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가요 순위 프로그램이 혼자서 몰래 봐야 하는 동영상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아이돌은 과연 제대로 입고 제대로 춤추고 노래하고 있는 걸까? 걸그룹의 섹시 안무를 정신없이 클릭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생각해봐야 할 문제.



노출의 강도보다 노출의 방향

헬로비너스는 최근 ‘끈적끈적’과 ‘위글위글’을 연속적으로 발표했다. 두 곡 모두 걸그룹 중 가장 짧을 것 같은 핫팬츠를 입고, 엉덩이를 카메라 정면을 향해 흔든다. ‘위글위글’에는 ‘엉덩이를 흔들흔들’이라는 가사가 실제로 들어 있고, ‘위글위글’ 전에는 멤버들이 제이슨 데룰로의 ‘Wiggle’에 맞춰 춤을 춘다. 엉덩이를 카메라 바로 앞에 갖다 대고 흔드는 것 같은 그 춤 말이다. 헬로 비너스는 이전까지 청순한 콘셉트로 활동했다. 열성적인 팬층은 많았지만, 그에 비해 대중적인 인지도는 낮았다. 청순한 이미지를 대표하던 멤버도 그룹을 떠났다. 섹시 콘셉트로 과감한 리론칭을 할 만하다. 그러나 섹시 콘셉트로 주목받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EXID의 ‘위아래’도 팬이 직접 찍은 ‘직캠’ 영상이 화제가 안 됐다면 묻힐 수도 있었다. AOA는 ‘짧은 치마’에서 치마 지퍼를 열었고, 걸스데이는 ‘기대해’에서 멜빵을 내리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도 했다. 최근 걸그룹들이 미국에서 유행하던 춤 트월킹을 활용하는 것은 더 큰 자극을 만들어내기 위한 수단이다. 다리는 강조한 지 오래고, 가슴을 보여줄 수는 없으니 남은 것은 엉덩이를 눈앞에 흔드는 것뿐이다. 헬로비너스와 걸그룹 와썹은 엉덩이를 흔들고, 더 빠르게 흔들면서 시선을 끈다. 트월킹은 아니지만 EXID의 ‘직캠’이 화제가 된 것도 멤버 하니가 문자 그대로 ‘위아래’로 몸을 흔든 영상이 직캠을 통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면서 시선을 모았기 때문이다. 성상품화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성상품화는 단지 노출을 많이 했다, 덜했다의 문제만으로 말할 수는 없다. 이효리가 ‘미스코리아’에서 원피스 수영복에 가까운 복장을 하고 여성의 자아에 대해 노래한 것과, 온몸을 가린 옷을 입고 “오빠밖에 몰라요”라며 남성에게 순종하는 여성상을 보여주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성상품화인가. 중요한 것은 노출의 강도보다 노출의 방향이다. 지금 섹시와 함께 걸그룹 콘셉트의 한 축인 청순한 걸그룹들은 방향이 가리키는 곳을 알려준다. 청순함을 내세운 여자친구는 타이틀 곡 ‘유리구슬’에서 체육복을 입고 춤을 춘다. 그러나 짧은 반바지로 된 그들의 체육복은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디자인이다. 그들의 옷은 일본 여학생의 체육복에 가깝다. 그리고 왜 굳이 일본 여학생 스타일의 체육복인가에 대한 답은, 대다수의 남자라면 알고 있다. 남자들은 애니메이션에서, 게임에서, 또는 성인물에서 일본 여학생들의 복장을 익힌다. 무엇을 통해 접했건 일본 스타일의 복장이나 캐릭터는 상당수 남성들에게 판타지다. 청순 콘셉트의 걸그룹은 거기서 캐릭터의 이미지를 가져온다. 반면 섹시 콘셉트의 트월킹은 유튜브에 그 연원이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튜브에는 서구 여성들의 섹시한 모습을 담은 영상이 수없이 올라온다. 일본이 청순한 콘셉트의 레퍼런스를 제공한다면, 미국은 섹시 콘셉트의 레퍼런스다. 그리고 그것이 이식되는 과정에서 맥락이 달라진다.

 

니키 미나즈가 미국에서 트월킹을 췄을 때, 그것은 섹시함뿐만 아니라 그가 발표한 노래 ‘아나콘다’의 제목 그대로 강한 여성의 과감함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 걸그룹의 트월킹은 남성에게 보내는 애교 또는 유혹의 몸짓이다. 그 자체가 옳다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과한 노출만을 문제 삼아 성상품화를 비난하면 오히려 여성의 성역할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 다만 콘셉트마저 해외의 레퍼런스를 가져오면서 아이돌 그룹이 표현하는 판타지는 지역적인, 또는 현실적인 바탕이 제거되고 시각적인 이미지만 남는다. 트월킹의 맥락은 없어지고 엉덩이 흔들기만 남고, 체육복을 입고 다리를 차올리는 소녀의 캐릭터 대신 어디서 본 것 같은 영상 속 소녀의 이미지만 남는다. 남자 아이돌 그룹이 아무 맥락 없이 어셔처럼 옷을 찢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소한 그것이 노래와 안무의 맥락 속에 필요한 것이기는 해야 노골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미국, 일본, 한국 모두 쇼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성상품화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그것이 ‘쇼’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느냐, 몸 보여주기일 뿐이냐의 차이는 있다. 3분 내내 엉덩이, 엉덩이, 엉덩이뿐이라면 보기 힘든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 강명석(<아이즈 웹진> 편집장)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향한 고독의 길

