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는 오래 기억하고 싶은 드라마 한 편을 만났다. 그리고 <미생> 안에 한석율이 있어 더 많이 울고 웃고, 행복했다는 사실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거다. 데뷔 5년 차 변요한이 한석율을 벗고 다시 출발점에 섰다.

슈트는 장광효 카루소(Chang Kwang Hyo Caruso). 셔츠는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슈트는 장광효 카루소(Chang Kwang Hyo Caruso). 셔츠는 더 스튜디오 케이(The Studio K). 

 

 

요즘은 인터뷰의 나날들이죠?
태어나서 가장 많은 인터뷰를 하고 있어요. 드라마가 많은 사랑을 받아서 저도 덤으로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빡빡한 일정이지만 드라마 촬영할 때보다는 잠을 많이 자는 편이에요. 예전에는 화보 촬영에 두려움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재미있게 느껴져요.

드라마는 끝났지만 당분간은 한석율을 놓을 수 없겠네요.
인터뷰할 때는  <미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모든 인터뷰가 끝나면 그제야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일상에서는 예전 그대로의 변요한으로 살고 있고요.

한석율이 당신에게 준 많은 것 중에는 5대5 가르마 단발도 있었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라 좀 어색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이 헤어 스타일이 아니면 연기를 못하겠더라고요. 헤어팀에서 딱 맞는 가발을 찾아줘서 가발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았어요.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미생>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다녀요.

한석율과 당신은 어떤 부분이 같고 또 다른가요?
시놉시스에서 한석율이라는 사람을 ‘현실세계에 들어온 이상주의자’라고 표현해요. 자기 스타일과 주관이 분명하면서도 가슴 따뜻한 이상주의자죠. 저 또한 스스로 이상주의자라 생각해요. 독립영화를 찍으면서도 늘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 자신감은 결국 열정과 같은 거죠. 배우를 하면서 부딪히는 많은 벽이 있었지만 자신감을 잃은 적은 없어요. 한 방을 기다린 게 아니라 꽃이 피는 시간을 기다렸어요. 천천히 피는 꽃도 있으니까요. 연기를 사랑하고, 싫어하고, 꿈꾸고, 힘들어하고 그런 감정들이 왔다 갔다 하는 중에도 그랬어요.

한석율을 연기하면서 그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있었나요?
저라면 회사 게시판에 성 대리를 고발하는 글은 쓰지 않았을 거예요. 드라마에서는 끊임없이 갈등이 있어야 하니 필요했던 부분이라 생각해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한석율과 저의 비슷한 점을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누구보다 그를 이해하고 싶었죠. 연기의 선택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저 변요한을 버리고 한석율에게 양보했어요.

 

슈트는 김서룡(Kimseoryong).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슈즈는 깔피에르(Calpierre).

슈트는 김서룡(Kimseoryong).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슈즈는 깔피에르(Calpierre). 

 

 

감정 연기를 위해 성 대리와 일부러 거리를 뒀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마지막으로 드라마에 합류하게 되면서 시간이 많이 촉박했어요. 인호 선배와 만나면 바로 촬영에 들어가곤 했죠. 서로 대사가 많다 보니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지는 못했지만 누가 먼저 집에 들어가게 되면 먼저 간다고 문자도 보낼 만큼 친하게 지냈어요.

‘저건 애드리브가 아닐까’ 싶은 연기도 꽤 있었어요. 애드리브가 아니었다면 그야말로 생활 연기를 했다는 의미겠죠. 
작가님이 정성스럽게 쓴 대사인 만큼 토시 하나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애드리브는 20부 중에 세 번 정도 했을까요? 모두가 말이 아닌 행동이었어요. 예를 들어 화가 나서 반차를 내고 나가는 와중에 안영이가 하 대리에게 혼나고 있는 걸 목격하고는 그녀에게 장난을 쳐요. 장그래에게 하트를 날리고 그를 확 껴안기도 하죠. 모두 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위로해주기 위한 애드리브였어요. 안영이와 장백기는 그런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잖아요. 그걸 표현할 수 있는 한석율인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했죠.  

촬영 중에 가장 마음을 나눈 배우는 누구인가요?
정말 모두와 친했지만 그중 한 명을 꼽자면 대명이 형이에요. 제가 속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닌데, 대명이 형이 선배이기도 하고, 서로 드라마 데뷔작이기도 해서 많이 의지했던 것 같아요. 

