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는 그 자체로서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이었다.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고혹적인 건축물이 그랬고, 세기를 넘나드는 작가와 화가의 흔적이 그랬고, 도시를 잠식하는 고유한 온도가 그랬다. 천 년의 시간을 묵묵히 이어가는 이 작고 놀라운 도시에는 그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견고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1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아름다운 카렐교. 이곳에서는 모든 관광객이 사진가를 자처한다. 2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 성당으로 꼽히는 성 비투스 대성당의 내부.

프라하에서는 지도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좁은 골목에 늘어선 상점을 구경하다 보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건축물을 마주하게 된다. 작은 골목은 또 다른 길로 이어지고 그렇게 걷다 보면 이미 목적지에 도착해 있었으니 얼마든지 길을 잃어도 좋을 일이었다. 프라하의 건축물을 이야기하자면 프라하성이 첫 번째일 수밖에 없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여러 양식이 더해지면서 정교해졌고, 18세기 말에야 완성되었으니 꽤 긴 역사가 축적된 셈이다. 매해 체코를 찾는 수많은 관광객이 빠뜨리지 않고 이곳을 찾는다. 성안에는 왕궁과 성 비투스 대성당, 성 이르지 교회, 황금소로 등이 모여 여행자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한다. 1344년 카렐 4세 때 착공해 1929년에야 완공한, 성 비투스 대성당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 성당이라 불린다. 16세기 중엽 르네상스식 첨탑이, 17세기에 양파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모습을 드러냈고, 1775년이 되어서야 오늘날과 같은 신고딕 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으니 무려 천 년의 시간이 이 안에 녹아있다. 성당 밖에서 외관만 보고 감탄하기에는 이르다. 성당 안은 겉과는 또 다른 신비로움으로 몇 번이고 호흡을 가다듬게 한다. 길고 단단한 기둥과 성당 양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채플, 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보고 있으면 몸과 마음이 뜨거워진다. 성당 유리는 시대에 따라 다양한 기법의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되었는데, 가장 유명한 알폰스 무하의 작품을 찾는 일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많은 관광객이 몰려 있는 곳이 그의 작품 앞이었으니까. 아르누보 양식의 그의 그림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작품에 성당의 창을 비추는 따스한 햇살이 고요히 내려앉았다.
프라하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성벽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오면 프라하의 동맥이라 불리는 카렐교가 그리 멀지 않다. 카렐교는 화가들과 기념품을 파는 상인, 키스를 나누는 연인, 카메라를 든 관광객으로 넘쳐났다. 수많은 관광객 중 한 명이 되어 천천히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블타바 강 위로 단단히 이어진 이곳에는 30개의 성인 조각상이 늠름하게 서 있는데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성 얀 네포무크 조각상은 얼마나 많은 손길을 받았는지 황금색으로 빛이 바랬을 정도다. 오래된 돌다리에 얼룩덜룩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카렐교 끝에 걸터앉아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겨우 발걸음을 옮긴 곳은 오를로이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지 시청사였다. 가는 길에는 지도없이 이정표만 보고 걸었는데, 덕분에 좀 헤맨 뒤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구시가 광장에는 매시 정각을 알리는 타종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관광객들의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5시 정각이 되자 해골 모양의 인형이 밧줄을 잡아당겨 모래시계를 뒤집었고, 시계 위쪽에 있는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면서 예수와 열두 제자가 차례차례 지나갔다. 이때 해골 옆에 있는 터키인, 거울을 든 인형들이 춤을 추는 듯한 동작을 보여준다. 황금색 수탉이 홰를 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퍼포먼스가 끝나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부산하게 흩어졌다. 구시가를 향해 늠름하게 다리를 뻗고 있는 바츨라프 광장을 가운데 두고, 골목 사이를 다시 구석구석 걸었다. 작은 미술관과 서점, 옷가게와 카페를 오가는 동안 거리는 금세 깜깜해졌다. 그렇게 목적지 없이 걷다가 문득 하루 동안 헤맨 이 도시를 다시 한눈에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프라하 성을 다시 찾았다. 도시의 색깔도, 바람의 흐름도, 옆에 있는 사람도, 아침과 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데 이 낯선 도시 안으로 깊숙이 들어선 기분이 들었다. 그건 하루 종일 이 거리를 헤맨 자만이 누릴 수 감정임이 분명했다. 그 낯선 감정과 풍경을 만끽하고, 가장 마지막으로 성을 빠져 나왔다.

