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평생 사랑에 빠지길 기다리면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자 장윤주는 사랑에 빠졌고, 그와 함께 더 멀리 더 행복한 인생길을 걸을 것이다. 영원히,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여 자 장 윤 주
내 이름 앞에 ‘여자’라는 단어를 붙이는 걸 좋아해요. 아마도 서른 즈음이었을 거예요. 누군가 물었어요. “넌 여자임을 인정하고 있니?” 어떻게 보면 정말 단순하고 어이없는 질문인데 막상 쉽게 답을 못했어요. 난 사실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딸만 셋인 우리 집. 그 중에서도 막내딸이죠. 우리 엄마는 임신 후 1 0개월 동안 아침 금식을 하며 아들이 태어나기를 기도했대요. 힘든 살림살이에 아들을 꼭 낳고 싶
어서. 그런데 제가 태어난 거죠. 그래서 내 이름 윤주의 주는 구슬 주(珠) 가 아니라 기둥 주(柱)예요. 아들 같은 딸이었죠. 서너 살 어린 나이에도 맛있는 게 있으면 엄마 입에 먼저 넣어주는. 어린 마음에도 알고 있었나봐요. 아들처럼 굴어야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요. 내 스스로가 안쓰러워졌어요. 아름다운 여자로 태어났는데 왜 나를 인정하지 못하고, 상처로만 받아들였는지. 그건 결국 내가 내 자신을 아끼지 않는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앞으론 나를 더 사랑하며 살고 싶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노래‘I’m Fine’을 만들었어요. 정말 많이 울었어요. 평범하지 않지만 평범한 여자로서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확인하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점점 기꺼이 인정하게 되었죠. 나는 여자라는 사실을.
내 이름 앞에 ‘여자’를 붙이고 나자 삶이 참 많이 바뀌었어요. 예를 들어 나에게 운동이란 직업상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십자가 같은 거였죠. 그런데 나를 진짜 사랑하게 되니 운동은 힘든 의무가 아니라 나를 아끼는 가장 건강한 방법이었어요. 몸매만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마음까지 맑게 해주는 의식 같은 것. 몸과 마음은 결국 함께 가는 거잖아요. 그래서인지 20대보다 30대가 되어 몸이 더 예뻐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결혼과 출산, 육아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죠. 여자로서의 삶을 어떻게 누릴 것인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되었거든요. 이 또한 버거운 삶의 무게가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경험할 수 있는 행복한 과정들이라고. 나 스스로를 축복하게 되는 건 이토록 삶에 대한 태도를 180도 바꾸게 해요. 그래서 난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아도 아름다운 여자로서의 본질은 잃고 싶지 않아요. 영원히 여자 장윤주로 남고 싶어요.

모 델 장 윤 주
나는 그저 평범한 패션 모델이었어요. 서른 즈음 우연히 <무한도전>에 출연하게 되면서 인지도가 쌓였죠. 내 이름 앞에 ‘연예인’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오기 시작했고요. 대중적이라는 것은 나에게 큰 힘이 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혼란을 주기도 했어요. 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하는 물음 같은 것. 나의 정체성을 찾는다면 변덕스러운 세상에,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시선에 좀 덜 흔들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장윤주’라는 사람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결론은 패션 모델에서 ‘패션’을 빼고 ‘모델’로 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 간단해요. 사람들이 내가 입고 있는 옷, 내 얼굴의 메이크업뿐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닮고 싶게 만드는 것, 진정한 (롤)모델이 되어야 하는 거죠. 누구보다 진취적이고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적어도 누군가는 장윤주 같은 여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수 있도록요.

연 예 인 장 윤 주
동물적인 배우이자 동물적인 사람이고 싶어요. 흔히 상상하는 육체파 섹시함 말고요. 나에게 동물적이란 순수하고 영혼이 느껴지는 사람을 의미하죠. 사람에게는 저마다 절대 버릴 수 없는 자기다운 모습이 있어요. 그런 모습을 평생 눈치 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완벽하게 숨기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죠. 물론 자신을 완벽하게 숨기는 것도 퍼포머로서 훌륭한 재능이죠. 하지만 난 날것 그대로의 나 자신을 간직한 사람이고 싶어요. 모델은 몸으로 표현하는 사람이잖아요. 똑같이 워킹을 배우고 포즈를 연습해도 저마다 표현하는 모습이 달라요. 그런데 그중에서도 자신만의 뉘앙스를 제대로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본능에 따라 움직이고 그 본능이 눈빛과 몸짓에서 고스란히 담기는 사람. 배우 중에는 류승범이나 양동근, 모델 중에는 한혜진, 정호연 같은 후배들이 그래요.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영화 <베테랑>을 찍었는데, 영화 출연을 결심하게 된 것도 함께하는 사람들 때문이에요.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이 멋지게 팔딱대는 류승완 감독과 배우 황정민. 음악을 하든, 연기를 하든 난 동물 같은 사람이고 싶어요. 그들처럼요.