지난 연말, 별다른 이슈 없이 하품이나 하던 가요계를 들썩이게 한 건 EXID라는 낯선 이름이었다. 무려 2012년 데뷔에, 한때 용감한 형제, 이단옆차기와 함께 가요계를 삼등분했던 신사동 호랭이를 등에 업은 그룹이었지만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그냥 그렇게 아이돌 버블 속으로 사라질 뻔한 그녀들을 구원한 건 기획사의 물량 공세도 빼어난 외모도 아닌 한 팬의 직캠이었다.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영상에 집중적으로 담긴 멤버 하니의 섹슈얼한 몸 사위와 표정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장담할 수 있나 되물을 것도 없다. 보면 안다. 허리와 골반의 움직임을 살린 특정 안무가 등장하는 순간과 관객의 환호성 사이엔 단 1초의 오차도 없다. 직캠을 퍼간 게시물 댓글의 90%는 ‘덜덜덜’, ‘엄청나네요’ 같은 속 뻔한 감탄사다. 우리는 이즈음에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태초에 아이돌이 있은 이래, 아니 인류가 존재한 이래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쉽고 빠르게 이끌 수 있는 건 성(性)과 관련된 모든 요소였고 그 찰떡궁합은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끈끈한 궁합의 혜택을 받은 그룹이 비단 EXID뿐일까. 천만의 말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아이돌 그룹 모두는 이 혐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EXID와 ‘위아래’가 가요계를 뒤흔든 가장 큰 이유는 단지 그들의 현란한 몸짓이 아니라 기존의 콘텐츠 소비 흐름을 역으로 타고 오른 마케팅 방식 때문이었다. 그만큼 아이돌의 인기와 성의 상관관계는 너무 보편화되어 굳이 입에 올리기도 민망스러운 개념인 것이다.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그룹들의 면면을 보자. 최초의 여성 아이돌 밴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무려 ‘엘비스’라는 패기 넘치는 데뷔 곡으로 가요계를 두드린 AOA는 ‘짧은 치마’를 입은 이후에야 아이돌계의 블루칩으로 등극할 수 있었다. ‘반짝반짝’ 노래하며 ‘한번만 안아줘’ 새침 떨던 걸스데이가 3년이 넘는 곤궁기에서 탈출한 건 온몸으로 바닥을 훑고 다리를 180도로 벌리는 안무에 과감히 도전한 ‘기대해’ 덕분이었다.

 

접근 방식만 조금 다를 뿐 남자 아이돌 시장도 마찬가지다. ‘짐승돌’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며 그 누구보다 빠르게 3세대 아이돌 왕좌를 선점했던 2PM의 찬란한 한 시절이나, 현역 최초이자 아마도 최후가 될 단체 누드 사진집을 발간한 신화의 예까지. 젊고 아름다운 이들의 성을 사고판 인류의 유구한 역사는 모두의 무언의 합의 아래 멀지 않은 곳에서 이토록 가깝게 숨쉬고 있다. 이렇듯 성의 상품화가 인류의 보편타당한 가치라 인정한다면, 이제 왜 유독 아이돌에게 그 굴레가 씌워질 때 눈살을 찌푸리는 이들이 많은지에 눈을 돌릴 시간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아이돌을 여전히 ‘10대들의 전유물’라고 생각하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보살피고 보호해야 할, 국가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는 새싹들에게 너무 자극적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논점은 ‘누나팬’을 넘어 ‘삼촌팬’과 ‘이모팬’까지 확장된 최근의 아이돌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조금 고루하다. 오히려 아이돌 음악 시장이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크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해석이 그럴싸하다. 케이팝이라는 날개를 달고 승승장구한 아이돌팝 시장은 한국 음악산업의 시작이자 끝이 되어버렸고, 각 방송사마다 필수로 운영하고 있는 가요 순위 프로그램은 물론 각종 버라이어티와 드라마, 연예 가십란까지 아이돌 그룹들의 집안 잔치가 된 지 오래다. 열이면 열 비슷해 보이는 그 밥에 그 나물 가운데 눈에 띄려면 더 빠르고 강하게 치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생명을 축시킬지언정 대중의 관심을 환기하는 데에는 더없이 효과적인 성(性)팔이의 유혹은 그래서 더욱 뿌리치기 힘들다. 대중 인기의 척도가 음반에서 음원으로 옮겨간 현실은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요인이다. 음악을 듣는다기보다는 화제의 검색어를 듣는 시대. 달콤한 유혹의 그림자는 점점 짙어져만 간다. 이러한 진퇴양난의 상황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는 당신이라면, 결국 믿을 건 제작자의 양심과 소비자의 식견뿐이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이거 아니냐’며 다짜고짜 들이대는 콘텐츠를 만들며 최소한의 부끄러움을 느끼고, ‘요즘 음악은 너무 천박하다’거나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냐’는 말을 입에 올림과 동시에 새로 뜬 걸그룹의 섹시 안무 동영상을 정신없이 클릭하는 자신의 손가락을 결자해지의 자세로 단지할 각오가 되어 있는 이들이 늘어갈 때 우리 눈썹 사이 주름은 하나씩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지구 위 다방면에 위치한 이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고 있는 케이팝 주체로서의 최소한의 품위 유지 비용일지도 모른다. – 김윤하(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