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 리사이틀을 앞둔 마에스트로 정명훈.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대가 아닌 피아노 앞에 앉는다. 작년 12월, 독일의 명레이블 ECM을 통해 발매한 그의 첫 피아노 앨범 이후 1년여 만에 성사된 귀한 연주 무대이다. 그는 피아노 앨범 발매에 앞서 이런 말을 남겼다. “예순이  되면 나는 일로서의 음악을 그만두고 진짜 음악을 하고 싶었다. 내게 피아노는 진짜 음악이다.”   

 

올해로 62세를 맞는 정명훈의 음악인생은 5세에 피아노로 시작했다. 15세 때 정트리오로 누나 정명화, 정경화와 함께 미국과 유럽에 연주여행을 다녔고, 21세가 되던 1974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2위에 오르며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날렸다. 그러다 1976년 미국 뉴욕청년심포니 지휘를 맡아 포디엄에 올랐고, 1979년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로 본격적인 지휘자로서 커리어를 쌓아갔다. 베를린 필하모닉, 빈 필하모닉,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런던  심포니,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뉴욕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 유럽과 미국 등지의 세계 최정상급 교향악단을 지휘했고, 뉴욕 메트로폴리탄과 파리 바스티유, 라스칼라, 빈 슈타츠오퍼를 비롯한 세계 유수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지휘를 맡으며 세기적인 지휘자로 거듭났다. 프랑스 <르 몽드>지가 ‘영적인 지휘자’라고 극찬한 정명훈은 이 시대의 가장 깊은 존경과 추앙을 받는 지휘자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러니 우리가 ‘피아니스트 정명훈’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에 익숙해진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지난해 그의 둘째 아들 정선이 독일의 명레이블 ECM에 프로듀서로 입문하면서 정명훈의 첫 피아노 앨범 <정명훈, 피아노>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 음반은 1만 장 넘게 팔려나가며 정통 클래식 음반으로는 보기 드문 플래티넘 디스크를 기록했고, 잠시 잊고 있었던 피아니스트 정명훈으로서의 존재를 확인시키기에 충분했다. 정명훈은 피아노 앨범의 수록곡에 대한 이야기를 그가 직접 쓴 라이너 노트에 잔잔한 어조로 풀어내고 있다. 둘째 손녀 루아(Lua, 달)에게 선물하는 드뷔시의 ‘달빛’을 비롯해, 누나 정경화에게 바치는 쇼팽의 녹턴 c#단조, 그리고  큰아들의 결혼식에서 연주한 슈베르트 즉흥곡 G플랫 장조 등 가족에 대한 사랑이 묻어나는 곡으로 가득하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연주한 ‘가을노래’, 꿈속에서의 내밀한 대화라고 표현한 쇼팽의 녹턴과 슈만의 작품들,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모차르트의 ‘작은별 변주곡’까지 거대한 오케스트라를 움직이는 마에스트로가 지휘봉을 내려놓고 들려주는 고백과도 같은 이 음악들은 그의 인생에 중요한 순간을 함께한 반짝이는 소품이기도 하다. 100여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만들어내는 웅장한 사운드로 전 세계 음악인을 감동시켜온 마에스트로 정명훈. 그가 들려주는 피아노 소리는 분명 그의 내면의 소리이자 그 자신의 목소리이다. 숨소리 하나까지도 함께하는 거장의 음악적 고백의 순간을 우리는 이번 리사이틀 무대에서 함께할 수 있다. 무대는 오는 2014년 10월 5일 창원 성산아트홀과 10월 12일 대구 시민회관을 시작으로 12월 1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2월 18일 대전  예술의전당, 12월 20일 고양 아람누리로 예정되어 있다. 서울 공연의 개런티 전액은 2008년 설립한 비영리재단 미라클오브뮤직에 기부된다. 지휘대가 아닌 피아노 앞에 앉은 정명훈을 곧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