1 오를로이 천문시계가 있는 구시가지 시청사. 2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예쁜 건축물들이 곳곳에서 시선을 사로잡는다. 3 필스너 우르켈 맥주 공장에서는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4 구시가 광장에서 판매하는 기념품.

뜨거운 예술가
국립미술관은 프라하 곳곳에 자리해 있다. 12~18세기 작품은 주로 성 이르지 수도원에, 19세기 미술은 성 아네슈카 수도원 미술관에, 19세기와 20세기 조각은 즈브라슬라프 수도원에, 20세기와 21세기 미술은 벨레트르주니 궁에 전시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벨레트르주니 궁은 좀 더 특별하다. 19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 예술, 건축, 산업 디자인 분야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데, 파블로 피카소, 폴 고갱,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프 클림트, 에드바르트 뭉크, 호안 미로 등 세계적인 예술가의 작품과 알폰스 무하, 요세프 차페크, 에밀 필라 등 체코 예술가의 작품을 광범위하게 소장하고 있어 오직 하나의 미술관만 둘러볼 수 있는 일정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이곳을 선택하는 것이 맞다.
유럽의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역시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곳곳을 지키고 있는 모습이다.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 도슨트에게 클림트의 작품이 어디 있는지 묻자, 직접 작품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작품에 대한 설명까지 유쾌하게 들려준다. 그의 모습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키되, 자유롭고 건강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공간의 모습과도 닮아 있었다. 1928년, 이 건물을 공식 개장하기도 전에 대중에게 공개된 첫 번째 전시는 바로 알폰스 무하의 슬라브 서사시 연작이었다. 벨레트르주니 궁의 첫 번째 전시가 알폰스 무하의 전시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체코인들의 알폰스 무하에 대한 사랑은 그 누구보다 뜨겁다. 역사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생계 유지를 위해 닥치는 대로 그림을 그려야 했던 그는 파리로 넘어가 당시 최고의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의 연극 <지스몽다>의 포스터를 그리게 되었다. 이후 그녀의 전속 화가가 되면서 광고 그림 주문이 쇄도해 순식간에 유명 화가로 이름을 떨치게 되지만 그는 곧 조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꿈꾸던 작업에 전념한다. 그때 완성한 그림이 바로 슬라브 민족의 역사를 담아낸 슬라브 서사시 연작이었으니 체코의 국민 화가라 불리는 것이 마땅할 수밖에. 바츨라프 광장 가까이 위치한 알폰스 무하 뮤지엄에서는 도화, 사진, 목탄화, 석판화 등으로 구성된 총 100여 개 이상의 작품을 전시한다. 그가 파리에 머무른 1860년에서 1939년 사이의 작품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는데,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그린 그림은 특히 아름답다. 전시장 한쪽에는 파리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를 그대로 재현한 공간도 마련돼 있었다. 실제 스튜디오에 있던 의자와 수납장, 붓과 물감으로 꾸며 그 공간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그를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한다. 프라하에서 차로 두 시간 거리의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는 보헤미안의 흔적이 서린 작고 귀여운 마을이다. 이곳의 들로우하 거리에는 에곤 실레의 뮤지엄도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지만 그는 어머니의 고향인 이곳에서 오랜 시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벌거벗은 미성년 소녀를 그린 죄로 동네에서 쫓겨나기까지 했던 이곳에 자신을 위한 뮤지엄이 생길 거라는 걸 그는 예상이나 했을까. 작은 규모이지만 에곤 실레의 자화상, 동네를 그린 풍경화, 그가 그린 체스키 크룸로프의 지도까지,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그림이 준비되어 있어 프라하에서 이곳을 오가는 몇 시간이 아깝지 않다.

