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몸의 기준은 새로운 섹시 아이콘이 탄생할 때마다 바뀐다. 그리고 최근 스크린과 매거진 커버를 점령한 여자들은 그 기준을 ‘풍만함’이라는 단어에 맞춰놓았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매로 섹시 아이콘이 된 네 명의 뮤즈들. 1 모델 라라 스톤. 2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 3 모델 라라 스톤. 4 영화배우 제니퍼 로렌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몸매로 섹시 아이콘이 된 네 명의 뮤즈들. 1 모델 라라 스톤. 2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 3 모델 라라 스톤. 4 영화배우 제니퍼 로렌스.

몸에 대해 얘기해보자. 대한민국의 젊은 여자치고 다이어트의 압박에 시달려본 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미디어와 사회가 만들어내는 이상적인 몸매의 환상에 노출되어 있다. 어떤 운동 기구를 써야 옆구리살 2인치를 덜어낼 수 있고, 어떤 주스가 몸속 독소를 배출하며, 어떤 아이돌이 8킬로그램을 빼고 ‘시크한 모습으로’ 컴백하는지 TV와 인터넷, 주변 사람들로부터 실시간으로 전해 듣는다. 그러고는 ‘비만율, 빈곤층에 집중되다’ 같은 제목의 뉴스를 접하며 날씬한 몸매가 새로운 부의 상징이라도 되는 양 저녁을 굶고, 운동을 한다. 실제로 우리가 말랐는지, 살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이어트’라는 단어는 이미 흑사병처럼 퍼져서, 우리의 아름다운 몸에 대한 기준을 왜곡하고 건강한 가치관을 흔들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한 남성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스칼렛 요한슨이 ‘세상에서 가장 섹시한 여자’에 뽑혔다. 스물세 살의 모델 케이트 업톤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표지를 세 번이나 장식했고, 무명에 가까웠던 마고 로비는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끈적한 러브 신을 찍었다. 그것도 여러 번! 우리가 이상적이라고 느껴온 체형에 드디어 변화의 바람이 부는 걸까? 마른 몸의 미덕을 강요하던 사회에 혜성처럼 나타나 남자는 물론 여자들의 혼까지 쏙 빼놓은 새로운 섹스 심벌들.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치명적인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곡선의 풍만한 보디라인이었다.

돌고 도는 체형 트렌드
어쩌면 절대적으로 섹시한 몸매라는 건 처음부터 없는 건지도 모른다. 패션 트렌드처럼, 체형에도 분명 유행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무작정 살을 빼는 데 집중해왔다. 그게 대세였으니까. 그동안 패션 모델들의 섭식장애와 점점 작아지는 옷 사이즈는 알면서도 눈감고 넘어가는 불편한 진실이었다. 주변의 여자들은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마른 몸매를 가져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했고, 살을 빼기 위해 일부러 작은 치수의 옷을 사는 일도 다반사였다. 건강이나 아름다움에 대한 지향점은 일단 제쳐두고 경쟁적으로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걸 보면 요즘 여자들의 가장 이상적인 몸매는 납작한 등,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진 사춘기 소년 같은 몸매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데 오래전에는 허리는 잘록하고 엉덩이는 풍만한 모래시계형 몸매를 아름답다고 여겼다. 미디어가 발달하기 전, 다양한 문화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 있던 시절에는 과장된 형태의 여성미가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이다. 코르셋이 탄생시킨 이 몸매는 1950년대 마릴린 먼로를 비롯한 핀업 걸들의 전성기와 함께 정점을 찍었는데, 머잖아 트위기의 등장과 함께 순식간에 구닥다리가 되어버렸다. 1960년대를 논할 때 빠지지 않는 이 전설적인 모델의 깡마른 몸은 당시 유행하던 A라인의 미니 드레스를 입기에 최적이었고, 그렇게 마르고 가냘픈 몸은 히피 문화가 뿌리내린 1970년대까지 꽤 오랫동안 각광받았다. 1980년대는 슈퍼 모델들의 시대였다. 당시 런웨이를 장악한 신디 크로포드와 나오미 캠벨, 엘 맥퍼슨, 린다 에반젤리스타, 크리스티 브링클리 같은 모델들은 단단한 복근, 톤 업된 엉덩이와 각 잡힌 어깨라인 등 ‘슈퍼’란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건강미 넘치는 몸매를 갖고 있었다. 