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쏙 빼놓고 순식간에 지갑 속 카드를 꺼내게 만드는 마력의 그녀들. 바로 화장품 광고 속 모델들이다. 시대를 풍미한 절세 미녀들, 특히 여성성으로 무장된 섹시 뷰티 모델들의 계보는 이렇다.

70’S

영혼까지 섹시했던 트로이카 전성 시대
1970년대 국내 화장품 광고는 물론 한국 영화계를 휩쓴 트로이카는 바로 장미희, 정윤희, 유지인이다. 엄마가 내 나이였던 그 시절에도 과연 섹시한 콘셉트가 통했을까 의구심이 들겠지만, 답은 YES! 아니 그 이상이다. “오히려 70년대에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여배우의 노출이나 메이크업이 굉장히 과감했어요. 당대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등장한 캘린더가 대유행이었죠. 지금 봐도 아슬아슬한 비키니를 참 대담하게 소화한 시절이에요”.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경민은 70년대 화장품 광고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실험적이고 다양한 콘셉트로 연출됐다고 회상한다. “당시만 해도 화장품 광고에서는 눈과 입술 할 것 없이 풀 메이크업을 보여줘야 했어요. 사실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당시 광고 메이크업이 훨씬 흥미롭긴 해요.” 대표적인 섹시 모델은 아직까지도 전설로 남은 정윤희. 특히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살짝 벌어진 앵두 입술은 묘한 백치미와 관능미를 자아냈다. “지금이야 탄탄한 근육질 몸매가 각광받지만 70년대에는 눈부시게 하얀 살결과 빨간 입술이 섹시 포인트였죠. 쥬리아 화장품 광고 속 정윤희는 여성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주었어요. 잘 짜인 앵글과 포즈가 아닌, 모델들의 연기력이 섹시한 광고를 이끌어냈어요.” 정윤희가 보호본능을 일으키는 원초적인 관능미를 보여줬다면 유지인은 서구적이고 세련된 여성성을 발산하면서 쥬단학의 전속모델로 활동했다. 장미희는 지적이면서도 섹시한 이미지로 70년대 태평양(지금의 아모레퍼시픽)의 광고 모델로는 물론 지금까지도 뷰티 아이콘으로 군림하고 있다.

80’S

디스코! 디스코! 서구형 모델의 등장
신디 로퍼와 마돈나. 팝의 전성 시대. 청청 패션의 열풍! 80년대를 장식한 문화 코드는 화장품 광고계도 화려하고 다채롭게 물들였다. 특히 디스코 열풍 덕분에 반짝이는 펄 섀도와 원색적인 립스틱이 유행했고 화장품 모델로는 또렷하고 서구적인 마스크의 여배우들이 속속 캐스팅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컬러 TV가 보급되면서 총천연색 색조 화장품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시대보다 강렬했다. 그 원조는 금보라. 80년대 초반 태평양의 모델이었던 그녀는 마치 서양 모델을 보는 듯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섹시 코드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 뒤를 이어받은 전설이 바로 황신혜. 컴퓨터 미인 황신혜의 미모는 광고계를 비롯해 성형외과에서도 바이블로 남았다. 완벽에 가까운 마스크를 캔버스 삼아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다. 펄 메이크업은 물론 2015년에 다시 돌아온 윤곽 메이크업은 물론 태평양 나그랑에서 선보였던 화사한 파스텔톤 메이크업까지, 색조 메이크업 광고의 르네상스가 펼쳐졌다. “지금 보면 촌스럽기는 해도 당시에는 자체적으로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해보고자 하던 열의가 대단했죠”. 포토그래퍼 정용선은 국내 화장품 광고의 흐름은 해외 브랜드의 국내 진출이 시작된 80년대 말을 기점으로 그 전과 후로 나뉜다고 분석한다. “세련된 화장품 광고에 대한 정보가 적었기 때문에 오히려 기발한 아이디어의 사진을 많이 시도했죠. 모델들의 포즈 역시 투박하기는 했지만 거침없고 과감했었고요.” 이 외에도 당시 충무로 섭외 1순위 이보희(나드리 화장품), 지적이면서도 관능적인 매력의 이미숙(코리아나 화장품) 등이 섹시 뷰티 아이콘으로 이름을 날렸다.

