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인 꽃무늬와 긴 실루엣, 손뜨개 니트의 따스함과 프린지의 자유로운 감성이 올봄 보헤미안 트렌드를 타고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197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이번 시즌 패션계를 강타하면서 트렌드의 중심에 선 보헤미안의 사전적 정의는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예술가’다. 수세기 전부터 국가를 거부하고, 시를 노래하며 유럽과 중동 지방을 유랑하던 집시들이나, 20세기 초반 고향을 떠나 파리의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에 모여 열띤 토론을 펼친 사상가들, 1967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을 보낸 반전주의자들과 히피들처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방식을 택한 사람들 말이다. 이렇듯 예술적 감성이 넘치면서 어딘가 정치적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 자연이 주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박애주의마저 갖춘, 알고 보면 복잡다단한 보헤미안은 패션의 관점에서 훨씬 간단하게 풀이된다. 사회적 이념을 배제하고, 그들의 행동과 사상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 ‘자유로움’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다.



1 폴리에스테르 소재 드레스는 9만9천원, H&M. 2  사파이어 장식의 스털링 실버 소재 목걸이는 1백21만5천원, 구찌(Gucci). 3 실크 소재 드레스는 3백50만원, 버버리 프로섬(Burberry Prorsum). 4 플라워 프린트의 소가죽 소재 토트백은 가격미정, 프라다(Prada). 5 비즈 장식 목걸이는 2만9천원, H&M. 6 1970년대 보헤미안들의 우상이었던 플릿우드 맥의 싱어 스티비 닉스. 7 펠트 소재 모자는 3만5천원, H&M. 8 스톤 장식의 라피아 소재 토트백은 가격미정, 구찌. 9 자유로운 옷차림과 애티튜드로 진정한 보헤미안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한 모델 아니타 팔렌버그와 롤링스톤즈의 키스 리처드스.

잠옷처럼 늘어진 롱 드레스, 담요를 걸친 듯 밑단의 높낮이가 다르게 떨어지는 튜닉, 부드럽게 펄럭이는 와이드 팬츠와 걸을 때마다 춤추는 프린지 장식, 길게 떨어지는 목걸이는 보헤미안의 자유로운 감성을 극대화한다. 옷차림이 하나의 통일된 실루엣을 이루기보다 아이템 하나하나가 각자의 리듬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런 자유로운 옷 입기는 이번 시즌 생 랑의 사이크 록 컬렉션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름에서부터 이미 우드스탁의 몽환적인 페스티벌 무드를 연상시키는 이 컬렉션은 재니스 조플린, ‘플릿우드 맥’의 스티비 닉스, ‘소니앤셰어’의 셰어 등 1970년대 보헤미안들의 우상이었던 여성 뮤지션들을 재현해 런웨이에 내보냈다. 봉긋한 돌먼 슬리브의 드레스 위로 손뜨개 카디건을 걸치거나 상의 탈의의 청바지 차림 위로 별을 수놓은 카프탄 드레스를 입는 등 관습을 벗어난 레이어링에 에스닉한 주얼리를 겹겹이 걸치는 스타일링이 주를 이뤘다. 동유럽 집시들의 자유분방한 레이어링을 가장 잘 해석한 브랜드는 단연 드리스 반 노튼이었다. 옷감의 다양한 패턴은 에스닉부터 플로럴, 기하학적 무늬까지 폭넓은 범위를 넘나들었고, 투명과 반투명이 빚어낸 소재의 음영이나 자유분방한 레이어링은 컬렉션 곳곳에 캐릭터를 불어넣었다. 



10 프린지 장식의 면 소재 니트 튜닉은 6만9천원, 자라(Zara). 11 프린지 장식의 스웨이드 소재 숄더백은 3백32만원, 생 로랑 바이 에디 슬리먼(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12 날염 효과를 준 레이스 소재의 트렌치 코트는 가격미정, 버버리(Burberry). 13 플라워 프린트의 면 소재 와이드 팬츠는 1백58만5천원, 구찌. 14 영원한 보헤미안 스타일 아이콘, 알리 맥그로. 15 소가죽 소재의 통굽 샌들은 가격미정, 프라다. 16 깃털과 비즈를 장식한 비대칭 귀고리는 1만9천원, 자라. 

특히 파자마 팬츠와 가슴을 겨우 가리는 밴드 톱에 반투명의 시폰 드레스를 겹쳐 입은 룩은 ‘난 쿨해!’라고 온몸으로 외치는 듯 근사했다. 튜닉 드레스, 판초 등 정통 보헤미안 룩을 표방한 에트로는 로맨틱한 꽃무늬에 남미의 아즈텍 무늬를 연상시키는 에스닉 프린트를 더해 인디언 소녀 같은, 또 다른 느낌의 보헤미안 룩을 제안했고, 알베르타 페레티는 꽃 아플리케와 치렁치렁한 프린지가 마구 뒤섞인, 마구 대지의 여신을 연상시키는 드레스를 잇따라 선보였다. 복잡한 레이어링 대신 단순한 실루엣의 편안한 룩을 추구한 당대 최고의 보헤미안 아이콘, 제인 버킨과 알리 맥그로는 발렌티노와 클로에, 에밀리오 푸치 컬렉션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발렌티노의 순백색 레이스 드레스나, 에스닉한 꽃무늬 실크 드레스는 가운데 가르마를 곱게 탄 젊은 시절의 알리 맥그로를 위한 것 같았고, 에밀리오 푸치의 크로셰 니트 비키니나 클로에의 봉긋한 레이스 드레스, 투명하게 온몸을 감싸는 시폰 드레스는 평소 ‘노 브래지어’를 고집한 제인 버킨의 납작한 가슴과 깡마른 몸매에 물 흐르듯 부드러운 실루엣을 더해줄 것 같았다. 보헤미안 스타일을 화려한 이브닝 룩으로 승화한 디자이너들도 있었다. 꽃무늬를 금빛 라메 자수로 장식한 알투자라의 이브닝 드레스는 웅장함마저 느껴졌고, 발렌티노의 무지갯빛 레이저 커팅 드레스는 ‘히피 시크’의 절정을 보는 듯했다. 여기에 섬세한 장미를 수놓은 오간자 드레스로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한 로샤스까지, 보헤미안 룩은 격식과 형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이번 시즌 런웨이를 사로잡았다. 앞서 말한 대로 보헤미안 룩의 키워드는 ‘자유로움’이다. 관습을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옷을 입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쉽지 않다고? 그렇다면 귀 뒤로 한송이 꽃을 꽂자. 사랑의 여름을 상징하는 파파스앤마마스의 노래 ‘샌프란시스코’의 가사(If you go to San Francisco, be sure to have flowers in your hair)처럼 머리에 꽃을 꽂는 걸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진정한 보헤미안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