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번이나 인터뷰를 고사한 끝에 만난 윤여정은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인터뷰를 하기 싫은 건 나를 근사하게 포장하는 게 싫어서예요. 나는 근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에요.” 그녀가 아무리 아니라 해도, 윤여정은 이 시대의 가장 근사한 배우라는 걸,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그녀는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주문했다. “와인을 마시면 말을 더 잘하거든요.”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와인을 마시는 그녀를 보자 누벨바그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와인을 연거푸 들이마신 그녀의 얼굴이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윤여정은 60세가 넘어서도 임상수, 이재용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의 작품에서 주연으로 등장하는 대한민국의 유일한 여배우다. 1966년에 데뷔했지만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건 1969년 MBC 드라마 <장희빈>이다. 물론 그녀가 장희빈을 맡았다. 그러니까 이미숙, 전인화, 김혜수, 김태희 이전에 바로 윤여정의 장희빈이 있었던 거다. <장희빈>에 이어 김기영 감독의 뮤즈가 된 그녀는 <화녀>와 <충녀>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며 전성시대를 이어갔다. 시간은 무심히 흘렀고 그 사이 여자로서, 배우로서 많은 일을 감당해냈다. 어느덧 인생의 황혼기에서 어머니, 할머니 역할을 맡고 있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평범한 어머니, 할머니였던 적이 없다. <내 마음이 들리니>, <그들이 사는 세상>, <황금물고기>만 봐도 그렇다. 욕쟁이 할머니일 때도, 성질 고약한 중년 배우일 때도, 강남의 우아한 사모님일 때도 윤여정은 철저하게 윤여정만이 보여줄 수 있는, 누구의 엄마나 할머니가 아닌 그 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자를 연기했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간절했기 때문’일 거다. 연기를 잘한다는 명료하고 객관적인 사실을 떠나, 그녀가 유일할 수 밖에 없는 또 한 가지 지점이 있다. 나이가 들면 친근해지고 푸근해지는 중년 배우들과 달리 윤여정에게는 여전히 우아하고 도도한 여성성이, 깐깐하고 완벽한 여배우의 아우라가 존재한다는 거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 양말 냄새를 맡는 모습을 보여준다해도, 드라마에서 아들을 잃어버린 엄마가 되어 눈물을 쏟아낸다고 해도, 그녀는 결코 우리에게 친근한 여배우가 될 수 없다.
역시 멋있어요.
나는 그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요. 멋있긴 뭐가 멋있어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그건 당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저 우리가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여배우들은 예뻐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나는 미인이라고 할 순 없으니까 사람들이 멋있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예쁘다고 하는 것보다는 나아요.
드라마 <참 좋은 시절>을 생방송 수준으로 촬영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장소심 여사의 분량이 많아요. 어떤 주연 배우보다 선명하게 보이기도 하고요.
TV 드라마에서 엄마는 늘 분량이 많아요. 가족 드라마이기도 하고, 큰엄마가 원래 하는 일이 많잖아요. 가족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늘 바쁜 사람이에요.
당신에게 처음 들어온 역할은 장소심이 아니었다고요?
최화정이 맡은 첩 역할이 먼저 들어왔어요. 첩 역할은 안 해봐서 해보려고 하다가, 나보다 나이 많은 형님이 또 필요하니까 드라마가 우중충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화정이 오랜만에 큰 포부를 안고 드라마에 들어왔죠. 사실 우리는 드라마가 좀 더 잘될 줄 알았는데 기대만큼 안 됐어요. 그래도 현장 분위기가 워낙 좋아 재미있게 찍고 있죠.
강제규 감독의 영화 촬영도 시작된 건가요?
아니요. 힘들어서 한번에 두 개는 못해요. 드라마 끝나고 바로 들어갈 것 같아요. 영화 제목이 자꾸 바뀌고 있어요. 처음에는 <마지막 첫사랑>이었다가 지금은 아마 <장수상회>로 바뀌었을 거예요.
