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7일 개막한 <크레이지호스 파리>

파리의 쿠튀르쇼, <크레이지호스 파리>가 서울에 도착했다. 물론 홀딱 벗은 채로! 지금 가장 뜨거운 쇼를 다녀왔다.
반짝이는 보디슈트를 입고 ‘Diamonds are Girl’s Best Friend’를 부르던 영화 <물랑 루즈> 속 니콜 키드만의 모습을 기억한다면, 누구나 파리에서 펼쳐지는 화려한 쇼를 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을 거다. 파리에서 날아온 네이키드 쿠튀르쇼 <크레이지호스 파리>는 1951년 샹젤리제에서 탄생했다. 지난 65년간 1천5백만 명이 관람한 이 쇼의 주인공은 ‘여자의 몸’이다. 그리고 <크레이지호스 파리(Crazy Horse Paris>와 함께한 유명인들은 다음과 같다. 입술 모양 의자를 디자인한 살바도르 달리, 구두를 제작한 크리스티앙 루부탱, 의상을 디자인한 파코 라반, 엠마누엘 웅가로, 장 폴 고티에, 그리고 이 쇼를 영화에 등장시킨 우디 앨런과 데이비드 린치까지. 유두와 엉덩이가 아무렇지 않게 노출되는 쇼의 수위에 대해서는 이미 알려진 상태. 그래서일까? 쇼가 열리는 워커힐 시어터에 들어설 때면 마치 비밀스러운 고급 클럽에 들어서는 사교계 명사가 된 것만 같다. 샴페인을 마실 수 있는 VIP석과 R석에 자리를 잡고, 전담 버틀러가 샴페인을 따르기 위해 다가오면 이런 기분은 한층 증폭된다. 샴페인 한 잔을 비울 때쯤 이내 무대 조명이 꺼진다, 쇼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크레이지호스 파리>의 전개 방식은 단순하다. 각각 다른 콘셉트를 가진 짧은 무대가 차례로 이어지는 식이다. 가슴을 훤히 드러낸 근위병의 절도 있는 춤, 형형색색의 가발을 쓰고 추는 폴댄스, 의자 위에 앉아 추는 춤 등 공연은 에로티시즘과 아크로바틱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무용수를 뽑을 때 키와 체형은 물론 유두 사이의 거리까지 비슷한 이들을 선발한다는 이야기가 있는 만큼, 표준적인 아름다움을 가볍게 상회하는 그녀들의 노출한 몸은 자극적이기보다는 아름다운 조각품처럼 느껴진다. 한마디로 비현실적이라는 말! 레오퍼드, 본디지, 오피스 룩 등 어쩌면 전형적인 성적 판타지를 구현하고, 엉덩이를 흔들고 허리를 뒤로 젖히며 옷을 하나하나 벗기도 하지만 딱 거기까지, 노골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지점에서 움직임을 멈춤으로써 공연은 ‘네이키드 쿠튀르’라는 장르적인 선을 벗어나지 않는다. 

 

공연이 전개되는 방식이나 음악, 무대가 포착한 에로틱한 포인트는 ‘얌전하다’는 생각이 드는 반면 조명과 소품의 활용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감탄할 만큼 흥미롭다. 다채로운 줄무늬,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떠오르게 하는 도트 무늬 등 극적으로 바뀌는 조명이 그녀들의 몸의 곡선을 따라 일렁일 때면, 완벽함 때문에 오히려 평면적인 그림처럼 보이던 그녀들의 몸이 비로소 현실감을 띤다. 바로 눈앞에 벗은 몸이 실재한다는 것, <크레이지호스 파리>의 핵심이자 가장 자극적인 지점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의상! 감춰야 할 곳과 드러내야 할 곳의 경계 없이 댄서들의 육체를 오로지 돋보이게 만드는 데 집중한 의상은 우리가 갖고 있는 옷에 대한 관념을 완전히 날려버린다. 비키니 라인을 따라 장식된 장미 모양 큐빅, 엉덩이 부분만 파인 보디 슈트라니! 몸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해 입힌 기상천외한 의상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크레이지호스 파리>는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이는 노골적인 스트립쇼도, 노출이 예술을 위한 것인 양 내세우는 쇼도 아니다. 그저 무대와 조명이 있고, 춤이 있으며,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아름다운 몸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몸에 박수를 보낼 준비를 하면 된다. 이왕이면 조금쯤은 취한 상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