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과 어울리는 책들.

여름은 단편 소설을 읽기 좋은 계절이다. 세 권의 새로운 단편집.

리처드 예이츠는 너무 늦게 알려진 작가다. 젊은 작가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1926년 뉴욕생인 그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불안한 시대 상황을 대표하는 작가가 되었다.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그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함께 미국 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도 유명하다. 첫 번째 데뷔 소설인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1962년 전미 도서상 최종 후보로 선정되었지만,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지는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몇 해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 주연의 <레볼루셔너리 로드>로 영화화되었고, 그래서인지 국내 출간된 책들은 영화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원작자라는 설명을 빼놓지 않고 있다. 그 <레볼루셔너리 로드>와 최근 출간된 <부활절 퍼레이드>,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을 연달아 읽으면, 그 안을 관통하는 리처드 예이츠의 작품세계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사실주의다. 냉정하다 못해 비정한 현실을 고독하게 그리는 것. 현실도, 고독함도 도시를 사는 우리에게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혼자든, 누구와 함께 있든, 잠이 오지 않는 열대야 속 여름밤에 읽기에 <맨해튼의 열한 가지 고독>은 완벽한 책이다. 제목이 암시하듯 이 안에는 주인공 열한 명의 제각기 고독한 이야기가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이지만 모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것. 그게 인생의 황홀함이 아닐까 싶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작가의 언어는, 오히려 주인공에 대한 공감을 부추긴다. 사춘기를 맞은 가난한 고아 빈센트 사벨라, 결혼을 앞둔 커플, 장기 입원 중인 남편 곁을 지키는 아내와 실직한 가장, 부유한 독신 남성들과 폐결핵을 앓는 사람들. 이들은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에서 각자의 외로움을 견디는 중이다. 우리도 가끔은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여름은 이처럼 짧은 이야기를 읽기 좋은 계절이다. 더위는 사람을 쉽게 지치게 하고, 긴 하루 동안 할 일은 많으니까. 한 호흡으로 한 권의 단편집을 읽어도 좋지만, 테이블이나 침대 머리맡에 두고 한 편씩 띄엄띄엄 읽어도 좋다.
유머러스한 상상력을 가진 작가 윤고은도 단편집 <알로하>를 냈다. ‘무중력 증후군’처럼 현실을 배경으로, 비현실적인 상상을 능청스럽게, 또 섬세하게 그려온 작가는 이번에도 킥킥거리다가도 그렇게 웃기지만은 않은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를테면 ‘똥도 싸지 않는’ 산책용 강아지를 빌려주는 업체, 연애와 결혼을 비정규직과 정규직에 빗댄 촌철살인, 프레디 머큐리가 살던 집에 세를 들어 박물관으로 만들어버리는 주인공과 시간 단위로 전시된 일상들. 그녀의 소설은 여전히 동화 같은 상상력을 부리지만, 한층 견고하고 날카로워졌다.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이 궁금하다면, 문학상 수상 작품집을 선택하길. 이달은 김유정 문학상 수상작품집 <우리 모두의 정귀보>가 나왔다. 수상작인 시인 겸 소설가 이장욱의 작품을 제목으로 했는데, 요절한 천재 화가로 알려진 ‘정귀보’의 일생을 파헤칠수록 점점 ‘보통의 삶’만 드러나는 웃지 못할 이야기를 담았다. 그 외에도 편혜영, 이기호, 김이설, 이승우 등 묵직한 이름들이 보인다. 이들이 다시 작가들의 작품집으로 묶여지기까지, 이 작품들은 지금 이 수상집을 택한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가 된다. 한편, 뜨겁고 뜨거운 8월의 한복판에,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 8월 중순경 출간된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그동안 장편 집필에 몰두해온 까닭에, 작가의 단편집은 오랜만이다. 2005년에 나온 <도쿄 기담집> 이후 9년 만에 나온 단편 소설집 <여자가 없는 남자들>에는 총 6편의 단편 작품이 수록될 예정이다. 표제작 <여자가 없는 남자들>과 최근 발표해서 화제가 된 신작 <드라이브 마이 카> 외에도 ‘세헤라자데’, ‘예스터데이’, ‘독립기관’, ‘키노’ 등이 실릴 예정이다. 하루키의 색채가 있는 단편소설이 벌써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