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더 매끈한 피부, 몰라보게 홀쭉한 허리를 만들어주는 리터칭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 것인가, 말 것인가. 인스타그램으로 일상을 기록하고, 페이스북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우리에게 사진 보정은 옵션이 아닌 필수인지도 모른다.

“있지, 얼굴만 따로 갖다 붙일 수도 있어.” 촬영장에서 화보 사진을 모니 터링하던 사진가가 슬쩍 말을 건넸다. 이 컷은 다리가 어색하네, 이 컷은 얼굴이 못났네 하며 사진이 넘어갈 때마다 잔소리를 하는 에디터의 입을 틀어막은 한마디였다. 그리고 그 말에는 퍼즐을 조립하듯, 리터칭으로 바꿔 끼울 ‘소스(Source)’는 충분하니 이제 다음 컷으로 넘어가자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었다. 완벽을 추구하는 요즘 시대에 허점이 있는 사진을 완벽하게 다듬는 디지털 리터칭은 어느덧 패션 사진 작업의 당연한 과정이 되었다. 물론 얼굴을 통째로 바꾼다거나, 서로 다른 상반신과 하반신을 끼워 맞추는 등 보정이 아닌 합성을 너무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진가를 만나면 그의 기본 역량부터 의심하게 되지만 말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세상에 공개되는 모든 상업적 사진이나 화보는 리터칭 단계를 거친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요즘 해외의 경우, 사진을 찍는 사진가보다 보정을 맡은 리터처가 더 많은 돈을 벌고 있으니 패션 콘텐츠 제작에서 리터칭은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는 결코 패션 업계의 일만도 아니다. SNS 계정에 일반 사용자 들이 올리는 상당수의 사진 또한 리터칭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간단하게는 색감을 조정하는 필터(Filters)부터 피부를 매끄럽게 하는 블러 (Blur), 얼굴을 갸름하게 하는 리퀴파이(Liquify) 등 사진 편집 앱이 기본으로 갖추고 있는 기능들은 이미 웬만한 컴퓨터 프로그램 못지않은 데다 사용법은 날이 갈수록 간편해진다. 유명 여배우의 잡지 표지만큼이나 셀피 한 장이 온라인 세상에 공개되기 전 거칠 수 있는 리터칭의 단계 또한 무궁무진하게 많다. 그렇게 리터칭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의느님’보다 위대한 ‘포샵님’

사진의 역사는 1988년 어도비(Adobe)사가 개발한 그래픽 편집 프로그램인 포토샵(Photoshop)의 등장으로 완전히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원래 사진이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의 한 순간을 포착하고 기록하는 의미가 컸는데, 포토샵을 통해 다양한 합성과 보정이 가능하게 되면서 완벽 추구라는 새로운 목적을 가지게 되었다. 즉 그저 평범한 일상이 아름다운 일상으로 기록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고 이후 수많은 사진 보정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출시된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포토샵을 줄여 ‘포샵한다’라는 단어가 탄생하고 리터칭을 전문으로 하는 ‘리터처’라는 직업이 생기며 패션계는 그 어느 때보다 다양하고 새롭고 완벽한 비주얼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리터칭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다양한 앱으로 손안에서 쉽게 사진을 보정하고, SNS로 금방 친구들과 공유할 수 있으니 리터칭은 ‘좋아요’에 목마른 요즘 세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요소가 되었다. 밋밋한 사진에 따뜻한 색감을 더하고 구겨진 옷을 깨끗하게 다리고, 눈 밑 다크서클을 시중에 출시된 그 어느 컨실러보다 확실하게 커버해주는 것이 바로 리터칭의 묘미. 프로그램을 열어 기능을 실행할 때마다 사진 속 내 모습이 점점 예뻐지는 것을 실시간으로 본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외모의 아쉬운 한 부분을 기대치만큼 수정할 수 있지만, 성형수술처럼 실패에 대한 위험은 따르지 않는다는 것 또한 리터칭의 큰 매력이다. 오히려 잦은 성형수술로 망가진 얼굴조차 다시 자연스럽게 되돌릴 수 있으니 의사보다 포토샵이 더 든든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스타일을 발전시키고, 세월마저 돌려놓는 리터칭은 우리가 늘 꿈꾸던 아름다움을 실현해주는 좋은 도구이지만 때로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한다. 아름다움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한 패션 블로거의 고백이 화제가 되었는데, 뉴욕에서 활동하는 다나 서차우(Dana Suchow)는 블로그에 ‘포토샵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진들’이라는 제목의 포스팅에 자신의 리터칭 전후의 사진을 다수 올렸다. 날이 갈수록 치열해지는 패션 블로거들의 경쟁에서 그녀 역시 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자 선택한 것이었겠지만 약 1년의 리터칭 이후 돌아온 건 커져만 가는 열등감과 괴로움 뿐. 그녀는 미국 <하퍼스  바자>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복부를 살짝 줄이고, 여드름을 몇 군데 제거한 것밖에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제게 아랫배와 피부는 평생을 괴롭혀온 콤플렉스였어요.” 패션 블로거였지만 스타일에 대한 고민은 미미했다. 리터칭으로 인한 완벽한 외모에 대한 집착만 남았다.

