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예인의 자녀는 물론, 배우자와 부모, 사돈의 팔촌까지 알게 되었다. 어느새 이렇게 된 걸까?



식당에서 잔뜩 먹고 부른 배를 두드리고 나왔더니, 거기 ‘아는 꼬마’가 있었다. 분명 아는 꼬마였지만 동시에 희한했다. 조카도 없고, 학부형은 더더욱 아닌 내가 아는 꼬마가 있을 턱이 있나. 친구가 말했다. “후 닮았는데?” 그랬다. 소년이 답을 해줬다. “후 맞아요.” 이모인지, 누나인지 모를 우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의 손을 잡고 있는 건 삼촌 중 하나인 배우 이종혁이었다. 윤후는, 정말 귀여웠다. 갈 길을 가면서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별로 통통하지 않은걸”. 우리는 소년의 취향, 소년의 고민, 다 잘 먹지만 김치는 안 먹는 그의 입맛까지 꿰뚫고 있었다. 방송에서 다 봤기 때문이다. 연예인은 누구나 안다. 그들은 대중이 알아봐줘야 하는 게 직업인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는 ‘무명’의 연예인이라면, 그 또한 슬픈 존재다. 그런데 요즘은 연예인만 아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연예인과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이제 우리는 연예인의 자녀, 연예인의 배우자, 연예인의 친구는 물론이고 부모, 사돈, 장인장모까지 아주 내밀하게 알게 되었다. 어느새 이렇게 된 걸까? 애초부터 우리가 원하긴 했나?
과거 예능에는 연예인 또는 연예인 친구가 가끔 등장하는 게 고작이었다. 스타들은 쇼를 하거나, 미션을 수행하거나, 여행을 떠났고, 어쩌다 친구가 등장하는 ‘특집’이 있었다. 이들의 등장은 신선했다. 연예인도 보통 사람들과 우정을 나누며, 가끔은 그 친구들이 연예인의 독특한 취미나 습관, 숨기고 싶은 과거를 폭로해주기도 했다. <1박2일-친구 특집>은 희대의 걸작으로 남았다. 연예인 주변을 가끔 탐문하던 카메라는, 본격적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을 파고든다. <자기야>는 부부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자극적인 소재로 온라인 뉴스를 넘나들기 일쑤였다. <자기야>에 나온 연예인 부부 몇은 끝내 이혼했다. 사람들은 방송을 되새기며 그럴 줄 알았다며 혀를 끌끌 찼다
연예인 아빠의 육아기를 다루는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본격적으로 연예인의 집 곳곳에 카메라를 달았다. <아빠, 어디 가? >가 아이와 아버지의 이벤트성 외출을 다룬다면,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몰래 카메라처럼 모든 일상을 송출한다. 아이와 아빠, 여기에 엄마와 육아에 도움을 주는 친인척까지 등장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작년과 올해 가장 성공적인 프로그램으로 꼽힌다. 서준이와 서언이, GD를 좋아하는 하루, CF스타가 된 추사랑까지 국민 모두의 자식이 되어버렸다. <god의 육아일기>가 <우리 결혼했어요>식의 판타지물이었다면, 지금 예능은 그냥 리얼리티쇼다. 기어 다니지도 못했던 쌍둥이들이 커서 걸어 다니는 걸 보면, 마치 우리가 아이를 키운 것처럼 뿌듯하다. 예능과 담을 쌓고 있던 송일국마저 세 쌍둥이 아빠로 등장하고, 장윤정과 도경완 부부의 출산 과정부터 함께하는 걸 보면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인기와 영향력은 꽤 오래갈 것 같다.
그러나 <슈퍼맨이 돌아왔다>와 경쟁하면서 그 이상을 보여줘야 하는 방송국은 무리한 포맷을 서슴지 않는다. 가족의 지극히 사적인 순간을 방송하고, ‘시월드’만큼 만만치 않은 처가살이를 보여준다. 3대가 등장하는 <오 마이 베이비>도 있다. 대부분의 시간대에서 연예인 가족들만 보여주는 셈이다. 모든 것은 시청률 때문이다. 연예인에 관계된 것이라면 궁금해하는 대중을 이용하면서, 예능은 한결 게을러졌다. 연예인 사생활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해주는 것, 연예인을 닮아 뛰어난 외모를 가진 2세들의 재롱을 담는 것 외에 예능이 하는 일은 무엇인가? 크고 작은 미션을 제공해준다고는 하나, 그저 어딜 다녀오고 무엇을 해보라는 것뿐 그것에서 차별화된 구성과 창의성을 찾을 수는 없다. 새로운 포맷과 아이디어로 번뜩이는 예능은 사라졌다. 우리는 아침방송부터 자정, 공중파에서 케이블TV에 이르기까지 시종일관 연예인 가족들의 사생활만 들여다보는 꼴이 되었다. PD와 작가들은 새로운 연예인 가족을 섭외하는 데 무엇보다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인다. 하릴없어 보는 TV더라도 이건 너무 하지 않나. 예능은 엄마미소 대신 한 방의 웃음을 줘야 한다. 이건 예능의 직무유기다.
점심시간 밥상머리에서 여자 연예인보다 쌍둥이 어머니인 문정원의 미모를 칭찬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고, 추사랑의 동네 친구 유토의 매력에 새롭게 눈을 떴다. 리얼리티쇼라는 포맷은 개인의 매력에 집중하고, 그것을 포장해서 사실화한다. 연예인의 매력이 자연스럽게 그 주변 인물에 대한 호감으로 번진다. 연예인에서 그 가족으로 쉽게 이어지는 인기를, 연예인의 인기 세습으로 보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한 교수는 ‘공적의 위험 : 넘쳐나는 연예인 가족들’이라는 글을 통해 ‘다른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권력의 세습이 연예인에 한해서는 시청률 확보라는 가치로 정당화하면서 아무런 제한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주장은 일리가 있다. 실제로 연예인 2세와 가족에게는 수많은 CF와 프로모션이 쏟아지고 있다. 과거 배우들이 부모의 후광을 숨기고 자신의 힘으로 성공하기 위해 이름까지 바꿨다면 요즘은 달라졌다. <붕어빵>의 동현이는 김구라 아들로 쌓은 인지도를 발판으로 연기자로 나섰다. 박찬민 아나운서의 딸로 범상치 않은 미모를 보인 박민하도 아역 배우로 성공한 것처럼 말이다. 지금 등장하는 연예인의 가족들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다시 등장할지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그들이 누구의 아들딸도 아닌 누군가보다 쉽게 길을 걸을 것은 자명하다. 후배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들은 참 속도 좋아. 연예인도 모자라 그 잘사는 애들 노는 걸 좋다고 보고 말이야.”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는 웃었다. 하지만 어쩐지 씁쓸함은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