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등장한 <개콘>이 쌓아온 ‘국민 개그 프로그램’이라는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개그콘서트>, ‘사둥이는 아빠딸’. 

<개그콘서트(이하 <개콘>)를 봐야 주말이 끝났다는 것을 실감할 때가 있었다. 물론 예전의 일이다. 1999년 등장한 <개콘>이 쌓아온 ‘국민 개그 프로그램’이라는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 시청률은 여전히 10퍼센트 후반대를 오가지만 모두가 알 만한 유행어나 패러디 소재를 내놓는 일은 현저히 줄었다. 일부 코너는 ‘일베’ 논란에 휩싸였다. 아빠와 네 명의 딸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의 코너인 ‘사둥이는 아빠딸’에서 딸 역할의 김승혜가 “아빠, 나는 김치 먹는 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될 거야”라고 ‘김치녀’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이다. 여성 혐오 사이트인 ‘일베’에서 한국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자주 쓰는 ‘김치녀’를 언급한 김승혜는 이어 “명품백 사줘. 신상구두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김치녀’가 어떤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사용한 셈이다. 또 다른 코너 ‘부엉이’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희화화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길을 잃은 등산객으로 등장한 장유환에게 부엉이 역할의 이상구가 길을 가르쳐주겠다며 낭떠러지로 인도하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 문제였다. 장유환이 비명과 함께 사라진 후 무대로 돌아온 이상구는 쟤는 못 나나 봐’라는 대사로 콩트를 마무리했다. 왜 하필 ‘부엉이’고, ‘추락사’였을까? 코너를 짜면서 특정 사건을 연상시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 못했을까? 추락사라는 것 자체도 개그 소재로 적합하지 않다며 비판을 가한 시청자도 있었다. ‘렛잇비’에서는 엘사와 개그맨 이동윤의 얼굴을 합성하면서 사진 속에 일베를 상징하는 캐릭터 ‘베충이 인형’이 등장했다. 브라우니처럼 유명하지도 않은 인형이 소품에 사용된 이유는 뭘까? 해당 논란에 관해 <개콘> 제작진은 똑같은 반응을 보였다. ‘몰랐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 불쾌감을 드렸다면 사과드린다’.

 

<개콘>의 ‘일베’ 논란이 불쾌하고 우려되는 것은 해당 사이트가 특정 대상에 대한 차별이나 혐오를 감추지 않고, 심지어 혐오를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끔찍한 언어로 표현하는 사이트이기 때문이다. 웃음과 공감이 가장 중요한 개그 프로그램이 가야 할 길과는 정반대의 길에 서 있는 셈이다. 일부 출연진은 억울함을 표할 수도 있겠지만 ‘일베’의 이미지가 덧씌워지면 <개콘>이 그동안 꾸준히 소재로 삼았던 외모 비하, 여성 비하, 인종 차별 개그를 받아들이는 시청자의 입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개콘>의 개그가 문제가 된 것은 최근 몇 년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게 외모 비하다. ‘헬스걸’처럼 감량에 성공하지 못한 여자들은 자기가 귀여운 줄 아는 ‘선배 선배’의 눈치 없는 신입생, 남자친구와 헤어진 순간에도 계속 먹을 것만 탐하는 비호감 뚱보 역할만 계속하고 있다. 오나미는 어떤가. ‘사둥이는 아빠딸’에서 다른 세 딸과 똑같이 애교를 부리지만 ‘미안해’라고 거부당하고, ‘도찐개찐’에서는 오랑우탄과 외모가 비교되다가 <개콘>을 벗어난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못생긴 게스트’라는 이유로 발차기를 당했다. 연출이겠지만 일상에서 종종 듣는 ‘얼굴 보는 순간 죽빵 날릴 뻔했다’는 말이 현실이 된 셈이다. 여성 개그우먼들조차 ‘명품백이면 다 되는’ 여성 캐릭터를 연기하고, 여자 사원에게 최고의 라인은 ‘S대보다 S라인’이라는 발언을 하는 데에 별다른 문제 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개콘>의 공감대가 과연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남녀평등을 위해 여자도  관료로 임명하겠다고 말하던 왕이 여자 관료의 미모를 확인하자 관료를 침실로 데려간 ‘왕입니다요’는 말할 것도 없다. <개콘>의 인종차별적 요소가 해외 시청자에 의해 지적된 경우도 있다. 지난여름, 한류 팬이라고 자신을 밝힌 마이애미에 사는 에이미 진이라는 네티즌은 ‘한국의 인종차별적 방송사들을 규탄하자'는 청원을 올렸다. ‘검은 분장은 흑인에게 거부감이 상당한 인격모독이다. 흑인 분장을 중단할 것’을 요청한 그녀의 청원은 하루도 안 돼 1천 명의 서명인을 불러 모았다. 허안나가 아프리카 부족민 복장을 하고 나와 원주민 개그를 선보인 후였다. 특정 인종에 대한 고정 관념을 극대화해 희화화하는 것은 심각한 인종차별이다. 1980년대 인기 코너였던 ‘시커먼스’가 88올림픽 때 폐지된 것도 그 때문이지만,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난 지금도 어쩌면 우리의 인식은 멈춰 있다.

 

다수가 소수를 웃음거리로 삼아 웃기는 것은 가장 쉬운 방법이다. 최소한 방송은 술자리용 개그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의 <개콘>은 모르는 것 같다. 여전히 ‘개그는 개그일 뿐’이라고 말한다면, 그건 게으를 뿐 아니라 뻔뻔하기까지 한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