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누구도 개그맨은 아니다. 가수, 셰프, 모델, 작가, 아나운서 출신의 이들이 요즘 가장 잘나간다는 예능 프로그램을 섭렵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유병재 |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다
유병재가 특별한 이유는 그의 키가 162cm이어서도 아니고 동갑인 지드래곤, 임시완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서도 아니다. 그는 우리 모두가 말하고 싶었지만 끝내 할 수 없었던 말을 기어이 하고 만다. 5년 전에 만든 UCC ‘니 여자친구 못생겼어’에서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도 친구에게 “니 여자친구 못생겼어”라고 솔직하게 말했고, ‘면접전쟁’에서는 “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 쌓냐”고 짜증냈으며, 드라마 <초인시대>에서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프면 그냥 환자지, XXX야!”라고 쏘아붙였다. 그는 고대했던 키스가 별로일 수도 있고, 엄마가 해준 밥이 맛없을 수도 있으며 초능력이 그다지 쓸모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일반적인 사회 기준에서 바라본다면 내세울 거 하나 없는 자의 애환과 고통을 말하고 그를 괴롭히는 성공한 자, 나이 든 자에게 가운뎃손가락을 날린다. 의 ‘극한직업’과 드라마 <초인시대>를 보라. 처음에는 못난 자기 자신을 희화화하는 것 같던 그의 텍스트는 점차 돈과 인기를 무기 삼아 사람을 하대하는 연예계, 스펙 없고 못생긴 사람에게 자리가 없는 사회에 대한 심오한 조롱으로까지 나아간다. 물론 그 가운데에는 언제나 뺨 맞고 옷 벗는 유병재가 있다.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자주 뺨을 맞고 옷을 벗었는지 셀 수조차 없을 정도다. 어머니께는 죄송하지만 아프니까 유병재다. ‘반복’은 유병재 유머의 가장 중요한 코드다. 그의 텍스트에서는 거지 같은 꿈과 현실이 지긋지긋할 정도로 반복된다. 반복은 그에게 캐릭터를 부여하고 코미디극의 배우와 같은 페이소스를 만들어낸다. 그 캐릭터는 대학교 때 돈 없어서 아는 형과 형의 여자친구 아파트에서 빌붙어 살았던 실제의 유병재를 흡수해 지구 최고의 찌질이를 탄생시킨다. 이 어벤저스급 찌질이는 모든 슈퍼 히어로들이 그러하듯 자신만의 고통스러운 역사와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 이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그의 작가적 시선, 볼품없는 몸뚱어리와 불쌍해 보이는 얼굴을 이용한 그의 메소드 연기로 점점 극대화된다. 그러므로 극 속 캐릭터이자 작가, 코미디언인 유병재는 시리즈를 통해 진화하는 슈퍼 히어로들처럼 작품을 만들어나갈수록 더 웃길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유세윤의 Art Video>를 만든 유치콕 피디가 그를 ‘한국의 버스터 키튼’이라고 했을까. 좀 더 과장하면, 유병재의 초능력은 남들이 지나치고 마는 일상의 사소한 부조리를 끄집어내는 데 있다. 다만, 다른 게 있다면 어벤저스가 지구를 구하기 위해 최강의 적 ‘울트론’과 싸울 때 유병재는 별로라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과 사투를 벌인다는 거다. 그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부디 지지 않아야 할 텐데. – 나지언(칼럼니스트) 

 