피트니스가 유행하고 <플래시댄스>나 <록키> 같은 영화, ‘Let’s Get Physical’ 같은 제목의 팝송이 인기를 끌던 시절의 이야기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는 마른 몸이 또다시 주목받았다. ‘헤로인 시크’의 대명사인 케이트 모스의 등장, 길고 얇은 몸매에만 어울리는 미니멀리즘 패션 등 미디어와 패션계는 다시 사람들에게 마른 몸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었다. 이 추세는 2000년대를 지나 지금까지 이어졌는데, 이제 그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밀당하듯 10여 년을 주기로 살을 빼라, 찌워라, 운동하라 가이드라인을 열심히 제시해온 보디 트렌드가 마른 몸매에 대한 오랜 동경을 접고 자연스럽고 여성스러운 실루엣으로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굴곡 있는 그녀들의 등장
깡마른 세상에서 자신만의 독보적인 실루엣을 유지한 스타들은 언제나 존재했다. 디올 옴므의 스키니 실루엣과 발렌시아가의 ‘아동복 같은’ 오버사이즈 코트가 패션계의 절대적 지지를 얻던 시절, 말 그대로 터질 듯한 몸매를 흔들며 ‘부틸리셔스(Bootylicious : 엉덩이를 뜻하는 ‘Booty’와 맛있다는 뜻의 ‘Delicious’를 합쳤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비욘세부터, 평소 작은 키와 통통한 체형으로 친근한 몸매를 가진 여배우라 불렸지만, 영화 <매치포인트> 중 빗속의 격렬한 러브신에서 드러난 물에 젖은 실루엣 한 방으로 할리우드 최고의 섹시 스타로 등극한 스칼렛 요한슨이 있었다. 고혹적인 얼굴에 어울리는 육감적인 성숙미의 대표주자, 모니카 벨루치는 또 어떤가? 패션 트렌드가 어떻고 어떤 다이어트가 열풍인지와는 상관없이, 섹시 아이콘의 자리는 늘 어느 정도 살집이 있는, 여성미 넘치는 실루엣의 스타들이 차지한 것이다. 3억 달러짜리 엉덩이 보험을 든 제니퍼 로페즈나 10억 달러의 다리 보험을 든 머라이어 캐리를 보면 볼륨 있는 몸매의 가치는 꾸준히 높게 평가되었다는 걸 알 수 있다. 최근 새롭게 등장한 섹시 스타들은 우리가 아름다운 몸에 대해 세운 수많은 기준을 재정립한다. 먼저 모델 라라 스톤이 있다. 평균 사이즈가 ‘0’인 패션계에서 ‘4’ 사이즈를 입는 그녀는 “다들 나를 ‘풍만하다’고 포장하지만 사실은 ‘뚱뚱하다’고 말하는 거예요”라며 각박하고 건조한 패션계를 비웃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결코 뚱뚱하지 않다는 것이다. 178센티미터의 큰 키에 4 사이즈는 지극히 정상적인 수치이며, 36-26-35로 떨어지는 그녀의 신체 사이즈야말로 이상적인 범위에 가깝다. 왜곡된 기준이 그녀를 덩치 큰 모델의 카테고리로 분류했지만 라라 스톤은 모델스닷컴 랭킹 1위의 정상급 모델로 성장했고, 굵직한 명품 브랜드의 얼굴로 활약했다. 카린 로이펠트는 프랑스판 <보그>의 편집장을 지내던 당시 2009년 2월호를 통째로 라라 스톤에게 헌정할 만큼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랑했으니, 부드러운 가슴과 아랫배가 있는 그녀의 건강한 몸은 말라깽이들이 지배한 패션계에서 제대로 진가를 발휘한 셈이다. 구글 검색란에 이름을 치기만 해도 ‘Fat’, ‘Weight’ 같은 단어들이 자동 생성되는 여배우, 제니퍼로렌스는 긍정적인 보디 이미지를 대표한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보디라인을 가졌지만 왜곡된 사회의 기준 탓에 종종 ‘덩치 큰 스타’로 불리는 그녀는 자신의 현재 몸을 사랑한다며, 억지로 살을 빼지 않을 것이라는 소신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솔직히 레드 카펫에서 탄탄한 어깨 라인을 드러낸 튜브톱 드레스를 소화해내는 그녀를 보면 그녀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그녀의 적당히 굵은 팔과 살집 있는 허리는 빼빼 마른 여배우들 사이에서 한줄기 신선한 바람이기 때문이다. 끼니를 거른 횟수, 피트니스 센터에서 보낸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몸은 절대 글래머러스하지 않다. 삶을 즐기는 애티튜드가 동반됐을 때, 그 건강미가 진짜로 섹시한 거다. 그리고 그건 제니퍼 로렌스가 레드 카펫에서 가장 빛나는 스타 중 하나가 된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울프 오브 월스트리트>의 신데렐라, 마고 로비도 빼놓을 수 없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홀딱 빠지게 만든 압도적인 볼륨감은 앞서 개봉한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나는데, 그녀가 짧은 운동복을 입고 힘차게 테니스 공을 내려치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남자 주인공의 내레이션은 “눈앞에 저런 광경이 펼쳐지는데 경기에, 아니 내 삶에 어찌 집중할 수 있겠는가?”다. 무척이나 공감 가는 대목이었다.

