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신데렐라, 지지 하디드의 셀피에 패션계의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동참하고 있다. 왼쪽부터 지지 하디드, 두첸 크로스, 릴리 도널슨, 카린 로이펠드.

 

세계적인 모델 랭킹 사이트인 모델스닷컴(models.com)은 최근 SNS를 기반으로 한 ‘소셜(Social)’ 랭킹을 개설했다. 매주 모델들의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트위터 계정을 체크하고 팔로워 수를 총합한 뒤 사람들이 어느 모델을 많이 팔로잉하는지 순위를 매기는 것이다. 이 단순한 원리 인기 순위는(패션 업계의 모든 게 다 그렇듯), 마냥 재미로 뽑는 것만은 아니다. 사실, 재미를 한참 넘어 요즘 모델들의 가치와 몸값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돈이 모이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개인 통신 디바이스를 가지고 다닐 거라는 SF적 상상이 현실화된 지 몇 년, 페이스북이니, 인스타그램이니, SNS 때문에 다들 난리다. 한 사람에게라도 더 노출하고 입소문이라도 타야 상품을 팔 수 있는 요즘, 패션계나 홍보업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SNS의 압박에 시달려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개인이든 회사든 저마다 더 많은 사람의 눈에 띄고, 더 많은 팔로워를 유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지금, 1인 매체가 판을 치고, 언론보다 여론이 더 힘센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이 치열한 SNS 전쟁에서 압승을 거두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모델들이다. 매력적인 외모, 항공사 마일리지를 쓸어 담는 글로벌한 라이프스타일에 셀피로 인증을 마친 화려한 인맥까지, 우리가 팔로잉하고 싶은 SNS의 모든 요소를 갖추고 전 세계 팔로워들을 유혹하고 있다.

 

돈이 보이는 SNS
매거진 화보든 브랜드의 광고가 되었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델을 캐스팅하는 기준은 단순했다. “보헤미안 룩이 잘 어울렸으면 좋겠는데, 몸이 좀 가늘고, 머리도 길면 좋고. 그런 모델 어디 없나?” “비키니 화보를 찍어야 하니까 너무 마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렇게 모델의 외모와 분위기가 광고주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전략은 하나뿐이었다. 무조건 예뻐지는 것, 혹은 독보적인 매력을 구축하는 것. 하지만 지금의 캐스팅 기준은 조금 다르다. “그래서 걔는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몇 명이야?” 모델 에이전시에 전화할 때 빼놓지 않고 던지는 이 한마디에 콘텐츠의 그림이 달라진다. 백설공주를 테마로 한 화보에 구릿빛 피부의 브라질 모델이 등장하고, 이제 갓 데뷔한 19살짜리 모델이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의 얼굴이 되는 등 기존에 ‘급이 달리는’ 혹은 ‘부적격’이라 여겼던 캐스팅이 점점 이뤄지고 있다. SNS 화제성이라는 강력한 홍보 도구가 있기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은 ‘파격’ 혹은 ‘혁신’이라는 단어로 포장된다. 그렇게 모델들은 완벽함에서 조금 자유로워졌고, 자신을 상품화할 기회가 더 생겼다.