리터칭 없이 산다는 것

과도한 리터칭은 자기 자신을 적으로 만든다. 스스로 외모의 단점을 찾아 나서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끝없는 자기 혐오의 고리가 시작된다. 또 일반적인 외모에 대한 왜곡된 기준이 생기기도 한다. 멈춰야 할 때를 모르고 “더 날씬하게! 더 길게!”를 외치다 탄생한 리터칭 괴작들은 ‘Photoshop Fails’ 같은 제목을 달고 블로그와 온라인 매거진 사이트에 자주 올라오는데, 모델 필리파 해밀턴의 몸을 너무 날씬하게 만들어서 머리 둘레가 엉덩이 둘레보다 더 커진 2009년 랄프 로렌의 캠페인 이미지라든가 데미 무어의 골반이 사라져버린 미국판의 커버 이미지는 리터칭 실패작의 고전으로 몇 년이 지난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곤 한다. 

기이하게 변형된 사진에 반기를 들고 나선 건 다름 아닌 셀러브리티들이 었다. 리터칭으로 인해 뜻하지 않은 굴욕과 왜곡된 결과물에 상처받은 그들은 스스로 과도한 리터칭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여름 H&M의 매장과 쇼윈도를 뜨겁게 달군 비욘세는 여름 컬렉션 모델로 선정되어 촬영을 마치고 난 뒤, 슈퍼모델처럼 날씬하게 수정된 사진을 보고는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언제나 당당한 디바의 이미지에 과도한 리터칭이란 난센스였다. 당장 사진을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불호령에 H&M은 따를 수밖에 없었고, 풍만해서 섹시한, 그래서 브랜드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캠페인 이미지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평소 모델들의 인권이 나 패션계의 악습을 타파하는 데 관심이 많은 모델 코코 로샤도 최근 <얼루어>와의 촬영 현장에서 리터칭이 불러일으키는 불쾌함에 대해 토로했다. 과거 브라질의 한 매체 표지 촬영에서 그녀는 시스루 드레스 아래에 분명 슬립을 입고 있었지만 완성된 이미지는 슬립을 교묘하게 지워 마치 맨살을 드러낸 것처럼 조작되어 있었다고 한다. 본의 아니게 세미 누드 사진을 찍게 된 그녀는 이후 촬영이 있을 때마다 리터칭의 범위에 대해 관여하게 되었고, 실제로 그녀와 촬영하기 전 전달받은 계약서에는 “모델의 몸을 함부로 리터칭하거나 누드 혹은 세미 누드처럼 보이게 만드는 사진 보정을 일절 금지한다”는 조항이 명시되어 있었다. 사실과 다른, 남의 편의에 의한 리터칭을 결코 허락하지 않겠다는 의지였다.     