백종원 | 전문성과 대중성을 잡은 남자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할 인물로 예능인을 꼽는 것은 이제 의미 없는 일이다.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이다. 허지웅처럼 글을 쓰는 사람이 인기 토크쇼에 출연하고, 샘 킴 셰프가 <진짜사나이>까지 출연한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을 보라. 트레이너 예정화가 운동법을 가르치고, 예능인 김구라도 허구연을 게스트로 초대해 야구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출연자들이 각자 인터넷 방송을 하며 시청자를 모으는 이 쇼에서, 요식업계 경영자 백종원은 시청자 수 1위를 기록했다. 김구라의 입담도, 걸그룹 AOA 멤버 초아의 온갖 개인기도 백종원을 넘어서기 쉽지 않다. 그는 마치 오래전부터 아프리카 TV에서 BJ를 해본 것처럼 능숙하게 방송을 진행한다. 시청자들에게 끊임없이 음식을 만들어 보여주고, 직접 먹어보며, 시청자에게 말을 건다. 그러나 백종원의 가장 큰 강점은 그의 콘텐츠가 범 대중적이라는 데 있다. 최현석과 샘 킴 등의 셰프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출연자의 냉장고 속 재료로 상상도 못할 음식을 내놓는다. 평범한 냉장고 속 재료에서 최현석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인 콜드 파스타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반면 백종원은 밥, 신김치, 참기름을 한데 섞고 볶아 한 끼 때울 수 있는 음식을 먹는다. 여기에 좀 더 맛을 내고 싶으면 명란젓에 마요네즈를 발라 섞어 먹으라는 팁을 준다. 집에 냉장고가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누구나 따라 만들어볼 수 있는 수준이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그의 콘텐츠에 매력을 느낀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그의 시청자들 중에는 한 끼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원하는 20~30대 1인 가구가 많았다. 애초에 그가 요식 업계에서 성공한 것도 적당한 가격대에서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백종원은 이미 자신의 분야에서 대중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가 방송에서 쓰는 말투를 보라. 투박한 말투에, 그리 설명적이지도 않다. 그보다는 직접 해 보이고, 때로는 자신에 대한 시청자의 반응에 직접 응수하기도 한다. 연예인 아내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저런 뒷담화에 씨익 웃으며 “우리 아내 착해요”라는 한마디로 가볍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란, 이미 방송을 위한 모든 것을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기할 만큼, 백종원은 전문성에서 오는 신뢰도와 대중성에서 오는 친근감을 동시에 가졌다. 굳이 요리 프로그램이 아니라도, 그는 여러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백종원 자신이 방송을 얼마나 더 할지가 미지수일 뿐이다. 그러나 폭넓은 대중을 상대로 사업을 하는 사람이 고객층이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방송을 하고, 그것으로 다시 대중의 신뢰도를 얻는 것은 그 자체로 굉장한 힘이다. 아마도 올해에는 백종원의 얼굴을 좀 더 자주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 강명석(웹진 <아이즈> 편집장)

 

홍진경 | 허점투성이의 반란
홍진경은 원래 웃겼다. 데뷔 초였던 1993년, <특종 TV연예>에 슈퍼모델대회 베스트 포즈상 수상자라는 명목으로 잠깐 얼굴을 비쳤을 때부터 그랬다. 미와 파 중간을 넘나드는 묘한 하이톤의 혀 짧은 목소리로 ‘롱다리 할머니’ 개그를 선보이던 여고생 그녀를 기억한다. 기린이 삐삐의 몸을 빌려 연기했다면 저런 모습일까. 딱히 웃긴 건 아닌데도 잔상이 오래가는 그 아슬아슬한 지점을 그녀는 본능적으로 관통하고 있었다. 그 후로 20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는 웃긴다. 그것도 여전히 의도치 않게 웃긴다. 가발을 쓰기만 해도 웃기고, 멀쩡히 이야기를 잘 이어나가다가도 단어 하나에 발목을 잡혀 좌중을 웃긴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주절주절 늘어놓는 이야기도 허점투성이여서 웃음의 강도는 더 거세질 뿐이다. 열정 넘쳤던 <영자버스> 출연 당시, 그런 홍진경의 모습을 보고 마약단속반이 “저런 짓은 약을 하지 않고서야 못한다”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뽑아갔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니 말 다했다. 대단할 것 같지 않던 그녀가 여태껏 웃기며 살아남은 이유는, 뭘 해도 어설퍼 보이는 구멍을 타고났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정작 본인은 진지한데 남들 눈에는 어설퍼 보이는 구멍의 아이러니는 그녀의 무기가 된다. 최근 출연한 <무한도전>의 식스맨 특집을 보면 심증은 굳어진다. 홍진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허점이 가득해 놀리고 싶은 구멍 그 자체였다. 정체불명의 남미춤부터 자웅동체 한기범까지, 오로지 멤버가 되고 싶다는 열정으로 감행한 설정들은 모두 무리수로 판명 났지만 그래서 웃겼다. 멤버들에게 그녀는 수시로 놀림거리를 제공하는 마르지 않는 우물이었고, 제작진에게는 자막이 술술 써지도록 영감을 주는 뮤즈였으며, 시청자들에게는 무수한 짤방 캡처감을 제공하는 후보였다. 적어도 한번 치고 빠지는 콘셉트의 예능 프로에서 보여지는 홍진경의 존재감만큼은 대단한 셈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홍진경의 매력은 정작 프로그램의 메인 역할을 맡으면 그 한계를 보인다. 여자 박명수도 아닌데 그렇다. 그녀의 어설픔에 딴지를 걸고 이를 캐릭터화할 강력한 중심 인물이 없으면 그녀는 갑자기 말 많고 자기 주장 강한 언니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영자나 유재석처럼 그녀를 놀릴 수 있을 만한 누군가와 함께하며 지금의 가벼움을 유지하기. 그것이 홍진경이 앞으로도 오래가는 예능강자로 살아남는 방법일 것이다. – 류한마담(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