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는 6월 28일까지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 마크 로스코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미국 워싱턴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로스코의 작품을 그대로 소환했다.

1 마크 로스코, ‘Untitled’, 1970. 2 이미 크뇌벨, ‘LUEB Li 109

테이트 모던에 가면 그 앞에 유난히 오래 머물게 되는 작품이 있다. 온통 붉은 커다란 그림 한 점. 뭔가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간이 꽤 흘렀다는 건 시계를 보고서야 알아차린다. 그런데 그게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었다. 마크 로스코의 회화를 본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체험을 쏟아놓는다. 명상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있다. 로스코의 추상회화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그 앞에서 마음이 흔들렸다면 안심해도 된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니까. 색면 화가 로스코는 잭슨 폴록과 더불어 추상표현주의의 독보적 존재로 꼽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에서 시작된 추상표현주의는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미술의 중심이 미국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증명했다. 추상표현주의 화가 중에서도 색면 화가들은 전쟁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좀 더 근원적이고 강렬한 색면을 추구했다. 추상표현주의 회화는 절망과 공포라는 심리적 압박을 견디는 가장 적절한 예술적 방법이었다. 색채들 사이의 관계에 흥미를 가졌던 로스코는 화필 자국이 거의 없는 색면들을 그렸고, 그 색면들이 그림 안에서 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어떤 특정한 주제도 거부한 그는 결국 절망에서 환희에 이르는 감정의 스펙트럼을 표현할 수 있었다. 로스코는 관람자로 하여금 “그림과 관람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경험의 극치”로서 작품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했다. “나는 추상미술가가 아니다. 나는 색채나 형태의 관계에 아무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은 오로지 비극, 황홀경, 파멸 등 인간의 기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그림을 대할 때 무너져 울음을 터뜨린다는 사실은 내가 인간의 기본 감정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그림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내가 그것을 그릴 때 경험한 것과 같은 종교적 경험을 하는 것이다.” 그의 바람은 이루어졌지만 그는 작가로서의 절정의 순간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나기 전 심취한 작품의 주인공으로도 유명한 마크 로스코의 작품 50점이 서울에 도착했다. 오는 6월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화가 마크 로스코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는 미국 워싱턴내셔널갤러리가 소장한 로스코의 작품을 그대로 소환한 것이다.  또 한 명의 추상 화가 이미 크뇌벨의 작품은 리안갤러리에 걸렸다. 국내에서는 2003년 갤러리 현대의 ‘독일 현대미술 3인’전을 통해 게르하르트 리히터, 고타르트 그라우브너와 함께 소개된 적이 있지만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미 크뇌벨은 캔버스의 닫힌 영역을 벗어나, 형태의 다양한 변주와 대담한 원색의 사용으로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며 ‘조각적 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구축해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작업에 있어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라면 ‘알루미늄’을 빠뜨릴 수 없다. 1990년대부터 작가는 거울의 프레임 속에 층층이 겹친 금속 막대를 보고 알루미늄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형태의 알루미늄을 교차시켜 새로운 형태를 만든 뒤 붉은색을 입힌 작품 ‘LUEB Li 109’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색상의 조화와 단순한 사각형의 기하학적 구조 등을 3~5개의 소형 작품에 표현해 하나의 작품으로 만드는 ‘애니마 문디(Anima Mundi)’ 시리즈도 만날 수 있다. 지난 50년 동안 크뇌벨은 형태와 재료의 변화를 반복하며 전통회화의 표현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초기 작업부터 오랜 시간 동안 재해석되고 확장된 크뇌벨의 작품을 통해 그 고민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는 4월 1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