90’S

중성적인 카리스마, 강한 여자 신드롬
케이트 모스, 크리스티 털링턴과 린다 에반젤리스타. 슈퍼 모델들의 대거 등장과 함께 미니멀리즘, 매니시 룩이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각광받은 시대가 바로 90년대다. 라이선스 잡지인 <보그>와 <엘르>가 줄이어 창간하고, 랑콤, 에스티 로더 등 해외 코스메틱 브랜드들이 본격적으로 국내 입성하면서 화장품 광고계는 대변화의 시기를 맞이한다. 당시 블루벨 코리아와 에스티 로더에서 홍보를 맡았던 한피알 한성림 대표는 “원초적인 섹시미는 사라졌지만 더 세련되고 모던한 톤, 혹은 중성적인 이미지의 섹시미가 각광받기 시작했어요”라고 증언한다. 도시적인 이미지로는 손꼽히던 김남주(LG 라끄베르), 이승연(나이스 화장품), 오렌지족의 원조 고소영(한불 화장품)가 대표적. 풀 메이크업이 사라지고, 내추럴 메이크업이 유행을 타면서 직접적인 광고보다는 스토리 위주의 광고가 주를 이룬 것도 이때다. 주로 뛰고 타는(?) 광고가 유행이었는데, 총을 든 경호원으로 분한 이영애(태평양 마몽드), 카레이서로 등장한 박주미(드봉), 헬기를 타고 사막에서 뛰어내리는 김혜선(한국 화장품) 등을 1997년 한 신문에서는 “신세대 소비층을 겨냥한 화장품 광고, 억세고 거친 여성 활보”라고 평할 정도였다. 새로워진 여성상에 대한 반대급부로 극도로 글래머러스한 모델도 함께 주가를 올렸다. 날카로운 아치형 눈썹과 과장된 립 라인의 김혜수(소망 화장품), 빨간통 도도파우더를 히트시킨 엄정화(도도화장품)가 선두에 있었다. 특히 엄정화는 밀레니엄 신드롬이 전 세계를 뒤흔든 90년대 말, 광택이 가미된 화이트 섀도를 히트시키면서 사이버 메이크업의 트렌드를 선도하기도 했다.

21C

카메라 앞에 선 아이돌 스타
근 10년 동안 여자들의 입에서 떠나지 않는 단어, 안티에이징. 화장품 업계 역시 이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스킨케어 시장이 커지면서 광고에서도 맑고 차분한 톤의 비주얼이 많아졌다. 물론, 모델에 있어서도 전폭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베이글녀’라는 신조어가 탄생할 만큼 앳되지만 성숙한 이미지가 공존하는 모델들에 대한 인기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2000년대 초반 하이틴 잡지의 모델로 활동 중이던 김민희는 코리아나 엔시아 광고에서 풋풋하면서도 도발적인 표정으로 베이비 페이스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렸다. 색조 메이크업에서도 마찬가지. “예전처럼 풀 메이크업의 광고는 볼 수가 없습니다. 주로 원 포인트 메이크업이면 충분하죠.” 메이크업 아티스트 이영은 그 대표 주자로 클리오의 주인공이었던 이효리와 토니모리 아이라인의 가인, 메이블린의 씨엘 등 여전사 가수 군단을 꼽았다. 여가수 붐은 아이돌 스타로 이어졌다. 특히 K-뷰티 붐을 타고 해외에서도 관심이 폭발하면서 2015년 봄, 그들의 몸값은 정점을 찍었다. 토니모리 마케팅팀 홍수지 대리는 이들이 브랜드 자체에 대한 친밀감과 선호도를 높여주는 큰 역할을 한다고 분석한다. “해외에서도 크게 주목받고 있는 현아가 모델로 선정된 이후 문의가 쇄도했죠. 섹시한 레드 립 광고는 물론이고, 내추럴한 스킨케어 광고도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요.” 롱런하고 있는 토니모리 현아, 더페이스샵 & 수지에 이어 에뛰드 & 크리스탈, 페리페라 & 손나은 그리고 얼마 전 계약을 마친 싸이닉 & 걸스데이에 이르기까지 아이돌 스타와 코스메틱 브랜드의 파트너십은 2015년 더 끈끈해지고 있다.

청순한 그녀

청순, 우아, 지성, 단아! 섹시하지는 않지만 미의 여신으로 군림했던 그녀들의 계보

 

1 임예진 70년대 원조 국민 여동생. 하이틴 스타로 데뷔한 뒤 국민적 인기를 얻으며 아모레 화장품의 광고 모델로 오랫동안 활동했다.

 

2 윤정 아직까지도 남자들의 마음을 흔드는 광고, 바로 뜨아레의 ‘애인 같은 아내’. 그 주인공이 바로 윤정이다. 지적이고 우아한 이미지로는 역대 최고.

 

3 김희애 윤정의 뒤를 잇는 또 한 명의 국민 아내. SK-Ⅱ의 모델로만 벌써 10년째. 세련되면서도 배려심 깊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평소 모습이 그 비결.

 

4 심은하 섹시한 이미지로 잠깐의 외도가 있었지만, 심은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청순 미인이다. 90년대 칼리 광고 속 모습은 지금 봐도 여전히 청아하다.

 

5 이나영 신비주의의 원조. 동화 속  캐릭터처럼 몽환적이면서도 투명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오랫동안 라네즈, 아이오페 등의 광고 모델로 활동했다.

 

6 김태희 미의 교과서. 기품 있고 완벽한 비율을 자랑하는 얼굴. 데뷔하자마자 아모레퍼시픽, LG 오휘 등의 광고를 꿰차며 대한민국의 대표 미인으로 군림해오고 있다.

 

7 송혜교 손볼 데 없이 청순한 마스크와 볼륨 있는 보디라인의 원조 베이글녀. 이제는 한류 붐을 타고 중국에서 더 대접받는 모델이 되었다.

 

8 윤아 아이돌 스타들 중에서는 손꼽히게 우아한 매력을 뿜어낼 줄 아는 모델. 이니스프리 역시 아시아 전역에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