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넓고 먹을 것은 많다. 그리고 식문화는 그 지역의 문화를 짐작할 수 있는 핵심적인 열쇠다. 그리스의 매력에 흠뻑 빠진 그가 <얼루어>를 위해 상을 차렸다. 그 식탁에는 그리스의 역사, 그리고 문화가 있었다.

홍대 앞 그릭 조이의 전경무 오너셰프는 본디 공대 출신의 엔지니어였다. 20년 전, 적성에 맞지 않은 직장을 그만두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떠난 토론토에서 그리스 음식의 세계에 눈떴고, 동양인이 운영하는 그리스 음식전문점이라는 편견을 깨고 현지에서 탄탄히 자리 잡았다. 한국에 돌아와 10년 전, 그릭 조이의 문을 연 이후에도 그리스로 미식 순례를 떠나는 등 요리에 대한 열정을 멈추지 않는다. 그가 말한 그리스 음식을 즐기는 방법.

 

– 날씨와 음식 그리스 하면 자연스레 산토리니 같은 해안가 풍경이 떠오르지만, 실제로 그리스 국토의 70퍼센트는 산악지대다. 신화 속 아테네 여신이 그리스에 선물했다는 올리브도 척박하고 건조한 땅에서 자라는 튼튼한 나무다. 이처럼 산이 많고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는 요거트와 치즈가 발달한 이유가 됐다. 대규모 목축업을 하기 어려운 환경이었기에 산에서도 기를 수 있는 양과  염소 등 가축의 젖이 그리스 사람들의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되었고, 오래 보관하고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요거트와 치즈 제조법이 발전하게 된 것이다. 

 

– 그리스의 도가니탕 그리스 정교 신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그리스에서 명절은 부활절, 크리스마스, 그리고 성인들의 축일이다. 이런 기념일이 되면, 고기가 귀한 그리스에서는 제사장과 사제가 제물로 바치는 소와 양의 좋은 부위를 먹고 남은 부위는 마을 사람들이 나눠 먹는 전통이 있었다. 여러 사람이 고기를 나눠 먹으려면 고기 뼈를 우려내야 했고, 소머리탕, 양머리탕은 물론 부위를 전부 활용한 내장탕, 도가니탕이 서민 음식으로 발달했다. 지금도 아테네 사람들은 뜨끈한 도가니탕으로 해장을 한다. 우리처럼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게 아니라 진한 국물에 빵을 찍어 먹는 모습이긴 하지만! 

 

– 그리스 사람들은 채소를 사랑해 그리스 사람들에게 고기는 인기 있는 식재료는 아니었다. 요거트와 치즈 외에도 단백질을 섭취하기 위해 달걀을 이용한 오믈렛 요리나, 스튜와 샐러드에 콩을 잔뜩 넣기도 했고, 채소와 생선을 소금에 절여 먹는 음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목축업이 발달한 인근 국가로부터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수블라키의 재료 역시 바뀌었다. 닭, 양, 소고기, 돼지고기가 수블라키의 주재료로 등극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1 우조 스코틀랜드에 위스키, 러시아에 보드카가 있다면 그리스에는 우조가 있다. 도수 40도가 넘어 독주인 스피릿으로 분류되는 우조는 투명한 빛깔이 우리나라 소주와도 닮았다. 뚜껑을 열면 허브 향이 강하게 풍기는데, 이는 포도껍질과 팔각, 고수, 민트, 라임꽃을 원료로 하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에서만 생산하며, 식전주 또는 칵테일로 많이 쓰인다. 얼음이나 물을 섞으면 우윳빛으로 변하는 신기한 술이다.

 

2 도마데스 예미스타 그리스에는 호박, 가지, 파프리카 등 채소의 속을 파낸 후 올리브유와 함께 양파, 마늘 등으로 양념한 쌀을 채워 넣고 오븐에 구워 먹는 요리가 많다. 이런 요리를 ‘예미스타’라고 하는데, ‘도마데스 예미스타’는 속을 채운 토마토라고 생각하면 된다. 짭잘하고 고소하면서 새콤함까지 느낄 수 있는 요리로 본격적인 식사 전 입맛을 돋운다.

 

3 수블라키 그리스 사람들은 귀여운 구석이 있다. 기다란 꼬치 요리를 ‘수블라키’, 즉 ‘작은 칼’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해물과 채소는 물론이고 돼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등 원하는 재료를 꽂아 그릴에 굽는 수블라키는 납작한 피타 브레드와 차치키 소스를 곁들여 먹는다. 발효가 잘된 요거트로 만든 차치키 소스는 시큼하고 고소한 풍미를 가진, 그리스를 대표하는 소스다.

 

4 그릭 요거트 그리스 음식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요거트다. 원유를 농축해 만들어 일반 요거트보다 단백질과 칼슘 함유량이 풍부한 그릭 요거트는 세계적인 건강 식품이기도 하다. 올리브유와 함께 신선한 토마토, 혹은 오이 조각을 넣어 즐긴다. 

 

5 무사카 그리스의 대표적인 전통 오븐 요리로 채소와 고기의 훌륭한 조화를 느낄 수 있다. 바닥에 호박, 가지, 감자를 잘라 넣은 뒤, 그 위에 잘게 간 쇠고기와 토마토를 섞은 쇠고기 소스와 베사멜 소스를 뿌려 오븐에 구워 먹는 요리다. 크림 소스의 일종인 베사멜 소스는 이탈리아, 터키를 비롯한 지중해 문화권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스인데, 그리스 사람들은 여기에 계피를 넣어 알싸한 맛을 더한다. 

 

6 멜리차노 살라타 가지는 토마토, 올리브와 함께 그리스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채소다. 호박처럼 동그란 가지가 일반적이지만 우리 가지와 닮은 가지도 있다. 가지를 죽처럼 되직하게 갈아서 피타 브레드에 소스처럼 올려 먹는 것이 바로 멜리차노 살라타다. 마늘, 레몬, 올리브유, 파슬리 등을 갈아낸 가지 속과 섞은 요리로 독특한 향과 풍미를 자랑한다. 언뜻 낯선 음식 같지만 한국 사람 입맛에도 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