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동물원의 상황을 면밀히 포착한 최초의 보고서가 등장했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최혁준이 써 내려간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동물을 사랑해온 그가 바라본 동물원의 풍경.

우리에게 동물원은 어떤 의미일까? 가족 나들이, 데이트 등 흐뭇한 추억의 장소로 종종 기억되는 동물원에 살고 있는 동물들은 어떨까. 원래 살던 곳에서 떨어져, 평생을 갇혀 살게 할 권리가 우리 인간에게 있을까? 생태학습의 장으로 불리지만 동물원은 사실 전시장에 가깝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이해와 포용이 아닌, 일시적 호기심의 대상으로 그친다. 판다, 시베리아 호랑이 등 희귀한 개체는 동물원의 인기 스타가 되어 매스컴과 관람객의 주목을 받고, 열성형질인 백호를 무리하게 교배한 사례도 있다. 사육장의 열악한 환경, 동물 쇼를 보며 동물원을 찾는 발길이 어느덧 불편해졌다면, 그럼 동물원은 사라져야 할까? 동물원의 동물들, 현대 동물원이 나아갈 방향은 어디일까? <고등학생의 국내 동물원 평가 보고서>에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이하 서울 동물원), 대전 오월드 등 총 아홉 군데의 국내 동물원을 책에서 다뤘어요. 가장 자주 찾은 곳은 어디인가요?
서울 동물원이에요. 국내 최대 규모의 동물원이다 보니 자주 찾을 수밖에 없었죠. 동물들이 사는 환경 조건이 전반적으로 양호하고, 외부 의견을 반영하려는 운영진의 노력이 보이는 동물원이기도 하고요. 언론 보도가 많이 돼 과대평가받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국내 다른 동물원보다 월등하게 수준이 높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원이기도 하죠.  

서울 동물원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요?
단순히 ‘동물 마니아’ 입장에서 보더라도 희귀하고 이국적인 다양한 동물을 한데 관찰할 수 있는 시설을 좋아할 수밖에요. 동물원 풍경이나 방사장 조경, 구조 등이 동물의 사진을 찍고 관찰하기에 편리하기도 하고요.

동물원의 비참한 상황을 기록하면서도 최대한 감정을 억제하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 흔적을 책에서 엿볼 수 있었어요.
책을 쓰면서 모질어지기 위해 노력했어요. 평생 좋아해온 존재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을 보며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기란 어려웠거든요.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곳이 많아 더 힘들었죠. 

가슴 아팠던 순간도 많았겠어요.
‘동물 쇼’에 대해 쓸 때 특히 힘들었어요. 동물원에서 벌어지는 동물 쇼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나라는 한국뿐인 것 같아요. 동물 쇼를 동물원을 평가하는 기준에 넣어야 한다는 사실 자체에 화가 나더라고요. 동물들은 자신이 지금 어떻게 이용당하고 있는지,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몰라요. 최근에는 가학이나 체벌을 이용하지 않는 조련의 비중이 늘어나긴 했지만 ‘동물을 속이는 행위’라는 사실은 변함없죠. 같은 종인데도 일반 전시되는 개체는 주어진 공간 안에서 최대한 원래 삶을 보장해주는 반면, 쇼 동물은 원래의 삶과 동떨어진 삶을 살잖아요. 동물에게 공연장과 조련사, 보상과 훈련 도구를 세상의 전부로 알게 할 권리가 동물원에있을까요?

동물보호단체 카라(KARA)와 함께 일산의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쇼에 이용되는 오랑우탄인 오랑이를 구조하기 위한 ‘프리 오랑(Free Orang)’ 캠페인에 참여한 것도 동물 쇼에 반대하기 때문인가요?
해당 동물원의 이야기는 책을 쓰면서 수정을 많이 거쳤어요. 책을 쓰는 도중에 보호단체와 동물원의 갈등이 커지니까 덜컥 겁이 나더라고요. 알면서도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고 외면한 꼴이 됐기에 출간 이후에도 쥬쥬에 있는 오랑우탄들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프리 오랑’ 캠페인에 참여한 것은 그에 대한 속죄의 의미라고 볼 수 있겠죠. 

그럼에도 동물원의 존재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이유는 뭔가요? 
‘Zoo’라는 명사가 생긴 것이 아직 200년도 되지 않았어요. 동물원이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하고 대중화된 것이 얼마 되지 않은 셈이죠. 하지만 야생동물을 서식지에서 데려와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전시하는 시설은 초기 인류 문명부터 존재했어요. 그래서 저는 이게 인류의 필연적인 호기심이라고 생각해요. 동물을 사랑한다면서 동물을 가두어 전시하는 시설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왜 들지 않는지 회의가 든 적도 있지만 그 욕망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동물원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요? 
동물원이 없어지더라도 야생동물을 가두어 구경하고 즐기는 시설은 반드시 다른 형태로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가장 인도적인 형태인 현대 동물원을 잘 유지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 아닐까요? 현대 동물원은 주어진 사회도덕적 의무를 수행할 책임이 있고, 종 연구나 개체 보전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기능도 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책에도 동물원과 현대 동물원을 구분해서 표기했어요. 현재 갖고 있는 윤리적 문제를 꾸준히 줄여나가며 현대 동물원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국내 동물원이 해결해야 할 문제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관람객의 의식 수준과 사육장의 환경 개선 등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부분의 문제점을 동물원 내부에서도 인지하고 있어요. 베테랑 사육사들은 오랜 실무 경험에서 비롯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데다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아이디어도 많죠. 이런 생각들이 정말 생각으로만 남지 않기 위해서는 동물원 내부 개선이 좀 더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는 기본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비용이 드는 일이라 자세히 이야기할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죠. 

사람들은 흔히 ‘동물’이라고 하면 포유류나 개, 고양이 같은 동물을 먼저 떠올리죠. 하지만 녹색이구아나와 아프리카민며느리발톱거북, 왕관앵무와 함께 살고 있는 당신이 생각하는 동물은 조금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동물의 정의는 현대 생물학에서 사용하는 정의와 동일하죠. 하지만 마음이 쓰이는 동물의 범주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어요. 대부분의 척추동물에게 공감하는 편이고, 파충류 이상부터는 조금 더 애정을 가져요. 일부 조류와 포유류에 대해서는 거의 사람에게 마음을 쓰는 수준이고요. 모순적인 생명 윤리관이지만 동물원에서 전시하는 동물들이 대체로 포유류, 조류, 파충류라는 점은 다행인 것 같아요. 전시동물에 공감하지 못한다면 평가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할 테니까요. 최근 10대 남자 아이들 사이에서 뱀, 이구아나 등 파충류를 키우는 이들이 늘어나는데, 반응과 교감이 적은 생물체이다 보니 생명을 기르면서도 관찰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아 걱정스럽기도 해요. 

올해 대학생이 됐어요. 앞으로 어떤 일들을 할 계획인가요?
5월부터 생명다양성재단과 에버랜드가 함께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어요. 일단은 동물자원학과에 진학한 만큼, 전공 공부에 집중해 전문성을 갖추고 싶어요.

 

지난 6개월간 살처분 된 가축 수: 39만 8천마리

지난해 9월 AI로 인해 29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12월에는 구제역으로 총 9만천 마리의 소·돼지가 살처분 당했다. 최악의 구제역 파동을 겪었던 2010년에는 350여만 마리의 소와 돼지가 땅에 묻혔다. 함께 처분됐던 400만 마리의 닭과 오리 중 90%는 건강한 상태였지만 구제역 확산을 막기 위해 살처분 됐다. ‘구제역 청적국 유지’를 위한 처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