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 손호준이 순한 두 눈을 천천히 깜박이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갈 때면, 자연스레 배우가 아닌 인간 손호준을 상상하게 된다. 두 편의 영화 촬영을 마치고 얻은 모처럼의 휴일, 손호준이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왔다.

셔츠는 골든 구스 디럭스 브랜드 바이 쿤(Golden Goose Deluxe Brand by K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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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준이 특별한 이유는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의 해태라는, 마법 같은 역할을 만났기 때문이 아니다. 손호준의 특별함은 오히려 <응사>가 끝난 이후에도, 여전히 드라마 속 캐릭터 같은 친근함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이후에 출연한 드라마와 영화에서 그는 주인공의 매니저(<트로트의 연인>)나 열혈 팬(<빅매치>) 같은 작은 역으로 돌아갔다. 의외로 두각을 나타낸 것은 예능이었다. <삼시세끼>, <꽃보다 청춘-라오스편>, 다시 <삼시세끼-어촌편>과 <정글의 법칙>까지. 흥미로운 건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든 손호준은 손호준이었다는 거다. 낯선 사람에게는 능청스레 먼저 말을 걸지 못하지만 친한 사람에게는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고, 모르는 거나 서툰 것에 대해 솔직하게 인정하며, 말을 앞장서서 보태기보다는 뒤에서 한 걸음 빠져 있는 통에 오히려 다른 출연자가  ‘그런데 호준이는 뭐 해?’라고 묻게 만드는. 말싸움하는 연예인의 동영상을 보면서 모두가 ‘그래, 쟤네도 친한 척하는 걸 거야’라고 의심하는 세상에서, 손호준은 의심할 만한 요소를 애초에 갖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믿음은 그가 대리운전 기사에게 두 손으로 돈을 건네는 일상이 파파라치에 포착되면서 좀 더 튼튼해졌다. 우리가 그렇게 손호준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이, 그는 두 편의 영화를 더 찍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모두 주연이다! 성동일, 김유정과 함께한 <조이>에서 그는 비밀에 싸인 남자를, 그리고 임원희, 김동욱과 출연한 유쾌한 버디무비 <쓰리 썸머 나잇>에서는 소심한 영업사원으로 등장할 예정이다. 그러니 그에게 너무 예능만 하는 것 아니냐든가, 예능으로 주목받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질문할 필요가 없다. 손호준은 또 아무렇지 않은 듯 스윽하고 다음 얼굴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제가 특별하게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리고 저만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도  그런 면이 자꾸 부각돼서인지‘손호준은 진짜 착한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게 착하지 않거든요.” 

 

셔츠는 곽현주 컬렉션(Kwak Hyun Joo Collection). 슬리브리스 티셔츠는 일레븐파리(Eleve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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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쉬는 날인데 뭐 하고 있었어요?.
쉴 때는 거의 자요. 친구들하고 커피 한잔하기도 하고요. 요즘은 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술을 안 마시고 있거든요.

스태프들과 사이가 돈독해 보여요. 
헤어 스타일리스트 원장님은 제가 처음 일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아무것도 아닐 때부터 함께해주신 분이에요. 돈을 안 받고 해주신 적도 있고요.

왜 그러셨을까요? 
모르겠어요. 뭔가 마음에 드셨나 봐요.

무명 시절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하고, 그때 받은 고마움에 대해 항상 언급하더군요. 지금은 상황이 좋아졌잖아요. 할 수 있는 게 많아진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이겠죠?
그럼요. 정말 좋아요. 저는 약속은 지켜야 한다는 주의예요. 그래서 예전에 도움을 받을 때도 당당했어요. 내가 잘되면 너 도와줄게, 받은 거 갚아줄게, 더 맛있는 거 사줄게, 약속했거든요. 그리고 지금은 그때의 약속들을 지키고 있는 중이죠.

원래 사람들한테 뭘 해주는 걸 좋아하는 편인가 봐요. 
마냥 받는 게 쑥스럽긴 해요. 팬들이 촬영장에 커피 트럭을 보내줬는데 고마운 한편 민망하더라고요. 제가 그분들보다 조금은 더 벌 텐데 오히려 제가 뭘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싶고요.