킴 카다시안은 한 잡지사에서 실수로 보정 전 사진을 온라인에 노출해 본인의 진짜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는데, 오히려 담담하게 대응해 화제를 모았다. “난 내 몸이 좋아요.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잘됐네요. 이제 잡지에 등장하는 연예인이 꼭 완벽하지만은 않다는 걸 다 알게 됐으니까 요.” 물론, 보정 전 사진의 그녀는 허벅지가 굵고 피부가 얼룩덜룩하긴 해도 여전히 예뻤다. 카니예 웨스트를 당장 귀가하게 만든, 셀피 역사의 한 획을 그은 그녀의 엉덩이 사진에 곁들인 해시태그 또한 ‘#NoFilter’였다는 걸 감안하면 그녀는 애초부터 리터칭에 기댈 생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시도 때도 없이 파파라치의 플래시 세례에 시달리는 그녀에게 이 사고는 대중들의 기대로부터 일종의 해방감을 안겨준 것 같았다. 때로 사진 보정을 거치지 않는다는 건 자신감과 우월함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 압솔뤼 라인의 새로운 립스틱 제품을 선보인 랑콤의 경우에도 페넬로페 크루즈를 모델로 내세운 광고 이미지에 리터칭이 전혀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사 제품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고, 배우 케이트 블란쳇은 몇 년 전 <인텔리전트 라이프> 지의 표지에 아무런 리터칭을 거치지 않은 자신의 ‘진짜’ 모습으로 등장했다. 시드니 극단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새롭게 임명되며 자신의 커리어와 인생에 대한 인터뷰가 실린 잡지에서 굳이 완벽한 외모에 집착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42세 의 나이가 고스란히 보이는 그 표지에서 케이트 블란쳇은 어떠한 이미지로 만들어진 스타이기보다 베테랑 배우이자 세 아이의 엄마, 그리고 단단 한 커리어를 다진 말 그대로 ‘현명한 인생을 사는 여자’처럼 보였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브래드 피트가 있다. 2009년 미국의 2월호 표 지를 장식한 그는 ‘언제까지나 금발의 미소년으로 남을 수 없다’며 평소 리터칭 없이 피사체의 잔주름과 잡티를 세세하게 드러내기로 유명한 사진가 척 클로스에게 자신의 포트레이트를 맡겼고, 이는 가장 아이코닉한  잡지 표지 중 하나로 남았다. 

 

리터칭이라는 문명의 횃불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터칭은 우리에게 소소한 즐거움과 자기 만족을 안겨준다. 문제는 정도를 알아야 한다는 것. 리터칭의 단계가 쌓일수록 현실은 점점 사라지고 조작된 ‘이미지’가 남게 된다. 그러니 사진을 손대기 전 보정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잘 생각해보자. 어젯밤 야근으로 충혈 된 눈을 보정하고 싶은지, 아니면 지난 5년을 통째로 지우고 싶은지는 본인의 기준에 맞게 잘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미의 기준에 따라 변하는 사진 보정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 또한 절대 금물이다(1990년대 말 유행한 ‘뽀샤시’ 사진을 생각해보라. 그중 코가 보이는 사진은 정말 드물었다!). 이는 트렌드의 최첨단을 달리는 패션 잡지조차 어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부분인데, 후반 작업은 후반 작업일 뿐 모델의 생김새를 바꾸거나 원래 사진의 목적과 분위기를 조작하지는 않는다. 옷의 주름을 펴고, 다리의 모기 물린 자국을 지우고, 스웨터의 질감을 도드라지게 하는 데 약간의 문명의 힘을 빌리는 것이다. 단언하건대 리터칭은 외적인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에게 최고의 도구다. 불을 만난 원시인처럼, 리터칭을 사용해 실패의 산불을 낼 것인지 맛있는 요리를 해먹을 것인지는 각자 활용의 정도에 달렸다는 것을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