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떤 책을 읽으세요? 새로운 작가들이 새로운 상상력으로 당신의 책장을 비집고 들어올 준비를 마쳤습니다. 여기, 지금 읽어야 할 8권의 책이 기다립니다.

1 <야만적인 앨리스씨> 황정은
실제로 이런 곳이 있을까 두려운 ‘고모리’에서 <야만적인 앨리스 씨>는 시작한다. 재개발을 앞둔 그곳은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기르고, 하수처리장의 악취가 마을을 뒤덮는 곳. 그저 보상금을 챙기기 위해 남은 사람들의 눈은 퀭하고, 어머니에게 학대당하는 앨리시어와 동생을 지켜주는 사람은 없다. 작가 황정은은 오사카에서 여장을 한 노숙인의 뒷모습을 본 후, 그 뒷모습이 등장하는 단편을 쓰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 실마리가 <백의 그림자> 이후 그녀의 두 번째 장편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 앨리스 새끼는 어떻게 되냐.” 단숨에 문제작으로 떠오른, <야만적인 앨리스씨>다.

2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홍희정
분홍색 표지 위에 그려진 전화기와 우유. ‘이 책은 청춘을 이야기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하겠지만 그 짐작은 반 맞고, 반은 틀렸다. 조경란, 박현욱, 박민규 등을 등용한 문학동네작가상의 열여덟 번째 수상작 <시간 있으면 나 좀 좋아해줘>. 작가가 창조한 세계에는 다 컸지만 아직 소년 소녀에 가까운 주인공들이 산다. 대형마트 입점 반대 시위를 하러 간 어머니와 달리 대형마트에 취직하기로 한 ‘개미슈퍼’의 아들, 전화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회사 ‘들어주는 사람’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소녀. 어쩐지 느릿느릿한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그러고는 현실에 없을 몇 가지가 못 견디게 그리워진다. “자네도 혹시 ‘들어주는 사람’에게 무언가 이야기하고픈 충동을 느낀 적이 있지 않은가?” 작품 속 사장의 말처럼 말이다.

3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김금희
감상에 빠지기엔 너무 할 일이 많은 대한민국의 삶. 김금희는 우리의 분주하고 난감한 삶을 들여다본다. 사업에 실패하고 집을 나간 아버지. 정년을 채우지 못한 채 회사에서 쫓겨난 몸은 병원 신세까지 지고, 어렵게 집을 떠나 입사한 회사는 수습부터 해야 한다. 마치 달에서 서울 살이를 내려다보는 듯한 모습들. ‘이 도시는 참 묘해서 어느 날은 영원히 서울 시민으로 살 수 있을 듯하다가도 생활비가 떨어져가면 완강히 내쳐지는 느낌이 들었다’라거나 ‘개미굴처럼 이어진 서울의 골목을 내달리다 보면 용케 내 이름으로 된 주소를 갖기도 하고, 나만큼이나 우왕좌왕하는 남자들과 연애도 하는 거였다’는 작가의 문장에서 마치 내 삶을 들킨 것처럼 낯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작가는 연민의 시선을 잊지 않고, 주인공들은 한 뼘씩이라도 성장한다. 그 사실이 뜨겁도록 희망적으로 다가온다.

4 <이만큼 가까이> 정세랑
새로운 작가들이 궁금하다면, 가장 빠른 길은 여러 권위 있는 문학상의 새로운 수상자를 찾는 것이다. 정세랑은 ‘한국소설의 참신한 상상력을 발굴하기 위해’ 창비가 제정한 ‘창비장편소설상’의 제7회 수상자다. 이제 막 서른을 넘은 작가의 활력 넘치는 소설은 동창회처럼 정겹다. 작은 신도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들의 이야기는 분당, 일산 등으로 이사 간 친구들의 얼굴을 떠오르게 했고, 사진 파일과 영상으로 추억을 저장하는 습성도 우리 모습 그대로였다. 영화며 책, 음악 등 다양한 문화 코드로 스스로를 차별화하려 하기도 했었다. 이렇듯 이 책은 <응답하라 1997>이 겉으로 핥은 삼십대의 추억을 촘촘히 매만진다. 사랑도 있고, 꿈도 있다. 작은 인생 안에 성공도 실패도 있었다. 한 세대의 감수성과 정체성을 대변하는 문화와 패션코드가 총망라되어 소설을 읽는 내내 과거를 반갑게 추억하기도 하고, 현재를 따뜻하게 다독이기도 한다. 이런 신인을 발굴하는 문학상이라면, 참 잘 생겼다.

