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드라마에서 재벌가의 등장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그 재벌가의 남매가 최다니엘과 정소민이라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어리지만 꽤 좋은 필모그래피를 꾸준히 쌓아온 두 사람은 어딘가 친근하고, 독하기보다는 선한 인상의 소유자들이니까. 새로운 드라마 <빅맨>의 첫 방송을 앞두고 1960년대 모즈 룩을 차려입은 두 남매를 미리 만났다.

최다니엘이 입은 체크 슈트와 셔츠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ung Homme). 선글라스는 비욘드 클로젯 X 옵티칼 W(Beyond Closet X Optical W). 정소민이 입은 톱과 팬츠는 모스키노 칩앤시크(Moschino Cheap&Chic).

최다니엘이 입은 체크 슈트와 셔츠는 김서룡 옴므(Kimseoryonung Homme). 선글라스는 비욘드 클로젯 X 옵티칼 W(Beyond Closet X Optical W). 정소민이 입은 톱과 팬츠는 모스키노 칩앤시크(Moschino Cheap&Chic).

정소민
<빅맨>의 강진아는 재벌가의 딸이에요. 데뷔작인 <나쁜남자>의 모네도 비슷한 역할이었는데 고민은 없었나요?
전혀 고민이 없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둘은 배경은 비슷하지만 성격이 전혀 달라요. 모네가 순수한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캐릭터였다면, 강진아는 자신이 누리는 것과 주변의 어두운 부분까지 알 건 다 알거든요. 겉보기엔 제멋대로지만 자기 중심을 잘 잡고 있죠.
매력적인 캐릭터네요!
다른 작품을 볼 때 ‘아 저 역할 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어요. 작품을 감상할 때는 저도 시청자고 관객이니까 그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가 그 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얼마 전 저와는 너무 다르지만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생겼어요.
어떤 역할이었는데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리디아 윌슨이 연기한 여동생 역할이요. 분명히 내면에 건강한 부분이 있고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도 강한데, 어딘가 불안정하고 혼자 통통 튀는 캐릭터잖아요. 강진아가 그 캐릭터와 조금 닮은 구석이 있다고 느꼈어요.
당신은 가족에게 어떤 딸인지 궁금하네요.
첫딸이다 보니 책임감이 강해요. 나중에 우리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도 있고요. 그래서였는지 반항과는 거리가 멀었죠.
무용에서 연기로 전공을 바꿨으니까 반항은 한 것 같은데요.
정말 그 딱 한 번이 전부예요. 학교 다닐 때도 수업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고, 지키라고 하는 건 다 지켰거든요. 그래서 내 마음대로 사는 캐릭터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한예종 연기과 수석입학’이라는 꼬리표가 지겹겠지만, 사실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요.
다른 학교에 비해서 선후배 관계가 자유로운 편이었어요. 그런데 학교가 서울에서도 외진 곳에 있어서 버스와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야 했죠. 특히 아침 수업을 갈 때면 출퇴근 인파에 완전히 끼어 갔어요. 손잡이를 잡을 필요도 없다는 말이 뭔지 알죠? 데뷔 이후에 학교 생활이 어색해지진 않았어요?
제가 불편해할까 봐 오히려 더 막 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학번으로는 저보다 후배인데 ‘야, 너!’ 이렇게 부르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배려처럼 느껴져서 편하더라고요. 귀엽기도 하고. 친한 사람들이 학교에 남아 있을 때 작업을 같이 해보고 싶어요.
차근차근 준비하는 노력파라는 느낌을 주어요.
그런 편이에요. 연기는 평생 배워야 하는 거니까, 작품을 할 때가 아니어도 계속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척척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채워나갈 게 많은 것 같아서요.
어떤 것을 채워나가고 있나요?
좋아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직업이 됐고,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니까 잘하기 위해 공부를 계속 해야 해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별개로 연기 수업을 계속 받고 있거든요.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 배역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상상하는 거죠.

코트와 스웨터, 스커트, 귀고리 모두 미우 미우(Miu Miu). 반지는 토스(Tous).

코트와 스웨터, 스커트, 귀고리 모두 미우 미우(Miu Miu). 반지는 토스(Tous).