신 부 장 윤 주
늘 결혼에 관심 없다고 말하곤 했어요. 내 삶을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어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나에겐 확신이 필요했어요. 혼자가 아닌 둘이어야 하는 이유 같은 거요. 그는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고 카페나 브랜드 브랜딩을 해주는 일을 주로 하는 감각적인 사람이에요. 항상 웃는 얼굴의 순진한 대구 남자. 네 살 연하지만 사람을 보듬을 줄 아는 어른스러운 사람이죠. 작년 10월, 촬영을 하러 간 곳이 바로 그의 작업실이었어요. 내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그가 영상으로 작업해줬고요. 내 노래 ‘I’m Fine’을 불렀는데, 그게 의외였나 봐요. 화려한 모델이자 TV 예능 속 엉뚱한 여자로만 생각했는데, ‘나는 평범하죠. 눈물도 많아요. 나는 여자예요’라고 담담하게 노래하니까. 영상 편집을 하면서 100번이 넘게 노래를 들으며 나라는 여자가 궁금해졌대요. 그래서 그가 SNS로 메시지를 보내왔어요. 그런데 연락처 알려달라는 말도 안 하더라고요. 수십 통 메시지를 주고받았어요. 답답했죠. 결국 내가 먼저 전화번호를 물었고 만나게 됐어요. 같이 밥을 먹고 산책하는데, 느낌이 좋았어요. 이건 사람을 알아보는 나만의 방법 같은 거예요. 함께 걸어보는 것. 뭐라 정확하게 꼬집어 설명할 수 없지만 같이 걸었을 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거든요. 그가 그런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그 다음 날도, 매일매일 만났어요. 마음이 잘 맞는 친구처럼.
내 생일날, 그가 나와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제 답이 뭐였을 것 같아요? “그럼 나랑 결혼할 거예요?”라고 물었어요. 난 이제 더 이상 연애하고 싶지 않으니 나랑 만날 거면 결혼해야 한다고요. 거절의 핑계 같은 거였어요. 좋은 사람인 건 알았지만 새로운 관계가 시작된다는 게 부담스러웠거든요. 친구처럼 만나며 조금씩 마음의 문은 열었고 그러다 가족들과의 저녁 식사에 데리고 갔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가족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모델이라는 화려한 직업을 갖고 있지만 난 사실 서민의 가정에서 자라난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니까. 그걸 알게 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를 좋아하는 가족들을 보면서 내 입에서 처음으로 농담처럼 “이 친구와 결혼할래요”라는 말이 나왔어요. 한 달간 탄자니아로 봉사 활동을 갔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 자다가 깼는데 마침 영화 <뷰티풀 라이>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어요. “Do you want to go fast? Go alone. Do you want to go far? Go together.” 뭔가 계시 같았죠. ‘넌 이제 혼자가 아니어도 돼, 둘이면 더 좋을 거야’라고 나를 다독여주는 것처럼. 그리고 얼마 뒤 촬영차 영국을 갔을 때 입국 심사에서 오해가 생겨 30여 시간을 갇혀 있었어요.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보니 너무 외롭고 무서웠는데, 잠시 청소하러 들어오신 중국인 아주머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더라고요. 누군가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는 걸 확인한 거죠. 서울로 다시 돌아오는데, 이제 정말 혼자가 아니라 둘이어야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결혼하고 싶다던 그의 말에 드디어 ‘Yes!’라고 답할 수 있게 된 거죠.
결혼해도 나는 많이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더라도 여자임을 잃고 싶지 않거든요. 그 노력 중 하나가 모델 일을 계속하고, 아티스트로서의 감성을 이어가는 것이기도 해요. 물론 여자로서 누릴 수 있는 경험도 놓치고 싶지 않아요. 자연 분만으로 아이를 낳고, 모유 수유를 하며 생명의 경이를 체험해보는 것. 아내인 나는, 엄마인 나는 어떤 여자일지 궁금하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내가 여자 장윤주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