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좀 해본 네 명의 남자가 여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나쁜 남자 이야기. 여자 눈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조심해야 할 남자의 유형은 바로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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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생 콤플렉스를 가진 남자 처음에는 좀 귀여워 보일 수도 있다. 뭐든 열심히 하니까. 더러는 믿음직할 수도 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분명히 뭘 성취할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여기까지다. 남자의 성취는 자신의 내적 충만감 자체로 거의 100퍼센트 충족되어야 한다. 스스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변의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기 시작하면 피곤해지기 시작한다. ‘주변의 인정과 관심’을 세 글자로 줄이면 연인이나 배우자의 ‘우쭈쭈’ 정도 될까? 엉덩이라도 토닥토닥 두드려주길 바라는 마음 같은 것? 이건 거의 타고난 성향인 경우가 많다. 모든 외동과 막내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성향을 ‘외동기질’ 혹은 ‘막내기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쨌든 주목받아야 하고, 끝내 자기가 옳고, 부모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온 데다 그 기대에 별로 어긋난 적이 없는 경우. 어쩔 수 없이 방황하거나 스스로 의심한 적도 별로 없는 남자들. 무너져본 적 없는 사람이 타인을 헤아릴 수 있을까? 이런 남자의 인정욕은 가족을 제외하고 가장 가까운 사이, 결국 여자를 통해 충족되어야 한다. 뭔가 충족돼야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결핍이라는 뜻이다. 당신의 인정이 ‘플러스 알파’가 아니라, 거르면 큰일 나는 끼니 같은 거라는 뜻이다. 이건 거의 본능에 가까운 얘기다. 배고프면 칭얼대듯이, 끝내는 울음을 터뜨리듯이, 이런 남자는 끊임없이 여자에게 의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여자는 어쩌면 스스로 좀 성장했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굴 북돋우거나 챙김으로써 스스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 드디어 누군가를 돌볼 수 있게 됐다는 데서 오는 안정감도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이미 깊은 사이라면, 본격적으로 계약 관계가 되기 전에 질문해야 한다. 이런 기분을 평생 감당할 수 있을까? 한없이 주는 데 익숙한 여자, 모든 걸 감내하고 끝내 착한 여자로 남아야만 하는 사람이어야 가능할 일. 그런데 그런 여자란 결국 만들어진 신화 아닌가? 스스로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가? 기꺼이 말리고 싶다. – 정우성(피처 에디터)

 

스스로에게 ‘오빠’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남자 종종 자신을 “이 오빠가…”라고 지칭하는 남자들이 있다. 물론 이런 표현을 그저 상황이나 관계를 과장하기 위해, 또는 재미 삼아 아주 가끔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습관처럼 사용하거나 그리 친하지 않은 관계에서조차 자신을 이렇게 표현한다면 한 번은 그 사람의 사고방식에 대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식의 표현은 대부분 밝고 명랑한 분위기에서 시작된다. 예를 들면 자신이 연장자이므로 믿어도 좋다거나, 혹은 기꺼이 호의를 베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것이 종종 애교로까지 받아들여지기도 하는데, 문제는 그 반대의 상황이다.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거나 무시당했다고 생각할 때 그 ‘오빠’들이 쉽게 폭발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이 표현을 즐겨 쓰는 대다수 사람의 두뇌 속에는 사람들 사이의 촘촘한 서열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적어도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 이것을 예외로 두는 경우가 많다. 이런 남성들은 남녀 관계에 있어서도 나이나 서열을 꼼꼼하게 따질 확률이 높다. 종종 이 표현의 배경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우월하다거나, 연장자의 말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논리까지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면 약간의 검증이 필요하다. 대단히 호의적인 남녀 관계로 발전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반말을 하면서 상대방에게 존댓말을 강요한다면, 혹은 종종 반말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을 불편하게 느끼는 눈치라면 앞서 말한 가정은 사실일 확률이 높다. 요즘 종종 등장하는 “너 어디서 반말이니?”라는 말을 남자친구한테서 들을 수도 있다. 호감을 느끼고 있는 남성이 “오빠 믿지?”라고 말하면 “Yes”라고 답할 수 있겠지만, 사실 그 순간에도 많은 ‘오빠’가 상대방을 진심으로 존중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 김영혁(칼럼니스트)