받아들임의 미학
대세로 떠오른 스타들의 풍만한 보디라인은 지금까지 우리가 추구했던 보디 트렌드 중 가장 자연스러운 라이프스타일을 요구한다. 특정 모양의 근육을 만들기 위해 운동에 매달릴 필요도 없고, 여느 글래머 스타처럼 가슴이 커야 한다고(물론, 가슴까지 크면 금상첨화겠지만 어쨌든) 강요하지 않는다. 지방이 좀 남아 있으면 어때, 무엇보다 살을 빼기 위해 굶지 않아도 되니 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이상적이라고 정의 내린 남의 몸매를 보며 자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거다. 새로운 섹시미의 요점은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신체적 자산을 예쁘게 다듬는 데 있다. 콘래드 서울 펄스에이트의 트레이너 김희광은 여성스러운 볼륨감을 유지하면서 균형 있는 몸매를 다듬는 비밀은 ‘적당히’에 있다고 말했다. 몸매 관리를 위해 탄수화물을 아예 식단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결코 좋은 방법이 아니다. 부드러운 실루엣을 결정짓는 지방을 생성하는 데 탄수화물은 꼭 필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소량이라도 섭취해야 한다는 것. 비타민과 단백질을 적당히 섭취해 균형 잡힌 식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또 몸의 중심을 잡는 복부 운동, 등이나 어깨를 다듬는 자세 교정 운동부터 시작하면 몸매를 전체적으로 바로잡아 다른 부위별 운동을 할 때 효과를 높여준다고 한다. 팔과 다리, 가슴 등 부위별 운동을 할 때에도 강도를 적당한 선에서 유지해 오래 하기를 권했다.
살을 빼는 것과 몸을 균형 있게 만드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맹목적인 다이어트를 믿지 않는 스칼렛 요한슨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벤저스> 촬영에 들어가기 전 슈퍼히어로다운 몸매를 만들기 위해 운동을 다녔더니 타블로이드지에서 소설을 쓰기 시작하더군요. 발음하기도 어려운 생소한 뿌리 채소를 먹는다고 하질 않나, 만나본 적도 없는 스타 트레이너와 1대1 트레이닝을 하며 7킬로그램을 빼고 있대요. 쓸데없이 살을 왜 빼나요? 키가 160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몸집에서 7킬로그램씩이나 빼려면 두 팔을 뽑아버려야 할지도 몰라요.”
풍만한 몸은 그렇지 않은 몸보다 훨씬 풍요롭고 너그러워서 섹시하다. 여자라면 누구나 몸에 예쁜 구석 하나씩은 가지고 있기 마련. 어깨부터 팔까지 이어지는 라인이 우아할 수도 있고, 쭉 뻗은 다리를 가졌을 수도 있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장점을 찾아내 강조하는 것이 지옥의 다이어트를 거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섹시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섹시한 몸을 가지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쉬워진 요즘이다.

BODY TALK
다양한 인터뷰에서 발췌한, 보디 이미지에 관해 당당하고 멋진 가치관을 가진 제니퍼 로렌스의 유쾌한 말말말.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굶으라고요? 세상에 그런 멍청한 짓을…” – <더 데일리 메일>
“화면에 조금 통통해 보일지라도 이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이는 게 제겐 더 중요해요.” – <마리 끌레르>
“저는 원시인처럼 우걱우걱 먹어요. 거식증 관련 루머가 돌지 않는 유일한 여배우일지도 모르죠.” –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누군가 감히 제 귓가에 ‘다이어트’를 속삭인다면 전 가서 엿이나 먹으라고 말할 거예요.” – <더 가디언>
“배역을 따기 위해 살을 빼지는 않아요. 어린 여자애들이 저를 보고 ‘캐트니스(영화<헝거 게임> 속 그녀의 배역)처럼 되고 싶어! 그러니 오늘 저녁은 건너뛰어야지’라고 생각한다면 큰일이니까요. 이건 몸을 단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날렵하고 강한 몸은 굶주리고 마른 몸과 다르니까요.” – <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