취해도 좋은 도시
한 시간을 달려 플젠(Pilsen)으로 간 건 오로지 맛있는 맥주를 먹겠다는 의지에서였다. 라거 맥주의 효시라 불리는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은 1842년, 바로 이곳 플젠에서 처음 만들어졌다. 필스너의 맥주 공장으로 들어서는 정문의 아치는 마치 개선문을 연상시켰다. 필스너 우르켈 맥주의 시작과 역사, 제조 과정까지 맥주의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필스너 우르켈은 보헤미아 지역의 보리를 이용해 만들어진다. 보리는 밀이나 옥수수, 쌀과 같이 흔한 곡물이지만 필스너 우르켈 제조에 사용되는 보리는 미세한 겉껍질을 지닌 품종으로 특별히 선별된 보헤미아산이다. “ ‘필스너’란 체코 플젠 지역에서 생산된 맥주를 말해요. 필스너가 유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세계 곳곳에 필스너의 맛과 품질을 모방하는 곳이 생겨났죠. 우리가 마시는 라거 맥주의 대부분은 필스너 공법으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어요. 필스너가 그 원조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체코어로 오리지널을 뜻하는 ‘우르켈’을 붙이게 된 거죠.” 맥주 공장 매니저가 이름에 얽힌 사연을 직접 들려주었다. 공장에서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역사를 살펴보는 것도 좋지만 목이 말라 견딜 수 없던 찰나, 이곳에서 30년간 일했다는 효모 장인이 등장했다. 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우리를 지하 맥주 저장고로 데려가, 100년 된 오크통에서 맥주를 뽑아주었다. 여과되지 않은 필스너 우르켈 맥주는 오직 플젠의 지하 저장고를 찾는 이에게만 허락되는 것이었다. 달콤한 캐러멜 향과 맥아 향, 잘 구워진 곡물 향이 입안 가득 풍성하게 느껴졌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뒤에는 특유의 쌉쌀함이 감돌아 깊은 풍미를 더했다. 한 잔을 순식간에 비웠다. 두 번째 맥주잔을 받아 들고 들어간 곳은 지하 저장고 깊숙이 자리한 작은 식당. 머리가 희끗한 맥주 장인들이 직접 만든 스테이크와 쇠고기 스튜 굴라시, 치즈, 소시지가 테이블 위에 놓였다. 따뜻한 굴라시와 스테이크로 배를 채우는 중에도 쉼 없이 맥주를 들이켰다. 시계는 분명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지만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캄캄한 동굴에 들어와 있으니 시간을 걱정하며 맥주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온천의 도시 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로 떠났다. 테플라 강과 오흐레 강이 만나는 체코의 서쪽에 위치한 카를로비 바리로 가는 길에는 가랑비가 쏟아지고 그치기를 반복했다. 카를로비 바리에서 그 유명한 온천수를 보기 전에 찾은 곳은 체코 전통주, 베헤로프카(Becherovka)의 박물관이었다. 체코 사람들은 식사 전에 음식 맛을 돋우기 위해 베헤로프카를 아페리티보로 마신다. 필스너 우르켈보다 일찍, 정확히 1807년부터 생산되고 있는 이 술은 20여 가지 이상의 약초와 향신료, 온천의 깨끗한 물, 카를로비 바리의 기후와 온도가 조화를 이루어 깊고 진한 맛을 만들어낸다. 베헤로프카 박물관은 베헤로프카의 지난 시간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손글씨로 쓴 레시피와 오랜 시간 변화를 거듭한 술병 디자인과 유리잔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진열되어 있었다. 박물관을 한 바퀴 둘러보았으니 바에 앉아 술을 마실 차례! “스트레이트로 마시든, 칵테일로 마시든, 베헤로프카는 차갑게 마셔야 해요. 그렇게 해야 향의 균형이 극대화되고 온전한 맛을 느낄 수 있죠.” 다섯 개의 다른 잔에 베헤로프카 브랜드의 술을 담아 서빙하는 매니저가 말했다. 다섯 개의 잔이 놓였으니 어떤 순서로 마실지만 선택하면 될 일. 베헤로프카 오리지널, 레몬을 함유해 진한 단맛이 느껴지는 베헤로프카 레몬드, 코르코디얼, KV14, 화끈하게 달아오른다고 이름 붙은 아이스&파이어. 달콤한 베헤로프카 레몬드로 입안을 축이고 베헤로프카 오리지널, 코르코디얼, 아이스&파이어, KV14 순서대로 맛을 보았다. 한 잔을 비울 때마다 체코식 건배인 “나 즈드라비(Na Zdravi)!”를 외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낮에는 필스너 우르켈 맥주에, 밤에는 베헤로프카에 취해 있던 하루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프라하로 돌아오는 길에는 빨갛게 지는 하늘까지 더해졌으니 분명 그런 하루는 다시 없을 거다.