5 <그들에게 린디합을> 손보미
이거다 싶었다. 손보미는 우리가 늘 새로운 작가를 탐구해야 할 이유다. <그들에게 린디합을>에는 현재 문단에서 가장 주목하는 젊은 작가인 손보미의 단편소설 9편이 실려 있는데, 그 또한 좋았다. 멋지지 않은 장편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처럼 지루한 일도 없으니까. 게다가 9편의 소설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었고, 현재의 감수성이 세련되게 담겨 있었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작품은 작가가 묻어놓은 힌트대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무서운 신인의 작품이지만, 김연아의 클린 연기만큼 깔끔한 작품들은 작가의 수고를 짐작하게 했다. 등단 5년 차에 접어든 작가의 차기작이 궁금한 이유다.

6 <바벨> 정용준
정용준은 <얼루어>에 짧은 동화를 써준 적이 있다. 태어나 털가죽을 인간에게 빼앗기고 죽어가는, 밍크를 주인공으로 한 동화였다. 그 동화를 읽고 편집부는 마감 중 눈물바다가 되었다. 정용준과의 추억을 굳이 꺼내는 이유는, 물론 놀라운 소설을 쓴 정용준과의 추억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정용준의 <바벨>은 겨우 몇 줄로 설명하기 힘들다. 말이 얼어붙는 나라에서, 얼어붙은 말을 떼어내는 사람들이 산다. 새로운 언어에 대한 시도와 말이 채운 세상에 대한 우화가 거기 있었다.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낸 ‘펠릿’은 말과 언어가 가진 본질부터 내가 내뱉는 말까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말하는 이유. 우리가 말하지 않는 이유. 그리고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까지도.

7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안보윤
안보윤은 1970년대생도 아닌 1980년대생 작가다. 새로운 세대를 예고한 전작 <악어 떼가 나왔다>로 2005년 일찌감치 등단한 그녀는 벌써 다섯 편의 장편을 냈고, 꽃 피는 봄에 맞춰 소설집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를 발표했다. “내게 있어 소설이란 그랬다. 타인의 책상에서 타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부끄럽게도 나는 타인의 삶을 짐작해왔을 뿐이다”라고 작가는 겸손하게 말하지만, 그 타인의 삶은 매일 읽는 신문지상의 사건들처럼 날카로운 현실로 다가온다. 태어날 때부터 장애를 가진 사람들, 이길 수 없는 가난. 그럼에도 안보윤은 말한다. 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라니. 이 안의 삶이 내 것이 아니라서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살아남았기 때문일까? 작가의 질문을 받은 것처럼 먹먹해졌다.

8 <syzygy> 신해욱
이 시집의 제목을 도대체 어떻게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사전의 의미는 ‘삭망’이라는 뜻이라는데. 시인의 말을 찾아봤다. “syzygy. 이 단어를 본 순간 난감한 에로티시즘에 사로잡혔다. y가 세 개나 들어 있는 저 기묘하고 투박한 조합. 읽기보다는 만지고 싶었다.” 시인은 이 단어에서 닿을 수 없는 해와 달, 지구의 일직선을 갈구하고, 원생동물의 생태와의 거리를 가늠한다. 그러고선 “그러니 이 책의 이름을 syzygy라 짓는 수밖에 없다. 부적을 붙이는 심정이다”라고 맺는다. 시인의 전작 <생물성>은 아름답고 희귀한 시집이었다. 식물 같은 담담하면서 활기찬 생명력은 여전한데, 더욱 세련된 대지의 힘이 느껴진다. 어렵지 않은 담백한 묘사와 간결한 구조가 시 읽는 맛을 살린다.

그 작가의 신간
우리가 익히 아는 작가들도 새 작품을 냈다.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은희경 그녀를 자꾸 1990년대 문단의 아이콘을 부른다면, 작가가 아주 섭섭할 것 같다. 그만큼 은희경은 한 번도 멈춘 적 없이 꾸준히 작품을 써왔다. 과거 시대가 아니라 현시대를 함께 사는 작가 은희경이 또 한번 존재를 증명한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김중혁은 딴 소리를 하는 걸 좋아한다. 소설이든, 수필이든 그만큼 작가의 세계가 매력 있다는 뜻이다. <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은 소설가 김중혁이 본업에 충실하게 낸 신간이다. 사람의 흔적을 치워주는 구동치의 활약은,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황선미 자신의 이름보다 작품이 더 유명한 건 어떤 기분일까? <마당을 나온 암탉>의 황선미가 그렇듯 말이다. 주변을 둘러싼 살아 있는 것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이번에도 이어진다. 산동네 백 번지의 강 노인은 골칫거리들로 골치가 아프지만, 서서히 골칫거리는 과거와 깊은 오해를 풀 수 있는 다리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