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멋쟁이들은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스타일을 완성할까? 그녀들의 옷장을 들여다보고, 취향과 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개인 소장품.

의상과 액세서리 모두 개인 소장품.

 

 

서울 여자들이 지금만큼 세련된 취향을 갖게 된 데에는 디자이너 김재현의 공이 컸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을까? 김재현은 여자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생각하며 여자가 최고로 예뻐 보이는 옷을 만든다. 그녀는 그 비결을 본능적으로 좋은 것을 알아보는 심미안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호기심 많은 아틀리에에 틀어박혀서 옷을 만들기보다는 삶을 만끽하며, 그 삶에서 발견한 즐거움을 원천 삼아서 옷을 만든다. 뼛속까지 서울 여자인 김재현의 취향에 대하여.

취향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해요.
어렵네요. 취향은 시간이 흐르면서 계속 쌓여가는 거예요. 슬쩍 변하기도 하겠지만 한 사람의 기호가 일정한 호흡으로 일정한 방향을 향해 흘러가는 거죠. 근데 전 제가 좋아하는 게 딱 있어요.

어떤 기호를 갖고 있나요? 패션 측면에서요.
저는 약간은 심심한 게 좋아요. 옷이 사람을 이기지 않았으면 해요. 그러면서도 어느 부분에 날카롭게 날이 서서 각이 져 있어야 해요. 흔히 에지라고 말하죠. 그래서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느낌이 좋아요.

자뎅 드 슈에뜨의 옷은 여자가 입어서 예쁜 옷이었잖아요. 남자 친구한테 예쁘게 보이고 싶을 때 입고 싶어요. 

예쁜 게 좋잖아요. 저는 대놓고 성적인 면을 부각시키는 직설적인 표현이 싫어요. 그런 건 뭐랄까, 좀 징그럽지 않아요? 서울 여자들은 남자친구에게 그렇게 하지 않을 거예요. 좀 더 은유적이겠죠.

김재현의 옷은 ‘클래식하면서도 쿨하다’는 느낌을 줘요. 복잡 다양한 상반된 요소들이 뒤섞여 있는 느낌이죠. 그건 옷을 만드는 사람의 개인적인 취향이 녹아들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전 제가 원하는 게 분명해요. 그러니 제 옷에는 제가 녹아 있겠죠. 성격은 시원시원한 편이죠. 낙천적이고 긍정적이에요. 그리고 전 예스러운 게 싫어요. 클래식한 것은 오래된 거라기보다 기본적인 거예요. 좀 다른 이야기이죠. 그래서 전 지금 가장 젊은 것을 찾으려고 해요. 제가 어린 시절, 90년대에 향유했던 것들처럼요. 젊은 건 언제나 좋잖아요.

세월이 지남에 따라 취향이 변했나요? 그렇다면 나이가 취향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살짝 변하긴 했는데,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거죠. 유행은 좀 나쁜 취향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하긴 해야 되요. 그렇다고 아예 무시할 수도 없는 거지만.

취향의 바탕이 되는 미적 감각을 타고났다고 생각하나요?
어릴 때는 변덕이 심했어요. 같은 옷을 입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죠. 그러다 보니 많이 입게 되고 경험이 쌓인 거죠. 그런데 감각은 타고나는 것 같아요. 저는 머리로 계산하고 논리적으로 따지지 못하는 성격인데, 아 이게 좋은 옷이구나 알아보는 눈은 확실히 가졌어요.

자신만의 기호가 생기는 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나요? 오히려 까다로워지기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나요?
삶이 심플해지죠. 딱 좋은 걸 사면 되고, 좋은 것만 하면 되니까. 그래서 친구 사이에서는 편한 것 같아요. 그런데 이성과의 사이에서는 좀 불편한 점도 있죠. 남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여자를 움직이려 하는데 나이가 들면 그걸 맞춰주기가 싶지 않아요.

평소엔 어떤 스타일로 입나요?
그냥 지금처럼 티셔츠에 데님 팬츠 입고 다녀요. 그게 편해요.

