손금을 봐주겠다는 것은 애교. 이동 중에 손목을 잡아 끌거나, 지나치게 가까이 붙어 걷는다. 특별한 터치는 없지만 대화 중에 ○‘ ○씨는 입술이 부드러울 것 같네요’ 하는 멘트를 던지기도 하는데 이것은 픽업 아티스트들이 쓰는 스킨십 유도 기술이다. 스킨십을 연상시키는 말을 함으로써,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연스레 성적인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첫 만남부터 반주를 권유한다면 그는 정말 스킨십을 목적으로 소개팅에 나왔을 확률이 높다. 일방적인 스킨십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저는 처음 보는 분이 만지는 거 안 좋아해요’라며 확실히 싫다는 의사를 밝힐 것. 2차로 술 마시러 가자고 해도 절대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냥 ‘오늘 하루 놀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럴 때면 이 만남이 애초에 소개팅임을 상기하자. 이 남자가 주선자에게 나랑 ‘잤다’고 말해도 괜찮은지도.

 

‘김치녀’가 싫은 여성 혐오자
이들은 ‘요즘 여자들은 이렇다는데, ○○씨는 안 그러죠?’ 또는 ‘요즘 이런 여자들이 많은데 ○○씨는 개념 있는 것 같아서 좋아요’와 비슷한 문장을 자주 구사한다. <마녀사냥>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서인영에게 난데없이 ‘ 인영 씨 된장녀잖아’라는 잣대를 들이댄 성시경처럼,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 ○녀’ 상에 굳이 나를 대입해서 비교하는데 ‘개념 있다’고 해줘서 고마워해야 하는 건지 헷갈린다. 이 남자의 장단에 맞추지 않을 경우 나 역시 또 다른 된장녀, 김치녀라고 두고두고 회자되겠지만 참고 들을 필요는 없다. “자기 돈으로 사서 쓰는 건데 뭐라고 할 필요는 없죠.” “저도 해외여행 가는 것 좋아하는데, ○○씨랑은 잘 안 맞는 것 같네요” 등 선을 그을 것. 부디 칼같이 더치페이를 한 후 1차에서 헤어지는 데 성공하기를 바란다.

 

끝없는 자기 비하, 자신감 없는 남자
자기 자랑형이 열등감을 ‘과대망상’에 가까운 자아상을 꺼내는 것으로 표시한다면 ‘자학형’은 대놓고 자신의 부족함을 털어놓는다. 어려운 집안 형편부터 자기가 얼마나 힘들게 자라왔는지, 전 여자친구와는 어떻게 헤어졌는지 등등. 대체 내가 왜 연애 좀 해보겠다고 나온 귀한 주말에 처음 보는 사람의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는지 화가 나겠지만, 인간 군상에 대한 사례를 하나 더 수집한다는 느낌으로 들어주자. 단 지나친 호응은 금물이다. ‘○○씨는 이해심이 넓은 것 같아요’ 등 원하지 않는 호감으로 변질될 수 있다.

 

여자는 무조건 예뻐야 해! 외모지상주의자
소개팅에 나왔으니 상대방의 외모를 평가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진과는 많이 다르시네요. 셀카를 잘 찍으시나 봐요’ 하는 인신 공격, ‘○ ○씨는 상체는 날씬한데 하체는 튼튼하시네요’ 등 공격의 범주도 다양하다. 나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아도 지나가는 여자의 몸매를 언급한다면 속으로는 내 외모에 대해서도 줄을 세우고 있을 확률이 높다. 못 견딜 수준이라면 똑같이 그의 외모를 평가해주자 .여성에 비해 ‘대상화’의 경험이 적은 남자들은 외모를 평가받으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말에 그토록 많은 남자가 발끈한 것도 그들은 ‘163cm에 45kg’ 같은, 여자 외모를 향한 수많은 잣대로 자신의 외모를 평가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소개팅이 끝난 후 주선자에게 확인해보길. 소개팅 전, 그 남자가 무조건 ‘예쁜 여자’만을 외치지는 않았는지.

 

넌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해, 강압적인 남자
꼭 어느 레스토랑의 창가 좌석에 앉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헤어질 때 미리 준비해놓은 책이나 꽃을 건네는 것 정도는 귀여운 편에 속한다. 만약 남자가 소개팅 장소를 일방적으로 정한 데다가 묻지도 않고 메뉴를 고르고, 갑작스럽게 2차 장소로 이동하는 등 강압적인 요소가 보인다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가까운 친구나 동거인에게 지금의 위치와 상황을 알리자. 아는 사람이 해준 소개팅에서도 유사 데이트 폭력이나 데이트 강간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니 주의해서 나쁠 건 없다. 특히 그가 데려다준다고 해서 절대 그의 차에 오르지 말 것. 그 남자가 진짜 ‘또라이’는 아니라고 해도, 그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만남 내내 위축되었던 당신은 인생 최악, 공포의 드라이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끝없이 연락하는 미련 덩어리
대체 나의 어디에서 운명을 느낀 걸까? 애프터를 거절했음에도 끝없이 연락을 시도한다. 직장 앞으로 찾아오는 등 미약한 스토킹의 기미마저 보인다면 그동안 그가 보낸 문자나 통화기록 등을 보여주며 주선자에게 확실히 상황을 설명해야 한다.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에 당신이 강하게 대처할 것임을 알려두고, 중재를 요청하자. 그럼에도 ‘네가 뭔데 주선자에게 이야기를 하냐’는 등 위험한 행동이 이어진다면 이제 강하게 나갈 차례다. 거절을 거절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똑같이 또라이가 돼야 한다. 소극적인 방식은 접어두고 ‘쌍욕’을 시전하자.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말도 효과적이다. 당신의 소개팅이 안녕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