팬들 마음은 그렇지 않을 거예요. 며칠 전이 어버이날이었는데 부모님께는 어떤 선물을 했나요?
용돈 드렸죠. 제일 좋아하세요.

영화 <쓰리 썸머 나잇>이 7월에 개봉해요. 제약회사 영업사원인 해구는 근사한 역할은 아닌 것 같더군요. 
영화에 나오는 역할 중에 멋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다 바보 같은 역할이에요. 그런데 대본이 정말 재미있었어요. 만화책을 볼 때처럼 한 번에 쭉 읽히더라고요. 그래서 제 역할이 어떤 캐릭터인지 멋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할 틈도 없었죠.

 

모자는 커뮤니티 54 바이 분더샵(Community 54 by Boon The Shop). 티셔츠는 디젤(Diesel). 팬츠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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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임원희 씨와 함께 나오는 버디 무비라던데, <꽃보다 청춘>이나 <삼시세끼>처럼 남자들과 같이 있을 때가 많네요. 
그런데 버디 무비가 뭐예요?

남자들끼리의 우정을 그린 영화요.   
아! <쓰리 썸머 나잇>은 해운대에서 촬영했는데 현장이 늘 즐거웠어요. 남자들끼리 있다 보니 편하기도 하고요. 다들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 술도 많이 마셨죠.

세 친구가 술김에 해운대로 떠났다가 사건사고에 휘말리는 내용이에요. 친구들의 우정에 감정 이입되는 부분도 있었을 것 같네요. 
저도 친구들과 술 마시다 보면 자연스레 ‘우리 오늘 바다나 보러 갈까?’ 하는 말이 나와요.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힘들잖아요. 다음 날 출근도 해야 하고, 결혼한 친구는 집에 들어가야 하고요. 그런데 영화에서 세 친구는 진짜로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서 떠나요. 그런 기분엔 정말 공감하죠.

이제 어딘가로 떠나는 게 쉬웠던 때는 지났나요?
고등학교 때는 친구들과 한 달에 한 번씩은 무작정 어디론가 떠났던 것 같아요. 버스 타고 괜히 종점까지 갔다가 그 동네 오락실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요.

일탈을 해서 간 곳이 오락실이라니! 어떤 게임을 좋아했어요?
리듬 게임인 이지투디제이를 친구들이 많이 했어요. 전 게임에 별 재능이 없어서 옆에서 판 돌려주는 역할을 하다가 혼자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곤 했죠.

그러다가 사고친 적은 없었어요?
큰 사고는 없었어요. 거짓말을 잘 못해요. 학교에서 땡땡이 치다 걸리면 집에 와서 ‘오늘 점심시간에 나와서 광주시장 갔다가 선생님께 혼났어’라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럼 아버지는 ‘잘했어 이놈아’ 하는 식이죠.

그런데 혹시  <쓰리 썸머 나잇>에서 임원희 씨도 당신과 동갑내기 친구 역할인가요?
하하. 친구 맞아요. 학교에 나이 들어 보이는 친구가 꼭 한 명씩 있잖아요. <응사>에서의 삼천포처럼요.

<응사>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응사>의 해태를 연기한 건 당신 커리어의 확실한 터닝 포인트가 되었죠. 개인 손호준의 터닝 포인트는 언제였나요?  
그것도 <응사>와 같을 수밖에 없죠. 좋은 작품을 만나서 터닝 포인트가 됐다기보다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연석이와 바로는 말할 것도 없고 연기자들, 스태프, 작가님까지요. <응사>의 신원호 감독님이 있었기 때문에 나영석 피디님을 만날 수 있었고, 그러면서 <삼시세끼>에서 유해진, 차승원 선배님 등도 만나고, 계속 좋은 사람들과 기회를 만나게 됐거든요.