데님 팬츠에 티셔츠 하나 걸치고 머리는 부스스해도 멋이 나요. 파리 여자 같아요. 
멋이 나는 건 많이 입어보고 어울리는 핏, 원단, 봉제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데님을 입을 때 예전에는 스트레치가 들어간 데님은 절대 입지 않았어요. 빳빳하고 쫀쫀한 데님이 진짜 데님이라고 생각했죠. 근데 입어보니까 편하기도 하고 날씬해 보여서 좋더라고요. 그런 것도 취향이 변한 거라고 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워싱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20대 때에는 옷 좀 입는다는 사람들은 절대로 스톤 워싱 같은 건 안 입었어요. 그래서인지 지금도 자연스러운 워싱이 좋아요. 유행에 따라 변하는 것도 있는데 취향이라는 게, 내가 불편하고 싫은 건 시대가 바뀌고 유행이 돌아와도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옷을 입을 때 특별한 규칙 같은 것이 있나요?
옷에 치이는 기분이 드는 건 싫어요. 고급스러운 것은 좋은데 너무 티 나게 고급스러운 것도 별로. 편하면서 날씬해 보이는 게 좋죠. 그리고 운동! 운동을 해야 해요. 그래야 자세도 좋아지고 뭘 입어도 예뻐 보여요.

그 누구보다 옷장엔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어요.
사실 물건에 집착하지도, 소중히 보관하지도 않아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한 것들이 있지도 않죠. 좋아하는 것이 확실하다 보니 갖고 있는 것들도 비슷비슷해요. 라이더 재킷, 샤넬 재킷, 실크 원피스, 각종 데님을 반복해서 사요. 보면 알겠지만 누구나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아이템이에요. 왜 이 물건들이 정이 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요즘 빠져 있는 패션 아이템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럭키 슈에뜨의 JDC 모자.

자신이 멋져 보일 때는 언제인가요?
잘 먹고 푹 잔 날이요. 똑같은 옷을 입고 같은 화장에 머리 스타일도 같은데 어떤 날은 괜찮아 보이고 어떤 날은 이상해 보일 때가 있죠? 모두 몸이 말해주는 거예요. 컨디션이 좋은 날은 피부도 매끈하고 몸도 붓지도 않잖아요. 굉장히 간단한 진리예요.

서울 여자의 취향은 어떤 걸까요?
청담동 며느리 룩이죠. 사실 서울에서 스타일 면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아직 많지 않아요. 청담동 며느리 룩은 여자들이 원하는 것과 남자들이 생각하는 것이 어느 정도 합일점을 찾은 것이에요. 저는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지만 현재 서울 패션의 모습인 것은 사실이죠.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다양성에 인색하잖아요. 어딘가에 소속되길 원하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내 취향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죠. 그런 상황이 빚어낸 결과라고 생각해요.

그럼 서울 여자들에게 필요한 세련된 태도는 무엇일까요?
뭐 있겠어요. 결국 자신감이죠. 자기 안에 있는 것과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일치해야 해요.

Her Essential  Items
샤넬 재킷과 아크네의 데님 팬츠, 하늘거리는 실크 드레스와 스터드가 잔뜩 박힌 라이더 재킷이 김재현의 옷장엔 함께 있다. 요조숙녀 같은 단아함에 쿨한 록 정신과 힙합의 스트리트 무드를 믹스한, 서울식 세련미를 갖추고 싶다면 김재현의 룰을 따르면 된다.
1 “1993년 파리 유학 시절, 밥을 굶으면서까지 절약해서 산 첫 번째 샤넬 재킷이에요. 파리에서 보낸 20대의 경험은 잘 만들어진 옷을 알아보는 안목, 날카로운 재단의 중요성, 지나치게 멋 부리지 않는 절제를 가르쳐주었죠.”

2 까르띠에의 뱅글과 반 클리프아펠의 시계는 모든 스타일의 시작인 클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3 글래디에이터 부츠의 진리는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버클 장식 부츠.

4 바람 부는 날이나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날 입는 쟈뎅 드 슈에뜨의 실크 드레스.

5 나에게 처음으로 어울린 디타의 복고형 선글라스.

6 거의 매일 애용하는 럭키 슈에뜨의 스냅백과 에르메스 가방.

7 옷차림이 심심할 때 데님과 매치하면 왠지 모르게 쿨한 기분이 드는 루이 비통의 벨트.

8 2005년 처음으로 만든 쟈뎅 드 슈에뜨의 라이더 재킷. 서울에서 멋 좀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좋아했다.

9 “1990년대에 20대를 보낸 제 또래 세대는 리바이스 501을 향한 무한한 애착이 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옛날 청바지가 지녔던 절대적인 요소들을 갖춰야 진짜 멋진 청바지라고 생각하죠. 청바지를 고를 때 최고로 신중해져요. 아크네의 ‘팝 라인’은 90년대를 풍미한 추억 속의 청바지와 가장 흡사해요.”

10 나의 유니폼이라 할 수 있는 럭키 슈에뜨의 스트라이프 티셔츠.

11 하이주얼리가 지닌 고루함을 벗고 젊음을 추구하는 하이주얼리 브랜드 레포시. 참 잘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