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기 부르댕의 사진 속 여인은 노골적인 노출 없이도 엄청난 에로티시즘을 풍긴다. 수영복은 작으면 작을수록 시선을 모으기는 하나, 적당히 가려주는 기술을 발휘해야 한다. 어떻게?

1 기 부르댕이 촬영한 찰스 주르당의 1976년 봄/여름 광고 사진. 2 보테가 베네타. 3 마이클 코어스. 4 발렌시아가. 5 알투자라. 6 샤넬. 7 저지 수영복을 입은 1930년대 여배우들.

노출에 관해서라면 유연한 사고도 경직될 때가 있다. 평상시 은근한 노출 의상을 즐겨 입으면서도 수영복을 입을 때만은 쭈뼛쭈뼛 움츠러드는 기분이 드는 것. 시간을 거슬러 올라 중학교 시절 여름 캠프 수영 시간으로 가보자. 티셔츠와 반바지를 갖춰 입은 아이들 속에서 때와 장소에 아주 걸맞게, 형광 오렌지색 원피스 수영복을 입은 나는 그날따라 유난히도 강렬하게 발광하고 있었다. 마치 ‘노출의 투사’가 된 기분이었다. 성인이 되어 생애 첫 비키니를 입었던 여름에도 나는 여전히 ‘노출의 투사’가 된 기분이었다. 모두 비키니 팬티 위에 러플이 달린 랩 스커트, 일명 ‘스리피스’를 입고 있었다. 크로치(Crotch)를 과감하게 드러낸 삼각형 팬티만 덜렁 입은 건 손에 꼽을 정도. 나는 러플이 달린 스커트 대신 노출에 거리낌이 없는 여자는 성적으로도 개방됐다는 선입견을 덧입게 되었다. 그 때문에  가슴골이 깊게 드러나고 크로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비키니를 입을 때면 ‘노출의 투사’의 면모는 사라지고 남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게 되었다.

 

이건 겨우 10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벗어야 제 멋이라지만 내가 갓 스무 살이 되었을 무렵만 해도 눈치 보며 벗어야 하는, 그런 때였다. LTE 속도만큼 인식이 변했던 지난 10년간 매해 여름이 될 때마다 해변의 인상도 변해갔다. 박스 티셔츠는 늘어진 슬리브리스로, 하의는 크로치가 드러나지 않도록 랩 스커트를 더하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한동안 티어드 러플이 달린 수영복이 유행이더니 러플은 점점 짧아졌고, 하이웨이스트형 브리프와 같은 심플하지만 노출의 수위를 조절할 수 있는 수영복이 인기를 끌었다. 탱크톱을 입은 것 같은 탱키니 역시 남들 앞에서 벗는 것에 익숙지 않은 우리에게 좋은 대안이 되어주었던 수영복. 노출에 대한 시선이 관대해진 2000년대 후반부터 여자들은 가슴을 풍만하고 아름답게 드러내기 위한 다양한 비키니 스타일을 섭렵했다. 제일 만만한 와이어 컵이 들어간 홀터넥 스타일에서 가는 끈으로만 연결된 스트링 비키니, 끈이 없는 일자형 반두 비키니까지 종류가 다양해질수록 스윔웨어 스타일링이 점점 과감하고 세련돼졌다. 최근에는 앞은 원피스 뒤는 비키니처럼 보이는, 옆구리가 시원하게 커팅된 모노키니가 새로운 수영복 대열에 합류하며 우아함과 섹시함을 조절하는 난이도 높은 스윔웨어 스타일링을 보여준다. 한국에 수영복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 1961년이니 마음껏 벗기까지 적어도 50년은 걸린 셈이다.

 

