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산문은 우리 일상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아련하다. 모두에게 엄마가 있지만, 엄마와의 이야기를 글로 쓰자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큼이나 방대한 작품이 될 테니까. 딸은 엄마를 부정하고, 또 긍정한다. <엄마의 도쿄>에서도 주인공은 엄마지만, 여느 엄마와는 조금 다르다. 서울 음악다방의 매력적인 DJ였고, 삼대가 모여 사는 시골의 부잣집 며느리였던 엄마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싱글맘이 되어 아이 둘과 일본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신주쿠 심야식당의 여사장이 된다. 영화 같은 삶을 산 엄마는 영화처럼 떠났다. 성당에서 엄마의 장례를 치른 딸은 모녀가 스무 해를 살았던 도쿄를 배경으로 엄마의 추억을 더듬는다. “마땅한 이야깃거리도 떠오르지 않던 그 드라이브에서 엄마는 음악을 듣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하던 아바의 노래를 가득 넣었다는 사실을 엄마는 평생 알지 못했다.”

산문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쉽게 지나치던 사소한 일상, 사소한 추억, 사소한 장소를 특별하고 애틋하게 바라보는 일이 아닐까. 시평론가로 <사랑의 미래>라는 아름다운 책을 냈던 이광호의 새 책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처럼 말이다. 이 책은 ‘걸어본다’ 시리즈의 첫걸음이기도 한데, 이광호는 이 책에서 용산을 걷는다. 그는 ‘조금 우울하며 불투명하며 지나치게 사소한 지리책’ 하나를 써보고 싶었다고 한다. “장소는 고체로 만들어진 침묵이다. 글쓰는 자의 최후의 목표는 침묵을, 그 장소의 침묵을, 혹은 너의 침묵을 표현하는 것이다.” 작가는 용산역과 서울역 사이의 철길을 걸으며 이렇게 적는다. 단지 이 책은 삼각지 옆에 효창공원이 있다는 지리적 설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안에는 서울이라는 도시를 깊게 조망하는 한 문학가의 사유가 있다. 부촌과 가난한 지역이 공존하는 곳. 개발의 아픔이 서린 곳. 그런 객관성과 달리 이 책에서 용산은 새로운 주관적 의미를 얻는다.

추억을 깊게 들여다볼 때도 산문은 제격이다. 프랑스 작가 다니엘 페낙이 쓴 <학교의 슬픔>은 올해 읽은 가장 아름다운 책 중 하나다. 그는 파리와 파리 근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소설과 산문을 썼다. <학교의 슬픔>은 오래전 학교의 열등생이었고, 오랫동안 스승이었던 그가 ‘학교를 회상한 책이다. 꼬마 니콜라가 학창 생활의 모든 면을 재기발랄하고 유쾌하게만 그렸다면, 이 책은 학교에 대한 가장 진실하고, 평범한 모습에 아름답게 다가선다. “시간… 나는 시간의 흐름을 대수학적으로 지각하려면 늙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다.” 교실은 눈부신 동시에 쓸쓸한 장소가 되었다.

삶은 때로는 반짝거리고, 때로 눈물 겹다. 황경신의 새로운 한뼘노트 <반짠반짝 변주곡>과 용윤선의 <울기 좋은 방>은 그 눈부심과 눈물 겨움에 대한 이야기다. <반짝반짝 변주곡>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아 어머님께 말씀’에 의한 열두 개의 변주곡의 애칭이다.

우리에게는 ‘반짝반짝 작은 별’이라는 동요로 더 유명하다. 황경신은 이 노래에서 인생을 발견한다. 가벼웠던 것이 무거워지고, 높이 날던 것이 내려앉고, 영원할 줄 알던 것이 끝이 난다. “반짝이는 세계, 반짝이는 슬픔 그리고 반짝이는 마음이다. 그러나 뒤돌아보지 않고 바다를 향해 흘러가는 마음이다.” 그럼에도 황경신은 삶은 아름다운 것으로 본다. 그 애정 어린 시선이 동화처럼, 시처럼, 소설처럼 분홍색 표지에 담겨 있다.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을 주장했다면, 우리는 그 방에서 울 수도 있어야 한다. 부엌이나 계단참에서 훌쩍이는 건 더 서러운 일이 될 테니까 말이다.

용윤선의 <울기 좋은 방>에는 다행스럽게도 갓 내린 커피 향기가 진동한다. 다양한 커피를 빌려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 함께 일하고 커피를 마시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친구들. 커피 볶는 냄새에 취해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커피 한 잔을 둔 풍경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