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백 년 넘게 그 자리를 지키던 가리왕산의 나무 4만 그루가 일주일 만에 사라졌다. 단 3일 동안 열릴 평창동계올림픽 활강스키경기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1 튼튼한 기둥과 푸른 이파리를 자랑했던 가리왕산의 나무들. 2 멀리서 촬영한 가리왕산의 풍경. 3 밑동만 남은 나무를 껴안은 활동가. 4 벌목이 한창 진행 중인 모습. 5 나무는 잘려나갔지만 아직 땅은 살아 있다.

강원도 평창군 가리왕산의 나무들은 푸르렀다. 수천 년 동안 다져지고 단단해진 땅에서는 다른 곳에서는 자연 발아하지 않는 주목이 쑥쑥 자랐고, 감음비, 왕사스레 같은 예쁜 이름의 나무도 있었다. 나이 많은 나무가 기운을 뿜어내는 풍요로운 토양에서 자란 두릅과 곰치를 캐러 봄이면 사람들이 몰래 들어오기도 했던 곳. 대대적으로 벌목이 이뤄진 일제강점기와 산업화시대에도 무사히 살아남은 국내 유일에 가까운 자연림 가리왕산의 숲이 처음으로 위협에 처한 것은 2012년의 일이다. 동계올림픽 유치에 연거푸 실패한 평창군이 표고차 800m 이상, 평균경사 17도, 슬로프 설치가 가능한 3km의 길이 등 ‘활강스키경기장’으로 가리왕산을 지목했다. 어디까지나 ‘사후복원’을 전제로 한 것이지만 강원도에서 이식하기로 한 나무는 5만여 그루 중에 고작 181그루뿐. 게다가 어린 나무가 아닌 수백 년 동안 자란 나무를 옮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명확한 복원 계획과 예산이 나오기도 전에 2013년, 가리왕산 유전자원보호구역이 해제됐고, 2014년, 환경보고평가 협의가 끝나면서 국유지이던 땅에 2014년 3월 산지 전용 허가가 났다. 그리고 지난가을, 어쨌든 합법적으로 벌목이 시작됐다. 5만여 그루의 나무 중 4만 그루가 일주일 동안 밑동만 남았다. 오래전부터 가리왕산을 드나든 녹색연합의 정규석 활동가는 나무가 잘려나가기 시작할 때 국립수목원 출신의 이병천 박사, 지역 어르신들, 그리고 가리왕산 문제에 관심을 가진 다른 이들과 함께 산제를 올린 것을 기억한다. “저는 생태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은 아니지만, 그때는 정말 눈물이 났어요. 어르신들도 울고, 자리에 있는 모두가 울었어요.”

 

나무는 잘려나갔지만 아직 희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땅이 있다면, 시간은 걸려도 나무는 다시 자란다. 바위들이 풍화작용을 통해 연결되며 만들어진 가리왕산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풍열지대다. 동굴에 들어갔을 때 시원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지대 자체의 온도가 낮은 덕분에 나무와 풀, 꽃, 곤충들이 맘껏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시설물 설치를 위해 나무 밑동을 긁어내고, 새로운 흙을 가져와 땅을 다지면 이런 지형적 특성은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이다. 만약 가리왕산을 포기한다면, 올림픽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질문할 수도 있다. 전라북도 무주 덕유산이 가리왕산을 대신해 활강경기장 유치가 가능한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강원도만의 행사가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올림픽은 중앙정부가 전체 비용의 75%를 지원하는 행사다. 상징성을 이유로 지역적 경계선을 지켜줄 것을 요구할 금전적 근거가 없다. 올림픽을 반납하는 방법도 있다. 파격적인 제안 같지만 이미 스위스 생모리츠, 독일 뮌헨이 자연 훼손을 이유로 올림픽 유치를 반납한 사례가 있다. 환경 파괴를 감수하고 유치할 만큼 경제적인 이득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진 시대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은 5백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적자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할 강원도는 현재 16개 자치도 중 재정 자립도 14위, 부채율 4위다. 물론 보호구역에 해제되고, 땅과 도로가 개발되며 어떤 땅은 분명히 값이 오를 것이다. 하지만 나무들이 백5 년 동안 자란,그 땅의 가격은 감히 누가 매길 수 있을까? 가리왕산의 토목공사는 빠르면 올 4월 시작된다. 아직은 돌이킬 수 있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