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공연과 창작극이 돋보인 올해, 그 한복판에는 김수로 프로젝트의 수장 김수로가 있다.

작은 공연과 창작극이 돋보인 올해, 그 한복판에는 김수로 프로젝트의 수장 김수로가 있다. 성황리에 막을 내린 <데스트랩>, 업그레이드되어 돌아온 <유럽 블로그>와 <이기동 체육관> 그리고 <블랙 메리 포핀스>까지. 올 한 해 가장 바빴던 그를 <유럽 블로그>의 리허설 현장에서 만났다. 항상 자신감 넘쳐 보였던 유명 배우는 담담히, 그리고 겸허하게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의 흥행이 주춤한 한 해였던 만큼 소극장과 중극장을 무대로 삼은 김수로 프로젝트의 활약이 더욱 돋보였다. 3년간 무려 10개의 신작을 선보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뭔가?

공연을 보는 행복을 선사하고 싶다는 사명감이 있다. 우리나라는 공연이 배우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특성이 있는데 스타배우에 의존하다 보면 공연의 규모와 마케팅 비용이 자연히 커지게 되고, 할 수 있는 작품의 폭은 좁아진다. 배우의 팬이 아니라 극단과 회사의 개념을 혼용한 ‘김수로 프로젝트’의 팬을 만들면 할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아질 거라 생각했다.

작은 공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연예인이다 보니 요란하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성격상 작더라도 오래, 견고하게 해나가기로 결정했다. 하나의 작품에 올인했다가 잘 안 되면 회사가 휘청거릴 수도 있으니까. 외국에서 본 좋은 공연들, 소극장 150~300석 규모의 소개되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김수로는 매우 대중적인 배우다. 그런 대중적인 감각이 공연

제작에도 도움이 되나? <유럽블로그> 같은 여행 시리즈는 대중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데스트랩>, 송스루 뮤지컬인 <머더 발라드>처럼 대중적이지 않은 작품도 많고, 실제로도 그런 작품을 좋아한다. 초연을 앞둔 <발레선수>도 결코 대중적이지 않다. 지금 구상하고 있는 작품 중에서도 ‘이건 마니아만 보러 오겠다’는 작품이 있다. 하지만 그런 공연을 우리가 올림으로써 새로운 장르를 국내에서 시작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작품인 <밑바닥에서>는 고전극이었고 미스터리 호러물인 <아가사>, <블랙 메리 포핀스>, 그리고 춤연극인 <발레선수>까지 공연의 장르도 다양하다.

무대에서 할 수 있는 공연 예술이라면 다 해보고 싶다. 처음부터 다양하게 할 수 있는 만큼 많이 하는 게 목표이기도 했고. 완벽하게 일년에 하나를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한 해에 네다섯 개를 해서, 그중 한두 작품이 흔들리더라도 나머지 작품으로 힘을 받아서 계속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지금도 직원 한 명이 스페인에 작품을 알아보러 가 있고 내년 1월에는 일본 세계 연극제에 갈 예정이다. 앞으로도 깜짝 놀랄 작품이 많을 거다.

<댄싱9 시즌2>에 블루아이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게 계기가 되어 춤연극을 기획한 건가?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을 때나, 시드니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도 바로 춤 학원을 끊었을 정도로 춤을 좋아한다. 12월에는 <댄싱 9>의 최수진이 감독을 맡고, 이윤희, 홍성식 등 <댄싱 9> 출연자를 비롯 9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얼론(Alone)> 공연을 선보일 예정이다.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년이 지나면서 <유럽 블로그>, <블랙메리포핀스> 등 앙코르 공연을 하는 작품들도 늘어나고 있다. 김수로 프로젝트의 팬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느끼나?

처음 시작할 때는 ‘금방 하다 떠나겠지’ 같은 업계의 싸늘한 시선이 있었다. 올해 비로소 관객이 내 편이 된 것 같다. 커튼콜 때 다들 기다렸다가 박수를 쳐주는데 청룡영화제의 레드카펫이 부럽지 않더라.

배우 김수로의 팬과 김수로가 제작한 공연을 보러 오는 팬의 층은 다를 것 같다.

완전히 다르다. 배우 김수로의 팬은 공연을 많이 와야 두 번 정도 오고, ‘닥치고 본방 사수’하는 정도지만 공연 팬은 매 회차 오지 않나? 공연이라는 장르에 대한 애정 자체가 다른 것 같다.

국내 공연 관객층의 80% 이상이 여자지만 김수로는 남자들이 더 좋아하는 배우다. 여심을 사로잡는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나? 프로젝트 이름이 ‘강동원 프로젝트’였다면 ‘김수로 프로젝트’보다 여자 팬들한테 어필했을텐데, 우리나라 남자들은 공연을 ‘드럽게’ 안 본다. 성공이나 미래에 대한 압박 때문에 여유가 없는 건지….

올해 공연 시장에 대해 제작자로서 느낀 점을 물어봐도 될까?

시장성에 둔감한 편이다. 어떤 게 잘되는지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거기에 너무 얽매이고 예술이 아닌 계산을 하게 될 것 같아서다. 비수기와 성수기도 구분하지 않고 공연을 계속한 것도 그런 이유다. 그렇게 하다가 잘 안 되어도 ‘그것 봐라’ 소리 한 번 들으면 되는 거지 뭐.

제작자로서 자신의 강점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배우의 관점을 가지고 공연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 이름이 알려져 있다 보니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속도도 빨랐던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관객 기대치가 조금씩 올라가다 보니 새로운 공연을 기획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 실망하면 관객이 오지 않을 텐데, 부담감이 자꾸만 커진다고 해야 하나.

자신 있게 장점을 말할 줄 알았더니 힘든 점만 이야기했다. 정말 잘 모르겠다. 공연을 보러 와주는 관객들이 고마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