1 르네상스의 건물이 강을 따라 서 있는 카를로비 바리의 평화로운 모습. 2 우아한 자태의 콜로나다. 3 카프카의 집을 만날 수 있는 황금소로. 4 온천수 전용 물잔. 손잡이처럼 보이는 것을 빨대로 이용한다.

온천과 영화의 도시, 카를로비 바리
온천의 도시 카를로비 바리는 카렐 4세가 사냥을 하던 당시, 상처 입은 사슴이 샘물에 들어갔다 나오면서 상처가 치료되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도는 곳이다. 마을 곳곳에서 뿜어 나오는 광천수를 마시고, 온천수에 몸을 담그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온천수에 관심 없는 방문객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도시다. 작은 시골 마을만이 갖는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는 길에 놓인 의자에서도, 눈부신 꽃으로 가득한 공원에서도, 산책하는 사람들의 표정에서도 느낄 수 있다. 마시는 온천수는 콜로나다(Kolonada)라 불리는 독특한 구조물 안에서 맛볼 수 있는데, 이는 사계절 눈과 바람을 피해 따끈한 온천수를 제공하기 위한 도시의 배려이기도 하다. 총 5개의 콜로나다는 적게는 1개부터 많게는 6개까지의 온천수를 가지고 있다. 상점에서 판매하는 온천수 전용 물잔을 사서 떨리는 마음으로 한 잔을 들이켰다. 짭짤하고 약간의 비린내가 나기도 했지만 몸에 좋다고 하니 꾹 참고 들이마시는 수밖에. 소화기 계통의 질병에 뛰어나 위장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 특히 좋은 이 온천수는 각 온천수마다 온도, 미네랄, 이산화탄소, 이온, 소금 등의 함유량이 다르다. 관광객의 시음이라면 상관없지만 치료를 위해 장기적으로 마시기 위해서라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이유다. 길거리 상점에서 판매하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전용잔은 기본적인 모양새는 같지만 조금씩 모양과 크기를 달리한다. 손잡이처럼 생긴 부분을 빨대 삼아 마시면 되는데, 이는 뜨거운 온천수를 조금이라도 식혀 먹기 위해서다. 많은 콜로나다 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브르지델니 콜로나다이다. 13미터 높이로 용솟음치는 이 온천은 2천 미터 지하에서 분당 2천 리터로 뿜어 나온다. 보고 있으면 절로 입이 떡하고 벌어질 만큼 장관을 이룬다. 문득, 이곳에서 솟아나는 물이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 단순히 물 자체의 효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잔을 들고 산책하듯 고풍스러운 석조 건물들 사이를 걸어 다니며 한 잔씩 홀짝이다 보니 몸보다 마음이 먼저 건강해지는 것 같았다.
카를로비 바리는 매년 7월, 카를로비 바리 국제영화제를 통해 세계적인 축제의 장소로 변신한다. 한때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끝내 자리를 지켜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 세계적인 배우들은 기꺼이 이곳에서 축제를 즐기고 휴가까지 보내고 돌아간다. 거의 모든 셀럽은 1890년 문을 연 이후, 도시의 역사를 함께하고 있는 그랜드 호텔 푸프(Grand Hotel Pupp)에서 묵는다. 호텔에는 모건 프리먼, 르네 젤위거, 키이라 나이틀리 등 유명 배우들이 호텔 내부에서 작업한 위트 있는 사진이 걸려, 푸프 호텔에 대한 그들의 특별한 애정을 짐작하게 한다.