요즘 또래인 20대 중반의 배우들이 크게 활약하는 걸 보면 어떤 기분이 들어요?
특히 남자 배우들이 그렇죠. 조금씩 세대교체가 되는 것 같아 고무적이라고 할까, 또래 배우들이 이렇게 활약해주는 게 토양을 만들어주는 것 같아서 고마워요.
데뷔작인 <나쁜 남자>로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그 다음에는 한류스타인 김현중 씨와 <장난스러운 키스>에 출연하며 해외로도 진출했고요. 큰 작품들을 순탄하게 해와서 ‘굴곡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섭섭하지는 않아요?
운이 좋았던 건 맞아요. 하지만 저 역시 나름의 굴곡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감당할 수 있을 만한 적당한 실패, 적당한 좌절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 말이에요.
본인이 생각하는 좌절은 뭐였나요?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 좌절감을 느끼죠. <장난스러운 키스>와 <스탠바이> 때가 그랬어요. 두 작품 모두 어려운 환경에서도 매사 잘될 거라고 외치는 캔디 같은 캐릭터였거든요. 그런데 그런 역할이 제게 편안하지 않다는 걸 하면서 알았어요. 정말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집안 사정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는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의 혜윤이나, 단막극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의 하진은 심지어 고시원에 살았죠.
많은 분들이 공감해준 캐릭터지만 사실 제게는 혜윤도 어려웠어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나에게로 와서 별이 되었다>의 작가님은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를 보고 제가 하진이 역할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대요. 월급을 못 받아서 고시원에 사는 캐릭터가 어울린다니!
혜윤은 집안 문제 때문에 결혼을 망설이고, 하진은 애인의 경제사정을 알게 되자 고향으로 돌아가요. 현실 때문에 연인과의 헤어짐을 고민하는 걸 이해할 수 있던가요?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또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당신의 유튜브 영상에 해외 팬들이 남긴 댓글 중에서 ‘자연스럽다(Natural)’, ‘현실적이다(Down to Earth)’라는 표현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장점이기도 하지만 배우로서의 인상이 덜 각인되는 점이 섭섭하거나 아쉽지는 않아요?
아뇨. 저는 최대한 달라 보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연기를 되게 잘해서는 아니더라도, 어떤 역할을 맡든 배우만 보이는 것보다는 극중 캐릭터로 남는다면 더 좋을 것 같은걸요.
끝나고 사람들 기억 속에 배우 정소민이 남지 않아도요?
그럼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진짜로 없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다음 작품을 또 하면 되죠.

최다니엘이 입은 슈트와 셔츠는 씨와이초이 바이 커드(CY Choi by Kudd). 레이스업 슈즈는 디올 옴므. 안경은 라디오아이즈. 정소민이 입은 드레스는 메릴링 바이 스페이스 눌(Maryl ing by Space Nul l). 양말은 미스지 컬렉션(Miss Gee Collection). 에나멜 슈즈는 미우미우.

최다니엘이 입은 슈트와 셔츠는 씨와이초이 바이 커드(CY Choi by Kudd). 레이스업 슈즈는 디올 옴므. 안경은 라디오아이즈. 정소민이 입은 드레스는 메릴링 바이 스페이스 눌(Maryl ing by Space Nul l). 양말은 미스지 컬렉션(Miss Gee Collection). 에나멜 슈즈는 미우미우.

최다니엘
오는 길에 <최다니엘의 팝스팝스>를 들었어요.
어휴, 급하게 찾아 들으셨구나.
스물아홉이에요. 어떻게 보면 어린 나이인데, DJ로서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고, 청취자의 고민 상담까지 하는 게 어색하지 않아요?
저도 라디오를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참 좋더라고요.
어떤 점이 가장 좋아요?
어느 정도 정해진 멘트도 있으면서, 제 생각도 적절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참 편해요. 제가 좀 외골수 기질이 있는데, 라디오를 하면서 그런 부분도 좀 누그러진 것 같고요.
오전 11시에 라디오를 생방송으로 하게 되면서 일상도 많이 바뀌었을 것 같아요.
새벽 3시에 하던 <더 가까이… 최다니엘입니다>가 개편 때 폐지되면서 엉겁결에 옮기게 됐죠. 생방송은 일주일에 네 번 정도이긴 한데, 확실히 생활이 좀 더 규칙적이 됐어요. 제가 10년째 혼자 살고 있거든요.
오.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해도 될 정도의 경력이네요.
그런데 이사한 지 얼마 안 돼서 커튼이 없어요. 요즘은 아침 8시 반이면 자동 기상이에요. 태양을 피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깨어 있다가 10시쯤 라디오 하러 가는 거죠.
늘 어른스러운 느낌인데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이름도 특이하고, 키도 크고, 눈에 많이 띄지 않았어요?
초등학생은 아무리 키가 커도 초등학생이잖아요. 동네 깡패들한테 많이 걸렸어요. 초등학교 때 다마고치가 유행했는데, 다마고치보다 한 단계 고급인 이노구치라는 게 있었거든요. 형이 사준 이노구치를 다음 날 바로 뺏긴 적도 있다니까요. 그래도 친구는 많았어요. 맨날 쌈박질하는 친구, 운동하는 친구, 공부하는 친구. 다 고르게 친했던 것 같아요.
당신은 운동과 공부 중 어느 쪽이었어요?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아버지는 일하시고, 형은 저보다 여섯 살이나 많았으니까 자연스레 혼자 노는 게 익숙했죠. 다른 사람하고 있으면 그 사람을 재미있게 해줘야 할 것 같고, 말이라도 걸어야 할 것 같고 그런 게 불편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도 라디오 DJ를 할 수 있군요.
그래서 게스트가 나오면, 재미있는 한편 힘들어요. 뭔가 대화가 빙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내 앞에 게스트가 앉아 있긴 하지만 결국 이 대화도 청취자한테 들으라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사적인 이야기를 할 수도 없고. 뭐 그래도 그것까지 좋아요. 재미있어요.
오늘 정소민과의 촬영은 어땠어요?
어때 보였어요?
음. 친남매까지는 아니고 적당히 친한 느낌?
아직은 딱 그 정도인 것 같아요.
그녀는 당신이 성격도 참 좋고 잘해준다고 칭찬하던데….
아, 저도 좋아요. 물론 좋습니다. 이게 다 오누이가 되어가는 과정이죠. 사실 극중에서 친동생이긴 한데 4회까지 한 번도 같이 나오는 장면이 없거든요. 아무튼 소민이는 차분하고, 생각도 깊고 정말 괜찮아요. 취미도 독특해요. 공방에서 도자기를 굽더라고요.
<빅맨>에서 강지환 씨와의 대결 구도에 대한 기대도 높더군요.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뭐예요?
일단 대본이 줄줄 잘 읽혔어요. 강동석은 몸이 약한 캐릭터거든요. 처음 4화까지는 식물인간처럼 대사 하나 없이 누워만 있어요.