보다 아찔하게 작아진 수영복의 진화 
수영복이 ‘작게 더 작게’ 진화한 것은 비단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리본이 달린 반두 브래지어와 골반을 드러낸 팬티를 입고 유희를 즐겼던 서기 200년, 시칠리아 여자들 이후 여자들이 집 밖에서 다리를 드러낼 수 있었던 건 코코 샤넬이 무릎길이의 스커트를 선보인 1920년대에 들어서이다. 숨겨왔던 다리를 다시 드러내기까지 무려 172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는 게 믿기는지. 서양에서 수영을 여가와 스포츠로 인식하게 된 건 19세기에 들어서 의사들이 치료의 목적으로 수영을 권장하면서부터인데 여자들은 하이넥 칼라의 긴 소매 셔츠,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바지, 검은 스타킹, 운동화까지 착용한 채 수영을 했다. 그 사이 소매가 짧아지거나 네크라인이 깊어지고 스타킹을 벗는 등의 작은 변화는 있었지만 내복같이 온몸을 감싸는 우아하고 미련한 형태는 변함없었다. 수영복의 본격적인 노출은 1920년대 ‘샤넬 효과’에 힘입어 속옷 회사였던 프레드 콜이 등이 19인치나 파이고 팬츠도 무릎 위 10cm 정도로 짧은 팬츠의 투피스 수영복을 선보이며 시작되었다. 그 후로 10년 후 미국에서 1935년 탱크톱을 변형한 브래지어와 쇼츠의 투피스 미디리프가 등장했고, 또다시 11년 후인 1946년 디자이너 루이 레아가 손바닥만 한 브래지어와 팬티의 ‘비키니’를 선보이며 드디어 여자들의 미끈한 허리의 라인과 배꼽이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할리우드 영화에서도 여자의 배꼽은 금기 사항이었던 시대상을 생각해보면 당시 비키니는 핵폭탄급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이다. 당연히 몇 해 동안 수많은 나라에서 비키니 착용을 금지했고, 금지하면 더 불붙는 것이 사람 심리인지라 비키니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육감적인 몸매를 과시하는 필수 품목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 비키니 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은 영화 <그리고 신은 여자를 창조했다>에서의 브리지트 바르도. 비키니를 입은 수많은 배우들 사진 중에서도 그녀가 인상적인 것은 풍만하고 굴곡진 몸매와 더불어 당당함과 자유로움이 더해져서인데, 그녀의 요염한 자태는 당시 많은 사람에게 큰 인상을 남겼고 이후 비키니의 열풍은 더욱 뜨거워졌다. 격동의 노출 혁명 시대였던 1960년 후반에 접어들면서 자유와 평화, 무정부주의를 향한 히피들의 외침 속에 토플리스 스윔웨어, 모노키니, 크로셰로 만들어져 속이 훤히 비치는 비키니 등이 등장했다. 그 후 70년대 등장한 섹시함의 상징인 스트링 비키니와 반두 비키니, 80년대 치골 위까지 깊게 파여 올라간 프렌치 컷 원피스 수영복, 엉덩이를 그대로 드러내는 통 등 스윔웨어는 점점 작아지고 아찔해졌다.

 

노출의 기술
공공장소에서 합법적으로 벗을 수 있는 옷인 수영복은 노출의 역사와 함께한다. 여자가 노출을 하기 시작했고, 이것이 여자의 자유를 상징하니 벗으라는 페미니즘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노출과 관능은 본능 쪽에 가까운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기품을 유지하는 데 바쁘다. 엉덩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짧은 치마를 입고 허리를 앞뒤로 흔드는 여자 아이돌이 나오는, 에로티시즘이 개방적으로 논해지는 21세기라고 해도 우리는 자신의 몸을 드러내는 데 인색하다. 서퍼들을 위한 래시가드가 유독 우리나라 여자들의 사랑을 받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고 또 무조건 벗는 게 능사는 아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벗으란 건지 벗지 말라는 건지 이쯤에선 헷갈릴 거다. 올 시즌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룩을 살펴보며 올바른 노출의 기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 아슬아슬한 줄 타기를 하는 듯한 날렵한 슬릭 스커트를 선보인 알투자라는 수영복을 어떻게 하면 섹시하게 가릴 수 있는지 보여준다. 검은색의 브래지어 톱과 브리프 수영복에 가슴이 깊게 파인 셔츠를 입고 격자로 커팅된 가죽 스커트를 매치했다. 노골적이지 않으면서 엄청나게 섹시하다. 샤넬이 크루즈 컬렉션에서 선보인 골반뼈를 드러낸 원피스 수영복은 소녀적이면서도 섹시한 느낌을 전하는데, 시폰 소재 셔츠를 덧입어 노출의 부위를 강조하는 효과를 자아낸다. 현실에선 허리에 커팅이 들어간 모노키니를 입고 속이 비치는 리넨 셔츠를 레이어드하면 좋겠다. 마이클 코어스가 제안한 수영복 스타일링도 좋은 팁이다. 적당한 노출을 하되 가죽끈과 벨트를 이용해서 섹시함을 강조하는 것. 적당히 가리고 적당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진정한 에로티시즘은 땀에 젖은 살갗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우리들의 상상 속에 존재한다. 자신의 섹슈얼함을 강조할 수 있는 곳을 드러내고 나머지는 영민하게 가리는 것이 노출 기술의 핵심이다. 섹슈얼한 분위기를 상상하게 하는 그 우아한 힘 말이다. 그리고 수영복을 입을 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브리지트 바르도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본연의 매력을 드러내는 세련된 애티튜드이다. 우물쭈물하는 모습이야말로 최악의 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