영화에서는 꽃집 할머니가 되어 황혼의 로맨스를 연기한다죠. 이렇게 매번 다른 사람이 되려는 건, 의도된 건가요?
매번 다른 걸 찾으려고 애를 써요. 내가 맡을 수 있는 역할은 엄마 아니면 할머니잖아요. 선택의 폭이 넓지 않으니 그중에서 다른 걸 찾으려고 하죠. 그게 정말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어요.
평범한 어머니나 할머니도 당신이 연기하면 예사롭지 않아지죠. <돈의 맛>에서 윤여정이 아닌 다른 사람이 연기하는 백금옥을 누가 상상할 수 있겠어요?
나밖에 할 수 없는 역할이라기 보다는, 임상수 감독이 특이한 감독이니까 날 쓴 거예요.
<바람난 가족>은 확실히 훌륭한 시작이 되었어요. 그 후 <하녀>와 <돈의 맛>까지 철저한 임상수의 이야기 안에서 당신은 무서울 만큼 반짝반짝 빛이 나죠.
누가 그러더라고요. 늘그막에 남자 하나 잘 만나서 운 트였다고. “응? 내가?”라고 물으니 그 남자가 임상수 감독이래요. 생각해보니 그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바람난 가족>이 들어왔을 때 출연료도 드라마보다 적고 나랑 안 맞는 것 같아서 안 하려고 했어요. 그러다 감독을 만났는데 머리가 굉장히 좋더라고요. 한번 출연해서 자기를 살려달라는 식이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그건, 새로운 세대와의 만남이었어요. 내가 끼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하니까 그렇다면 윤여정의 방식으로 해석해달라고 하더군요. 돌이켜보면 임상수 감독을 만난 게 제 연기 생활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 같아요. 그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영화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임상수 감독이 제 안의 무언가를 건드렸고, 그래서 영화를 해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한 거죠.
많은 인터뷰에서 스스로를 생계형 배우라 말해왔어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훌륭한 남편 두고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요”라고 말하기도 했고요.
중견 배우 중에는 제가 돈 얘기 하고 다닌다고 배우 망신을 시킨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아닌 게 아니라, 정말 돈이 없어야 일을 해요. 돈이 넘치게 많았다면 배우를 하지 않았을 거예요. 돈을 벌어야 했고, 간절했기 때문에 제가 할 수 있는 연기를 한 거예요. 그렇게 간절할 때 최고가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계형 배우라고 주장하지만 배우로서의 당신의 삶은 어쩐지 예술에 더 가까워 보여요. 배우가 아닌 주부로 살아가는 당신을 상상할 수 없거든요.
그게 참 우스워요. 결혼 생활을 할 때는 주부로 열심히 잘 살았어요. 밥도 잘하고, 빨래도 잘하고, 유리창이 너무 깨끗해서 부딪쳐서 넘어진 사람도 많아요. 그땐 청소하고 애들 키우면서 평생 살 줄 알았지, 이 나이까지 배우를 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러고 보면 인생은 놀라움의 연속이죠. 한 치 앞을 모르는 거예요.
다시 연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은 하죠?
친구들이 다 은퇴하고 놀고 있어요. 나만 일하고 있어서 친구들 만나면 이제 제가 왕이에요. 젊었을 땐 친구들이 다 부잣집에 시집을 가서 못 놀았는데, 요샌 내가 너무 바빠서 친구들과 못 놀아요. 사람은 계속 일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일이 곧 자신이 되니까요.


화이트 셔츠와 청바지, 스니커즈와 단정한 액세서리들. 그녀가 몸에 걸치고 온 물건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닮아 있었다. “다른 건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옷이나 물건은 그렇지 않아요. 10년 넘게 입는 옷이 수두룩해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쓰는 거니까 나에게 소비는 자신을 대접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죠.

40년 넘게 연기해도, 일에 대한 고민은 여전한가요?