 

셔츠는 니(Nii). 선글라스는 오클리(Oakely). 팬츠는 카이아크만(Kai-aakm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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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함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싫은 사람은 있지 않아요?
싫은 점은 누구나 있죠. 그런데 장점은 서로 부각시켜주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너 이거 진짜 잘 어울린다’, ‘이거 할 때 최고야’ 하면 원래의 장점이 더 커지고 상대방도 나와 있을 때 내가 칭찬한 모습을 더 보여주려고 하더라고요. 단점을 이야기하는 건 어떻게 말해도 결국엔 다른 사람의 치부를 건드리는 거잖아요.

당신을 더 잘하게 만드는 칭찬은 뭐예요? 
좀 민망하긴 한데 저를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주는 거요. 사실 제가 특별하게 예의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선배님을 처음 만나면 당연히 어렵잖아요. 만약 선배가 ‘이리 와서 같이 편하게 담배 피워’ 하면 ‘네’ 할 수 있지만 제가 먼저 가서 ‘저 같이 담배 한 대 피우겠습니다’ 하는 건 다른 문제죠. 저보다 어리거나 후배라고 해도 처음 만났다면 존칭을 써야 하는 거고요.

본인의 기준이 조금 엄격한 면이 있는 것 아닐까요?
절대 아니에요. 그리고 저만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닌데 그런 면이 자꾸 부각되더라고요. ‘손호준은 진짜 착한 것 같아’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저도 그렇게 착하지 않거든요? 싫은 건 싫다고 하고요.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나요?
부담까지는 아니에요. 그냥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는 거죠. 조금 더 친절해질 수도 있고요.

 

가죽 소재 카디건은 마르니 바이 쿤(Marni by K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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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청춘>의 라오스가 첫 해외 여행이었어요. 이제 정글도 다녀왔고, 해외 스케줄도 있는데 여행의 재미에는 눈을 좀 떴어요? 
전혀요! 라오스를 제외하면 전부 일로 갔거든요. <정글의 법칙>에서는 정말 ‘생존’하려고 했고요. 그래도 바로가 있어서 재미있겠다는 기대감은 있긴 했어요.

둘만의 비밀도 좀 만들었나요?
둘이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서로 의지도 많이 했고. 그리고 다녀와서 연석이와 셋이 만나서 더 많은 이야기를 했죠.

일이 아니라 휴가로 떠난다면 어디를 갈래요?
사람들이 제게 자주 하는 질문이에요. 그런데 저는 정말 가고 싶은 곳이 없어요. 어디가 좋은지, 어디에 가면 뭐가 있는지 아직 잘 모르는걸요. 제게는 여전히 라오스가 최고의 여행지예요.

또 가고 싶겠어요. 
사실 저보다는 부모님 여행을 좀 보내드리고 싶어요. 아직 제주도도 못 가보셨거든요.

백종원 씨에게 요리를 배우는 <집밥 백선생>에 출연한 계기 중 하나도 부모님 때문이라면서요?
아버지가 직업 군인이셨어요. 35년 간 복무하시다가 얼마 전에 퇴직하시고 요리를 배우시더니 한식 조리자격증과 제빵 자격증을 따시더라고요. 그동안 엄마한테 받은 만큼 이제 엄마께 본인이 요리해주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굉장히 멋있었어요. 저도 요리를 배워서 아내와 아이한테 요리를 해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첫 번째 메뉴는 뭐였나요?
김치전과 김치찌개! 요리를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김구라 씨보다는 제가 잘할 줄 알았는데 거의 꼴찌 수준이었어요. 그래도 멋 부리지 않은 집밥 레시피이니 배워두면 두고두고 유용하겠죠?

요리 솜씨가 금세 일취월장하겠네요. 오늘은 뭐 먹을 건데요?
오늘은 바로의 어머니가 서울에 올라오셔서 함께 식사하기로 했어요. 뭐 먹을지는 아직 못 정했네요.

그렇게 챙기고 만나야 할 주변 사람들이 많으면 힘들지 않나요? 
아니요. 전 제가 뭔가를 해주고 다른 사람이 기분 좋아하는 걸 보는 게 좋아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챙겨야 할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요.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