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주변국이었던 호주가 점차 세계 패션계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그건 스타 디자이너의 탄생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호주 여자들의 실용적이고 세련된 옷 입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녀들의 패션은 어떻길래?

1 패션 블로거 타냐 가식의 건강미 넘치는 옷차림. 2 야스민 스웰의 감각적인 스타일. 3 사스앤바이드의 2014년 봄/여름 컬렉션. 4 엘러리의 2014년 봄/여름 컬렉션. 5 디온 리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  6 자연스럽게 뒤태를 드러낸 호주 패션 피플의 옷차림. 7 호주판  패션 에디터 크리스틴 센테네라. 8 짐머만의 수영복 위에 와이드 팬츠를 매치한 호주 패션 피플.

1 패션 블로거 타냐 가식의 건강미 넘치는 옷차림. 2 야스민 스웰의 감각적인 스타일. 3 사스앤바이드의 2014년 봄/여름 컬렉션. 4 엘러리의 2014년 봄/여름 컬렉션. 5 디온 리의 2014년 가을/겨울 컬렉션. 6 자연스럽게 뒤태를 드러낸 호주 패션 피플의 옷차림. 7 호주판 <보그> 패션 에디터 크리스틴 센테네라. 8 짐머만의 수영복 위에 와이드 팬츠를 매치한 호주 패션 피플.

미풍을 품은 것처럼 낙낙한 실루엣과 자연스럽게 찰랑거리는 소재, 적당히 낮은 굽의 슈즈 등이 몸을 속박하는 의상의 반대편에서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 이 모든 스타일을 함축하는 단어는 ‘이지 시크’. 편안한 옷차림의 대명사인 스웨트 셔츠를 필두로 스포티즘 의상이 런웨이를 대거 점령했고, 슬리퍼와 슬립온 슈즈는 하이힐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현재 패션계의 화두가 된 이지 시크 룩을 일찌감치 알아본 건 호주 여자들이다. 지구 남반구에 위치한 이 나라 여자들은 편안한 스타일에 관해서는 도가 텄다. 호주 출신의 미국판 <글래머> 패션 디렉터인 질리안 데이비슨은 호주 여자들의 옷차림을 이렇게 말한다. “호주 패션은 그들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합니다. 1년 내내 따뜻한 날씨의 영향으로 비교적 일관된 스타일을 유지할 수 있죠. 몇 가지 기본 아이템으로 실용적인 옷차림을 즐긴답니다.” 기후뿐 아니라 지리적인 조건도 당연히 영향을 끼친다. 호주의 주요 도시들은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 자리한다(시드니에는 해변이 100개나 있다!). 그러니 퇴근 후 해변으로 달려가도 어색하지 않은 서머 드레스를 즐겨 입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 비키니 차림으로 일광욕을 즐기다 크롭트 톱과 데님 쇼츠를 입고 해변가를 거닐거나, 스포츠를 즐기는 일상이 친숙하다. “수영과 서핑 문화에 익숙한 호주 여자들은 몸매를 강조하는 실루엣을 선호합니다. 속살이 드러나는 컷 아웃 디자인과 시스루 드레스는 유니폼과도 같아요. 겨울에는 여기에 레이어드를 하고요. 호주의 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거든요.”
스트리트 패션 사진에 자주 등장하는 패션 컨설턴트 야스민 스웰을 보면 호주 여자들의 스타일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원색 팬츠를 입거나 티셔츠와 풀 스커트의 간결한 조합, 보이시한 재킷에 발목이 드러나는 팬츠를 매치하는 자유로운 스타일은 동시대 여자들이 환호할 만하다. 호주판 <보그>의 패션 에디터 크리스틴 센테네라도 호주 스타일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다. 그녀는 구릿빛 피부와 건강미 넘치는 외모에 어울리는 관능적인 스타일로 주목받는 패셔니스타다. 크롭트 톱에 슬릿 디테일 스커트를 매치하거나, 구조적인 컷 아웃 드레스로 우아한 노출을 즐긴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가 입는 의상 대부분이 호주 디자이너의 의상이라는 것. “조시 구트, 디온 리, 짐머만을 즐겨 입어요. 호주 디자이너의 옷은 간결한 재단이 특징이에요. 세련된 펌프스만 더해도 스타일이 완성되죠.”
호주를 대표하는 스타들의 패션도 크게 다르지 않다. 미란다 커, 니콜 키드먼, 나오미 와츠, 케이트 블란쳇 등 파파라치 사진 속 그녀들은 늘씬한 키와 탄탄한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자연스러운 옷차림을 즐긴다. 미란다 커의 패션에 대해서 미국판 <글래머>는 “미란다 커를 대표하는 아이템은 쇄골을 드러내는 섹시하지만 심플한 원색 드레스다”라고 말하고, 영국판 <그라치아>는 “그녀의 평소 스타일은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에서 나온다. 적당히 피트되는 청바지나 건강한 이미지를 드러내는 미니드레스 등 과하지 않은 아이템 속에서 그녀는 빛난다”고 설명한다. “완벽한 룩을 완성하는 법칙 따윈 없어요. 그저 패션을 즐기면 되니까요!” 미국판 <얼루어>와의 인터뷰에서 미란다 커가 남긴 명언이다.
“옷 잘 입는 호주 여자들은 옷이나 액세서리가 자신의 개성을 압도하게 연출하지 않아요. 스타일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 생각하고 몇 개의 엄선한 아이템으로 개성을 충분히 드러내죠.” 시드니에서 편집매장 랜드스 엔드를 운영하는 제인 재스퍼의 설명처럼, 호주 여자들의 스타일은 야단스럽지 않은 조합으로 건강한 이미지를 부각하는 패션 감각에서 비롯된다.

