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끌 모아봤자 티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매달의‘티끌’같은 소비는 태산 같은 카드값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제대로
아껴보자고 생각했다.

지금 눈앞에 놓인 책의 제목은 다름 아닌 <돈이 모이는 생활의 법칙>이다. 저자는 ‘짠돌이 카페의 슈퍼짠 9인. 회원 수 78만 명의 다음 카페 ‘짠돌이’에서도 일종의 명예 회원인 ‘슈퍼짠’들이 목돈을 모으는 과정을 적은 책이다. 책을 펴니 달콤한 목차가 펼쳐졌다. ‘6개월 만에 카드값은 절반으로, 자기계발은 두 배로!’, ‘28살에 1억 부자 되다!’, ‘골드미스, 그 여자가 사는 법!’ 등등, 과연 슈퍼짠 9인의 파워는 어마어마했다. 고백하자면 지금으로부터 6년 전, 나는 짠돌이 카페를 이미 기웃거렸다. 당시 내가 엿본 짠돌이의 생활은 처절했다. 외식은 일절 금지였고, 사람도 잘 만나지 않았으며, 전화조차 먼저 거는 법이 없었다. ‘이렇게 사느니 하고 싶은 것 할래’가 당시 심경이었다. 6년 전에는 이렇게 아끼지 않더라도 나이 서른이 되면 5천만원을, 어쩌면 1억을 모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하지만 서른을 앞둔 지금, 나는 1억원은커녕 적금 하나를 유지하는 데도 허덕이고 있다. 그래서 검색창을 열고 검색어를 입력했다. ‘짠돌이 카페’.

 

짠돌이를 엿보다 대체 얼마 만에 하는 인터넷 카페 가입인가! 가입 후 등업신청 방법에 관한 공지글을 클릭했다. 먼저 ‘소금기 테스트’를 해야 했는데 질문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장바구니를 들고 다닌다’, ‘택시 기본 요금 거리는 걸어 다닌다’ 같은 생활 항목부터 ‘공과금을 연체하지 않는다’, ‘연말정산을 잘 챙긴다’ 같은 절세 관련 항목, 내복, 문풍지 사용 등 에너지 절약과 관계된 문항도 있었다. ‘현금서비스를 받지 않는다’, ‘사채를 쓰지 않는다’는 질문까지 지나 나는 두 번째로 낮은 등급인 꽃소금 등급 임이 판명됐다. 평가는 냉정했다. “당신은 늘 돈이 부족한 사람, 직장 다니며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의 경제흐름도 파악하지 못하므로 가계부를 열심히 작성하고 ‘한 달 10만원 살기’ 코너에 매일 올 필요가 있다”. 마침 링크가 걸려 있던 ‘한 달 10만원 살기’ 게시판으로 향했다. 하루에 100개 가까운 글이 올라오는 게시판은 꼭 한 달에 10만원을 쓴다기보다는 가계부를 올리고, 지출을 반성하며 마음을 다잡는 곳인 듯했다. 돈을 하나도 쓰지 않은 무지출일을 기념하는 글도 보였다. 아무것도사지 않다니! 이들이야말로 진정한 <노 임팩트 맨>이다.

 

무엇부터 아낄까? ‘월 2회 이하 외식’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스마트폰 대신 알뜰폰을 쓰라’는 말도 지킬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아낄 수 있는 것 은 많다. 택시를 덜 타고, 간식을 줄이고, 충동적으로 옷을 사지 않거나 약속을 잡지 않는 것 등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카페를 기웃거리다 보니 꽤 괜찮은 절약 방법도 눈에 띄었다. 자동차세와 지방세를 1월에 미리 납부하면 10%의 감면 혜택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일반 중형차의 자동차세가 50만원이라고 할 때 10%면 제법 큰 금액이다. ‘승용차요일제’에도 참여하면 추가로 5%를 더 감면받아 7~8만원 정도는 아끼게 된다. 그 정도면 꽃등심이 2인분이다! 포인트 적립 앱도 다운받았다. 얼마 전 다른 통합 적립 앱과 대형 쇼핑몰의 포인트까지 합산 하는 앱이 나왔다는 누군가의 글을 읽었기 때문이다. 구매액에 대한 포인트뿐 아니라 앱을 통해 음식을 시켜 먹거나, 제휴 광고만 봐도 포인트가 바로 쌓이는 앱의 세계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평소 자주 들락거렸던 베이커리 체인점의 포인트가 2주 만에 1천 점 넘게 쌓이는 것을 보면서 생각했다. 난 그동안 대체 얼마나 많은 포인트를 버리며 살았던 걸까? 

 

절약의 미덕 짠돌이, 짠순이의 절약 노하우를 살피다 보면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책에 실린 한 부부의 사례를 보자. 이들은 생활비를 절약하기 위해 절전용 멀티탭을 설치했고, 실내에서 두툼하게 옷을 입어 난방비를 아꼈으며, 버리지 않고 모아둔 물은 화장실 청소할 때 사용했다. 카페에 올라온 절약 노하우인 선풍기와 에어컨은 타이머 설정을 이용하기, 틈틈이 집 안 정리를 해서 갖고 있는 물건 파악하기 등은 곧바로 ‘친환경적으로 사는 법’ 기사에 붙여쓰기를 해도 이상할 것 없는 지침들이었다. ‘외식 금지’라고 하면 ‘뭘 저렇게까지…’ 싶지만 사실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것은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그 밥상이 비록 유기농 식재료와 샐러드를 올린 <킨포크>식 밥상이 아닐 뿐이다. 모두가 소비를 지향하고, 패스트 패션을 입는 것을 쿨하다고 느낄 때, 이들은 상설 할인 매장에 가서 같은 가격에 좀 더 제대로 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산다. 소비하지 않는 삶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자유로워 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누가 말했나! 물론 ‘짠돌이’에게는 목돈을 모으겠 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다. 쿠폰과 세일 현장을 쫓아다니고, 매달 적금에 가입하며, 보험을 비교 분석하는 삶을 자유롭다고 부르기는 힘들지 모른다. 다만 절약이라는 단어가 본디 갖고 있는 미덕을 게시물 페이지를 넘기는 사이사이 느낄 수 있었다. 며칠 전, 점심과 저녁 모두 식사를 동반한 행사와 미팅이 잡힌 날이 있었다. 마침 그날은 지하철과 버스만 이용해 출근했고, 식사를 배불리 했기에 음료수나 간식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깨달았다. 교통카드 사용액을 제외하면 오늘이 내겐 ‘무지출일’이라는 사실을! 야근 후 집에 가는 길에도 피곤함을 무릅쓰고 버스를 탔다. 이미 원래 타던 버스는 끊긴 시간이라 두 정류장 전에 내려 걸어야 했지만 밤 공기는 더할 나위 없이 상쾌했다. 무지출일이라니, 짠순이가 되는 첫 단계를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