이 변화에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인 건 광고주들이었다. A급의 연예인에게 거액의 홍보비를 몰아주던 시대가 끝나고, 입소문 마케팅으로 조금 더 유연하고 입체적인 홍보가 가능해지면서 광고주들은 소셜 파워를 갖춘 사람들을 찾아 나섰다. 소위 ‘오피니언 리더’라 불리던 업계의 전문가들, 파워 블로거들이 그 시작점에서 혜택을 누렸고, 지금은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에 훌륭한 비얼까지 갖춘 모델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돈의 흐름의 중심에 서 있다. 현재 광고주들이 가장 선호하는 홍보 형태는 바로 모델들의 개인 SNS 정으로 침투해 온라인 마케팅을 펼치는 것. 자사의 제품을 마치 그녀들이 정말 일상 속에서 사용하는 제품인 양 포장해서, 해시태그와 함께 예쁘게 이미지를 찍어 올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모델의 몸값은 치솟는다. 포스팅 횟수와 기간에 따라 책정되는 단가는 모델의 파급력, 즉 팔로워 수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부 모델들은 이런 노골적인 SNS 홍보를 짭짤한 아르바이트라 여기지만, 몇몇은 이에 대해 우려 섞인 시선을 던진다. 최근 한 촬영장에서 만난 모델 J(그녀 역시 21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보유한 파워 소셜라이트다)는 이런 바이럴 마케팅에 얽힌 고충을 털어놓았다. “한번은 에이전시에 그런 SNS 홍보를 안 하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어요. 제가 정말로 사용하지 않고, 좋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상품들이니까요. 제 타임라인이 진정성 없는 포스팅으로 도배되는 게 싫었어요. 결국 비난은 모델의 몫이거든요. 돈 받고 하는 홍보라는 건 팔로워들도 이미 다 알아요.” 그녀의 말대로 팔로워들은 이미 브랜드의 의도와 모델들의 활동 영역을 눈치 챈 지 오래.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에서 이런 홍보를 계속 추구하는 이유는 뭘까? 답은 간단하다. A 브랜드 SNS 계정의 팔로워 수가 6500명일 때, B 모델의 팔로워 수가 12만 명을 넘어섰다면, 어느 계정에 제품을 노출하는 게 더 효과적일까? 작위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고 거둬들이는 실수익은 꽤 크다. 패션계에서 팔로워 수는 곧 재산이자, 권력인 것이다.

 

모델의 가치를 키우다  
SNS가 모델들의 몸값과 가치를 결정짓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지만, 돈 얘기를 접어두더라도 모델들은 SNS를 통해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더 매력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하는 추세다. 런웨이와 매거진을 통해서만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사진, 그림, 글, 영상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생활과 신념을 공유하고, 나아가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델들은 더 이상 말없는 마네킹이 아닌, 능동적이고 지적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로 거듭났다. 레드 카펫에서 여신급의 아우라를 지니지 않아도 괜찮다. 평소 옷차림이 근사하다면 스트리트 스타일의 여왕이 될 것이고, 키가 좀 작아도 탄탄한 복근과 올라 붙은 엉덩이,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트레이닝 영상 몇 개가 있다면 금세 섹시한 몸매의 아이콘으로 거듭날 수 있다. 아니, 잘하면 빅토리아 시크릿의 새로운 ‘엔젤’이 될지도 모르는 일. 이렇게 모델들은 커리어를 직접 컨트롤할 수 있는 힘이 생겼고, 몇몇 똑똑한 모델은 이를 활용해 모델 너머의 삶과 미래를 디자인해나가기 시작했다. SNS 계정을 통해 사업가로 변신을 꾀한 칼리 클로스와 미란다 커, 막달레나 프랙코빅의 예를 들어보자. 각종 브랜드의 광고 캠페인은 물론 빅토리아 시크릿의 런웨이까지 모두 접수한, 커리어로 봤을 때 모자랄 것 하나 없는 이 세 명의 톱 모델은 평소 관심사를 SNS를 통해 꾸준히 표출해왔고, 이를 어엿한 사업체로 발전시켰다. 평소 건강한 먹거리에 관심이 많았던 칼리 클로스는 ‘칼리스 쿠키스(Karlie’s Kookies)라는 유기농 글루텐 프리 쿠키와 간식거리를 만들고, 미란다 커는 그동안 쌓아온 뷰티 노하우를 집약해 ‘코라 오가닉스(Kora Organics)’라는 유기농 뷰티 브랜드를, 그리고 막달레나 프랙코빅은 평소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추구하던 미니멀하고 세련된 미학을 살려 자신의 이름을 건 주얼리 라인을 선보였다. 새로운 레시피 공개, 직접 발라보는 제품 테스트, 언론과의 인터뷰 등 사업과 관련된 뉴스는 당연히 SNS를 통해 제일 먼저 공개되었다. SNS는 오보 걱정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개인 전용 언론 창구이자 홍보 대행사이기 때문이다.