드라마에서는 폭탄주를 기가 막히게 말았는데 지금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당신이라면 쉽게 상상이 되지 않네요.
네. 조용히 따라주고 마시는 편이죠. 예전에 SNS에서 폭탄주 만드는 동영상을 재미있게 봤어요. 대본을 보고 그 동영상이 기억나서 제가 감독님께 해보겠다고 했죠. 감독님이 엄청 좋아하시면서 한번에 오케이를 하시더라고요. 저는 지금 배우는 단계이기 때문에 뭐든 관찰하고 기억하려고 노력해요. 누군가 저에게 하는 사소한 이야기까지도요. 그게 쌓여서 연기에 표현될 거라 믿거든요. 

많은 연극 무대에 오르고 영화를 찍었지만 드라마는 처음이었잖아요. 그 시스템에 적응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선배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어요. 다만 촬영 10일 전에 급하게 합류하게 되어 조금 두려웠죠. 그런데 막상 촬영이 시작되니 상황에 익숙해지더라고요. 스태프, 배우들이 정말 많은 힘을 줬고 서로가 시너지를 낼 수 있었어요. 대본 외우는 것 빼고는 힘든 게 하나도 없었어요.   

드라마 반응이 좋아서 현장 분위기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모두가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았어요. 미리 축배를 들지도 않았고요. 드라마 시작할 때처럼 우리만의 페이스로 쭉 가려고 했어요.

 

슈트는 김서룡. 패턴 셔츠는 레 옴므 바이 존 화이트(Les Hommes by John White). 보타이는 생 로랑 바이 에디 슬리먼 바이 존 화이트(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by John White).

슈트는 김서룡. 패턴 셔츠는 레 옴므 바이 존 화이트(Les Hommes by John White). 보타이는 생 로랑 바이 에디 슬리먼 바이 존 화이트(Saint Laurent by Hedi Slimane by John White). 

 

 

드라마 방영 중에도, 드라마가 끝난 후에도 당신에 대한 기사가 하루에도 몇 개씩 올라오고 있어요. 기사와 댓글을 챙겨 보는 편인가요?
안 보지는 않아요. 그 또한 소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만 스스로 그러한 반응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는 컨디션일 때 봐요.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날 몰아서 보는 편이죠.  

 특히 독립영화에 집중했던 이유가 있나요?
저는 독립영화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도 성장하고 있어요. 처음으로 저를 받아준 쪽이 독립영화거든요. 처음엔 그게 이유였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독립영화, 상업영화를 굳이 구분 지을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마음을 동하게 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좋은 영화가 너무나 많아요. 그곳에서 많은 걸 배웠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에요. 물론 <미생>처럼 좋은 드라마라면 드라마도 마다할 리 없죠.
어떤 시나리오에 매력을 느끼나요?
막연하지 않은 시나리오요. 제가 보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제가 담을 그릇이 되는 작품, 그 이상을 뛰어넘는 작품도 도전할 만하죠. 하지만 제가 이해할 수 없고 어떠한 메시지도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아요. 

중학교 시절, 말을 더듬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중학교 때 연극을 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말을 더듬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무대 위에서 연극하는 저는 전혀 말을 더듬지 않고 있었죠. 그런 제 모습이 놀랍고 기뻤어요. 그 길로 아버지에게 연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너무 심하게 반대하시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그 반대가 저를 더 간절하게 만들었어요. 아버지의 반대로 연기에 대한 열망이 더 커졌고, 그야말로 연기를 꿈꾸게 된 거죠. 만약 그때 바로 연기를 시작했다면 일찍 지쳐버렸을 수도 있어요. 아직까지도 아버지에게 감사하는 부분이에요.

 최근, 아버지가 배우로서의 당신을 인정해주셨다죠?
“드라마 잘 봤다. 드라마가 참 좋더라”라고 먼저 말씀하셨어요. 전 그 말이 참 좋았어요. 제 연기를 칭찬하기보다 드라마를 칭찬하는 건 더 큰 산을 보셨다는 의미니까요. “연기를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5년 동안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시간이 보이더라. 고생했고 앞으로도 축복한다. 그리고 항상 겸손해라”라고 말해주셨어요. 전화를 끊고 나서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났어요. 그러고는 크게 웃었어요. 남자 대 남자로서 꿈을 존중해주고 응원한다는 것이 정말 기뻤어요.