이제 관객들에게 거의 다 보여줬잖아요. 그래서 다른 걸 표현한다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똑같은 몸, 똑같은 목소리로 표현을 달리한다는 게 어려운 것 같아요. 자존심이 있어서 똑같은 걸 하는 것도 싫고, 그걸 보는 사람들에게도 너무 미안해요. 후배 배우들 앞에서 실수를 하는 건 더 싫고요. 지금 노력하는 것만큼 공부를 했다면 대법관이 됐을 거예요.
<꽃보다 누나>를 통해 당신의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 건 확실해요. 정말 완벽할 거라 생각했거든요.
나영석 PD가 편집을 일부러 더 그렇게 했다고 들었어요. 양말 냄새를 맡는 장면을 내보내지 말랬더니, 변비로 고생하는 장면과 냄새 맡는 장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해서 변비를 내보내라고 했어요. 그런데 다 내보냈더라고요. 왜 그런 식으로 편집했냐고 물으니, 저의 깐깐한 이미지를 없애주려고 그랬대요. 핑계 없는 무덤이 어디 있겠어요. 내 나이가 68세인데 아들뻘인 PD랑 싸울 수도 없고 어쩌겠어요. 다 이해하는 거죠.
그 후로 <꽃보다 누나>의 배우들과 모임이 있었나요?
사실, 딱 한 번 쫑파티 때 보고 한 번도 못 봤어요. 다들 바쁘니까요. 승기는 몇 번 따로 만났어요. 둘 다 김동률 팬이라 같이 만나기도 하고요.
요즘도 책을 많이 읽나요?
드라마를 찍을 땐 책을 많이 못 봐요. 소설책을 좋아하는데 대사를 못 외운 상태에서 책을 보면 책의 흐름이 끊기잖아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온갖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지만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그게 최근에 본 책이에요. 고종석의 <해피 패밀리>도 재미있게 읽었고, 복거일의 소설도 좋아해요. <비명을 찾아서>라는 소설을 읽고 알게 되어서 <내 몸 앞의 삶>도 찾아 읽었어요.
<마녀사냥>에서 끊임없는 출연 제의를 받고 있다고 들었어요.
그 프로그램을 무척 재미있게 봐요. 그래도 출연하는 건 주책 맞은 것 같아서 거절했죠. 그 외에도 <썰전>과 JTBC <뉴스9>를 챙겨 봐요. 그리고 좀 지나긴 했지만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의 광팬이었어요. 마지막 회 방송 날이 영화 <고령화 가족>의 미팅 날이었는데 방송을 보고 싶어서 미치겠는 거예요. 감독한테 아프다고 하고 뛰어 들어가서 본방을 사수했는데 세상에 바로 재방송을 하더라고요. 작가에게 편성을 왜 그 모양으로 하냐고 화를 버럭 냈죠.
확실히 젊은 에너지가 있어요.
남이 다 하는 건 싫고 새로운 걸 좋아하는 건 분명해요.
스스로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게 있을까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밥 먹고 떠들어요. 그때 남들 욕도 좀 하고요. 남 욕을 유식하게 하면 평론이고, 우리가 하는 건 가십이죠. 그런데 그 가십은 삶에 굉장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느닷없이 모르는 사람 잡고 그러는 것도 아니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하는 거니까요. 어떤 사람에 대해 좋은 점, 싫은 점을 얘기하다가 같이 싫어하면 엄청난 공감대가 형성되잖아요. 그렇게 만나서 수다 떨고 밥 먹고 술 마시는 데 돈을 써요. 나이가 많은 내가 주로 사죠.
최근 당신의 마음을 흔든 ‘어떤 것’은 뭔가요?
얼마 전 김병욱 문학평론가가 쓴 책의 서문을 보고 운 적이 있어요. “내 나이에 진지하게 정색하고 아프게 따지며 힘들여 셈할 일들이 얼마나 남았겠는가. 나는 허망함을 허망함으로 받아들이는 관용을 훈련 중에 있다. 내일 아침에도 또 해는 뜰 것이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세상을 열심히 살아가리라. 그 사람들을 보며 나는 조용한 걸음으로 내 운명을 밟아가리라.” 그렇게 감정적인 사람도 아닌데 그 글을 보며 “이렇게 살아야겠구나”라고 느꼈어요. 정말 마음에 와 닿더라고요. 내가 기억하는 게 좀 틀릴 수도 있겠지만 오죽하면 제가 이 구절을 외웠겠어요.
