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하게 올라간 속눈썹을 위해 마스카라를 바를 때, 행여나 눈에 들어갈까 손끝을 바들바들 떨며 조심조심 바른 적 있나요? 그 액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토끼의 눈이 희생됐는지, 이제는 알아야 해요. 더 이상 죽는 순간까지 고통을 호소하는 작은 생명들을 외면하지 말아요.

#1
고마웠어요. 하얗게 꾸며진 깨끗한 방을 내주어서. 그 안에서 나를 닮은 친구들과 보낸 하루하루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요. 밖에서 만나면 아옹다옹 다투기 바쁘다는 개와 원숭이도, 천적관계인 고양이와 쥐도, 여기에선 모두 둘도 없는 친구였으니까요.

#2
믿기지 않았어요. 당신이 손에 쥐고 있던 쇠사슬도 새로운 장난감인 줄로만 알았어요. 우리를 철창에 가두고 틀에 옥죄는 모습을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었어요. 매일같이 먹을 것을 챙겨주고, 잠자리를 매만져주던 당신의 따뜻한 손길을 두 뺨이 기억하고 있었으니까요.

#3
차갑게 변한 손에 이끌려 갇힌 틀 안에서 며칠을 보냈어도 외롭지는 않았어요. 그 안에서도 나를 닮은 친구들이 함께했으니까요. 중간중간 우리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당신을 보며 안심할 수 있었어요. 새로운 보금자리가 우리를 기다릴 거라는 희망을 안고 하루하루를 보냈어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을 때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요. 먹이를 주던 손에 쥔 주사기는 우리의 입이 아닌 눈을 향해 있었고, 그렇게 수백 번, 수천 번 눈 안에 뭔가를 넣었어요. 마스카라에 들어가는 성분이라고요.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등쪽만 골라 가려워도 긁을 수 없도록 뭔가를 바르기도 했어요. 이건 크림에 들어가는 성분이래요. 마스카라가 뭔지, 크림이 뭔지 알 수 없지만, 알고 싶지 않아요. 이미 많은 친구가 피눈물을 흘리는 걸 봤으니까요. 피부가 부어 오르고 염증이 생기다가 갈라지는 것도, 고통에 몸부림치다 목뼈가 부러지는 것도 봤어요. 내 차례가 되었네요. 다행히 따갑지도 않고, 눈이 붓지도 않았어요. 다만 눈이 조금 침침할 뿐이에요.

#4
이제 앞을 볼 수 없지만, 어쩌면 그게 다행인지도 모르겠어요. 당신의 변한 모습을 직접 봤다면 그게 더 가슴 아팠을 테니까요. 당신에 대한 놀랍도록 무서운 소문은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공포를 안겨주기에 충분했어요. 쥐 친구들에게 뭔가를 강제로 먹이고 한동안 굶겼을 뿐인데 누군가는 호흡 곤란을 겪고, 안구와 코, 항문에서 피를 흘렸으며, 의식을 잃고 결국 죽었다고요. 새끼를 밴 토끼들만 모아서 뭔가를 먹이고 새끼가 유전자 변형 없이 온전하게 태어나는지를 확인하기도 하고, 이런 실험 끝에 살아남은 친구들도 결국 부검을 이유로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데, 설마요. 이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이라는 건가요? 단지 인내심이 강하고 당신들을 잘 따른다는 이유만으로 사랑스러운 비글이 이러한 실험에 많이 쓰이는 거라는 이야기를 저보고 믿으라고요?

#5
그제야 알았어요. 우리가 서로 닮은 건, 우리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우리는 화장품 실험을 위해 대량으로 생산되고 있었던 거예요. 우리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 사랑으로 보살펴준 게 아니라 더욱 효과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관리당하고 있었던 것일 뿐이죠. 오늘도 차디찬 주사기가 내 눈에 뭔가를 떨어뜨리고 있어요. 도망갈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게, 그 주사기를 쥔 손이 당신이라는 게 나를 더 슬프게 하네요. 가슴이 쓰릴 정도로 슬프지만, 눈물이 나질 않아요. 왜 나는 마음껏 울 수도 없는 거죠? 그리워요. 함께 뛰어놀던 친구들이 있고, 당신이 따뜻한 손길로 보금자리를 매만져주던, 이제는 꿈만 같은 그때 그 시절이.

화장품 실험으로 희생되는 동물이 전 세계적으로 한 해에만 1억 마리가 넘고 있어요. 지금 이 글을 읽는 1초라는 짧은 시간에도 3마리가 죽고 있는 거죠.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동물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연구 결과가 100% 안전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사람과 동물의 유전자가 다르기 때문이죠. 이런 잔인한 실험을 대체하거나 최소한 동물이 받는 고통을 줄일 수 있는 실험도 얼마든지 있어요. 이미 검증된 성분을 사용하거나 인공적으로 피부를 만드는 방법도 있고, 달걀 껍데기로 혈관 독성 실험을 할 수도 있죠. 화장품 회사들이 이런 대안을 몰라서 안 하는 걸까요?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동물 실험을 하지 않아요”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브랜드는 얼마나 될까요? 유럽에서는 지난해부터 원료 단계부터 전 과정의 동물실험을 금지하고 있어요. 동물실험을 거친 제품은 판매 자체가 불가능하도록 법으로 지정한 거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럽에서의 판매에만 적용되는 법이에요. 다른 나라, 그러니까 신기술을 사용했거나 자체 특허성분, 특허기술이 있는 화장품은 반드시 동물실험을 거쳐야 판매가 가능한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판매를 해도 된다는 이야기란 말이에요. 이 말인즉,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브랜드 중에서 중국에 매장을 두고 있는 브랜드는 중국에 수출하는 제품에 한해 동물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결론이 나오죠. 실제로 이런 이유로 인해 돈이 된다는 중국 진출을 아직까지 사양하고 있는 브랜드도 많지만, 말을 바꾸는 브랜드가 많아지는 건 분명 안타까운 일이에요. 동물실험을 요구하지 않겠다던 말을 계속 바꾸는 중국식약청의 정책도 아쉽고요. 이제 윤리적인 소비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때예요. 도대체 우리는 어떤 권리로 누구의 안전을 위해 동물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인지, 언제까지 동물실험을 해야 할 만큼 걱정되는 게 많은 제품을 써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인증 마크
1 One Voice
전 단계에서 동물실험과 학대가 없을 때 받을 수 있는 인증마크. 화장품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산품에 대해 적용된다.
2 Cosme Bio
유기농 화장품에서 볼 수 있는 인증 마크로, 원료부터 완벽하게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지의 여부도 포함되어 있다.
3 CFI
‘리핑 버니’라고도 불린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고, 동물실험을 한 원료도 넣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야 받을 수 있는 인증마크다.
4 BDIH
독일의 유기농 인증 단체에서 주는 인증 마크. 유기농 원료를 사용하는 것은 기본,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제품만이 받을 수 있다.