 

셔츠, 재킷, 팬츠는 모두 에트로(Etro). 슈즈는 닥터마틴(Dr.Martens).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셔츠, 재킷, 팬츠는 모두 에트로(Etro). 슈즈는 닥터마틴(Dr.Martens). 타이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얼루어> 페이스북으로 당신에게 궁금한 질문을 받으니 많은 팬들이 이상형을 묻더군요. 한 인터뷰에서는 이상형이 없다고 답했고요.
예전에는 예쁜 여자를 좋아했어요. 어느 시절엔 섹시한 여자가 좋고, 어느 시절엔 청순한 여자가 좋고 여느 남자들이 그렇듯 왔다 갔다 했어요. 그런데 나이가 드니 그런 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이 잘 맞고 서로의 일과 가치관을 존중하는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사랑을 해본 여자였으면 좋겠어요. 사랑이 얼마나 값진 줄 알고, 아낌없이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연애할 때에는 어떻게 변하나요?
잘 맞춰주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 편이에요. 한 여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의 역할도 소화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이건 사랑에 대한 저의 중요한 가치관이기도 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오래 마음에 두고 있다가 확신이 들었을 때 적극적으로 다가가요.
  
여자친구에게만 보여주는 애교 같은 것도 있나요?
없어요. 모르고 하는 건 있을 수도 있는데 일부러 작정하고 하는 건 생각만 해도 낯간지러워요. 만약 상대방이 그걸 알아채고 어떤 반응을 한다면 100m 전력질주로 도망가버릴 거예요. 

올해로 서른이 되었어요. 변화를 느끼나요?
나이 드는 게 싫다가도 제가 원하는 꿈을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하고 싶으니까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20대 때의 치열함을 넘어왔고 조금은 여유가 생겼죠. 좀 더 유연하게 살아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당신이 생각하는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어떤 기준을 세우면 거기서 멈춰버릴 것 같기도 하고요. 분명한 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끝없이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기대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사랑을 받으려 하지 않고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난 5년, 묵묵히 연기를 하는 동안 많이 외로웠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에는 연기에 빠져서 허우적거렸어요. 연기가 제 인생의 중심이었거든요. 연기는 재능에 경험이 더해지면 누구든 성장할 수 있죠. 경험이 쌓이니 연기는 성장하는데 변요한이 멈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외로웠어요. 그때부터 밖으로 나가서 취미 생활을 즐겼어요. 볼링도 치고 탁구도 치고 낚시도 하고요. 그런데 그런 취미 생활도 자연스럽게 연기와 이어졌어요. 탁구는 집중력과 순발력을 길러주고 낚시는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만들어줬어요.  

 

코트와 팬츠는 김서룡. 송치 카디건은 더 쿠플스(The Kooples).

코트와 팬츠는 김서룡. 송치 카디건은 더 쿠플스(The Kooples).

 

 

연기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작품을 통해서 안 쓰던 근육이나 제가 못 봤던 표정을 볼 때가 있어요. ‘내가 저런 표정을 어떻게 지었지?’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 하고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죠. 인생을, 영화를 담아내는 어떤 한 순간의 표정을 보여주는 선배들을 보는 것도 짜릿해요. 언젠가 나도 저런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연기하고 있어요.

주연을 맡은 독립영화 <소셜포비아>가 곧 개봉해요. 당신의 이름만 보고 영화관을 찾는 이들이 많을 것 같네요.
정말 재미있을 거예요. 자신 있어요. 모든 배우에게는 책임감이라는 게 있을 거예요. 저의 경우에는 그게 독립영화인데 저로 인해 누군가 이 분야에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된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죠. 

지난 6개월 동안 쉬지 않고 달렸어요. 여유가 주어진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건 뭔가요?
친한 친구들과 어딘가로 떠나고 싶어요. 가까운 곳으로 가서 낚시도 하고 고기고 구워 먹고 영화도 보고 자고 싶을 때 자고, 그렇게 소소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친한 친구들도 배우들인가요?
연기 처음 시작할 때 만난 친구들이에요. 제게 최고의 팬이자 안티죠. 저를 가장 많이 응원하고 비난하기도 해요. 그 모든 것이 사랑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다 받아들여요. “무엇 때문에 연기하는지 잊지 마라.” “항상 잠잠하자.” 우린 버릇처럼 그런 말들을 해요.

늘 이렇게 진지해요?
배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건 휴머니즘과 유머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재미있지 않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기 힘들다고 생각해요. 전 지금 당장이라도 기자님을 웃길 수 있어요. 다음에는 놀이터에서 그네 타면서 인터뷰해요. 기자님이 올라갈 때 질문하세요. 내려오면 제가 대답할게요. 이거 집에 가다가 생각하면 엄청 웃길 거예요.

그래요. 다음에는 놀이터에서 보는 걸로 하죠. 올해 첫날, 자신에게 어떤 약속을 했나요?
저를 많이 사랑하는 한 해를 보내겠다고 다짐했어요. 예전에는 저보다 남을 더 사랑해서 속상하고 외로울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저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면서 살고 싶어요. 하고 싶을 일을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자유롭게 많은 걸 느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