허망함을 허망함으로 받아들이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요?
이 나이가 되니 따질 일이 많지 않더라고요. 작품이 잘 안 돼도 제 운명인 거고, 그중에 흥하면 또 좋은 거고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 만나서 즐겁게 낄낄거리며 사는 거죠. 그 글을 마음에 새긴 후로 생활이 정말 간단해졌어요. 모든 걸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죠. 물론 젊은 사람들은 그러면 안 돼요. 이번에 망했으면 다음번에 성공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게 맞죠. 저 담배 한 대 피워도 될까요?
그럼요. 옥상으로 올라갈까요?
<꽃보다 누나>에서도 제작진이 제일 힘들었던 게 담배였대요. 내가 명언을 남길 땐 늘 손에 담배가 있었대요. 손을 잘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렇게 고민했대요.
현장의 스태프들은 당신에 대해 하나같이 이렇게 말해요. ‘알고 보면 따뜻한 사람’이라고. 그걸 들으니 <그들이 사는 세상>에서의 오민숙을 연기하던 당신이 떠올랐어요.
모든 사람에게 다 따뜻하지는 않아요. 어떤 스태프들은 날 좋아하고, 어떤 스태프들은 날 싫어할 수도 있어요. 늙으면 영험해져요. 딱 보면 알거든요. 쟤는 일 열심히 하는 애다, 쟤는 그냥 나와 있는 애다. 열심히 하는 친구는 정말 예뻐요. 안아주고 싶고, 눈물이 나요. 그런데 열심히 하지 않는 애들은 정말 싫어요. 오래 같이 일해도 이름조차 기억을 못해요.
처음 데뷔했을 때 목소리를 두고 말이 많았어요. 목소리 때문에 배우를 못할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희한하게도 이제는 그 목소리 자체가 당신이 되었어요.
우리 때는 목소리도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듯 예뻐야 했어요. 내 목소리는 장애였죠. 어쩌면 인생은 그 장애를 극복하는 일인 것 같아요. 우린 누구나 다 장애가 있잖아요. 그걸 극복하면 인생에 있어서 성공한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내 목소리를 좋다고 해주니 나는 장애를 극복한 셈이네요. 아, 후배한테 들었는데 김영철이 요즘 내 목소리를 흉내 내려 연습 중이래요. 내가 어려울 거라고 말해줬죠.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1970년대 <화녀>와 <충녀>를 통해 보여준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일 때의 분위기가 공존해요. 그 비결은 뭔가요?
김기영 감독은 앞서가는 사람이고 특이한 사람이었어요. 그가 나를 선택한 건 행운이었죠. 그런데 나는 섹시함과는 정말 거리가 멀어요. 오죽하면 나 스스로 평창동 비구니라 하겠어요.
이 인터뷰가 끝나면 화이트 셔츠를 벗고 평창동의 비구니로 돌아가는 건가요?
의기투합을 위해서 만나는 모임이 있어요. 와인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도 하고 다른 사람 험담도 하고 그러는데, 요즘 드라마 반응이 미지근해서 ‘위로의 모임’으로 바뀌었어요. 임상수 감독, 최화정, 그 외에 몇 명이 더 있는데, 오늘 저녁에 그들과 만나기로 했어요.
아마 깊은 밤까지 이어지겠죠?
보통은 12시 전에 헤어지는데 깜짝 게스트가 오면 길어지기도 해요. 지난번에는 판이 커져서 새벽 2시까지 놀았어요. 나영석, 이서진, 김희선 다 모였는데 희선이가 술을 어찌나 많이 마시던지, 다음부터 네가 먹을 술은 싸가지고 오라 했죠. 계산은 내가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