카프카를 찾아서
프라하는 시도 때도 없이 실존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프란츠 카프카를 배출한 도시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마주친 카프카의 흔적은 유대인 지구에서 만난 카프카의 기념비였다. 체코의 조각가 야로슬라프 로나가 만든, 얼굴이 없는 거대한 남자 위에 올라 앉은 작고 연약한 카프카. 그를 받치고 선 것은 어쩌면 그의 조국인 체코, 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닐까. 그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혹독한 아버지, 그리고 체코인과 독일인, 유대인이 불안하게 공존한 체코는 카프카에게 있어 무엇이든 글로 토해내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게 목을 죄었을지도 모르겠다. 평범한 직장인으로서의 생활과 글쓰는 일을 양분하여 지내는 동안, 유대계 독일인이라는 운명으로 인한 고독과 외로움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그의 흔적은 황금소로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프라하성 동문 가까이에 위치한 황금소로는 16세기에 성을 지키던 병사들이 거주하던 숙소다. 17세기에는 연금술사와 금 세공사들이 모여 살면서 황금골목이라 불리게 된 이곳에 프란츠 카프카의 집이 있다. 2평 남짓의 좁은 집, 22번지에서 그는 대표작 <성>을 집필했다. 발렌티노 학파의 지식인들과 모임을 가진 카페 루브르, 카프카의 첫 직장인 이탈리아 보험사의 프라하 지점, 연인 펠리체 바우어를 만난 막스 브로트의 집, 카프카가 묻힌 신유대인 묘지, 구시가 광장에서 만난 그의 이름을 딴 카프카 카페까지, 프라하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카프카를 기억내해고 있었다. 그러나 가장 확실한 카프카는 단연 프란츠 카프카의 뮤지엄에 있었다. 제대로 찾아가고 있는 게 맞나 싶을 때쯤 그의 사진이 걸린 분홍색 기념숍이 눈에 들어왔다. 세계의 언어로 번역된 박물관 소개서부터 소설과 사진, 사진집까지 온통 카프카로 도배되어 있었으니 제대로 찾아온 것이 확실했다. 온통 까만 벽으로 꾸며진 뮤지엄 내부에는 무겁고 낮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조명은 있는 대로 조도를 낮췄고, 간간이 밝힌 조명은 오직 그의 글과 사진만 비췄다.
카프카는 평생을 프라하에 살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어느 투쟁의 묘사>를 제외하고는 체코와 관련된 구체적인 언급을 찾아보기 어렵다. 거듭 동화되려 했지만 끝내 낯선 도시로 머물렀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을 때까지 한시도 벗어날 수 없었던 프라하를 두고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프라하는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는다. 이 작은 어머니는 맹수의 발톱을 가지고 있다.” 프라하는 카프카가 죽고 난 후에도 이토록 수많은 방식을 동원해 그를 자유롭게 놓아주지 않고 있다.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의 책을 읽은 이들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을 이해하기 위해, 장소를 경험하기 위해, 카프카의 문학에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리하여 카프카를 만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천 년의 도시, 프라하로 모여들고 있다.

체코로 가는 길
인천공항에서는 매주 체코항공에서 월 • 목 • 금 • 일요일, 대한항공에서 화 • 수 • 금 • 토요일, 주 8회 프라하 노선을 운영한다. 체코항공과 대한항공의 공동운항으로, 체코항공의 기내 시설 및 서비스면에서 대한항공과 동일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체코항공의 VIP 프로모션 체코항공에서 특별한 VIP 서비스 프로모션을 준비했다. 7월 31일까지, 체코항공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 소지자(OK064발권, OK190편 이용자)에 한하여 프라하 공항으로 이동 할 때, 기사가 직접 묵고 있는 호텔에서 픽업을 하는 의전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항공사 카운터를 찾을 필요 없이 따로 마련된 VIP 터미널에서 출국, 수속 절차를 밟고 라운지를 이용할 수 있다. 문의 1544-94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