떠오르는 패션의 나라, 호주
본격적으로 호주 패션이 주목을 끌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었고, 그 선두주자는 사스앤바이드였다. 브랜드의 상징이 된 힙스터 데님과 앞여밈이 2인치에 불과한 몸에 딱 붙는 부츠컷 데님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이후 전 세계 데님 시장을 휩쓴 수비가 등장했다. 이 두 브랜드는 호주 패션을 세상에 널리 알리고, 후속 브랜드들의 길을 터주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이후 엘러리, 카밀라 앤 마크, 베이시크가 바통을 이어받았고, 최근 디온 리와 조시 구트 같은 젊은 신예 디자이너들이 주목받고 있다.
활기찬 컬러와 프린트, 최첨단 소재를 다루는 호주의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은 다른 도시와 차별화된다. 이번 시즌 뉴욕 컬렉션에 데뷔한 디온 리는 자신을 유명하게 한 입체재단과 네오프렌 소재, 그리고 섹시한 드레스로 정체성을 알렸다. 그와 함께 거론되는 조시 구트는 비대칭 테일러링과 컬러 블록, 디지털 프린트를 모던하게 조합한다. “디온 리와 조시 구트는 몸매를 강조하는 실루엣을 만들기 위해 몸판 부분을 절개하고 가르는 그래픽 작업을 많이 해요. 수영복과 서핑복에서 볼 법한 소재와 디자인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죠.” 질리안 데이비슨의 말이다.
2012년부터 꾸준히 호주패션위크를 다녀가는 패션 블로거 수지 버블은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호주 브랜드 엘러리와 디온 리, 로맨스 워즈 본 등을 언급하며 이런 평을 남겼다. “디자이너들마다 풀어내는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빠지지 않는 건 뛰어난 현실 감각이다. 가볍고 시원한 소재와 짧은 헴라인, 네오프렌과 같은 스포츠 소재를 활용해 일상과 휴양지에서의 절묘한 조화를 보여주고 있다.” 시즌마다 <스타일닷컴>에 시드니의 스트리트 사진을 올리는 토미 톤은 호주 여자들의 패션 스타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4대 패션 도시와 다른 신선한 매력이 있어요. 호주 여자들은 옷을 잘 입지만 특출 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괴상하게 입지도 않죠.”
패션의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뉴욕, 런던, 밀란, 파리의 위상은 굳건하다. 하지만 때로 패션계는 새로운 자극을 선사하는 제5의 도시를 찾는다. 그리고 지금 모두가 바라보는 곳은 호주다. “호주 여자들의 옷차림은 단순해요. 유행을 따르기보다 눈에 띄는 소수의 아이템에 투자하거든요. 멋진 티셔츠, 쿨한 청바지, 편안한 정장, 따뜻한 날씨를 위한 니트 웨어처럼 매일 입는 의상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죠.” 베이시크의 디자이너 데보라 샘스의 설명은, 평범한 일상을 사는 여자들이 공감할 만하다. “여자들은 점점 현실을 찾고 있어요.” 랑방의 알바 엘버즈의 말처럼 지금, 많은 여자가 편하고 세련된 스타일에 경도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트렌드를 알지만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으며, 개성은 있으나 오버하지 않는 호주 여자들을 옷차림을 눈여겨보길.

