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가을/겨울 시즌의 브랜드 광고 비주얼로 보는 모델 이야기. 이번 시즌 패션계를 대표할 얼굴은 누구일까?

Cara the Top

카라 델레바인의 커리어는 지금 오르막길을 달리고 있다. 이번 시즌 버버리와 멀버리, 발맹, 샤넬의 광고에서 그녀는 패션 모델과 시대를 대표하는 스타일 아이콘을 오가며 존재감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버버리 프로섬은 그녀를 배우 수키 워터하우스와 함께 영국식 위트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낼 모델로 낙점했는데, 카라 델레바인 특유의 경쾌한 발걸음과 생기발랄한 표정으로 건강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비주얼이 완성됐다. 반면 음침하고 퇴폐적인 무드의 발맹 광고 속에서는 이국적인 외모의 신인 모델들 사이에서 조던 던과 함께 유일하게 얼굴이 익숙한 메인 모델의 역할을 맡았다. 이미지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종의 무게 추 역할이랄까? 몇 시즌째 이어온 칼 라거펠트의 편애는 카라 델레바인을 또다시 샤넬의 메인 모델로 등장하게 만들었다. 하긴, 칙칙한 체육관을 배경으로 슈퍼마켓에서 영감받은 알록달록한 컬렉션을 입고 포즈를 취해야 하는 난해한 콘셉트를 생각하면 카라 이외에는 대안이 없었을 거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일랜드를 누비는 영국 시골 소녀로 변신한 멀버리 광고에서는 그녀의 이름을 딴, 이번 시즌부터 출시되는 ‘카라 델레바인 백’을 메고 등장한다. 자신의 이름을 딴 가방이 생겼다는 건 패션 아이콘으로서의 지위를 공식 인증하는 셈. 이제 겨우 스물셋, 어린 모델의 커리어는 이렇게 모터를 단 듯 전 속력으로 달리고 있다.

Only Edie

예술적 영감으로 똘똘 뭉친 보테가 베네타의 광고 비주얼에 에디 캠벨이 등장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지만 영국 여자 특유의 무뚝뚝함이 묻어나는 데다 깊이를 알 수 없는 푸른 눈이 어딘가 예술적으로 보이니까. 단언컨대 도려낸 듯 괴상하게 잘라놓은 저 난해한 헤어 스타일을 오그라들지 않게 소화해낼 모델은 분명 몇 안 될 것이다. 고딕 무드 충만한 알렉산더 맥퀸의 광고에서도 마찬가지다. 기괴한 분위기와 사람을 압도하는 화려한 디테일의 ‘기 센’ 의상을 입고도 그녀는 너무나 천연덕스러운 연기를 펼치기 때문이다. 마치 세트와 한 몸이 된 듯, 그녀는 이미지가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에 완전히 동화된다. 이런 에디 캠벨의 예술가적 기질은 랑방의 광고에서도 폭발한다. 왜곡된 카메라 앵글, 가방에서 꽃이 피어오르는 등 초현실적인 설정 속에서도 그녀는 담대한 표정과 우아한 자신감을 뽐내며 톱모델의 탄탄한 내공을 보여준다.

Kate the Great

케이트 모스가 패션 광고에 등장하지 않는 시즌은 단무지 빠진 김밥, 앙금 빠진 찐빵과 같을 거다. 그녀는 현시대의 모던함을 상징하는 아이콘이며, 그녀의 커리어는 패션계의 흐름과 함께 흘러가고 진화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즌 케이트 모스는 ‘절친’ 스텔라 맥카트니의 광고에 등장하는데, 검은 모래, 빙벽 등 자연 풍광과 지퍼로 아무렇게나 둘러친 프레임, 모던한 맥카트니의 의상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 사이에서 특유의 아우라와 아이코닉한 얼굴로 완벽한 포커스를 이끌어낸다. 여기서 그녀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성질의 조화, 스타 파워, 자연에 대한 경외감은 요즘 패션이 추구하고자 하는 것과도 일치한다.

Two-Faced Gisele

말 그대로 명불허전인 지젤 번천은 발렌시아가와 이자벨 마랑의 광고에서 완벽하게 상반된 두 스타일을 보여준다. 사내처럼 머리를 짧게 자른 발렌시아가의 광고에서는 깨진 거울 속의 날카로운 자아처럼 한 치의 오차 없이 딱 떨어지는 옷을 소화해내며 남성적이고 거친 면모를 드러낸다. 반면 이자벨 마랑의 광고 속 그녀는 모든 긴장을 내려놓은 채 자연스러운 포즈와 담백한 표정으로 내면의 여성스러움을 표출한다. 이자벨 마랑만의 편안한 파리지엔 시크를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적합한 모델이 또 있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