 

뭐든 다 해줄 것 같은 남자 모든 여자가 그런 건 아닌데, 잘 속는 여자들이 있다. “누나, 뭐 하고 싶어?” “자기야, 뭐 하고 싶어?” 물으면 대답한다. “나, 뭐 하고 싶지?” 누나와 자기는 이런 대화 속에서 그 친절한 남자에게 마음을 연다. 뭐 하고 싶으냐고 묻는 남자, 그런데 아무 준비 없이 무성의하게 묻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건 무엇이든 해줄 것처럼, 푸른 풀 같은 목소리로 묻는 남자. 이런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 이 또한 여자들의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남자에게 주도권을 뺏기는 걸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여자들이 많다. 신기하게도 이런 여자 근처엔 고집 세고 보수적인 남자들뿐이다. 신기할 것도 없다. 자기 일을 열심히, 잘, 돈도 많이 벌면서 하는 남자나 여자가 고집이 안 셀 수가 있겠나. 그러니까 소위, 전문직에 종사하는 아주 전문적인 여자 분은 착한 남자에게 끌린다. 당연히 ‘착한’은 성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재력도 있고, 옷도 잘 입어야 한다. 이렇게 착한 남자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영특함을 갖고 있을 때 여자들은 순식간에 마음을 열고 홀로 망연히 서 있는 순간을 맞게 된다. 여자들은 이런 남자라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착각한다. “뭐 하고 싶어?”를 “무엇이든 다 같이하고 싶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달콤하게 말하는 남자들이 원하는 것은 달콤한 것뿐이다. “뭐 하고 싶어?”에 내재된 진짜 의미는 “언제 같이 자? 일단 같이 자자”일 확률이 높다. 놀랍게도 이런 남자는 원하는 것을 쉽게 빨리 얻는다. 달콤한 남자가 당신에게만 달콤할 리 없다. 달콤한 남자가 당신에게만 달콤함을 느끼고 싶어 할 리도 없다. 그 남자는 잠시 당신 옆에 있다. – 이우성(<아레나 플러스 옴므> 피처 에디터) 

 

동성친구처럼 편안한 남자 여자들은 공감에 약하다며 마음을 사려면 먼저 여자가 되라고 말하는 남자들이 있다. 강력한 남성으로 변신할 시간은 가까워진 뒤 자연스레 찾아온다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처럼 행동하는 순간 이미 어필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 생각하다가도 지나온 경험을 돌이켜보면 그 논리를 수긍하게 된다. 이런 류의 남자들은 평소에 ‘상남자’이다가 여자들 사이에 섞이면, 여자들에게 동성이라 느껴질 정도로 여성에 빙의한다. 물론 해당 성향의 남자들은 경계 대상이 아닐 수밖에 없다. 그들 대부분은 사회적 친화력이 뛰어나 어느 무리에 있건 주변인들을 편안하게 해주는 기본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장점들이 이성을 향해 발현될 때 단순한 친화력을 넘어 검은 속내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여자들의 손톱 색깔, 뿌리염색 상태, 앞머리 길이의 변화까지 알아채고 뷰티채널을 화제로 1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여자들을 대하면서 남성성이라고는 전혀 없어 저래도 되나 싶은데 그들의 작전은 대부분 성공한다. 남자들끼리 있을 때 지나가는 여자의 팬티라인이 지저분하다며 욕하고 티팬티 입은 여자를 구별해낼 줄 안다며 으스대는 이 남자들은 방금 전 음흉하게 사용하던 눈썰미를 교묘하게 변환해 여자들과 거침없이 연결고리를 만든다. 동성친구 이상으로 편안해진 여자들은 자신의 비밀부터 콤플렉스까지 술술 풀어낸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들의 은밀한 비밀을 자신의 입으로 한 번 더 언급하고 부끄러워하는 그녀를 귀여워하며 자신의 남성성을 드러낸다. 여자들은 쉽게 알아챌 수 없다. 남들에게 이 친구는 여자친구만큼 편안하다고 이야기하면서 대부분 그 편안함에 한순간의 실수를 하기 마련이다. 여동생이 있다면 ‘여자친구 같은 남자’를 조심하라고 말해줘야 한다. 마초보다 무서운 남자가 편안한 남자다. – 김기재(제작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