SNS가 가진 파급력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모델들도 있다. 영국의 톱 모델 조던 던은 아들이 악성 빈혈에 시달리자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연구 기금을 모으는 #CellForGratitude 운동을 시작했고,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누드 사진(물론 외설이 아닌 예술성 사진이다)을 자주 올려 계정이 잠긴 안야 루빅은 ‘Don’t Fear the Nipple’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위트 있게 가슴을 가린 자신의 상반신 누드 사진을 트위터에 올려 화제가 되었다. 여자의 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외설적으로만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자 했는데, 여기에 카라 델레바인도 동참했다. 평소 장난기 가득한 셀피로 SNS를 평정한 그녀지만, 페미니즘에 있어서 만큼은 꽤 진지한 태도를 보이며 #FreeTheNipple이라는 해시태그로 전 세계 여자들의 가슴을 해방시키는 데 앞장선 것이다. 반면, 단순히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으로 팔로워들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들도 있다. 아드리아나 리마는 ‘긍정의 한 줄’ 식의 희망이 담긴 글귀를 자신의 핫한 비키니 셀피만큼 자주 올리며 멘토로서의 역할을 자청하고, 음식을 사랑하는 크리시 타이겐은 직접 만든 수준급의 요리 사진을 올리며 건강한 식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단순히 예쁜 옷을 입고, 예쁜 곳에서 사진을 찍는 건 이제 더 이상 흥미롭지 않다. 모델들에게 SNS란 자아도취를 위한 사진첩이 아닌, 자아를 다듬고 팬들과 직접 소통하며 자신의 이미지를 컨트롤하는 도구다.

 

SNS가 만든 신데렐라들
최근 들어 SNS는 톱 모델들의 몸값을 올리는 것보다 새로운 스타의 탄생에 더 기여했다. 지난해 패션계를 휩쓴 신인들, 켄달 제너와 지지 하디드를 보자. 리얼리티 TV 스타로, 또 소셜라이트로 시작된 그녀들의 커리어는 자칫 배타적인 패션계에서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강력한 SNS 운영 능력(켄달은 모델스닷컴 소셜 랭킹 1위에, 지지는 16위에 올라 있다)은 광고주들의 눈에는 흥행 보증수표처럼 보였고, 똑똑한 그녀들은 그렇게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거머쥐며 에스티 로더와 게스라는 거대 브랜드의 얼굴이 되었다. SNS 스타가 패션계의 스타가 되는 순간이었다. 52만 명이 넘는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거느린 아이린은 또 어떤가? 2년여 전, 거의 무명에 가까웠던 그녀는 무지개색 헤어 컬러만큼 자유분방한 성격이 엿보이는 사진을 SNS 계정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그 유쾌함에 반한 팔로워들이 늘어나자, 브랜드들은 곧 그녀의 톡톡 튀는 패션 센스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의 협찬과 몇 번의 대규모 행사를 치른 끝에, 그녀는 독보적인 스트리트 스타일 아이콘의 자리에 올랐다. 그뿐만이 아니다.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의 크리에이티브 팀은 지난 두 시즌간 캠페인 모델을 모델 에이전시가 아닌 인스타그램을 뒤져서 찾아냈다. ‘신선한 얼굴이 필요해서’라고 한다. 특정 매체, 일괄적인 기준에 의해 스타들이 선택되던 시절은 옛말, 지금은 스마트폰 한 대와 디지털 센스만 갖추면 누구든 스스로 자신을 홍보하고,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는 때가 되었다.

문득, 지난해 여름 촬영차 들른 뉴욕에서 사람들과 열심히 ‘인증샷’을 찍는 소년을 본 기억이 난다. 그때 본 그 소년은 8만 명의 인스타그램 팔로워를 가진 평범한 고등학생인데, “뉴욕에 왔어요!”라는 코멘트와 함께 올린 셀피를 보고 몰려든 그의 ‘팬들’과 함께 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황당하지만 실제로 몇만, 몇십만의 팔로워 수를 자랑하는, 일명 ‘작은 유명세(Micro Fame)’를 누리는 개인 스타들은 꽤 많이 있다. 당장은 조금 오그라들고, 유치해 보일지라도 그들이 언젠가 그 유명세를 이용해 실제로 돈을 벌고, 진짜 모델들처럼 글로벌한 라이프스타일을 누리며 셀럽들과 셀피를 찍게 될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좋아요’를 누르고, 열심히 셀피를 찍어 올리자. 지금까지 SNS는 그런 ‘어쩌면’의 시나리오를 현실로 만들어왔고, 우리가 꿈꾸던 모델들의 글래머러스한 삶은 그렇게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왔다.

 

“특정 미디어, 일괄적인 기준에 의해 스타들이 선택되던 시절은 지났다. 지금은 스마트폰 한 대와 디지털 센스만 갖추면 누구든 스스로 자신을 홍보하고, 스타로 거듭날 수 있는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