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상상으로 가득한 네 권의 소설이 있다.

상상으로 가득한 네 권의 소설.

상상으로 가득한 네 권의 소설.

 

 

델리아 에프론이라는 이름은 어딘가 낯설면서도 낯익었지만, ‘사자가 있는 라이언 주점’이라면 나도 한번 가보고 싶었다. 어떤 주점인지 알고 싶어 책장을 폈다. 작가 델리아 에프론은 역시 영화감독 겸 작가, 저널리스트인 노라 에프론의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언니의 대표작인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과 <유브 갓 메일>의 각본을 썼다는 건 몰랐다. <사자가 있는 라이언 주점>은 그녀가 쓴 소설인데,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전작들과 분명 공통분모를 이루고 있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한 여자와 웨딩드레스를 입은 다른 여자가 볼티모어 2차선 고속도로 갓길에서 울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청바지를 입은 쪽은 라나. 웨딩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트레이시다. 거기다 더러운 몰골의 한 여자까지 태우게 되는데, 여자는 다짜고짜 말한다. “브래지어 좀 풀어도 될까요? 어디에 머물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브래지어를 벗는 거죠.” 이 갈 곳 없는 영혼들은 어쩌다 라이언 주점에 안착하게 된다. 그곳에는 주인장 클레이튼과 청년 팀뿐만 아니라 진짜 사자 마르셀도 있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사연들이 펼쳐질 차례. 마치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연상시키듯, 인물들은 서로를 통해, 사자를 통해 다시 자신의 색채를 되찾는다.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약간의 동화는 특효약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작가로 <인간 실격>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남긴 다자이 오사무는 비극적인 천재였다. 그는 대지주이자 중의원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고등학교 3학년 시절부터 줄곧 자살을 시도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다자이 오사무를 다시 읽자고 제안하고,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을 기획한 사람은 <무진기행>의 소설가 김승옥이다. 그가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번역가 선정에도 참여한 열림원의 <다자이 오사무 컬렉션> 중 <여학생>은 다자이 오사무가 남긴 14편의 단편을 모은 단편집이다. 단편의 묘미가 짜릿하게 담긴 14편은 모두 여자가 주인공으로 여자의 심리를 그려낸다. 섬세하면서 천재적인 작가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데, <인간 실격>의 명성에 가려진 작가의 다른 매력도 볼 수 있다. 작품 대부분은 여성 화자를 내세우는데, 그 묘사와 통찰력이 대단하다. 표제작인 <여학생>은 감수성이 풍부한 여학생의 하루를 따라간다. 이 단편 하나로도 이 책은 소중해진다.

 

<달의 연인>과 <이런 이야기>는 사랑이야기다. 나오키상을 수상한 작가 미치오 슈스케의 장기는 본래 미스터리다. <달의 연인>은 그의 첫 연애소설인데 도쿄와 상하이를 오가는 청춘남녀들의 일과 사랑을 그렸다. 기무라 다쿠야 주연의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달의 연인>이 드라마 세대의 사랑을 그린다면 <이런 이야기>는 영화적이다. 작가 알레산드로 바리코는 현대 이탈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겸 영화감독이다. 20세기 초. 마을에서 처음 자동차 정비소를 세운 아버지 리베로와 소년 울티모는 길에 매혹된다. 그 후로 이야기는 모두 길을 따라 진행된다. 자동차 경주로 시작해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카포레토 전장으로 향한다. 전쟁, 자동차 산업, 가족과 사랑 등 울티모의 삶은 시대를 관통하는 주요 사건들과 연결되지만, 영화 <국제시장>처럼 단순하거나 억지스럽지는 않다. 끝으로 더 많은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즐긴다면, 여기 소설로 가득한 상자를 열어보길. 이동진의 팟캐스트 방송 <이동진의 빨간책방>은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 방송으로 3년째 조회수 15만 회를 기록하는 인기 방송이다. 이동진 기자와 소설가 김중혁이 함께 소개해온 책 중 가장 호응이 높은 7편을 책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