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만난 남자들에게 서울에 대해 물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이들은 서울에서 가장 흥미로운 남자들이다. 당신은 왜 이 도시에 머물고 있나.

“우리 동네는 진짜 조용해요. 제가 경리단길이나 한남동 살았으면 술 마시다가 죽었을걸요. 평창동에서는 할 게 없어서 집으로 향했다 하면 전 그냥 그날은 사라지는 거죠. 제일 가까운 경복궁역까지 차로 18분을 가야 해요. 조용하고 고립된 느낌이 좋아요.”

 

정창욱은 처음부터 잡지 에디터를 비롯한 미디어 종사자들이 좋아하는 셰프였다. 그는 까다로운 입맛을 잘 요리했고, 자신의 섬세하지만 여전히 자유분방한 멋이 살아 있는 음식과 잘 어울리는 공간을 연출할 줄 알았다. 지금의 그는 더 말할 것이 없을 정도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그를 빼놓고 말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그는 이른바 ‘셰프테이너’가 되는 것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다. 여전히 부엌을 사랑하고,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당신은 서울 남자인가요? 
서울에서 살고, 서울에서 자랐고, 서울에서 장사도 하고 있으니까 서울 남자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태어난 건 일본 요코하마고, 네 살 때 서울에 왔죠. 어머니 친정이 일본이라 그 후로도 일본을 왔다 갔다 했고, 스무 살 무렵에는 미국에 가서 뉴욕, 시카고, 샌프란시스코, 호놀룰루에서 살았어요. 20대에는 요리를 배우려고 도쿄에 머물기도 했지만 그래도 늘 서울로 돌아왔고, 서울에서 인생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죠.

당신의 서울 동네는 어디인가요?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한옥이 할머니집이었는데 동덕여대 부속유치원을 다니면서 할머니 손에서 많이 자랐죠. 1983년부터 계속 평창동 집에서 살고 있는데 지은 지 38년 된 오래된 집이에요. 독립하겠다고 했더니 어머니가 결혼할 때까지만 같이 살자고 부탁하셔서 어머니 용돈도 하시고 여동생도 쓰라고 집에 월세 내고 살고 있어요.

당신의 동네를 소개한다면? 
우리 동네는 진짜 조용해요. 제가 경리단길이나 한남동 살았으면 술 마시다가 죽었든지, 간 이식을 세 번은 했을걸요. 그런데 평창동에서는 할 게 없어서 집에 가면 반강제로 모든 걸 포기해요. 집으로 향했다 하면 그날 전 그냥 사라지는 거죠. 제일 가까운 경복궁역까지 차로 18분을 가야 해요. 조용하고 고립된 느낌이 좋아요.

지금까지 논현동, 재동, 운니동에 식당을 열었는데 어느 동네가 가장 좋았나요? 

재동은 10가구도 되지 않는 정말 작은 동네예요. 재동이랑 운니동은 신호 건너면 바로고요. 왜 재동이었냐면, 집과 가까워서 선택했어요. 지금까지 식당 중 재동이 가장 좋았는데 건물주한테 쫓겨나서 문을 닫게 되었죠. 처음 가게를 차릴 때에는 정말 돈이 없었어요. 제일 거지였을 때, 아버지한테 6백만원을 빌려서 시작한 게 재동의 차우기죠.

집과 일터가 가까운 걸 선호하나요? 
가게는 집과 가깝고 출퇴근 시간이 짧아야 되요. 지각을 해도 눈 뜨고 바로 뛰어가도 20분 안에 갈 수 있어요. 한번은 12시 오픈인데 그 전날 술 마시고 11시 50분에 일어난 거예요. 막 밟았죠. 집에 있는 대파랑 이것저것 싸 들고 달렸어요. 손님들은 시장 다녀온 줄 알고 진정성 있는 요리사라고 칭찬해주셨죠. 하하. 재동은 테이블이 4개밖에 없는 작은 가게라서 보이는 부엌에서 요리해서 손님에게 직접 들고 나가곤 했죠. 그게 그립긴 해요. 지금은 일부러 주방에서 안 나가요. 손님이 저를 보러 오는 건 싫어요. 전 요리사니까 음식을 보고 왔으면 좋겠어요.

당신에게 서울의 맛이란 무엇인가요?

할머니가 서울 분이셨는데, 제게 콩국과 비지찌개를 자주 해주셨는데, 제게는 그것이 서울의 맛인 것 같아요. 여름이면 콩국을 물 대신 마시기도 해요. 외국 생활을 할 때에도 김치와 라면은 한 번도 그리워한 적이 없지만 비지찌개는 생각나더라고요.

서울에서 한번쯤 살아보고 싶은 동네는?
북촌. 주차장만 있으면 정말 최고일 것 같아요. 거기도 밤에 물이 빠지듯 차가 빠지면 되게 조용해요.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안 막히는 강변북로. 그리고 친구가 하는 빌라더바. 막다른 길에 위치해 있고, 언덕과 계단밖에 없는데 도착했을 때 안도감이 느껴진달까. 그리고 제가 사는 평창동도 좋아요.

서울에서 가장 싫어하는 것은?
새 도로명 주소 시스템.

당신에게 서울은 영감을 주는 도시인가요?
직장이 서울이니까 일에 치여서 영감은 별로 얻지 못해요. 전 그냥 제가 머무는 곳이 제일 좋아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셰프인데, 유명세를 즐기고 있어요? 
불편한 점이 많아졌죠. 출연진 중 저만 매니저가 없어요. 유명해졌다는데 밖에 다닐 시간이 없으니까 잘 모르겠어요. 재미있는 일이 많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는 건 좋죠. <인간의 조건-도시농부>를 촬영하면서 농사를 짓는 거라든지. 내일 새벽에는 임기학, 오세득, 최현석 셰프와 함께 <셰프끼리>라는 새 프로그램을 위해 밀라노에 가고, 다녀오면 다시 하와이에 가야 해요. 참, 친한 척하는 사람들이 생긴 것? 그래서 저는 원래 알던 사람들에게 더 잘하려고 해요.

앞으로 서울에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언젠가 편한 식당을 하고 싶어요. 예약도 안 되고 사람이 많으면 줄 서는 그냥 밥집이요.

외국인들에게 서울에 대해 설명한다면?
복잡하고 불친절하지만 본인이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도시. 사실 서울은 외국인에게는 복잡하고 불친절한 도시죠.

당신이 생각하는 서울 여자는?
센 척 하는데 사실은 여리고 약한 존재. 약한 걸 감추려고 계속 개성을 찾는 것 같지만 멘탈이 약해서 쉽게 상처 받는 것 같아요.

늘 모자를 쓰고 다니는데, 이제 그 모자를 ‘정창욱 비니’라고 부르더라고요. 몇 개나 있어요?
100개 넘게 있어도 쓰는 것만 쓰게 되요. 와치캡이라고 불러요. 처음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샀죠. 원래 비니를 잘 쓰고 다녔는데 여름용 비니가 없었어요. 여름에는 그냥 밀고 다녔는데 머리가 너무 뜨거웠어요. 이 모자는 머리카락 대신 쓰는 것인데, 엄청 시원해요.

요즘 관심 있는 것은? 
여행. 올해만 해외를 열네 번 나갔다 왔어요. 또 요즘 낚싯대에 관심이 많아요. 플라잉 낚시를 하러 다니고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