슈트와 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슈즈는 로크(Loake). 안경은 라디오아이즈(Radioeyes).

슈트와 셔츠는 디올 옴므(Dior Homme). 슈즈는 로크(Loake). 안경은 라디오아이즈(Radioeyes).

악역이죠? 영화 <공모자들>이 있긴 했지만 TV 드라마에서 악역 연기를 하는 건 처음인데 시청자들의 반응이 걱정스럽지는 않아요?
어떻게 보일까라거나, 평가가 두렵지는 않아요. 그리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강동석이 악역일까요?
목표를 위해서라면 뒷거래도 서슴지 않는 이중적인 인물인데요?
그런 건 부분적인 묘사인 것 같아요. 강동석은 모든 걸 가졌어요. 나이도 젊고, 열정과 패기도 있고, 재력과 권력 다 있는데 딱 하나, 건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기적인 짓을 해도 그한테는 이게 합당한 거죠. ‘너 왜 그렇게 사냐’고 하면 ‘나는 당장 죽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오늘 갖는 건 나한테 정당한 거야’라고 해요. 이 정도?
<지붕 뚫고 하이킥> 이후로 훈남 이미지는 당신을 계속 따라다니고 있죠. 심지어 남자들한테 당신의 안경, 가방, 셔츠가 친숙한 패션 아이템이 되기도 했고요. 그런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어요?
제가 어떤 놈인지 제가 알잖아요. 그래서 속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웠죠.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어요. 그 작품에서 그만큼 내가 잘했으니까, 지훈이라는 캐릭터가 그렇게 남았던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실제 당신은 어떤 사람인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게 궁금해서 연애할 때 여자친구에게 물어보면 사람들이 있는 게 나한테 없고, 사람들한테 없는 게 나한테는 있대요. 그런데 그와 비슷한 말을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종종 들어요. 쉬운 일은 어렵게 생각하고, 어려운 일은 쉽게 생각한다거나.
예를 들면요?
왜 1을 이야기했는데 사람들은 그 뒤의 10까지 생각할까 싶을 때가 있어요. 직업도 그래요. 먹고사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직업을 구한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은 것 같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직업을 가지면 얼마나 벌까,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등 생각이 너무 많아요.
당신의 직업은 배우죠. 배우가 되겠다는 선택도 어렵지 않았나요?
배우를 하든, 편의점에서 일하든 직업이라는 틀은 같잖아요. 물론 사람들이 두 직업을 대하는 태도는 달라요. 하지만 제 안에서는 그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직업이나 꿈은 제겐 늘 두 번째 문제이기도 했고.
그럼 첫 번째 문제는 뭐였는데요?
‘나는 왜 태어났을까’ 같은 질문. 누구나 한번쯤 하는 생각이지만 금방 잊고 사는 질문에 저는 좀 더 오래, 진지하게 매달렸던 것 같아요.
확실히 직업을 구하는 것처럼 풀 수 없는 문제이긴 하네요. 그래서 여전히 고민하고 있나요?
최근에 그 대답을 찾은 것 같아요. 한 문장으로 설명도 가능한데 종교적인 이야기라 말하기 힘드네요.
왜요?
이름만 들으면 모태신앙인데 교회를 열심히 다니게 된 지는 얼마 안 됐거든요. 일년 반 전만 해도 ‘신이 어디 있어’라고 생각했었으니까, 이 말이 어떻게 들릴지를 알아요.
당신이 그 답을 찾아서 지금 행복하면 된 거죠.
차라리 ‘오늘 무슨 색 팬티 입었어요?’ 하는 질문을 받고 싶네요. 그런 거는 정말 답하기 쉽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