1 미니드레스를 즐기는 미란다 커. 2 2014년 4월호 호주판 . 3 호주에서 발행하는 패션 잡지 . 4 호주를 대표하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 공식 석상에서는 여유로운 실루엣의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1 미니드레스를 즐기는 미란다 커. 2 2014년 4월호 호주판 <보그>. 3 호주에서 발행하는 패션 잡지 <러쉬>. 4 호주를 대표하는 배우, 케이트 블란쳇. 공식 석상에서는 여유로운 실루엣의 드레스를 즐겨 입는다.

호주 여자가 말하는 호주 패션
Carmen Hamilton 카르멘 해밀턴은 호주 본다이 비치에 살고 있는 패션 블로거로 호주판 <보그>에 스타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호주 여자를 대표하는 패션 스타일은? 편안함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스타일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옷차림을 선호한다. 심플한 드레스에 세련된 펌프스와 멋진 시계만으로도 스타일을 완성할 줄 안다.
1년 내내 옷 입기 좋은 날씨가 지속되는데, 여름과 겨울 패션은 어떻게 다른가? 여름에는 느긋한 옷차림을 즐긴다. 흰색 티셔츠와 데님 팬츠면 충분하다. 여기에 킬힐 대신 해변에서 신고 벗기 쉬운 샌들을 신는다. 겨울은 비교적 따뜻한 편이라, 오버사이즈 셔츠에 니트 스웨터를 겹쳐 입는 등 자기만의 방식대로 레이어링을 즐긴다.
호주에서 꼭 필요한 패션 아이템은? 선글라스와 디스트로이드 데님, 버켄스탁풍의 슬리퍼. 해변에서도 길거리에서도 활용도가 높은 아이템이다.
호주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콘이 있다면? 야스민 스웰! 호주 패션을 널리 알린 일등공신이다. 스트리트 사진가 캔디스 레이크와 스타일리스트 스티브 댄스, 패션 에디터 질 데이비슨도 멋진 스타일을 지닌 여자들이다.
호주를 대표하는 패션 브랜드는? 국제적으로 인지도를 넓히고 있는 디온 리. 그는 지금 가장 핫한 호주 디자이너다. 엘러리와 크리스토퍼 에스버, 마이클 로 소르도는 젊은 호주 패션을 대변하는 브랜드. 떠오르는 신진 디자이너로는 헨슨앤그레텔과 아이 러브 미스터 미튼스가 있다.
Nicky Zimmermann 패션 브랜드 짐머만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니키 짐머만. 화려한 프린트와 다양한 컬러의 수영복 컬렉션, 리조트풍의 의상은 짐머만을 대표하는 것들이다.
호주가 당신의 디자인에 어떤 영감을 주나? 시드니에 살고 있는데, 이곳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 시드니 여성들은 수영복에 관심이 많은데, 마음만 먹으면 쉽게 해변에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호주 여자들의 옷차림은? 비키니와 롱드레스는 호주 여자들의 옷장에 꼭 있는 것들이다. 해변가에서도 길거리에서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추장스러운 장식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옷차림을 선호한다. 쉽게 레이어드할 수 있는 시스루 소재 의상도 인기 있다.
호주 여자들의 옷차림이 요즘 패션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물론이다. 그동안 패션계는 비현실적인 옷차림에 열광했다. 이러한 흐름에 지친 사람이 일상에 어울리는 옷을 찾기 시작했고, 덩달아 호주 여자들의 여유로운 옷차림이 각광받게 된 것 같다. 호주 여자들의 이지 시크룩은 요즘 패션계의 화두다.
호주 출신의 패션 아이콘은? 나오미 와츠와 케이트 블란쳇, 모델 줄리아 노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